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련전봉-756화 (755/853)

제 756장. 매일 한 번씩 온다고?

별실 안,

양준에게서 설명을 들은 안령아는 그제야 그가 뭘 원하는지 알게 되었다.

양준의 예상이 맞는다면 이 소현계를 나가면 바로 마강으로, 마강은 마족들의 세력 범위였다. 예로부터 인간과 마족은 대립각에 서 있었다. 통현대륙에서 중립지대를 제외하고 서로 다른 종족들은 마주치면 반드시 싸움이 생겼다.

양준과 안령아 두 인간이 갑자기 마강에 나타난다면 마족들의 추격을 받을 게 뻔했다. 그때가 되면 두 사람 모두 제아무리 날고 기는 재주가 있어도 도망치기 어려울 터였다. 하지만 구척이 있다면 얘기가 달라질 수 있었다. 그의 아버지는 마장 구경이었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있는 대단한 인물인 구경이 양준과 안령아를 보호해 준다면 이런 일들을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때문에 양준은 내친김에 구척의 목숨을 구해 주고 그에게 빚을 만들어 두려는 것이었다.

안령아는 경멸 어린 눈빛으로 양준을 바라보았다.

“넌 어쩌면 꿍꿍이가 그렇게도 많아?”

양준은 코웃음을 치고 말했다.

“난 그저 너보다 멀리 내다볼 뿐이야. 물론, 이런 것들은 모두 우리가 이곳을 떠날 수 있다는 전제 하에서만 가능하지. 이곳을 떠날 수 없다면 구척 그 망나니와 형제가 되어도 아무 소용이 없을 거야.”

“우리가 이곳에서 나갈 수 있을까?”

안령아는 입술을 살며시 깨물었다. 그녀의 얼굴에는 불안감이 내비쳤다.

“모르겠어. 하기 나름이지 않을까.”

양준은 고개를 저었다. 그도 뭐라고 장담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그저 최선을 다해 살길을 찾아볼 수밖에 없었다.

“성지는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겠네.”

안령아는 한숨을 내쉬었다.

남성고가 그런 모습이 되었으니 성주도 이미 운명했을 것이고, 성지 전체는 아마도 난리가 났을 것이다.

“성지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너랑 같은 성녀인 세 여인은 아마도 무사하지 못할 거야.”

“아악……!”

안령아는 얼굴이 사색이 되어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자세히 생각해 보니 양준의 말이 거의 확실했다. 같은 공법을 수련한 연유로 남성고는 쉽게 다른 성녀들을 찾을 수 있었다. 자신은 섬에서 탈출에 성공했지만 그녀의 다른 세 자매는 이런 행운이 없었을 것이다. 성녀가 행차할 때 일행 중 입성 경지의 고수가 없기 때문에 입성 경지 2단계인 전임 성녀를 막아낼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터였다. 애당초 남성고는 안령아를 추격하기 전에 세 명 중의 한 사람 아니면 다 죽였을 가능성도 있었다.

양준의 말 한마디에 안령아는 순식간에 기분이 나락으로 떨어졌다. 예쁜 얼굴도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

“상황이 그렇게 최악이 아닐 수도 있어.”

양준은 마음속으로 후회했다. 진작 예상했던 것이라 깊게 생각하지 않고 내뱉은 것이 화근이었다. 안령아가 이렇게 슬퍼할 줄 어찌 알았겠는가?

“다 너 때문이야. 원래 기분 좋았는데…….”

안령아는 벌게진 눈으로 양준을 노려보더니 얼굴을 감싸 쥐고 밖으로 뛰어나갔다.

양준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괜한 말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

양족들은 그나마 신용을 지키는 이들이었다. 양준 일행이 궁전에 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은 대량의 영단묘약을 가져왔다. 게다가 모두 양성을 띤 것들이었다. 이곳은 양성 기운이 짙어 양성을 띠는 약재가 자라기에 적합했다. 또한, 양족 중에 연단에 능한 사람이 있는 것인지 약재를 전부 단약으로 만들어 가져왔다. 그들이 가져온 단약은 모두 열 병으로, 한 병에 열 알씩 들어 있었고 죄다 영급 하품이었다. 등급이 높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나쁘지도 않았다.

양준은 열 병의 영급 하품 단약을 반 시진도 지나지 않아 모조리 복용했다. 그러자 소모했던 양액이 모두 보충되었다. 하지만 양준은 만족스럽지 않았다. 그는 이번 기회에 양족에게서 톡톡히 뜯어낼 생각이었다. 앞으로 당나무에 많은 양액을 떨어뜨려야 할 텐데, 영급 단약 열 병으로 어떻게 만족할 수 있겠는가?

사흘 뒤, 양준은 또다시 양족에게 단약을 가져다 달라고 했다. 그의 요구에 필요한 것들을 챙겨주던 양족은 눈을 휘둥그레 뜨고 그를 노려보았다.

열 병이면 영급 단약 백 알이 아닌가. 그 정도면 몇 달은 족히 버틸 수 있는 양인데, 양준은 사흘도 되지 않아 모조리 소모해 버린 것이다. 하지만 그들도 줄곧 감시하고 있었기에 양준이 방에서 수련만 했지,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양준의 몸에는 건곤대 같은 저장 비보도 없기에 단약을 숨길 수도 없었다.

양족들은 불만스럽게 한바탕 야단친 뒤, 결국 다시 영급 단약 열 병을 가져다주었다. 그리고 양준에게 아껴서 복용하라고 당부했다. 그들도 단약을 만들기가 쉽지 않았다.

양준은 앞에서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그들이 떠나자 곧 단약을 입에 털어 넣었다.

영급 하품의 단약을 만드는 것은 그에게 있어서 매우 쉬운 일이었다. 열 병 정도는 이틀도 안 되는 시간에 만들어낼 수 있었다. 때문에, 그는 속으로 양족 연단사의 수준이 너무 낮은 것 같다고 생각했다.

시간은 하루하루 흘러갔다. 양족들은 당나무가 이번에는 한동안 조용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닷새도 지나지 않아 당나무에서 또다시 불안정한 원기 파동이 전해졌다. 이를 감지했을 때, 양준은 이미 준비를 마친 뒤였다. 과연 얼마 안 되어 누군가 와서 그를 당나무 쪽으로 데려갔다. 이번에 안령아와 구척 일행은 따라가지 않고 궁전에 머물러 있었다.

당나무 아래에서 족장을 필두로 한 양족의 고수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양준을 보자 하나같이 신식을 그의 몸에 고정한 뒤, 형형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다들 이번 기회에 그가 어떤 꼼수를 부리는지, 어떻게 당나무를 진정시키는지 잘 봐 두려는 심산인 듯했다.

양준은 전혀 긴장하지 않고 덤덤한 표정을 지었다. 양족들이 그의 수단을 알아내도 상관없었다. 세상에서 그 말고는 당나무를 진정시킬 수 있는 이가 없을 터였다. 때문에 그는 조금도 걱정하지 않았다.

당나무 가까이에 도착한 양준은 쓸데없는 말을 하지 않고 나무 줄기에 올라가 전에 그었던 틈을 찾았다. 그리고 손끝에 양액을 모아 틈 속으로 떨구었다.

양액 한 방울에는 양준의 온몸의 진원이 들어 있었다. 그리고 그의 지금 경지를 생각해 보면, 양액에 깃든 기운은 엄청나게 방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액은 당나무에 스며들자마자 사라졌다. 당나무가 깨끗하게 흡수해 버린 것이다. 이윽고 급박한 파동이 당나무 안에서 전해졌다. 방금 전보다 더 불안정한 것이 계속해 양액을 갈구하는 게 분명했다.

양준은 침착하게 양액을 방울방울 떨어뜨리며 당나무의 무의식적인 파동을 진정시켰다.

양족들은 아래쪽에서 예의 주시했지만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하자, 다들 미간을 찌푸렸다. 그들은 엄청난 기운이 흘러나왔다가 곧바로 사라진다는 것을 감지할 수 있었지만 그 가운데 어떤 비밀이 있는지 짐작할 수 없었다. 그들은 올라가서 자세히 살피고 싶었지만 양준이 화를 낼까 두려워 머뭇거렸다.

대략 반 시진이 지난 뒤, 당나무의 기운이 평온해졌다.

양준의 신혼 영체가 나무 줄기 안으로 들어가 살펴보았다. 신비한 원기 덩어리는 지난번보다 한결 단단해진 듯 보였다.

‘얼마 지나지 않으면 원기 덩어리가 자의식을 갖게 되겠군.’

얼마 지나지 않아, 양준이 나무에서 뛰어내렸다. 양족들은 그가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창백한 얼굴에 온몸의 진원을 다 소모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모습에 다들 서로를 마주 보며 만족스러워했다.

양족들은 양준이 무슨 수를 써서 당나무를 진정시켰는지 알 수 없었지만 그의 모습을 보니 전력을 다한 것은 확실해 보였다. 이것은 그들이 원하던 바였다.

양준은 잠깐 회복한 뒤에야 사람들 앞으로 다가갔다.

그러자 족장이 먼저 입을 열었다.

“네가 단약을 빨리 소모한다더구나. 설마 우리 양족을 봉으로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양준은 메마른 입술을 움찔거리며, 기운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단약을 많이 소모하면 저도 수확이 없는 건 아니지만 결국 이득을 보는 건 당신들의 당나무가 아닙니까? 단약에서 흡수한 기운을 대부분 당나무에게 사용하는 것을 보지 못하셨습니까? 제가 얻을 수 있는 건 극히 적은 일부분뿐인데, 그것마저도 아깝다고 따질 겁니까?”

족장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는 양준의 말을 믿지 않았지만 반박할 거리도 없었다.

“얘기가 나왔으니 진지하게 말씀드릴게요. 저한테 대량의 단약을 제공해 주세요. 대량이 무슨 뜻인지 아시죠? 안 그러면 다음번에 당나무에게 또 문제가 생겼을 때, 당나무에 충분하게 공급해 줄 진원이 있을 거라고 장담하기 힘들어요.”

그 말에 사람들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그들은 양준의 거만한 태도에 기분이 언짢았다.

“정말 당나무를 위한 것이라면 제공해 줄 수 있다. 하지만 네가 소모하는 속도가 너무 빨라서 공급이 따라가지 못할 수도 있어.”

족장은 어두운 얼굴로 말했다.

“단약이 없다면 약재라도 주세요. 제가 직접 연단할 테니까.”

양준은 한 걸음 물러섰다.

“연단할 줄도 아느냐?”

족장은 놀란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건 당신들과 상관이 없는 일이죠.”

“좋다. 곧 사람을 시켜 준비하도록 하지. 참, 이번에 당나무는 왜 이렇게 빨리 난폭해진 것이냐? 우리한테 해명해야 하는 거 아니냐?”

“무슨 해명이 필요합니까? 설마 제가 진정시켰다고 해서 당나무가 더는 난폭해지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 것은 아니겠지요?”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주기가 좀 더 길어질 줄 알았지.”

“무식하네요. 주기가 빠르면 빠를수록 좋습니다. 일정한 정도로 빨라지면 더 이상 난폭해지지 않을 거니까요. 전 당나무가 난폭해질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매일 와서 진정시키고 싶습니다.”

“매일 한 번씩 온다고?”

사람들은 모두 놀란 표정을 지었다.

“네.”

“그 요청은 들어줄 수 있다. 걱정하지 말거라. 네가 정성을 다해 당나무와 우리 양족을 위해 준다면 우리도 절대 너를 섭섭치 않게 대할 것이다. 어쩌면 너에게 큰 이득을 줄 수도 있지. 네가 수련한 것이 양성 공법이니 우리 양족에게는 너에게 꼭 맞는 무공 비법들도 있다.”

양준의 성의를 알아차린 듯, 족장의 표정도 훨씬 부드러워졌다. 심지어 그는 양준에게 이득을 주겠다고 약속까지 했다.

양준은 겉으로는 기쁜 척했지만 속으로는 코웃음을 쳤다. 그들이 자신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 마음대로 부릴 수 있는 일꾼 정도로 취급하고 있었다. 또한 무공 비법을 준다고 해도 낮은 등급일 게 뻔했다. 그런 것들이 양준의 눈에 찰 리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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