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58장. 뜻밖의 성과
나무 줄기 안으로 들어간 양준은 자신의 의념을 반복적으로 전하며 당나무의 자의식을 이끌어 주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는 당나무를 진정한 생명체로 대했다. 당나무는 그냥 나무가 아니라 자신의 감정, 생각, 판단까지 지닌 생명체였다. 이에 당나무는 양준을 점점 더 살갑게 대하며 자신의 마음을 활짝 열었다.
당나무의 의식은 아직 놀기 좋아하는 유아 상태였다. 양준의 신혼 영체가 나무 줄기 안으로 들어갈 때마다 당나무는 기쁨을 억제하지 못하고 그의 신혼 영체를 감싸서 이끌고는 자신의 몸속을 구경시켜주려 했다.
지금 당나무는 티 없이 맑은 영혼으로, 희로애락을 모두 겉으로 드러냈다. 떄문에, 양준이 오면 기뻐하고 떠나려 하면 실망하고 아쉬워했다. 몇 번인가는 깊은 잠에 빠져 있는데도 신혼의 기운으로 양준의 신혼 영체를 꼭 감싸고서 그를 떠나보내려 하지 않기도 했다.
양준은 기쁜 한편, 이 단순하고 미묘한 생명체를 진심으로 좋아하게 되었다. 당나무의 순수함에 왠지 닳고 닳은 자신이 부끄럽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양준과 장난치며 교류하는 가운데 당나무의 의식은 하루가 다르게 성장했다.
그러던 어느 날,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양준은 신혼 영체를 나무 줄기 안으로 들여보냈다. 이때 앞쪽에서 그를 반기는 또렷한 의념이 전해졌다. 곧이어 당나무의 신혼이 달려와 살갑게 그를 감쌌다. 양준은 순간 놀라서 한참을 멍하니 있다가 당나무에 전음을 보내 보았다.
뜻밖에도 당나무는 잠깐 생각하더니 곧 반응을 보였다. 비록 또렷하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양준은 그 뜻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양준은 씩 웃었다. 당나무의 자의식이 드디어 탄생한 것이다. 오랜 시간 동안 양액을 주입한 결과, 당나무는 성공적으로 다른 형태의 생명체로 진화하게 되었다. 이 가운데 그의 공로가 컸다. 물론 그가 없었다고 해도 당나무는 진화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양액을 주입했기에 진화 시기가 훨씬 앞당겨질 수 있었다.
양준은 짙은 성취감을 느꼈다. 이는 마치 자식이 옹알이를 하다 점차 걸음마를 떼고 드디어 걸어 다니는 모습을 보는 부모의 심정과도 같았다. 그러나 아직 당나무가 배워야 할 것은 많았다. 양준은 곧바로 당나무에게 어떻게 감정을 표현해야 하는지, 자신과 어떻게 교류해야 하는지를 가르쳐 주었다. 하지만 아직 어린 생명체는 이런 것을 배우기보다 그와 장난치는 것을 더 좋아했다. 가르친 것을 얼마나 알아들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반나절이 지나서야 양준은 신혼 영체를 거두어들이고는 머리가 지끈거려 이마를 문질렀다.
이때, 갑자기 많은 나뭇가지들이 그에게 뻗어 오는 동시에 그의 머릿속으로 의념이 흘러 들어오며 전음이 전해졌다.
양준은 깜짝 놀라 나뭇가지를 바라보았다. 나뭇가지에는 황금빛의 열매들이 열려 있었다.
“나한테 주는 거야?”
양준이 얼른 물었다.
마치 고개를 끄덕이듯이 나뭇가지들이 살랑살랑 나부꼈다.
양준은 실소하며 고개를 저었다.
“마음만 받을게. 열매들은 받을 수 없어.”
아래쪽에는 양족의 고수들이 감시하고 있었다. 만약 정말 열매를 가져간다면 골칫거리가 생길 수 있었다. 그는 짙은 양성 기운이 가득한 열매가 탐났지만,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열매를 따려고 시도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당나무는 고집스레 나뭇가지를 그의 앞으로 계속 뻗어 왔다. 양준이 어떻게 설득해도 소용없었다. 결국 열매들은 스스로 나뭇가지에서 떨어져 그의 품속으로 안겨 들었다.
양준의 얼굴빛이 흐려졌다.
‘이걸 어떻게 해명해야 되지.’
반면 당나무는 장한 일이라도 한 듯이 나뭇가지들을 거두어들이고는 바람결에 한들거렸다.
양준은 품 속의 햇수가 서로 다른 몇 개의 열매를 바라보며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그대로 받아 챙길 수도 없고, 제자리에 가져다둘 수도 없었다. 한참을 생각하다가 그는 나무 줄기에서 뛰어내리며 큰 소리로 양족들을 불렀다.
곧 근처에서 감시하고 있던 양족 고수들이 이쪽으로 걸어왔다. 그들은 무슨 일인지 물으려다가 양준이 품속에 들고 있는 열매를 보더니 하나같이 대노했다.
“네가 감히 당나무 열매를 훔치다니. 죽으려고 환장했구나.”
그중 한 명은 매우 화가 났는지 말하는 한편 진원을 쏟아내며 곧바로 공격할 준비를 했다.
양준은 그 사람을 싸늘하게 바라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훔친 거 아닙니다. 열매가 저절로 떨어졌거든요.”
“헛소리. 당나무 열매는 몇백 년간 달려 있으면서 한 번도 스스로 떨어진 적이 없었어. 이놈이 어디서 거짓말이야.”
“분명히 말하지만 훔치지 않았어요. 훔쳤으면 진작 먹어치웠죠.”
양준은 말이 통하지 않자 길게 말하지 않고 열매를 그들에게 던져 주었다.
양족들은 열매를 얼른 받아 쥐고는 못마땅한 눈빛으로 양준을 바라보았다. 화를 내던 사람이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열매를 돌려주면 죄를 면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 족장님께 보고드릴 거다. 그분께서 어떻게 벌하실지 기다려.”
양준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입을 삐죽거렸다.
바로 이때, 간담을 서늘케 하는 기운이 순간 폭발하며 주변이 뜨거운 열기로 가득 찼다. 곧이어 뒤쪽에서 채찍 모양의 황금빛 공격들이 양족 고수들에게로 휘몰아쳐 갔다. 양족 고수들은 위험을 알아채고 너도나도 낯빛이 크게 바뀌었다. 그들은 얼른 제자리에서 솟구쳐 오르며 공격을 피하려 했다. 하지만 공격은 거침없이 빨랐고, 범위마저도 넓었다. 때문에, 양족 고수들은 결국 공격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나지막한 채찍 소리가 연이어 울려 퍼지는 가운데, 간혹 신음 소리가 섞여 있었다. 양족 고수들은 반항조차 하지 못하고 모두 피를 흘리며 멀리 날아갔다. 그중 실력이 떨어지는 한 양족은 그 자리에서 뼈도 추리지 못하고 피 안개가 되었다.
양준은 깜짝 놀랐다. 그의 등 뒤에 숨은 안령아는 온몸을 부들부들 떨며 멍한 눈빛으로 눈앞의 광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피를 흘리며 나가떨어진 양족 고수들이 무슨 상황인지 알아차릴 사이도 없이 천지를 뒤덮는 금빛이 다시금 그들을 덮쳤다. 그들은 나름 대비한다고 했지만 미친 듯이 쏟아지는 무차별 공격을 막아 낼 수가 없었다. 낮은 채찍 소리는 끊이지 않고 들려왔다. 양족 고수들은 각각 적어도 백여 번씩 금빛 채찍에 얻어맞았다. 결국 다들 그 자리에서 참혹하게 죽고 말았다.
양준은 뒤돌아 떨리는 눈빛으로 등 뒤의 당나무를 바라보았다.
이 순간, 어디에서도 바람이 불어오지 않았다. 그러나 당나무는 바스락 소리를 내며 무성한 가지와 잎들을 미친 듯이 흔들어 대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무척이나 험상궂어 보였다. 당나무의 수관(樹冠)에는 육안으로 볼 수 있는 금빛 원기들이 드리워져 있었다. 금빛 원기는 하나같이 굵고도 긴 채찍 같았고 날카롭기 그지없었다.
양족 고수들은 원기 채찍에 맞아 죽은 것이었다. 땅에는 피와 시체 조각들이 가득 널려 있었고, 동시에 짙은 피비린내가 코를 찔렀다.
양준은 당나무 안쪽에서 전해지는 미친 듯한 분노를 뚜렷하게 느낄 수 있었다. 당나무는 방금 양준을 대하는 양족들의 태도에 화가 난 모양이었다. 양준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런 일이 생길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던 것이다. 그가 열매를 양족에게 돌려준 것은 괜히 문제를 일으키지 않기 위해서였다. 그는 아직 이곳에서 도망칠 자신이 없었고, 더욱이 나갈 길도 찾지 못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양준은 물론 당나무가 이미 자의식이 생겼고, 전과는 많이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당나무가 자신을 위해 나서 줄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었다. 게다가 당나무의 공격이 이처럼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포악하고 직접적일 줄 누가 알았겠는가.
당나무의 공격은 규칙이라고는 없었다. 물론 당나무의 몸속에 있는 방대한 원기 자체가 가장 무서운 공격이기 때문에, 굳이 규칙 같은 게 필요하진 않았다.
“양준……!”
안령아는 여전히 바들바들 떨며 양준의 옷자락을 꽉 잡았다. 그녀는 아름다운 눈을 커다랗게 뜨고서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양준은 정신을 차리고 얼른 당나무에 자신의 의념을 전했다. 그제야 당나무는 천천히 평온해졌다. 이윽고 당나무는 원기 채찍으로 땅바닥에 떨어진 열매를 주워 양준에게 주었다.
“당나무가… 자의식이 있는 거 같은데.”
안령아는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등 뒤의 당나무를 멍하니 바라보며 말했다.
“이걸 어떻게 설명한다…….”
양준은 쓴웃음을 지었다.
그 사이 당나무는 원기 채찍으로 나뭇가지에 열린 열매를 모두 따서는 양준에게 건넸다. 족히 6~70개는 되었는데, 열매마다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방대한 기운이 내재돼 있었다.
양준은 크게 심호흡을 했다. 이번 일은 쉽게 해결될 것 같지 않았다. 당나무는 좋은 마음에서 그에게 호의를 보인 것이었다. 더욱이 당나무에게 있어서 양준을 위해 양족 몇 명을 죽인 건 큰일이 아니었다.
당나무의 포악한 공격에 양준은 문득 뭔가 떠올랐다. 근처에서 감시하고 있던 양족 무인들은 하나같이 초범 경지였지만 당나무의 무차별 공격을 막아내지 못하고 순식간에 목숨을 잃었다. 반짝이는 그의 눈동자에 서슬 퍼런 한기가 스쳐 지나갔다. 그는 입꼬리를 천천히 말아 올렸다. 이번 변고는 어쩌면 기회일 수도 있었다.
“금제를 풀어줄 테니까, 잠시 뒤에 무슨 일이 생기면 알아서 네 몸을 챙겨.”
양준은 안령아에게 말하고는 진원과 신식을 동시에 그녀의 몸속으로 들여보냈다.
안령아 몸속의 금제는 양준에게 있어 아무것도 아니었다. 괜히 주목을 끌고 싶지 않아 여태까지 풀어주지 않았을 뿐이었다. 지금은 사태가 수습 불가능했기에 반드시 목숨을 걸고 싸워야만 했다. 안령아는 곧 자유의 몸을 회복했다. 순식간에 진원이 다시 흐르기 시작했고, 식해 안의 금제도 한순간에 산산조각이 났다.
곧이어 사방팔방에서 수많은 그림자들이 몰려들었다. 방금 전, 당나무의 난폭함에 양족들이 놀라 달려온 것이었다. 달려온 무인들은 모두 기운이 강하고 실력이 높은 이들이었다.
그들은 땅바닥에 널려 있는 피와 시체 조각들을 보자 화가 치밀어 양준에게 사실 관계를 묻지도 않고 달려들었다. 살기가 넘쳐흐르면서 진원이 폭발했다.
양준은 나지막하게 웃었다. 그러고는 여유 있게 당나무의 열매를 검은 책 공간에 갈무리했다. 곧이어 그의 신식의 힘이 세차게 폭발하면서 사방을 습격했다. 그리고 신식의 힘 가운데는 서혼지충이 숨겨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