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련전봉-755화 (754/853)

제 755장. 너한테 무슨 이득이 있어?

양준이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 모습을 보이자, 양족들은 오히려 난감해졌다. 족장은 이내 야릇하게 웃더니 비꼬는 것인지, 칭찬하는 것인지 알 수 없는 말을 내뱉었다.

“간이 크구나. 정말 우리가 널 어찌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하느냐? 네 목숨은 하나뿐이니 얌전히 협조하는 것이 좋을 거다.”

양준은 차가운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더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죽어도 사실대로 말하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주도권을 쥐려면 침묵을 지켜야만 했다. 양족들이 그가 어떻게 했는지 알게 된다면 아마 그를 당나무의 영양분 공급처쯤으로 생각하고 지속적으로 양액을 만들어 당나무에 제공하라고 강요할 게 뻔했다. 이는 양준이 바라는 바가 아니었다. 다만 양족들은 당나무가 지금 진화하는 중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듯했다.

양준은 미간을 찌푸린 채 생각에 잠겼다. 그때, 뇌리에서 뭔가 번쩍 스쳐 지나갔다. 그가 당나무가 진화 중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던 건, 신혼 영체가 나무 줄기 속에 들어갈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양족들의 신혼 영체는 이런 재주가 없었다. 나무 줄기 속에서 흐르고 있는 짙고 뜨거운 양성의 기운 때문에 그들의 신혼 영체는 들어가는 순간 바로 뜨거운 기운에 타 버려 죽을 터였다. 그들은 신식의 불꽃을 가지고 있지 않기에 그런열기를 견뎌낼 수 없었다.

양준은 확신이 서자, 믿는 구석이 있어 더욱더 두려워하지 않았다. 양족들이 내막을 모르는 이상, 그는 완전히 우세를 차지할 수 있었다.

족장은 양준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미간에는 음산함이 서려 있었고 표정이 수시로 바뀌었다. 그는 한참 뒤에야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싫으면 말하지 말거라. 네가 말하지 않아도 알아낼 기회는 있으니까.”

이곳은 그들의 세력 범위였다. 더욱이 그의 경지 또한 양준보다 훨씬 높았기 때문에, 그는 양준이 오래 숨기지는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양준은 어깨를 으쓱하고는 가타부타 말하지 않았다.

“당나무를 진정시킬 능력이 되니 이용 가치가 있는 것이다. 오늘은 너희들을 죽이지 않겠다. 하지만 경고하는데 절대 수작을 부리지 말거라. 안 그러면 결과는 스스로 감당해야 할 것이다.”

양준은 가볍게 웃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주제 파악 하나는 잘 하거든요. 당신들이 저와 제 친구들을 해치지 않는 이상, 잘 협조할 것입니다.”

“재미있는 녀석이군.”

족장은 야릇하게 웃었다. 그는 굽힐 때 굽히는 양준의 모습에 속으로 놀라워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전에 몇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적당히 하거라. 감히 우리에게 조건을 걸다니, 넌 그럴 자격이 없다. 분수를 모르는구나.”

족장은 콧방귀를 뀌었다. 그의 얼굴은 점점 더 음산해졌다.

“제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당신들의 당나무를 위해 요청하는 겁니다. 당나무가 하루빨리 회복하기를 바란다면 제 말을 듣는 게 좋을 겁니다. 듣지 않아도 괜찮고요. 알아서 판단하십시오.”

양족들은 미간을 찌푸리고 불신의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말해 보아라.”

“첫 번째, 오늘부터 모든 양족들은 당나무에서 양성 기운을 흡수하는 것을 멈추십시오. 수련하려면 당나무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하시고요.”

“왜 그래야 하는 것이냐?”

“당나무가 난폭해지는 것과 연관되었다는 것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양준은 대충 둘러댔다.

당나무가 진화하려면 영양분이 필요하기에 양액을 떨어뜨려 주어야 했다. 하지만 양족들까지 자신의 양액을 나누어 가지게 둘 수는 없었다. 그렇게 되면 그의 양액만 더 많이 소모될 뿐이었다.

“그게 무슨 소리야? 네 말 한마디에 우리 양족 모두 수련을 멈춰야 된단 말이냐?”

그러자 양족의 고수 중 한 명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건 여러분들의 선택에 달렸습니다. 전 상관없습니다. 그저 제안을 드릴 뿐이지요.”

“얼마나 멈춰야 하는 거냐?”

족장이 물었다.

양준은 미간을 찌푸리고 되물었다.

“당나무는 언제부터 이런 현상이 나타났습니까?”

“삼 년 전부터 이랬다. 처음에는 뚜렷하지 않더니 요즘 들어 부쩍 자주 이러는구나.”

양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당나무는 3년 전부터 진화하기 시작했다는 말이었다. 그렇다면 그의 짐작은 정확했다. 조건만 따라준다면 얼마 안 되어 당나무는 진화를 끝내고 자의식이 생겨 더욱 높은 차원의 생명체가 될 것이다.

“그렇군요. 그렇다면 기껏해야 일 년만 참으시면 됩니다. 아니면 반년이어도 되고요. 더 짧을 수도 있어요.”

“그건 가능하지.”

족장은 고개를 끄덕이고 양준의 요청을 승낙했다. 그가 이렇게 말하자, 양족의 다른 고수들은 내키지 않아도 반박할 수 없었다. 기껏해야 일 년만 참으면 되는 일이었다.

“두 번째로 제가 진원을 보충할 게 필요합니다. 당나무의 열매가 가장 좋지요. 많을수록 좋고요.”

양준이 덤덤하게 말했다. 그가 이렇게 말하자 모든 양족들의 표정이 이상하게 변했다.

족장은 웃으며 말했다.

“많을수록 좋다고? 넌 당나무의 열매가 원하는 만큼 딸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느냐? 당나무의 열매는 열린 지 몇십 년 내지 몇백 년이 된 것들이다. 우리도 별반 복용할 기회가 없는데 네놈이 뭐라고 이렇게 귀한 것을 요구하느냐?”

“여기에 많이 달려 있지 않습니까?”

양준도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는 속으로 양족들이 참으로 좀스럽다고 생각했다. 당나무에는 열매가 족히 몇십 알은 달려 있었다. 코끝을 맴도는 향기에 그는 열매가 너무나 탐이 났다.

“이건 우리 양족이 오랜 시간 동안 축적한 재산인데 어찌 외부인에게 먹이겠느냐?”

족장은 내키지 않는 표정을 지었다.

“열매가 안 된다면 양성을 띤 영초와 영약도 됩니다. 이 정도는 있겠죠?”

양준은 짜증난 얼굴로 물었다.

당나무의 진화를 도우려고 양액을 쓰는데, 당연히 양족들이 그의 소모를 보충해 주어야 했다.

“보셨다시피 당나무를 진정시키려면 저의 모든 진원을 소모해야 합니다. 보충할 수 없다면 제가 어찌 회복하겠습니까?”

그 말을 들은 족장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래, 네 말대로 하지. 진원을 보충할 수 있는 물건을 줄 테니 걱정하지 말거라.”

“세 번째는…….”

“적당히 하거라. 우리는 너와 조건을 논할 정도로 인내심이 강하지 않다.”

족장은 언짢은 얼굴로 양준의 말을 잘랐다.

양준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당신들이 저한테 바라는 것이 있으니 좋은 환경을 마련해 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전 여기서 도망칠 수도 없을 텐데 계속 감방에 가두는 건 좀 경우가 아닌 것 같습니다만?”

“허한다.”

“그리고 제 친구, 아, 그리고 그동안 함께 지내다 보니 두 마족 친구들과도 정이 들었습니다. 괜찮으시다면 저들도 함께 있게 해주십시오.”

구척은 놀란 눈으로 양준을 바라보았다. 그의 표정을 보니 감격한 얼굴이었다.

“다 그리 하도록 해라.”

족장은 더 이상 양준을 상대하기도 귀찮은지 표정이 일그러졌다.

“네 요구를 다 들어주겠다. 하지만 네가 우리의 기대를 만족시키지 않는다면 결과가 어떨지는 잘 알 것이다.”

“잘 알고 있습니다.”

양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얼굴에는 찬란한 미소가 어렸다.

“저들을 데리고 가게. 그리고 요구대로 해주게.”

족장은 손을 내저은 뒤,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까 양준 일행을 끌고 왔던 고수가 다시 다가와 그들을 끌고 갔다. 그들이 떠나자, 양족의 고수들 중 한 명이 어두운 얼굴로 말했다.

“이렇게나 많은 조건을 제시하다니, 저 녀석 정말 무례하기 짝이 없습니다. 족장님께서는 왜 그의 요구를 들어주시는 겁니까?”

“좀 들어주면 어떤가? 어차피 다 작은 일이지 않나? 다음번에 그가 어떻게 당나무를 진정시키는지 보아야겠네. 사람을 시켜 그들을 잘 감시하게. 특히 인간 젊은이가 뭘 하는지 지켜보게.”

“네!”

*

양준 일행은 한 궁전에 배치되었다. 양족 고수는 그들의 거처를 마련해 준 뒤 떠나갔다.

양준이나 구척 모두 궁전 밖에서 많은 고수들이 자신들을 감시하고 있다는 것을 감지할 수 있었다. 신식이 안까지 침투해 그들에게 도망칠 기회를 전혀 주지 않았다. 죽음에서 벗어난 뒤 편한 환경으로 바뀌었지만, 일행은 여전히 두려움이 가시지 않은 상태였다. 특히 구척과 이름 모를 마족은 양준이 자신들까지 챙길 줄은 생각지도 못했던 모양이었다.

네 명은 별실에 모였다. 구척은 복잡한 얼굴로 양준을 바라보더니 몇 번이고 뜸을 들이다가 궁금한 점을 물었다.

양준은 웃으며 대답했다.

“특별한 이유는 없어. 다 같이 이곳에서 어려움을 겪으며 고난을 함께한 사이잖아. 별일 아니야. 너 생각이 너무 많은 거 아니야?”

구척은 안색이 벌게지더니 뺨을 긁적이며 정색한 채 말했다.

“어찌 되었든 너한테 목숨 빚을 졌으니 이 은혜는 잊지 않고 기억할게. 만약 이곳을 벗어날 수 있다면 꼭 갚을 거야.”

방금 전에 양준이 구해 주지 않았다면 그는 분명 양족들에게 죽임을 당했을 것이다.

“그럴 필요 없어. 이곳을 떠날 수 있을지는 아직 모르는 일이야. 어쩌면 이곳에서 죽을 수도 있잖아.”

양준은 덤덤한 얼굴로 손을 내저었다.

“정말 그때가 되면 목숨 걸고 싸울 거야.”

“알았어. 이 궁전은 좀 크군. 아무 방이나 찾아서 쉬어. 당분간은 위험이 없을 거야. 나도 얼른 회복해야겠어.”

“그럼 더 이상 방해하지 않을 테니 푹 쉬어.”

말을 마친 구척은 다른 마족을 데리고 신속하게 떠나갔다. 안령아는 가지 않고 아름다운 눈으로 양준을 훑어보더니 생각에 잠겼다.

“무슨 볼일 있어?”

“너 거짓말했어. 난 느낄 수 있거든. 넌 착한 마음으로 구척을 구해 준 게 아니라 목적이 있는 거야.”

안령아는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아는 게 너무 많으면 죽을 수도 있어.”

양준은 사악하게 웃으며 말했다.

“안 무섭거든. 넌 그저 말로만 그럴 뿐이잖아. 도대체 뭘 바라는 거야? 구척이 너한테 뭘 해줄 수 있는데?”

안령아는 입을 삐죽거렸다. 진작 양준의 속마음을 꿰뚫어 봤다는 표정이었다.

“별거 없어. 난 그저 구척이 나한테 고마워하면 돼.”

“그럼 너한테 뭔 이득이 있어? 이곳에서 구척이 고마워한다고 해도 너한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잖아.”

“여기서는 그렇지만, 밖에 나가면?”

양준은 의미심장하게 그녀를 바라보았다.

“밖에…….”

안령아는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렇게까지 말해 줬는데도 모르다니, 바보!”

양준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의 말에 안령아는 화가 나 목까지 새빨개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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