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62장. 당나무의 작용
사막은 낮에는 데일 듯이 뜨겁고, 밤에는 뼛속까지 얼 정도로 추웠다. 둥근 달이 휘영청 뜬 가운데, 육안으로 볼 수 있을 정도의 한기가 모래알에서 배어 나왔다. 멀리서 바라보면 사막은 엷은 얼음이 낀 것처럼 투명하게 반짝였다. 달빛은 그런 사막 위로 쏟아지면서 모든 것을 아름답게 비추고 있었다.
사막의 어느 한 곳, 안령아는 양준을 끌어안고 앉아 있었다. 그녀의 진원이 용솟음쳤다. 그녀는 지금 자신의 체온으로 점차 차가워지는 양준의 몸을 녹이고 있었다.
양준은 정말 숨이 끊어진 듯이 낮에 소현계에서 나온 다음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움직임이 없었다. 처음에는 그나마 체온이 따뜻하고 심장 박동 소리가 들렸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름에 따라 몸이 점점 더 차가워지면서 생명의 기운도 미약해졌다. 마치 폭풍 속의 촛불처럼 금방이라도 꺼질 것만 같았다.
안령아는 조금도 떨어지지 않고 조심스럽게 양준을 지켰다. 양준은 성지의 미래의 주인이었다. 그녀는 설령 자신이 죽더라도 양준을 보호해야만 했다. 어느새 그녀의 아름다운 얼굴은 단호한 기색을 띠고 있었다.
멀지 않은 곳에서 기척이 들려오자, 안령아는 고개를 들고 바라보았다. 길을 찾으러 갔던 구척이 돌아온 것이었다. 구척 같은 마족도 한밤의 사막의 한기를 견디지 못하고 벌벌 떨면서 달려왔다. 그의 머리카락에는 고드름이 가득 껴 있었다.
안령아의 눈동자에는 경계의 빛이 스쳐 지나갔다. 양준이 다치지 않았을 때는 그녀도 구척과 많이 접촉했던 터라 그가 호색한에다 망나니 기질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양준이 생사를 넘나들고 있는 지금, 그녀는 모름지기 구척을 경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곧 상대의 진원과 신식에 모두 금제가 걸려 있다는 것을 떠올리자, 그녀는 조금 긴장을 풀 수 있었다.
“어때?”
구척은 안령아의 앞으로 다가가 다급히 물었다.
안령아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아마도 가망이 없을 거 같아.”
“무슨 말이야. 양준은 아직 살아 있어.”
안령아는 곧바로 화를 내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래, 그래. 알았어. 다만 세상사 무상하니까, 너도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어. 어휴… 동생도 참 운이 나쁘군. 동생이 살아나기를 바라야지. 난 동생을 청료성(靑獠城)에 초청해 제대로 접대하려고 했었는데.”
구척이 탄식했다. 그는 양준이 자신들을 도와 소현계에서 도망치다가 이런 불행을 겪게 되자, 이제는 동생이라고 살갑게 불렀다.
구척은 모래 위에 털썩 앉으면서 상심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 갑자기 나지막하게 웃으며 말했다.
“이제 보니 너희들 인간은 참 재미있단 말이야. 전에 내가 인간들을 적지 않게 잡았거든. 하지만 누구도 동생처럼 감탄을 자아내지는 못했어. 그 인간들은 위험에 맞닥뜨리자마자 곧 땅바닥에 무릎을 꿇고 절하면서 애원했지. 정말 봐줄 수가 없을 정도로 역겨웠어. 근데 역시 동생은 패기가 있단 말이야. 우리 마족처럼 기개가 있어, 죽음 앞에서도 굴하지 않잖아. 이래야 진정한 사내답지.”
구척은 한참 동안 자기 자랑을 늘어놓았다. 안령아는 몰래 그를 흘겨보고는 나지막하게 물었다.
“네가 잡았던 인간들은 다 어디 있어?”
구척은 아무렇지도 않게 목을 치는 시늉을 했다. 안령아는 표정이 어두워지더니 고개를 홱 돌리고 더는 그와 말하지 않았다.
사막의 밤은 고요했다. 오직 전갈류의 생명체들이 모래밭을 누비며 다니는 소리만이 가끔 들릴 뿐이었다. 구척은 손 가는 대로 몇 마리를 잡아 맛있게 먹으면서 맛을 평했다.
밤이 깊어지자 사막은 점점 더 추워졌다.
양준의 얼마 남지 않은 생명의 기운이 점점 더 약해졌다. 이에 안령아나 구척 모두 마음을 졸이면서 긴장한 모습으로 그를 지켜보았다.
그리고 반 시진이 채 안 되어, 그의 생명의 기운이 갑자기 없어졌다.
안령아는 순간 정신을 놓으며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구척도 크게 한숨을 내쉬고 하늘이 무정하다느니 하며 넋두리를 했다.
두 사람이 한창 슬픔에 빠져 있는 그때, 양준의 몸속에서 갑자기 생명의 기운이 용솟음쳐 나왔다. 생명의 기운은 마치 활활 타오르는 불꽃처럼 순식간에 차갑기 그지없던 그의 몸을 뜨겁게 달구었다. 진원도 세차게 흘러 경맥을 누볐다.
화르륵-
가벼운 소리가 울려 퍼지더니 양준의 온몸이 타올랐다. 몸속을 뚫고 나온 진원이 그를 감싸면서 근처의 모래밭을 용암으로 만들어 버렸다.
안령아는 깜짝 놀라 얼른 피했다. 하마터면 뜨거운 진원에 데어 다칠 뻔했던 것이다. 구척도 입을 떡 벌리고 양준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의 입가에 걸려 있던 전갈의 꼬리가 뚝 떨어졌다.
우욱-
이윽고 양준은 검은 피를 한바탕 토해 내고는 몸 밖으로 튀어 나갔던 진원들을 모두 거두어들이더니 벌떡 일어섰다. 그러고는 망연한 눈빛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는 안령아와 구척의 놀란 표정을 확인하고 나서야 심호흡을 하고는 신식을 천천히 거두어들였다.
양준은 다시 천천히 땅바닥에 앉아 마음과 호흡을 가다듬었다. 머릿속에는 기절하기 전의 광경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곧이어 그는 지금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몸에는 이상이 없었지만 식해에서 찢어지는 듯한 통증이 느껴졌다. 그는 저도 모르게 신음을 흘리며 머리를 감싸 쥐고 온몸을 경련하듯 부들부들 떨었다. 한참이 지나자, 점차 평온해졌지만 머릿속의 통증은 사라지지 않았다.
“여긴 어디야?”
양준이 고개를 들고 나지막하게 물었다. 그의 얼굴은 통증 때문에 일그러져 무척이나 무서워 보였다.
“마강의 사막이야.”
구척이 당황하다가 얼른 대답하고는 친절하게 물었다.
“동생, 지금 살아 있는 거야, 죽은 거야?”
양준은 눈꺼풀을 겨우 들고 힘없이 그를 바라보고는 되물었다.
“네가 보기엔?”
“하하! 동생이 그리 쉽게 죽을 리 없지.”
구척이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방금 전에 가망이 없다고 말한 사람은 누구지?”
안령아는 차갑게 그를 흘겨보며 한마디 했다.
구척은 금세 무안해하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지금은 어때?”
안령아는 시선을 양준에게 돌리고 긴장한 표정으로 물었다.
“좀 힘들어.”
양준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그의 신혼은 여전히 불안정했다.
“그럼 어서 쉬어.”
양준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더는 말하지 않고 다시 눈을 감았다. 그는 몸과 마음을 가다듬은 다음, 다시 신혼 영체로 식해에 들어가 자세히 살펴보았다.
식해는 한산하기 그지없었다. 원래 식해에 흐르던 불 같이 뜨거운 바닷물은 거의 고갈된 상태였는데, 신식의 힘을 과도하게 쓴 결과였다. 식해에서는 때로는 폭풍우가 휘몰아치고, 때로는 번개가 번쩍이며 천둥이 울고 있었다. 식해가 한계치에 다다라 당장이라도 무너질 것만 같았다. 이런 변고가 생긴 연유는 당나무를 검은 책 공간에 넣었기 때문이었다.
양준은 이번 일로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가 돌아올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었다. 지금까지 검은 책 공간에 넣은 것들은 대부분 크기가 작은 것들이었다. 가장 큰 것이라 해도 당나무의 백분의 일 정도의 크기였기에 신식의 힘을 조금만 소모하면 되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신식의 힘이 거의 소진되어서야 당나무를 검은 책 공간에 넣을 수 있었다. 그 가운데 그는 탈진하고 말았다.
당나무는 전에 넣어 두었던 물건들과는 달랐다. 크기가 남달랐을 뿐만 아니라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방대한 기운이 넘쳤기 때문에 이 정도의 대가를 치르는 것은 마땅했다. 하지만 그만한 가치가 있었다. 당나무를 데려갈 수 있다면, 어떤 처절한 대가를 치러도 괜찮았다. 이제 더는 당나무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할까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다.
소모된 신식의 힘은 수련하면 보충할 수 있었다. 육색 온신련의 도움으로 얼마 안 되어 신식의 힘은 다시 전성기 상태로 회복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번 일에서 육색 온신련은 매우 중요한 기능을 했다. 만약 온신련이 그의 신혼을 보호하지 않았다면, 그는 진작 죽었을 터였다.
양준의 신혼 영체는 식해에서 빠져나와 다시 검은 책 공간으로 들어갔다. 순간, 그는 눈부신 금빛에 눈을 뜰 수가 없었다.
이제부터 당나무는 이곳에 자리를 잡게 되었다. 당나무의 뿌리와 나뭇가지, 나뭇잎들이 황금처럼 반짝반짝 빛을 뿌리면서 검은 책 공간을 휘황찬란하게 밝히고 있었다. 또한 당나무의 몸속에서 발산되는 뜨거운 기운은 그의 통증을 완화시켜 주었다.
당나무는 양준이 온 것을 감지했는지 나뭇가지와 잎을 흔들었다. 그와 동시에 나무 줄기 속에서 그를 부르는 의념이 전해졌다. 양준의 신혼 영체가 곧바로 나무 줄기 속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당나무의 신혼이 그의 신혼 영체를 감쌌다. 당나무도 양준의 상태가 좋지 못한 것을 아는지 전처럼 장난치지 않고 조심스럽게 감싸 안아 주었다. 이윽고 강한 기운이 당나무의 신혼에서 그의 식해로 흘러 들어가며 고갈된 신혼의 힘을 보충해 주었다.
양준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는 당나무를 저지하지 않고 기분 좋게 그곳에 머무르며 당나무가 수단을 펼치게 내버려 두었다.
한 시진이 채 되지 않아 양준은 허약했던 모습을 떨쳐 버리고 기운이 흘러 넘쳤다. 고갈되었던 식해 또한 다시금 활기찬 상태로 회복되었다.
양준은 당나무와 한동안 소통했다. 그는 당나무에게 당분간 이곳에 머물러야 한다고 알려준 뒤, 당나무가 수긍하자 검은 책 공간에서 빠져나왔다. 물론 시간이 될 때마다 들어와서 놀아주겠다는 약속도 했다. 당나무는 양준과 떨어지기 아쉬워했지만 그를 잡지는 않았다.
양준이 다시 눈을 떠보니 어둠이 물러가고 날이 밝아 오고 있었다.
그는 미간을 찌푸리고 한참을 생각하다가 가볍게 숨을 내쉬었다. 입성 경지에 진급하기 전에 당나무를 검은 책 공간에서 꺼내는 건 위험했다. 입성 경지가 되어야만 아무 위험 없이 당나무를 꺼낼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조급해하지 않았다. 지금은 마강에 있기에 설령 당나무를 꺼낸다 해도 내려놓을 곳이 없었다. 당나무를 꺼내 놓기 위해서는 일단 마땅한 곳을 찾아야 했다.
양준이 눈을 뜨자, 내내 그를 지켜보던 구척과 안령아는 긴장을 풀었다.
“어떻게 그 사이에 완전히 회복된 거 같지?”
구척은 호기심이 동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양준은 기운이 하나도 없었다. 아무리 회복력이 빠르다고 한들, 회복되는 속도가 너무 빨랐다. 게다가 양준은 단약조차 한 알도 복용하지 않았다.
‘정말 이상한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