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련전봉-761화 (760/853)

제 761장. 가망이 없어

허공의 힘은 언제나 허공 통로가 있는 곳에서만 발산되었으므로 이는 곧 앞쪽에 허공 통로가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양준은 정신이 번쩍 들어 멀리 바라보았다.

또 한참 지나 시커먼 동굴 입구가 그들의 눈앞에 나타났다. 이곳은 양족들의 거주지와 대략 몇십 리 떨어져 있었다. 이처럼 거리가 멀었기에 양준은 줄곧 허공의 힘을 감지할 수 없었던 것이다.

잠시 뒤, 당나무는 허공 통로 앞에 멈춰 섰다.

허공 통로는 지름이 일 장 정도로, 몇 사람이 동시에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컸지만 당나무는 도저히 들어갈 수 없는 크기였다. 억지로 들어갈 경우, 허공 통로가 훼손되면서 혼란한 허공의 힘에 가루가 될 수도 있었다.

“이곳이 맞아?”

양준이 진중한 표정으로 물었다.

구척은 한참 동안 살펴보다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우리가 잡혀서 들어왔던 곳이야.”

“그럼 됐어.”

양준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비록 양족들과 협상했다지만 그들이 다른 허공 통로로 데려다줄 수도 있었다. 만약 그쪽 세계가 마강이 아닌, 다른 위험한 곳이거나 미지의 세계라면 지금까지의 모든 노력은 헛수고가 될 수 있었다.

“조심성이 대단하군. 보내 주겠다고 약속했으니 번복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이곳에는 출입구가 한 곳뿐이기 때문에 다른 허공 통로는 없다.”

족장이 비꼬며 말했다.

“조심해서 나쁠 거 없죠.”

양준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는 다시 진지한 표정으로 구척과 다른 마족에게 말했다.

“너희들은 안령아를 데리고 먼저 가. 나도 곧 따라갈 거야.”

구척과 다른 마족은 진원과 신식에 모두 금제가 걸렸기에 신체가 좀 튼튼한 것 외에 일반인과 별반 차이가 없었다. 때문에, 남아 있어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양준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떡였다. 다른 마족은 한마디 말없이 곧바로 허공 통로에 뛰어들어 자취를 감추었다. 구척은 나지막하게 한마디 당부했다.

“조심해. 저쪽에서 기다릴게.”

양준은 미소를 머금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제야 구척은 안령아와 함께 허공 통로 안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안령아는 끝까지 걱정 어린 얼굴로 양준을 뒤돌아보았다. 그가 도망치지 못할까 걱정하는 듯했다.

세 사람이 떠나간 다음에야 양준은 가볍게 숨을 들이쉬었다. 하지만 곧바로 떠나지 않고 나무 줄기에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양족들은 눈썹을 찌푸리고 경계 어린 눈초리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가 또 무슨 꼼수를 부릴까 두려워하는 듯했다.

“왜 아직도 가지 않는 것이냐? 네 요구는 다 들어주지 않았느냐.”

족장은 마귀를 보듯이 양준을 바라보면서 그가 빨리 가버리기를 간절히 바랐다. 이번에 큰 손실을 입었지만 그냥 재수가 없었다고 생각할 참이었다. 지능과 의식을 갖춘 당나무만 남길 수 있다면 어떤 대가도 그만한 가치가 있었다.

“뭘 그리 조급해하십니까. 잠깐 쉬다가 가겠습니다.”

양준은 허허 웃으며 정말로 진원을 돌려 운기 조식했다. 그와 동시에 그의 신혼은 이미 기척도 없이 나무 줄기 속으로 들어가 신혼 영체로 나타났다. 당나무가 보호하고 있었기에 양족의 고수들이 습격할까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양준이 들어오자 당나무는 기뻐 어쩔 줄 몰라 했다. 동시에 나무 줄기 안에서 흐르는 기운도 거세졌다.

“기뻐하지만 말고, 내 말 잘 들어. 나는 지금 여기를 떠날 거야. 나하고 같이 가지 않을래?”

양준은 얼른 의념을 전했다.

그러자 당나무의 신혼의 기운이 곧 양준을 감싸 안으며 간절한 마음을 전달했다.

“그럼 동의하는 거로 알게. 좋아. 이 방법은 한 번도 시도해 본 적이 없지만 가능할 거 같단 말이야. 기억해. 만약 실패하면 넌 아마 잠시 동안 이곳에 남아 있어야 할 거야. 하지만 약속할게. 조금만 기다리면 다시 돌아와서 널 데리고 갈 거야.”

양준은 씩 웃고 나서 자신의 뜻을 전했다.

양준이 전한 내용이 복잡하다 보니, 당나무는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듯했다. 하지만 양준의 감정에서 일부 뜻을 감지할 수 있었기에 잠시 울적해하다가 곧 다시 기뻐했다. 아마 양준의 약속을 듣고 나니 기분이 좋아진 듯했다.

“그럼 약속하는 거다. 먼저 너한테 낙인을 찍어 줄게.”

그러고는 방대한 신혼의 기운을 소모해 당나무의 신혼에 자신의 낙인을 남겼다.

이렇게 되면 설령 지금 당나무를 데리고 가지 못한다 해도 낙인을 통해 당나무의 존재를 감지할 수 있었다. 이 방법은 안령아의 신혼 낙인을 거둔 것과 달랐다. 하나는 거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준 것이었다. 달리 말하면 당나무의 신혼이 손상을 입으면 양준의 신혼도 같이 손상을 입을 수 있다는 뜻이었다. 반면 안령아의 신혼이 손상을 입는다 해도 양준에게는 아무 문제도 없었다.

당나무와 소통을 마친 양준의 신혼은 다시 육신으로 돌아왔다.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양준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는 아래쪽 양족 고수들을 냉담하게 바라보았다. 그의 눈에는 의미심장한 빛이 서려 있었다. 그는 몸을 꼿꼿이 세우고 단호하고 냉혹한 표정을 지었다.

족장은 순간 가슴이 철렁했다. 그는 차갑게 호통을 쳤다.

“뭔가 잘못됐어. 저놈이 약속을 지키지 않고 꼼수를 부리려는 모양이야.”

양준은 크게 두어 번 웃더니 높은 목소리로 말했다.

“꼼수는 무슨. 다만 떠나기 전에 당신들에게 놀라움을 안겨주려고요.”

말하는 사이, 그의 신식의 힘이 순간적으로 폭발했다. 그것은 바닷물처럼 밀려들어 곧바로 당나무를 감쌌다. 이와 함께 그의 몸속 검은 책 공간에서 방대한 흡입력이 전해졌다.

쿠웅-

그의 심장이 순간적으로 크게 수축되며 묵직한 소리를 내었다. 그와 동시에 양준의 얼굴이 하얗게 질리더니 몸을 휘청거렸다. 죽음의 기운이 밀려오는 것만 같았다.

이내 모든 이의 주목을 받으며 당나무는 빛으로 변해 신비하게 사라졌다. 사람들은 넋이 나간 채, 그대로 멍하니 서 있었다.

양준은 억지로 정신을 차리고 뒤돌아 허공 통로로 뛰어들었다. 그러고는 사전에 준비했던 공법으로 사방을 마구 공격했다. 곧 주변의 진원이 불안정해지고 기운이 어지러워졌다.

꽈르릉-

폭발음이 전해지며 허공 통로는 한동안 꿈틀거리다가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이윽고 시커먼 동굴 입구에서 혼란스러운 허공의 힘이 뿜어져 나왔다. 허공 통로는 별안간 수축되더니 순간 양족들의 눈앞에서 사라졌다. 이와 동시에 사방팔방에서 처참한 비명소리가 터져 나왔다.

양준이 떠나는 순간, 양족들의 식해에 침투해 있던 서혼지충이 제약을 받지 않자 일제히 식해를 공격했던 것이다. 입성 경지 이하의 무인들은 모두 땅에 쓰러져 죽었다. 족장과 입성 경지 고수 몇 명은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하나같이 말문이 막혔고,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당나무가 눈앞에서 사라지고, 허공 통로가 훼손되었으며 사상자가 막대했다. 그들은 참혹한 현실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허공 통로가 훼손된 것은 예상했던 일이었다. 그들은 양준이 그럴 속셈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저지하지 않았다. 그들은 이미 소현계에서 평생 살았고, 밖으로 나간다 해도 마강이었기에 드나들려면 위험했다. 때문에 허공 통로가 훼손돼도 크게 아깝지 않았다.

사람들이 많이 죽은 것도 이해가 되었다. 양준의 수단이 원래 예측할 수 없었고, 전에도 그들의 눈앞에서 기척도 없이 몇 사람을 죽였기 때문이었다. 이번에도 아마 같은 수를 썼을 터였다. 그들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당나무가 어떻게 사라졌는가였다. 당나무는 도저히 허공 통로로 빠져나갈 수 없는 크기였다. 하지만 모든 이들이 보는 앞에서 당나무는 신비하게 사라졌다.

“도둑놈, 조만간 네놈을 죽여 버릴 것이다!”

족장은 붉은 머리카락을 흩날리며 미친 듯이 울부짖었다. 다른 양족 고수들도 복수하지 못하면 살 의미가 없다는 듯이 분통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원수는 이미 사라진 지 오래였다.

*

사막 한가운데, 양준의 몸이 뜨거운 모래 위에 털썩 떨어졌다. 먼저 그곳에 도착해 있던 구척 일행은 얼른 그에게 달려갔다.

양준의 상태를 확인한 안령아는 놀라서 어쩔 줄 몰라 했다.

양준은 창백한 얼굴에 입술이 파랗게 질려 있었다. 온몸의 진원이 불안정했고, 신식의 힘은 거의 다 고갈된 상태였다. 겉으로 보면 상처 입은 흔적은 없었다. 하지만 온몸이 차갑기 그지없어 당장이라도 죽을 것만 같았다. 느리지만 힘 있는 심장 박동 소리가 기괴하게 들려왔다. 이전에 남성고에게 추격당할 때에도, 양준은 이 정도로 비참한 상태는 아니었다.

안령아는 자신이 떠난 뒤, 소현계에서 무슨 일이 발생했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 양준의 모습은 그녀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이봐, 이봐…….”

구척도 급히 걸어와서 양준의 팔을 흔들었다. 하지만 양준은 어떤 반응도 없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양준은 동공이 확대되고, 신식이 흩어진 것이 식해에 큰 상처를 입은 듯했다.

“가망이 없는 거 같은데…….”

다른 마족이 어두운 얼굴빛으로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그는 양준과 친분이 없었다. 하지만 어쨌든 양준의 도움으로 살아남았기에 지금 양준의 모습을 보자 괜히 안쓰러웠다.

구척은 입술을 실룩이며 뭔가를 말하려다 안령아의 상심한 모습에 차마 입을 뗄 수 없었다. 원래 그들이 가지고 있던 영단묘약도 소현계에서 양족들에게 빼앗기는 바람에 지금은 양준을 구하려고 해도 도저히 방법이 없었다. 게다가 그는 지금 진원과 신식이 봉인되어 어떤 도움도 줄 수 없었다.

“아니야. 양준이 죽을 리 없어.”

안령아는 끊임없이 고개를 저었다. 그녀는 양준을 안고서 그의 머리를 허벅지에 올려놓고는 떨리는 손으로 그의 얼굴의 묻은 모래를 조심스럽게 털어 냈다.

“지난번에도 그렇게 심한 상처를 입었는데 죽지 않았어. 이번에도 죽지 않을 거야.”

쿠웅-

양준의 기괴한 심장 박동 소리가 다시 한번 들려왔다. 곧이어, 그의 생명의 기운이 순식간에 약해졌다.

안령아는 애달프게 울음을 터뜨렸다.

“울지 마. 네 진원은 봉인되지 않았잖아. 그럼 어서 아무 거라도 좀 시도해 봐.”

구척이 나지막하게 말했다.

그 말에 안령아는 정신을 번쩍 차리고 얼른 구천성지의 여러 가지 현묘한 공법을 펼쳐 양준을 구하려 했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양준이 좋아질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조급해져 안절부절못했다.

“어휴!”

구척은 땅이 꺼지도록 한숨을 내쉬었다. 양준이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원래 목숨을 구해준 은혜를 제대로 갚을 생각이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네 명 가운데서 세 명은 소현계에서 성공적으로 탈출했는데, 맨 마지막까지 남았던 양준이 이 모습이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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