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59장. 우리 협상 좀 해 봅시다
지난번 빙종에서 소란을 피울 때, 양준은 이미 서혼지충의 위력을 시험해 본 터였다. 입성 경지 이하는 누구도 서혼지충을 막아낼 수가 없었다. 그리고 지금 달려온 양족들은 실력이 낮지 않고 인원수도 많았지만 입성 경지는 없었다. 비록 신혼의 힘으로 양족들을 다치게 하지는 못했지만, 서혼지충은 이미 기척도 없이 그들의 식해에 침투해 들어가 잠복한 상태였다. 이제 양준이 의념을 발동하는 순간, 언제든지 그들의 식해를 훼손시킬 수 있었다.
동시에 당나무도 다시 한번 거센 공격을 퍼부었다. 사방에서 금빛 원기 채찍들이 흐느적거렸다. 그것들은 변화무쌍했고, 내리치는 곳마다 땅바닥에는 갈래갈래의 커다란 골이 파였다.
꽈르릉-
소리가 멀리까지 울려 퍼졌다. 양족 무인들은 갖은 애를 썼지만 여전히 양준에게 다가갈 수 없었다. 그들은 당나무의 공격에 모두 나가떨어졌다. 운이 나쁜 자들은 그 자리에서 죽기도 했다.
당나무의 도움 덕분에 기선 제압을 할 수 있었지만, 양준의 표정은 무거웠다. 강한 위압감이 멀지 않은 곳에서 다가오고 있었다. 곧이어 족장을 비롯한 양족의 고위층들이 도착했다.
“족장님, 당나무가 심상치 않습니다.”
간신히 당나무의 공격에서 살아남은 양족 무인이 바로 상황을 보고했다.
족장은 어두운 낯빛으로 당나무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날카롭게 번뜩이던 그의 눈동자에는 차가운 빛이 스쳐 지나갔다. 그는 싸늘한 눈빛으로 양준을 힐끗 보았다. 하지만 얼굴은 온통 경악으로 물들어 있었다. 다른 고수들도 놀란 나머지 낯빛이 바뀌며 비명을 질렀다.
“어떻게 이럴 수가?”
그들은 모두 입성 경지의 고수로 신식으로 당나무의 내부에 의식이 존재한다는 것을 감지할 수 있었다. 게다가 그 의식은 그들의 탐지를 꺼려할 뿐만 아니라 강한 적의를 품고서 그들을 거부했다.
“당나무가… 자의식을 가지게 된 건가?”
족장은 깊은 눈빛으로 양준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나지막하게 물었다.
“네, 그렇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자네가 해낸 거고?”
“그냥 도움을 준 것뿐입니다. 제 공로라고는 할 수 없죠.”
“그래서 당나무가 자네한테는 호의적이고, 우리 양족은 싫어하는 겐가?”
족장도 영리한 사람이었다. 여태까지 내막을 몰랐지만 눈앞의 광경을 보고는 곧바로 사실을 유추해낼 수 있었다. 탄생한 지 얼마 안 되는 생명체의 의식은 언제나 익숙한 사람에게 살갑기 마련이었다.
“당나무는 우리 양족의 것이다. 이 도둑놈!”
족장은 표정을 일그러뜨리며 고함을 질렀다.
“당나무를 훔칠 생각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당나무가 저한테 살갑게 구는 걸, 제가 어떻게 막겠습니까?”
“역시 그때 널 죽였어야 했어.”
족장은 분에 찬 표정으로 말했다. 다른 양족들도 이를 갈며 험상궂은 표정으로 양준을 노려보았다.
“그때 죽이지 않았으니, 이젠 기회가 없죠.”
양준은 눈썹을 치켜세웠다. 얼굴에는 자신감이 넘쳤다.
“고작 초범 경지 1단계 수준으로 내 앞에서 이리 방자하게 굴다니, 정말 하늘 높은 줄 모르는구나.”
족장은 음산하게 웃으며 말했다. 곧 신식의 힘이 그의 머릿속에서 폭발했다.
양준은 미처 반응할 새도 없이, 식해에서 예리한 통증을 느꼈다. 마치 온몸이 찢겨 나가는 것 같았다. 순간, 그의 얼굴이 일그러지고 몸이 떨렸다. 이마에서는 커다란 땀방울이 배어 나왔다. 족장의 구체적인 경지는 알 수 없었지만 남성고보다 더 큰 압박감이 느껴졌다. 적어도 입성 경지 2단계는 되는 듯했다. 이 정도 고수의 신식 공격은 양준이라도 쉽게 무시할 수 없었다.
식해가 한바탕 출렁거렸다. 양준은 머리가 어질어질할 뿐만 아니라 구토하고 싶은 느낌마저 들었다.
족장이 신식 공격을 펼치는 순간, 다른 고수들도 달려들어 양준을 맹공격했다.
이때, 나뭇가지가 하늘에서 내려오더니 공격들이 양준의 몸에 닿기 전에 양준과 옆에서 그를 부축하고 있던 안령아를 함께 휘감아서 끌어 올렸다. 안령아는 깜짝 놀라 비명을 질렀다. 그녀가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당나무의 한 나무 줄기에 올라와 있었다. 무성한 나뭇가지들이 그녀와 양준을 물 샐 틈 없이 뒤덮었다. 이와 동시에 당나무 수관에 드리웠던 원기들이 공격으로 바뀌어 양족의 고수들과 맞섰다.
고수들은 이런 변고가 생길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는지 얼굴빛이 크게 바뀌었다. 그리고 그들이 다시 양준을 공격하려는 순간, 당나무가 막아섰다. 그들은 자신들의 무공에 당나무가 손상 받을까 두려워 섣불리 공격할 수도 없었다. 이래저래 손발이 묶이다 보니, 고수들은 한참 동안 당나무의 공격을 막아내다가 곧 물러났다.
“족장님, 당나무가 그놈을 보호하려 합니다.”
그중 한 고수가 암담한 표정으로 말했다.
“알고 있네.”
족장의 낯빛도 폭풍 전야처럼 어둡기 그지없었다.
당나무는 양준을 보호할 뿐만 아니라 양족을 공격했다. 또한 공격의 강도가 입성 경지 고수 못지않아 당나무의 방어를 뚫기가 어려웠다. 족장은 괜스레 치욕감과 씁쓸함을 느꼈다. 마치 평생 수고스럽게 키우고 지키던 보물을 뻔뻔스러운 녀석한테 도둑 맞은 기분이 들었다.
“그렇지만 괜찮다. 내 공격에 당했으니 어차피 얼마 못 살 것이다.”
족장은 차갑게 콧방귀를 뀌며 크게 숨을 내쉬었다. 그의 경지로 양준 같은 젊은이를 대적하는 것은 너무나 손쉬운 일이었다. 그는 양준이 자신의 일격을 견뎌내지 못할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족장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당나무의 나무 줄기에서 낮고도 음산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사람들은 깜짝 놀라 위를 올려다보았다. 마침 수없이 많은 나뭇가지 사이로 양준이 시뻘게진 눈을 한 채 그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안 죽었어? 그럴 리가 없어.”
족장은 눈썹을 찡그린 채, 엉겁결에 소리쳤다.
설령 등급이 높은 신혼 비보가 있다고 해도 양준의 경지로 그의 신식 공격을 막아낼 수 있을 리 없었다. 또한 지금 양준의 신식 파동으로 보아서는 신혼이 손상을 입은 게 분명했다. 하지만 문제는 양준이 죽지 않고 멀쩡하게 살아 있다는 점이었다.
탕- 탕- 탕-
그때, 묵직하면서도 규칙적인 소리가 당나무의 몸속에서 들려왔다. 모든 이들은 뭔가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 양준이 부상을 입는 바람에 당나무의 의식이 이성을 잃었는지 포악한 기운이 퍼져 나오기 시작했다. 당나무의 위력은 모든 이의 상상을 뛰어넘고 있었다.
머릿속 통증에 고통스러워하던 양준도 순간 넋이 나가고 말았다. 그는 당나무를 너무 과소평가한 듯했다.
곧이어 당나무의 뿌리를 중심으로 대지가 갈라지기 시작했다. 짙은 양성 원기가 사방으로 휘몰아치며 닿는 곳마다 모든 것을 불태워 재로 만들었다. 양족 고수들도 진원을 운행해 막아야만 양성 원기에 타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 다들 피부가 뻘겋게 달아올랐고, 힘줄이 불거져 나왔다.
당나무의 나뭇가지들이 미친 듯이 춤을 췄고, 수관에 드리운 원기들이 불규칙적으로 채찍질을 했다. 공기 중에서는 폭발음이 연이어 울려 퍼졌다.
우두둑-
당나무는 왼쪽으로 한 번 흔들었다가 다시 오른쪽으로 한 번 흔들었고, 흔드는 속도가 점점 더 빨라졌다.
잠시 뒤 사람들이 입을 딱 벌리고 멍하니 바라보는 가운데, 이곳에 뿌리를 내리고 자라던 당나무가 흙속에서 빠져나왔다. 육안으로 볼 수 있는 양성 원기가 당나무의 기둥이 되어, 사람의 다리처럼 거대한 나무를 지탱해 땅 위에서 걸어 다녔다. 당나무의 뿌리는 줄기마다 찬란한 금빛을 뿌리고 있었다.
“하하하!”
양준은 이마를 감싸 쥐고서 하늘을 우러러 미친 듯이 웃었다. 그의 웃음소리는 우레처럼 사람들의 귀청을 때렸다. 이번에는 뜻밖의 일들이 너무 많았다. 당나무가 이런 재주가 있을 줄은 그마저도 생각지 못한 것이었다.
양준은 신혼이 손상 입은 것도 별로 신경 쓰이지 않았다. 육색 온신련이 있으니 이 정도 부상은 곧 회복될 수 있었다. 일격에 그의 식해를 산산조각 내고, 신혼을 훼멸시키는 공격이 아니라면 그는 두렵지 않았다. 그리고 족장은 아직 그럴 능력이 없었다.
양준의 의기양양한 모습과 달리 모든 양족들은 넋을 잃는 동시에 낯빛이 크게 바뀌었다. 당나무가 달려들며 거리낌 없이 공격을 퍼붓자 그들은 모두 피하기 바빴다. 당나무가 분노의 감정을 다 발산한 다음에야 양준은 나무 줄기를 다독이며 위로했다.
“그만, 그만해. 그 정도로 혼내 주면 됐어.”
당나무는 위력은 강하지만 움직임이 둔해, 양족의 최정상 고수들을 죽이기엔 역부족이었다. 양족들은 그저 멀리 피하기만 하면 죽을 걱정이 없었다. 문제는 당나무가 양족의 토대이자 뿌리인 관계로, 양족의 고수들은 당나무가 상할까 두려워 양준을 공격하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당나무의 보호를 받게 되자, 양준은 가장 먼저 이곳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이는 하늘이 내려준 기회였다.
양준의 위로에 당나무는 금방 평온해졌다. 그러나 원기 채찍은 여전히 주위를 맴돌면서 가까이 다가오려는 양족들을 위협했다.
“도둑놈, 당장 내려와 무릎을 꿇고 애원하면 목숨만은 살려주지. 사로잡히면 넌 살 기회가 없을 것이다.”
족장이 아래쪽에서 얼굴을 일그러뜨리고 소리쳤다.
“어우, 무서워!”
양준은 나무 줄기에 서서 겁먹은 표정을 지어 보였다. 이에 아래쪽 사람들은 더욱 화가 치밀었다.
“네가 도망칠 수 있을 거 같으냐? 꿈 깨거라. 감히 당나무를 홀려 우리 양족과 대립하게 하다니. 하늘 끝까지 쫓아가 갈기갈기 찢어 죽여 버릴 것이다.”
“뭐라 말해도 제 귀에는 다 개 짖는 소리로 들리거든요.”
양준이 연신 입을 삐죽거리며 말했다. 그의 등 뒤에 서 있던 안령아는 긴장한 나머지 꿈속을 헤매는 것처럼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양준의 한마디에 그녀는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양준은 그녀를 힐끗 보고는 금세 기분이 좋아졌다. 그는 목소리를 높여 아래쪽에 대고 소리쳤다.
“우리 좀 협상해 보는 건 어떤가요?”
“네놈한테 협상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느냐?”
족장은 그를 잡아먹을 듯이 쏘아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