제 751장. 너희 인간이 가장 하찮아
다시 어둡고 습한 감옥으로 돌아온 양준은 다른 감방에 갇혔다.
감방 안에는 이미 누군가 자리잡고 있었는데, 그 사람은 구석에 웅크리고 앉아 훌쩍이고 있었다. 기척을 들은 그 사람은 고개를 들고 이쪽을 바라보았다. 순간, 아름다운 눈동자에는 기쁨이 어렸다.
“양준?”
안령아는 벌떡 일어서더니 비틀거리며 달려왔다. 그러고는 애틋한 눈길로 그를 살펴보다가 상처가 거의 다 나은 것을 보고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이곳에 오자마자 양준과 떨어져 있게 되었다. 그녀도 다른 사람들처럼 양준이 죽거나 불구가 되었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멀쩡한 양준을 다시 만나게 될 줄 어떻게 알았겠는가!
양준은 그녀에게 조용하라고 눈짓하고는 그를 압송해 온 두 사람이 떠나간 뒤에야 그녀를 끌고 감방 구석으로 갔다.
“너 괜찮아?”
한참 훑어본 결과, 안령아는 울어서 눈이 퉁퉁 부었을 뿐, 옷매무시는 단정했다.
“난 괜찮아. 넌?”
“나도 괜찮아.”
“여기는 뭐 하는 데야? 저들이 뭐 하는 사람인지 알아? 왜 우리를 잡아온 거야?”
“나도 잘 몰라. 그런데 인간은 아닌 것 같았어. 그리고 마족과 큰 원한이 있는 것 같아.”
양준은 말하면서 양옆의 감방을 둘러보았다. 호기심 어린 시선들이 그와 안령아를 훑어보고 있었다. 또한 그들의 몸속에는 사악한 기운이 배어 있었다. 그들 모두 이곳에 잡혀 온 마족들 같았다.
“늑대 굴에서 벗어나니 또 호랑이 굴에 들어온 셈이구나.”
안령아는 어두운 얼굴로 말했다.
“마음 넓게 먹어. 적어도 남성고는 당분간 이곳으로 찾아오지 못할 거야.”
양준은 자리에 앉았다. 그에게 있어 이곳은 전임 성녀에게 추격당하는 것보다 안전했다. 적어도 당분간 목숨을 잃을 걱정이 없었다. 양준의 말에 안령아는 기분이 한결 좋아졌는지 그의 옆에 기대어 앉았다.
양준은 더 이상 그녀를 신경 쓰지 않고 양옆의 마족들을 살폈다. 그들 역시 진원과 신식을 봉인당한 것 같았고, 양성이 짙은 곳에 있다 보니 그들의 마기 또한 어느 정도 억제를 당하는 듯했다. 이곳에 갇힌 마족들은 적어도 십여 명 정도 되었는데, 실력이 천차만별이었다. 구체적인 경지는 양준도 알 수 없었다. 식해에 금제가 걸려 있는 탓에 섣불리 신식으로 남을 살펴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양준이 한창 이리저리 살펴보고 있는데 감방 밖에서 한 사람이 걸어왔다. 양준은 흠칫 놀라 실눈을 뜨고 그 사람을 바라보았다.
아까 대전에서 봤던 사람이었다. 그는 꽤 앞자리에 앉아 있었던 것으로 볼 때, 아마도 이곳의 고수인 것 같았다. 그는 감방 밖에 서서 덤덤한 얼굴로 양준을 바라보고 있었다. 잠시 뒤, 적지 않는 사람들이 물건들을 들고 다가왔다.
“감방 문을 열어라.”
그 사람이 지시를 내리자 바로 누군가 감방 문을 열었고, 사람들이 줄줄이 들어왔다. 양준이 향긋한 냄새에 놀라서 바라보니 잘 차려진 음식에 술까지 몇 단지 들고 온 모양이었다.
“녀석, 운 좋은 줄 알아. 족장님이 널 잘 보살피라고 지시를 내리셨어.”
그 사람은 손을 저어 진원 한 가닥을 양준의 몸속으로 쏘았다.
곧 양준은 몸속의 금제가 풀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진원이 다시금 경맥에서 흐르기 시작하자 그도 원래의 실력을 회복했다. 하지만 그는 무모하게 움직이지 않았다. 상대방이 쉽사리 그의 금제를 풀어줬다는 건 그가 어쩌지 못할 거라고 확신한다는 뜻이기도 했다.
음식과 술이 양준의 앞에 차려지는 동안, 고수는 그저 제자리에 서서 싸늘하게 그를 내려다볼 뿐이었다.
“이건 무슨 뜻인가요?”
양준은 미간을 찌푸렸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양준을 대하던 그들의 태도는 좋지 못했다. 그런데 갑자기 아무 연유 없이 그에게 건 금제를 풀어준 것도 모자라 이렇게 좋은 대우를 해주자, 그는 경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갑자기 이렇게 자비를 베풀다니, 분명 뭔가 있어.’
“아무 뜻 없어.”
그 사람은 냉소하더니 천천히 다가와 손을 뒤집었다. 그러자 그의 손바닥에는 옅은 노란색을 띤, 주먹만한 열매가 나타났다. 열매가 나타나는 순간, 짙은 양성 기운과 코끝을 맴도는 향기가 느껴졌다.
양준은 눈썹을 치켜세우고 열매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이것도 네놈에게 좋은 거야. 알아서 잘 흡수해.”
그 사람이 열매를 던져 주자, 양준은 열매를 받아 들고 의아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사람들을 거느린 채 감방 문을 잠근 뒤, 떠나갔다.
손에 든 열매와 눈앞의 차려진 술과 음식을 본 양준은 의문투성이였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지금의 상황이 이해되지 않았다.
이때, 왼쪽 감방에서 문득 요상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인간 녀석, 운이 좋구나. 죽기 전에 배부르게 먹을 수 있다니. 네가 꽤 이용 가치가 있나 봐.”
양준은 미간을 찌푸리고 그 사람을 곁눈질해 보았다. 하지만 사방이 너무 어두운 탓에 어떻게 생겼는지 알 수 없었다.
“이봐, 다들 같은 처지인데 그렇게 비아냥거릴 건 없잖아? 너도 좀 먹지 않을래?”
“됐어. 너나 실컷 즐겨.”
그 사람은 코웃음을 치고는 더는 말하지 않았다.
“독이 들어 있지 않을까?”
안령아는 걱정스러운 말투로 물었다.
“괜한 생각이야.”
양준은 고개를 저었다. 정말 그를 죽일 생각이라면 이렇게 번거롭게 할 필요가 없었다. 그들의 실력으로 얼마든지 그를 사지로 몰 수 있는데 왜 굳이 음식에 독을 탄다는 말인가? 게다가 열매는 평범하지 않은 것 같았다. 본 적이 없는 영과지만 적어도 영급 상품이라는 건 알 수 있었다. 열매에 내재된 양성 기운은 매우 짙었다. 이런 영과의 도움을 받는다면 양성 공법을 수련하는 양준의 몸은 완벽하게 회복할 수 있었다.
“먹어. 괜찮아.”
양준은 씩 웃더니 접시를 들어 안령아의 손에 놓아주었다.
안령아는 진원과 신식에 모두 금제가 걸려있는 데다 놀라기까지 한 탓에 체력 보충이 필요했다. 그녀는 사양하지 않고 음식을 천천히 먹기 시작했다.
양준은 게 눈 감추듯 배불리 음식을 먹고 난 뒤에 열매도 먹어 버렸다. 그러자 단전 안에 양액 몇 방울이 더해졌다. 그리고 며칠 동안 사람들은 매일같이 음식을 가져왔다. 음식은 모두 정성껏 요리한 것들로 맛이 좋았다.
양준은 이왕 이렇게 된 거, 마음 편히 누렸다. 며칠이 지나자 그의 상처는 깨끗이 나았을 뿐만 아니라 실력도 조금 향상되었다. 이렇게 양성 기운이 짙은 곳에서 진양결을 수련할 수 있는 것은 그에게 있어 더없이 좋은 기회였다.
양준과 안령아가 이런 대우를 받을 때마다 양옆의 감방에 갇힌 마족들의 기분은 씁쓸하기 그지없었다. 다들 똑같이 감방에 갇힌 신세인데 대우가 너무 다르지 않는가. 그들은 양준이 이곳의 사람들과 어떤 사이인지 궁금해졌다.
왼쪽 감방에 있던 마족은 양준이 곧 죽임을 당할 거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도록 이곳 사람들은 양준을 괴롭히기는커녕, 오히려 끊임없이 각종 좋은 것들을 제공했다. 이에 그 마족은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대략 닷새 뒤에 감방에서 좌선하던 양준은 갑자기 공기 중의 양성 기운이 불안정해진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아마도 기운의 근원지에 무슨 변고가 생긴 듯했다. 그는 미간을 찌푸리고 자세히 살펴보았다. 하지만 쓸모 있는 정보는 별반 탐지해낼 수 없었다.
오히려 양옆 감방에 있던 마족들이 이 상황을 감지하고 안색이 크게 변하더니 모두 침묵하기 시작했다.
“저들은 왜 저래?”
안령아는 양준의 옆에 움츠리고 앉아 나지막하게 물었다.
양준은 무거운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끼익-
그때, 갑자기 문이 열리더니 급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바깥에서 몇 사람들이 들어왔다. 그러자 갇혀 있던 마족들은 욕설을 퍼붓기 시작했다. 하나같이 흥분하며 목숨을 걸고 싸울 태세였다. 하지만 금제가 걸린 그들에게는 반격할 여력이 없었다. 투닥투닥하는 소리와 함께 마족 몇 명이 밖으로 끌려갔다. 이윽고 감방 문이 다시 닫혔다. 남은 사람들은 여전히 욕설을 퍼부었지만 아무런 대답도 들을 수 없었다.
“됐어. 다들 그만해. 여기서 떠들어봤자 무슨 소용이야?”
전에 양준과 대화를 나눴던 왼쪽 감방에 있는 마족이 소리를 버럭 질렀다. 그러자 모든 이들이 조용해졌다. 양준은 놀란 눈으로 그 마족을 힐끗 보았다. 그 마족은 마족들 중에서 명망이 꽤 있는 것 같았다. 그게 아니면 다른 이들이 그의 말에 복종할 리가 없었다.
이각 정도 지나자 공기 중 어지럽던 원기 파동이 점차 누그러지며 평온해졌다. 그러자 감방에 있던 마족들 모두 슬픔에 잠겼다.
양준은 눈을 반짝였다. 마족들이 그보다 더 많은 것을 알고 있는 듯했다. 어쩌면 그들에게서 이곳에 관한 정보와 단서를 알아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하루 뒤, 또다시 음식과 술을 가져오자 양준은 전처럼 허겁지겁 먹지 않고 술을 들고서 왼쪽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왼쪽 감방에 있는 마족에게 말했다.
“술 좀 마시지 않을래? 술맛이 꽤 좋아.”
그 마족은 어둠 속에서 눈을 천천히 뜨더니 날카로운 빛을 뿜었다. 잠시 뒤, 경시와 비웃음을 띤 차가운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인간과 마족이 사이가 좋지 않다고는 하나 ‘적의 적은 친구’라는 말도 있잖아. 안 그래?”
양준은 환하게 웃으며 설득에 나섰다. 그 마족은 점차 웃음을 거두더니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입을 열었다.
“너희 인간은 항상 이렇게 간악하지. 임기응변에도 능하고 말이야.”
마족은 그렇게 말하면서 일어나 양준 쪽으로 다가오더니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그러고는 양준의 손에서 술을 빼앗아 벌컥벌컥 들이켰다. 얼마 안 되어 마족이 술 한 단지를 다 비우자, 양준은 또 한 단지를 더 건넸다.
양준이 눈치가 빠른 것을 보고, 마족은 고개를 끄덕이며 경멸 어린 말투로 말했다.
“너희 인간이 가장 하찮아. 강자 앞에서는 굽신거리고, 약자는 괴롭히며 항상 음험하고 간사하지.”
“일단 마셔. 다 마시고 얘기하자고.”
양준은 화를 내지 않고 말을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