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57장. 생각지 못했던 결과
소현계에서의 나날은 평온했다.
구척과 다른 마족은 매일 할 일 없이 빈둥거렸다. 진원과 신식에 금제가 걸린 그들은 수련도 하지 못하기에 심심해 죽을 지경이었다. 안령아도 마찬가지였지만 여인인지라 활동이 없어도 크게 불편함을 느끼지는 않았다. 그녀는 대부분의 시간을 멍하니 앉아 시간을 보냈다.
그들과 비교하면 양준은 매우 바빴다. 그는 양족들이 가져온 대량의 약재들로 단약을 만들어 복용하고 약 기운을 흡수했다. 그러고는 매일 당나무에 양액 몇 방울을 떨어뜨리며 더없이 충실한 나날을 보냈다.
이곳의 약재는 등급이 꽤 높았다. 이곳에서 연단하며 양준은 전에 각성했던 것들을 모두 실천에 옮겼다. 덕분에 그의 연단술은 점점 더 높아졌고 효과도 놀라웠다.
양족들도 시시각각 양준의 움직임을 감시했지만 그가 무슨 수로 당나무를 진정시켰는지는 알아내지 못했다. 그리고 양준이 매일 당나무에 가기 시작한 뒤로, 당나무는 더 이상 전처럼 불안정한 원기 파동을 내뿜지 않았다.
양족들은 기뻐하며 양준이 쓸모 있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애초에 양준을 바로 죽이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여겼다. 유일한 불만은 양준이 소모하는 약재 양이 어마어마하다는 것이었다. 양준은 밑 빠진 항아리처럼 끊임없이 약재를 요구했다. 그들이 양준의 모든 행동을 감시하고 있는 게 아니었다면 진작 의심을 품고 물어보았을 것이다.
*
시간은 빨리 흘러 어언 넉 달이 훌쩍 지나갔다.
이날도 양준은 당나무에 양액을 떨어뜨린 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신혼 영체가 나무 줄기 안에 들어가 살펴보았다. 그리고 순간, 그는 눈앞이 밝아지는 것만 같았다.
혼탁한 원기 덩어리는 급박하고 힘있게 뛰고 있었다. 그것은 곧 허물을 벗고 나비가 될 것처럼 생기로 가득 차 있었다. 또한 양준이 신식으로 감지하자 안쪽에서 미묘한 감정이 전해졌다. 그와 소통하고 싶지만 어찌 표현해야 할지 모르는 것 같았다.
양준은 흠칫 놀랐다. 당나무는 진화하는 결정적인 순간에 이른 듯했다. 이런 속도로 나아간다면 한두 달 뒤에 당나무의 의식이 온전히 생겨날 것 같았다. 그때가 되면 당나무는 다른 형태의 생명체가 될 것이다.
당나무를 진정시킨 뒤, 양준의 신혼 영체는 몸으로 돌아갔다. 그는 힘없이 나무 줄기에서 뛰어내린 뒤, 잠깐 쉬다가 나무 아래에서 지키고 있는 양족 고수 앞으로 다가갔다.
“준비 좀 해주십시오. 내일부터 전 여기서 지내겠습니다.”
“여기서 지낸다고?”
양족 고수는 눈썹을 치켜세우더니 놀란 얼굴로 되물었다.
“네, 신경 쓰이는 일이 있는데 한동안 살펴보아야 하니 오가면서 시간을 낭비하지 않겠습니다. 이곳에서 지내면 당나무에 무슨 일이 생겨도 제때에 알 수 있고요.”
“여기에서 지내는 것은 괜찮다만, 난 왠지 네가 자꾸 수작을 부리는 것 같은데?”
양족 고수는 미덥지 않다는 눈빛으로 양준을 바라보았다.
“갇힌 몸으로 제가 왜 고생을 사서 하겠습니까? 괜한 생각을 하는 겁니다.”
“주제 파악을 잘 하는군. 하지만 이 일은 먼저 족장님께 보고하고, 그 분의 결정에 따라야 한다.”
“빨리 보고하십시오.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양준은 말을 마친 뒤, 바로 궁전 쪽으로 걸어갔다. 궁전으로 돌아간 그는 자신의 계획을 안령아에게 말했다. 그러자 안령아는 불안한 표정을 지었다.
“네가 가면 난 어떡해? 마족들도 아직 여기에 있잖아.”
양준은 미간을 찌푸린 채, 생각에 잠겼다.
구척은 보기엔 꽤 괜찮은 사람 같았지만, 양준의 보호가 사라진 뒤에도 안령아에게 다른 마음을 품지 않을 거라고 확신할 수 없었다. 설령 구척이 그러지 않는다고 해도 다른 마족까지 장담할 수는 없었다. 마족은 모두 잔혹하고 포악했고, 특히나 기분파였다. 그들과는 도리를 따질 수 없었다.
“그럼 너도 함께 가자. 시중 들 사람이 필요하다고 말할게. 아마 허락할 거야.”
양준은 잠깐 생각해 보더니 말했다.
“그래.”
안령아는 얼른 대답했다. 그녀의 표정은 한결 밝아졌다.
다음날, 양족 고수는 궁전으로 와서 양준에게 족장이 그의 요구를 허락했다고 말해 주었다. 양준은 곧바로 안령아의 일을 말했다.
양족 고수는 잠깐 생각해 보더니 고개를 끄덕여 허락을 표했다. 이 일에 대해서는 족장에게 따로 보고하지 않아도 되는 듯했다.
이윽고 구척 일행과 잠깐 이야기를 나눈 뒤, 양준은 안령아를 데리고 궁전을 떠났다.
*
당나무 아래에 도착한 두 사람은 당분간 이곳에 머무르게 되었다. 양족들은 안령아가 양준처럼 나무 줄기 위로 올라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고 그저 나무 밑에만 머무르게 했다. 양준에게서 멀리 떨어지는 게 아니라면 그녀도 안심할 수 있었다. 그녀는 자신이 지금 무사할 수 있는 게 모두 양준이 보호해준 덕분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만약 양준이 없었다면 그녀는 죽어서 당나무의 자양분이 되거나 양족들의 노리개로 전락했을 것이다. 그중 어느 하나도 그녀가 원하는 바가 아니었다.
당나무 위,
양준은 양액 몇 방울을 떨어뜨린 뒤, 당나무의 반응을 지켜보았다. 당나무는 여전히 어제와 마찬가지로 그와 소통하고 싶어 했지만 또렷하게 표현하지 못했다. 그러자 양준의 신혼 영체에서 마음을 진정시키는 파동이 전해지며 당나무의 초조함을 다독여 주었고, 조금씩 당나무를 이끌어 주었다.
신기하게도 오랫동안 양액을 공급하다 보니 당나무는 양준에게 매우 의존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의 다독임에 당나무는 바로 안정을 되찾았을 뿐만 아니라 편한 기분을 드러냈다.
별 탈 없이 시간은 조용히 흘렀다.
양준은 매일 당나무의 신혼과 미묘한 소통을 하는 것 외에 나무 밑으로 내려가서 안령아와 함께 있어 주는 것이 다였다.
당나무가 빨리 진화하도록 하기 위해 양준은 진양결도 운행하지 않았다. 진양결을 운행하면 당나무에게서 기운을 흡수해 진화 속도를 늦출까 봐 걱정되었던 것이다.
당나무는 조금씩 변화되고 있었다. 매일 그와 교류하는 양준을 제외하고 이를 눈치챈 이는 아무도 없었다. 혼탁하던 당나무의 신혼도 한계치에 다다르고 곧 예상치 못한 변화가 있을 것만 같았다.
그렇게 양준과 안령아는 당나무 옆에서 한 달 넘게 머물렀다.
어느 날, 양준은 또 한 번 신혼 영체를 나무 줄기 속으로 들여보냈다. 그러자 당나무의 신혼에서 기쁨의 파동이 전해졌다. 마치 양준을 오래도록 기다린 듯한 모습이었다. 그와 동시에 양준은 눈앞 당나무의 신혼에 미약한 의식이 생겼다는 것을 분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그는 놀라는 한편, 조심스럽게 신식의 힘을 방출해 천천히 당나무의 신혼에 다가갔다. 이윽고 그의 신식의 힘과 당나무의 신혼이 맞닿는 순간, 당나무의 신혼에서 갑자기 뜨거운 기운이 솟구쳤다.
양준의 신혼 영체는 순식간에 그 기운에 휩싸였다. 당나무의 신혼 깊은 곳에서 평범하지 않은 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옹알이를 시작한 아기가 부모의 품에서 애교를 부리는데 힘 조절이 안 되는 듯한 모습이었다.
양준은 괴로운 느낌이 들었다. 그의 신혼 영체에 신식의 불꽃이 있었으니 망정이지, 그게 아니었다면 당나무의 기운에 감싸인 순간, 바로 신혼이 흩어졌을 것이다. 다급히 그의 생각을 전하자 그를 감싸고 있던 기운은 잠깐 머뭇거리더니 내키지 않는 듯 천천히 물러갔다.
양준은 실소를 터뜨렸다. 당나무의 신혼은 이제 갓 눈을 뜬 아기와 다름이 없었다. 본능적으로 가깝다고 생각되는 사람에게 다가가려 했다. 게다가 당나무는 아직 진화를 마치지 않은 상태였다. 아직도 마지막 관문이 남아 있었다. 당나무의 실망을 알아챈 양준은 다급히 위로의 뜻을 당나무의 신혼에 주입했다. 그러자 당나무는 금방 활기를 되찾았다.
두 시진 뒤, 당나무의 신혼은 천천히 진정되었다. 마치 깊은 잠에 든 것처럼 더는 어떤 신혼 파동도 전하지 않았다. 그제야 양준은 가볍게 숨을 내쉬고 나무 줄기를 빠져나왔다. 이내 상상할 수 없는 피로감이 밀려왔다.
진화가 채 끝나지 않은 생명체를 상대하는 것은 입성 경지의 고수와 싸우는 것보다 더 힘들었다. 당나무는 아무것도 몰랐고, 그것의 기분은 온전히 양준의 희로애락에 좌우되었다.
*
당나무에 문제가 생겨 양족들이 눈치채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양준은 시종일관 당나무를 어르고 달랬다. 그러다 보니 정신적 소모가 너무 컸다. 지금의 상황은 그의 예상을 한참 벗어나 있었다.
양준이 본래 당나무에 양액을 주입한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째는 자신과 안령아가 양족들의 제물이 되지 않게 시간을 끌기 위해서였고, 둘째는 당나무가 진화해 다른 생명체가 되면 어떤 모습일지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오랜 시간 동안 양액을 주입하고 신식으로 진정시켜 주다 보니 당나무는 그에게 의존감과 믿음을 가지게 되었다. 어쩌면 자신을 가족이라고 오해하고 있을 수도 있었다. 일부 생명체들이 태어나서 처음 보는 생명체에게 친근감을 느끼는 것과 같은 이치였다. 당나무의 지금 상황이 바로 그랬다. 정확히 말할 수 없지만 나쁜 일은 아닌 것 같았다.
양준은 한참 동안 쉬고 나자 천천히 회복되었다.
실컷 놀고 난 당나무도 지친 것 같았다. 양준이 연속 며칠 동안 신혼 영체를 나무 줄기 안에 들여보냈지만, 당나무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고 조용했다.
닷새나 지나서야 당나무는 잠에서 깨어났다.
당나무의 의식은 전보다 더욱 또렷해져 있었다. 양준의 신혼 영체와 장난을 칠 뿐만 아니라 어렴풋이 자신의 뜻을 내비치기도 했다. 하지만 당나무가 전한 뜻은 너무 혼란스러워, 양준은 무슨 의미인지 파악할 수 없었다. 지금 당나무는 주변 모든 것에 대한 호기심으로 가득 차 있었다.
양준은 연신 쓴웃음을 짓고는 울며 겨자 먹기로 당나무와 함께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당나무와 한참 동안 놀아 주다 보면 그는 몸과 마음이 모두 지쳤다.
시간은 하루하루 흘러갔다. 양족들은 매일 와서 상황을 살폈다. 그들은 양준이 수작을 부리지 않았는지 확인하고, 또 당나무의 변화를 살폈지만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했다.
당나무는 며칠에 한 번씩 깨어났다. 그리고 깨어날 때마다 전과는 다른 모습을 보였다. 매번 양준과 실컷 놀고 난 뒤, 다시 깊은 잠에 빠지곤 했다. 당나무는 아무런 걱정 없이 편안한 모습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당나무가 잠에 빠지는 주기도 점점 짧아졌다. 처음에는 닷새, 그 뒤로 나흘, 그러다가 사흘, 이틀로 변했다……. 당나무의 의식이 전하는 뜻도 점점 또렷해졌다. 곧 자의식이 확실하게 생길 것 같았다. 양준은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