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54장. 무슨 방법을 사용한 거냐?
양준은 사람들의 시선을 한몸에 받으며 당나무 앞으로 다가갔다. 구척과 안령아는 양준의 생각을 알 수 없어 손에 땀을 쥐었다.
당나무의 뿌리 근처로 다가간 양준은 미간을 찌푸리고 천천히 손을 뻗어 굵은 줄기에 갖다 댔다. 그러자 순간, 그의 몸이 흠칫 떨렸다.
눈앞의 당나무는 커다란 보물 창고나 마찬가지였다. 당나무 안에는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방대한 양성 기운이 저장돼 있었다. 기운은 나무 줄기 속에서 끊임없이 흐르고 있었고, 자세히 들어 보면 안에서 졸졸 흐르는 소리도 들렸다.
양준의 표정이 크게 변했다.
‘내가 이 방대한 기운을 가질 수 있다면 단번에 어디까지 성장할 수 있을까?’
하지만 그는 곧 고개를 저었다. 이것은 양족의 당나무였다. 이렇게 많은 고수들 앞에서 당나무의 기운을 흡수할 수 있을 리 없었다. 정말 그렇게 한다면 곧바로 시체가 될 터였다.
양준이 열심히 당나무를 감지하고 있을 때, 양족의 고수들은 신식을 그의 몸에 고정시키고 있었다. 그가 조금이라도 수상한 움직임을 보이면 죽여 버릴 심산이었던 것이다.
양준은 분별 있게 그저 탐지해 보기만 했다.
한참이 지나자, 양족들의 인내심이 바닥 났다. 당나무에서 느껴지는 원기 파동이 여전히 어지럽고 불안정했기 때문이었다.
양준도 더는 시간을 지체하지 않고 식해에 걸린 금제를 풀었다. 곧이어 그의 신혼 영체가 몸 밖으로 나와 당나무의 나무 줄기 안으로 들어갔다. 나무 줄기 안은 금빛 찬란한 세상이었다. 양준의 신혼 영체는 금빛 강에서 노니는 것만 같았다. 강물은 양성의 기운이 모여서 이루어진 것이었다. 양준은 강의 근원지로 거슬러 올라갔다. 얼마 안 되어 그는 신기한 곳에 이르렀다. 그곳은 나무 줄기의 한가운데였다.
양준의 눈앞에는 남다른 원기 덩어리 하나가 조용히 금빛 강에 떠 있었다. 그리고 그 원기 덩어리가 내뿜는 뜨거운 기운은 강물에서 느껴지는 양성 기운과 미묘한 차이가 있었다.
그때, 규칙적인 움직임이 원기 덩어리에서 전해졌다. 마치 힘있게 뛰고 있는 심장 같았다.
‘역시 이런 상황이었군!’
양준은 이곳에 도착해 당나무의 기운이 그의 몸을 감쌀 때부터 뭔가를 감지했었다. 그리고 지금 원기 덩어리를 직접 보게 되자 자신의 짐작이 맞았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동시에 그는 당나무가 불안정한 원인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그동안 양족들은 원인을 모르기에 사람을 죽여 제를 지내는 방식으로 당나무에 영양분을 공급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양준은 콧방귀를 뀐 뒤, 눈도 깜빡하지 않고 조용히 앞쪽을 바라보았다. 원기 덩어리는 여전히 꿈틀거리며 무언가를 갈구하는 뜻을 내비쳤다. 지금 원기 덩어리는 혼탁한 상태였다. 하지만 양준은 그것에 오랜 시간 동안 충분한 영양분을 제공한다면 의식이 있는 생명체가 될 거라고 확신했다.
세상에는 갖가지 형태의 생명체가 있었다. 전에 양준이 봤던 보옥 속의 진령도, 빙종에서 보았던 골족도 모두 생명체의 서로 다른 형태였다. 당나무는 원래부터 생명체였다. 하지만 지금 그것은 다른 형태의 생명체로 바뀌려는 듯했다. 바로, 무의식이었던 상태에서 의식이 있는 생명체로 바뀌려는 것이다. 나무 줄기 한가운데의 떠 있는 원기 덩어리는 당나무의 의식이 모인 곳이었다. 그리고 진화에 성공한다면 원기 덩어리는 당나무의 신혼이 모인 곳이 되고, 곧 신혼 영체로 바뀔 터였다.
양준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나무가 이 정도로 진화할 줄 누가 알았겠는가. 당나무가 불안정하고 난폭한 원기 파동을 보인 것은 이상이 생긴 것도, 한계에 다다른 것도 아니었다. 그저 진화 과정에 대량의 기운과 영양분이 필요했을 뿐이었다.
당나무가 이곳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이상, 많은 영양분을 흡수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때문에 영양분이 필요할 때마다 무의식중에 원기 파동이 난폭해진 것이었고, 그러다가 사람을 죽여 영양분을 흡수하면 한동안 평온해졌던 것이다. 실컷 먹고 마셨으니 평온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이런 방법은 일시적일뿐,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었다. 당나무가 또다시 영양분을 갈구하면 양족들이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질 게 분명했다. 당나무가 진화하는데 필요한 기운은 엄청났다. 또한, 당나무가 난폭해지는 빈도로 미루어 보아, 진화할 날이 머지않은 듯했다.
양준은 잠깐 생각해 보고 나서 곧 지금 상황을 파악했다. 다만 양족들이 이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누구라도 신혼 영체를 당나무 안에 들여보내 살펴보았다면 지금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양족들이 당나무의 난폭함을 마주할 때, 불안해하고 초조해하는 모습을 보면 원인을 잘 모르는 것 같았다.
양준은 의문이 들었다.
‘이건 자세히 알아봐야겠어.’
양준의 신혼 영체는 당나무에서 빠져나와 다시 몸으로 돌아갔다.
양준이 눈을 뜨자마자 귓가에는 양족 고수들의 분노에 찬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그들은 기다리는 데 짜증이 난듯 당장이라도 구척과 다른 마족 한 명을 죽일 태세였다.
“뭘 그리 조급해합니까?”
양준은 그들을 흘겨보고 나서 덤덤하게 말했다.
“갈피를 잡았습니다. 좀 더 기다려 주십시오.”
족장은 좋지 않은 낯빛을 하고서 양준을 바라보더니 음산하게 말했다.
“일각 정도 더 주겠다. 그때까지 당나무가 평온해지지 않는다면 오늘 너희 넷 다 이곳에서 죽어야 할 것이다.”
“그 시간이면 충분합니다.”
양준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그는 말을 마치고 나서 하늘로 훌쩍 솟구쳐 오르더니 무성한 잎사귀 속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양준이 보이지 않아도 양족들은 신식으로 그를 감시하고 있기에 그가 도망칠까 봐 걱정하지 않았다.
거대한 나무 줄기 위에서 양준은 거리를 가늠해 보았다. 지금 위치가 좀 전에 원기 덩어리를 봤던 곳인 듯했다. 그는 손가락으로 나무 줄기를 그어 틈을 만들고는 손끝으로 양액을 내뿜어 틈에 떨구었다. 그러자 양액이 틈 속으로 스며들더니 곧 사라졌다.
조용히 기다리는 양준의 마음도 조마조마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어쩐지 자신이 없었다. 그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시도해 본 것이지 확신이 있는 건 아니었다. 능소각에 있던 시절, 그는 자신의 양액으로 양성을 띤 영초와 나무를 키웠었다. 양액은 이런 생물의 성장을 촉진시킬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뚜렷한 효과가 있었다. 성장 주기가 몇 년이나 되는 영초와 나무도 양액 한두 방울이면 보름 내지 한 달 안에 모두 성장했었기 때문이다.
지금 눈앞에 있는 당나무는 진화하는데 대량의 기운을 필요로 했다. 때문에, 양액을 떨구어 넣는 것은 가장 좋은 선택이었다. 그리고 현재 양준의 양액은 이전과 크게 달랐다. 그 속에 내재된 기운은 전보다 몇천, 몇만 배는 강했다.
‘양액이라면 당나무를 만족시킬 수도 있을 거야.’
하지만 그럴 가능성이 있을 뿐, 만약 성공하지 못한다면 필사적으로 싸우는 수밖에 없었다.
기다림이 지속되자, 양준은 긴장하여 마음을 졸이기 시작했다. 그는 양족들과 싸우는 것이 두려운 게 아니라, 기대로 부푼 마음을 가라앉히기 힘들었다. 그는 자신의 양액이 당나무에 어떤 작용을 일으킬지, 또한 당나무가 의식이 있는 형태로 변하면 어떤 모습일지 기대되었다.
그때, 갑자기 당나무의 불안정한 파동이 더욱 격렬하고 난폭해졌다. 무슨 자극을 받은 것처럼 양성 기운이 마구 날뛰더니 평지에 뜨거운 바람이 휘몰아쳤다.
“무슨 짓을 한 것이냐?”
아래에서 기다리고 있던 양족들 중에서 누군가 소리를 버럭 지르며 나무 위로 날아가 양준을 죽이려고 했다.
“잠깐만!”
족장은 손을 흔들어 그를 저지했다. 그러고는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 자세하게 감지해 보았다.
“족장님, 저 녀석이 당나무에 무슨 짓을 한 게 틀림없습니다. 제가 가서 저 녀석을 죽이게 해주십시오.”
“잠깐 기다려 보게!”
족장이 위엄 어린 눈빛으로 그 사람을 노려보자 그 사람은 바로 입을 다물고 침묵을 지켰다.
나무 줄기 위, 양준은 아래쪽에서 들려오는 고함소리를 듣고도 전혀 당황하지 않았다. 오히려 즐거운 표정을 지었다.
당나무는 양액을 갈구하고 있었다. 난폭한 움직임을 보인 것은 불편함을 느껴서가 아니라, 양액의 달콤한 맛에 무의식적으로 더 갈구하는 표현이었다. 양준이 방금 전에 그어서 만든 틈은 스스로 더 벌어진 상태였다. 당나무는 틈이 더 커지면 더 많은 양액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당나무의 의식은 이제 막 눈을 뜬 상태로, 외부에 반응하지만 세세한 것을 분별할 수 없었다. 틈이 스스로 커진 것은 당나무 의식의 직접적인 표출이었다.
양준은 씩 웃고서 손끝의 양액을 벌어진 틈 속에 떨구어 넣었다.
잠시 뒤, 당나무의 난폭함이 많이 사그라졌다.
이 모습을 본 양족들은 하나같이 이상한 표정을 지었다. 족장도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번뜩이는 그의 눈에는 날카롭고 차가운 빛이 스쳐 지나갔다.
시간이 지날수록 당나무는 보이지 않는 큰 손에 어루만져진 것처럼 기운이 점점 평온해졌다. 그렇게 사람들은 또 밑에서 한참 기다렸다. 이윽고 양준이 창백한 얼굴로 바닥에 착지했다. 그는 착지하자마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부좌를 틀고서 공법을 운행했다.
누구도 그를 방해하지 않았다. 양족들도 숨을 죽인 채, 조용히 그를 기다렸다. 다들 양준이 무슨 수로 불안정한 당나무를 진정시켰는지 궁금해했다. 구척과 안령아는 시선을 마주치고는 몰래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번에는 다행히도 위기를 모면한 듯했다.
한참 뒤, 양준이 천천히 눈을 떴다. 얼굴에 혈색이 약간 돌아왔으나 누가 보더라도 기력이 매우 없어 보이는 모습이었다. 몸 속의 진원도 바닥난 듯했다. 그는 낯빛도 음울했는데 기분이 안 좋아 보였다. 양준의 기분이 안 좋은 건 사실이었다. 당나무에게 영양분을 공급하기 위해 무려 양액을 스무 방울이나 썼던 것이다.
“무슨 방법을 사용한 거냐? 어떻게 당나무를 진정시킨 것이냐?”
족장이 다급히 물었다.
“제가 말할 것 같습니까?”
양준이 냉소를 하며 되물었다.
“하늘 무서운 줄 모르는구나. 네가 말하지 않는다면 극형으로 너를 고문할 것이다.”
그러자 바로 양족들 중 한 명이 협박했다.
양준은 고개를 저으며 두렵지 않다는 듯이 말했다.
“마음대로 하십시오. 이번에는 그저 임시방편일 뿐입니다. 제 털끝 하나라도 건드린다면 다음번에 당나무에 또 이상이 생겼을 때, 저는 아무것도 하지 않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