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53장. 당나무
들어온 이들 중 한 명은 전에 양준의 금제를 풀어주었던 고수였다. 고수는 음침한 얼굴로 들어온 뒤, 손을 저었다. 그러자 양족들이 바로 양옆의 감방 문을 열었다.
“네 제삿날이 왔어. 그동안 잘 먹고 마시게 해줬으니 얼마나 큰 효력을 발휘하는지 봐야겠어.”
고수는 싸늘하게 말하더니 또다시 양준의 진원을 봉인하고는 양족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모두 끌고 가.”
구척과 다른 마족 한 명은 곧장 욕설을 퍼부었다. 결국 둘 다 한바탕 얻어맞고 끌려 나갔다. 양준과 안령아는 반항하지 않았기에 얌전히 끌려 나갔다.
감옥의 복도를 따라 나가는 길에서 구척은 말을 듣지 않고 자주 멈춰 채찍에 여러 번 맞았다. 감옥에서 빠져나왔을 때 구척은 이미 온몸이 피투성이가 된 상태였다. 하지만 그는 굴복하지 않고 신음을 흘리는 대신, 온갖 욕설을 퍼부었다. 입에 담기도 거북한 욕이 사람들의 귀를 어지럽혔다.
양족의 고수는 연신 냉소했다.
“실컷 욕해. 이따가는 욕할 기회도 없으니. 네가 마장의 자식이라며? 네 아버지도 별것 아니네. 아들이 곧 죽게 생겼는데 구하러 오지도 않고.”
“용기 있으면 날 풀어줘. 내가 가서 지원병을 불러올 테니까. 아버지가 너희들을 모조리 죽여 버릴 거야.”
“멍청하긴!”
고수는 가소롭다는 듯이 입을 삐죽거렸다.
구척은 말하면서 끊임없이 양준에게 눈빛을 보냈다. 그의 모습을 보니 손을 쓰려는 모양이었다. 양준은 급히 그에게 침착하라고 눈짓했다. 지금은 양족의 고수가 가장 경계할 때였다. 전성기의 실력으로도 도망칠 수 있다고 아직 확신할 수 없는데, 하물며 지금 양준은 진원과 식해에 모두 금제가 걸려 있지 않는가?
반드시 기회를 기다려야 했다. 적절한 시간에 서혼지충을 풀어 수많은 양족들을 제압해야 했다.
구척은 더는 떠들지 않았다. 다만 그는 양준의 생각을 몰라 의아한 눈빛으로 양준을 바라볼 뿐이었다.
양족에게 끌려서 앞으로 나아갈수록 양성의 원기 파동이 점차 강해졌고, 또 그만큼 불안정했다. 양족들은 마음이 급한지 발걸음도 매우 빨랐다. 얼마 안 되어 그들은 공터에 도착했다. 그곳은 사방 몇백 장 안에 아무것도 없는 곳이었다. 오직 백 장 높이의 금빛을 띤 아름드리 나무가 무성한 가지를 자랑하며 그곳에 뿌리내리고 있었다. 모든 양성 기운은 바로 그 나무에서 발산된 것이었다.
아름드리 나무는 거대한 나뭇가지를 활짝 펴고서 기운을 먼 곳까지 뿜어내고 있었다. 나무는 육안으로 볼 수 있는 반원 모양의 보호막을 만들어 양족들이 사는 곳을 뒤덮고 있었다.
이곳에 오자마자 양준의 몸속의 진원 그리고 피와 살이 꿈틀거렸다. 또한 그의 몸속에 걸린 금제도 적지 않게 풀렸다. 이 같은 변화에 양준은 깜짝 놀랐다. 그리고 눈앞이 밝아지는 것만 같았다.
세상에 이처럼 신기한 나무가 있다니, 이 나무가 바로 양족들이 말한 당나무이자 그들 일족의 뿌리인 것 같았다. 또한 그들이 수련한 공법이 양성을 띠는 이유이기도 했다. 당나무가 있는 한 그들의 실력은 빠르게 강해질 수 있었다. 양준처럼 양성을 띤 천재지보나 영기가 모인 곳을 찾아다닐 필요가 없었다. 이곳은 양준이 꿈에도 그리던 천국 같은 곳이었다.
양준이 고개를 들어 보니 당나무에는 열매가 가득 달려 있었다. 바로 그가 얼마 전에 먹었던 열매였다. 열매는 양이 많지 않았는데 어떤 것은 잘 익었고 어떤 것은 설익은 것 같았다.
양족의 고위층들은 당나무의 뿌리 주변에 모여서 기다리고 있었다. 사람들이 온 것을 느낀 그들은 이쪽을 바라보았다. 양준을 본 순간, 그들은 기대 어린 표정을 지었다.
당나무도 무언가를 갈구하는 듯한 심상치 않은 파동을 내뿜었다. 육안으로 볼 수 있는 순수한 양성 기운이 밧줄로 변해 당나무에서 뻗어 나오더니 양준의 몸을 감쌌다.
이 광경을 본 사람들은 정신이 번쩍 드는 것만 같았다. 족장은 미소를 짓더니 수염을 쓰다듬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당나무가 저 인간을 좋아하는 듯하군.”
“이젠 살았습니다. 저 인간만 있다면 당나무는 한동안 조용할 겁니다. 우리가 새로운 자양분을 찾을 때까지 시간이 충분하겠네요.”
“당나무의 자양분이 될 수 있는 건 네 영광이다.”
양준 일행을 압송해 온 고수가 냉소하며 말했다.
“전 영광인 걸 모르겠는데요.”
양준은 콧방귀를 뀌었다. 그는 당나무가 자신의 몸을 속박한 원기 사슬을 풀지 않았다. 원기 사슬은 그의 행동을 속박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편한 기분을 느끼게 해줬다. 계속 앞으로 나아가자 멀지 않은 곳에서 가득 쌓인 백골과 짙은 빨간색의 핏자국이 보였다. 백골들은 전에 이곳에 잡혀와 제물이 된 마족들의 것이 분명했다. 백골 밭은 너무나 끔찍하고 소름이 끼쳤다.
안령아는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그녀는 자신도 곧 이렇게 될 거란 생각에 공포감에 휩싸였다.
우지끈- 우지끈-
사람들이 걸어가며 백골을 밟자 뼈가 부러지며 모골이 송연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구척은 눈을 부릅뜨고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두 눈이 벌게진 그의 몸에서 원통함과 분노에 찬 포악한 기운이 서서히 퍼져 나왔다. 백골과 메마른 핏자국은 모두 그의 동족들이 남긴 것이었다. 구척이 분노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당나무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양준의 표정은 이상하게 변했다. 당나무에서 형언할 수 없는 무언가가 느껴졌다. 순간, 그의 몸과 마음은 나무에 흠뻑 빠졌다.
잠시 뒤, 양준 일행은 당나무 뿌리 앞에 당도했다.
양족들은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바로 그들을 죽여 난폭한 당나무를 잠재우려 했다. 족장은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구척을 바라보며 싸늘하게 말했다.
“이 자부터 시작하지.”
그러자 바로 누군가가 걸어 나오더니 구척을 바닥에 내리눌렀다.
“아직도 안 움직이면 도대체 언제 움직일 거야?”
구척은 양준에게 화를 버럭 냈다. 말하는 사이, 그의 몸은 갑자기 팽창하더니 온몸의 피와 살에 폭발적인 기운이 깃들었다. 그의 몸에 걸렸던 금제가 순식간에 파훼되었다. 구척은 전혀 머뭇거리지 않고 가장 가까운 양족의 심장이 있는 위치에 예리한 손을 박아 넣어 죽이려 했다.
그러나 모든 양족들은 일말의 표정 변화 없이 광대를 보는 듯한 눈빛으로 구척을 바라보았다. 이내 족장이 손을 휘젓자 구척의 몸이 굳어졌다.
구척은 아무리 애를 써도 조금도 움직일 수 없었다. 식은땀이 그의 이마에서 흘러내렸다. 새빨간 눈동자에는 짙은 씁쓸함이 서렸으나 절대적인 힘 앞에서 그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목숨을 걸고 싸워 보고 싶은 모양이군? 참 한심하네. 내가 너희들에게 기회를 줄 것 같으냐?”
족장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이 노친네!”
구척은 이를 악물고 욕을 퍼부었다. 동시에 그의 이마의 실핏줄이 불거져 나왔다. 그는 끊임없이 마원을 돌렸지만 여전히 눈앞의 곤경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의 실력은 초범 경지 3단계로 낮지 않았다. 하지만 입성 경지의 고수 앞에서 그의 반항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하물며 이곳은 당나무 뿌리가 있는 곳이었다. 짙은 양기 앞에서 그의 마원은 억제될 수밖에 없었다. 때문에 그와 같은 경지의 양족도 그를 손쉽게 죽일 수 있었다.
“죽여라.”
족장은 귀찮다는 얼굴로 차갑게 명령했다.
구척을 누르고 있던 양족 두 명은 잔인한 미소를 지으며 손에 진원을 모았다.
“잠깐만요!”
구척이 곧 죽게 되자 양준이 나지막하게 저지했다.
“왜 그러는 것이냐?”
족장이 음산한 얼굴로 양준을 바라보았다.
“설마 네가 이놈 대신 죽어 줄 것이냐?”
그 말에 구척의 표정도 이상해졌다.
양준은 입을 삐죽거리며 대답했다.
“죄송합니다만 그 정도로 돈독한 사이가 아닙니다. 그의 생사는 저와 상관이 없지요.”
“그럼 왜 막는 것이냐?”
“제가 지금 상황을 해결하고 당나무를 진정시킬 수 있을 것 같아서요.”
양준이 옅게 웃으며 말했다.
그 말에 양족들의 안색이 변했다. 족장은 차가운 얼굴로 양준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말했다.
“젊은 나이니 혈기를 못 이겨 큰소리치는 것도 이해가 된다만, 감히 우리를 희롱하려 든다면 죽는 것보다 무서운 것이 무엇인지 보여주겠다.”
“큰소리인지, 아닌지는 한번 시켜 보면 될 것 아닙니까? 손해 볼 것도 없는데.”
양준은 말하면서 몸을 흠칫 떨었다. 그러자 그의 몸속에서 진원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너……!”
그러자 양준 일행을 끌고 왔던 고수가 입을 떡 벌린 채, 양준을 바라보았다. 양준이 이렇게 쉽사리 자신이 건 금제를 풀 줄 몰랐던 것이다.
“그렇게 놀라실 것 없습니다. 제가 당신의 금제를 풀 정도로 강한 것이 아니라 당나무가 도와줘서 그런 것입니다.”
양준은 웃으며 자신의 몸을 감고 있는 기운을 가리켰다.
“이상하군!”
그 고수는 고개를 저으며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럼 제가 시도해 보게 허락할 겁니까, 말 겁니까? 사실 당신들이 지금 당장 저희를 죽이겠다고 해도 전 이견이 없습니다. 기껏해야 죽기밖에 더 하겠습니까. 하지만 당나무를 진정시킬 수 있는지 시도해 보게 한다면 생각지도 못한 일이 생길 수도 있지 않습니까? 정 안 된다면 그때 다시 저희를 죽여도 되고요. 당신들의 선택에 달렸습니다.”
양준이 느긋하게 말하는 것을 보자 양족들은 머뭇거렸다. 그들이 머뭇거리는 이유는 당나무가 뜻밖의 반응을 보였기 때문이었다. 이전까지 당나무는 원기로 누군가를 휘감은 적이 없었다. 양족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들은 왠지 양준의 말에 믿음이 갔다. 어쩌면 정말 그가 말한 대로 예상치 못한 일이 생길 수도 있을 것만 같았다.
양족들은 한참 동안 의논한 뒤, 시선을 족장에게 돌렸다.
족장은 생각에 잠겼다가 믿음이 안 가는 눈길로 양준을 훑어보았다. 그리고 한참 뒤에야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허한다. 어찌할지 먼저 말해 보아라.”
“말로는 못 합니다. 그저 제가 하는 것을 지켜보면 됩니다.”
양준은 가볍게 웃고 나서 양족들의 강요하는 시선을 무시한 채, 앞으로 걸어갔다.
“네가 만약 당나무를 조금이라도 망가뜨린다면 네 신혼을 끌어내 평생 괴롭힐 것이다.”
족장은 차가운 얼굴로 협박했다.
양준은 몰래 콧방귀를 뀌고서 그의 말에 대꾸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