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63장. 감히 나를 공격해?
“조금 회복했을 뿐이야.”
양준이 웃으며 대답했다.
그는 구척과 다른 마족을 양족에게서 구해 주었지만 구척 같은 사람과 진심으로 친분을 쌓고 싶지는 않았다. 이번에 구척을 구해 준 것도 결국 구척의 힘을 빌려 마강에서 편하게 다니기 위해서였다. 때문에 그는 구척에게 사실대로 말하지 않았다. 그는 왠지 모르게 의식적으로 마족을 경계했다. 만약 구척이 그를 친구로 여기지 않았다면, 설령 자신이 그를 구해 주었다 해도 별로 신경 쓰지 않았을 것이다.
“전에 이곳이 마강의 사막이라고 했지? 이곳에 대해 잘 알아?”
양준이 물었다.
구척은 눈썹을 찡긋 하더니 고개를 저었다.
“사막은 매우 위험해. 우리 마족들도 섣불리 이곳에 발을 들이지 않거든. 이곳에서는 네가 날고 기는 재주가 있어도 펼치기 힘들어. 지금은 단지 이곳이 사막이라는 것만 알고, 도대체 어디로 가야 하는지는 모르겠어. 그냥 우리가 정확한 방향으로 가기를 기도해야지. 또한 가는 길에 위험이 없고, 길을 잃지 않기를 바라는 수밖에. 이곳에서 길을 잃으면… 우린 아마 평생 사막에서 빠져나가지 못할 거야.”
구척의 말에 양준과 안령아는 다시 가슴이 죄어드는 것만 같았다. 두 사람은 서로 마주 보며 속으로 최근 운이 너무 나쁘다는 생각을 했다. 7세가 연맹이 있던 섬에서는 남성고에게 추격당하고, 어쩔 수 없어 허공 통로에 숨어들었다가 양족들에게 붙잡혔다. 그리고 다시 구사일생으로 겨우 도망쳐 나왔더니 이번에는 마강의 사막에 떨어지게 되었다. 너무나 다사다난해 두 사람은 그저 고개를 절레절레 저을 뿐이었다.
이때, 양준이 갑자기 미간을 좁히며 한쪽을 바라보다가 낮게 말했다.
“누군가 오고 있어.”
잠깐 감지해 보던 그는 저도 모르게 ‘어!’ 소리를 내며 이상한 표정으로 구척을 힐끔 보았다.
“같이 있던 마족인데.”
“어, 자식, 아직 안 죽었군. 줄곧 돌아오지 않아 밖에서 죽은 줄 알았지. 명이 질기네.”
구척이 눈썹을 치켜세우며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동료의 목숨을 하찮게 여기며 상대의 생사를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모습이었다.
양준은 몰래 눈썹을 찌푸렸다.
잠시 뒤, 소현계에서 함께 도망쳐 나온 마족이 돌아왔다. 그의 얼굴에는 기쁜 기색이 서려 있었다.
“출구를 찾았어.”
이 말에 사람들은 모두 기뻐했다. 구척이 다급히 물었다.
“정말이야?”
마족 사내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틀림없어. 전에 사막에 와 본 적이 있는데 그때 천지(泉地: 오아시스)를 봤었거든. 그리고 당시 천지에서 나무 한 그루를 베었는데, 아직도 그 흔적이 남아 있어. 게다가 우리는 운이 참 좋은 거 같아. 이곳은 사막의 외곽이야. 그쪽 방향으로 며칠만 가면 사막에서 벗어날 수 있어.”
마족 사내는 말하면서도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양준과 안령아도 가볍게 숨을 내쉬었다. 고생 끝에 낙이 찾아온 느낌이었다.
그동안 너무 운이 없었다. 계속해 불행이 이어지면 양준은 한동안 아무 곳이나 찾아 들어가 폐관 수련을 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하고 있던 참이었다.
“뭘 더 기다려. 지금 당장 가자. 난 목이 말라 죽겠어.”
구척이 커다란 손을 내저으며 신이 나서 그쪽 방향으로 걸어갔다. 마족 사내도 더 말하지 않고 앞장서서 길을 안내했다.
“우리도 가자.”
양준이 안령아에게 말했다. 안령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양준과 함께 걸어갔다.
마족 두 명은 흥분을 주체하지 못하고 앞에서 달려가고 있었다. 안령아는 그들을 힐끔 보더니 갑자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구척을 조심해. 진심으로 대했다가 오히려 된통 당할 수도 있어.”
“진작 알고 있었어. 원래부터 친분을 쌓을 생각은 없었거든. 지금은 마강에 있으니까 안전하게 벗어나려면 그의 힘이 필요할 뿐이야.”
양준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안령아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나지막하게 탄식했다.
“소현계에서 네가 어느 정도 실력인지 보여주지 않길 다행이야. 만약 저 자가 네 진정한 실력을 알았다면 이번 여정은 매우 위험했을 거야.”
“저 자가 네 신분을 아는 게 더 위험할 텐데. 그러니까 절대 네 신분을 밝혀서는 안돼. 그리고 더는 구천신기를 펼치지 마.”
“내가 어린애도 아니고, 그렇게 조심성이 없을까 봐.”
안령아가 생긋 웃었다.
“동생, 빨리 와. 왜 그리 뭉그적거려?”
구척이 갑자기 뒤돌아보며 소리쳤다.
“가고 있어, 좀 기다려. 어서 가자.”
양준은 소리를 높여 대답하고는 얼른 안령아를 재촉했다.
마족 사내는 방향감이 뛰어난 듯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사막에서 걸으면서 어떤 지표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정확한 방향을 찾아내었다. 더욱이 그는 진원과 신식이 모두 봉인된 상태에서 오로지 자신의 본능과 느낌으로만 길을 가고 있었다.
대략 세 시진 정도 걷자, 넓게 펼쳐진 사막 한가운데 녹색 빛이 그들의 눈에 들어왔다. 바로, 천지였다. 그곳은 사막에서 유일하게 물과 식물이 있는 신비한 지대로, 거의 모든 사막에는 천지가 있었다. 천지가 어떻게 생겨났는지, 천지가 사막 한가운데서 어떻게 계속해 존재할 수 있는지에 대해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어떤 천지는 심지어 몇백 년 내지 몇천 년 동안 변하지 않고 그대로 보존되면서 오가는 여행객들에게 쉼터가 되어 주고 있었다. 천지는 사막 여행객들의 생명줄이었다.
천지를 발견하자, 마족 두 명은 고민도 하지 않고 바로 그곳을 향해 달음박질쳤다.
이각 뒤, 양준과 안령아도 천지에 도착했다. 바깥쪽 무더위와 달리 이곳은 서늘했다. 커다란 선인장과 백양나무가 자라고 있었고, 산들바람이 불어오자 너무나 쾌적했다. 천지의 한가운데는 잔물결이 출렁이는 호수가 있었다. 맑은 호숫물은 감로수 같았고 바닥이 보이질 않을 정도로 깊었다. 또한 호숫가에는 수많은 기괴한 식물들이 자라고 있었다.
양준과 안령아가 도착해 보니 구천과 마족 사내는 아직 물에 들어가지 않은 채였다. 두 사람은 호숫가 암석 뒤에 숨어, 숨을 죽인 채 호수를 바라보고 있었다. 두 사람 모두 매우 조심스러운 모습이었는데, 미간에는 기쁨이 넘실거리고 얼굴에는 음탕한 표정이 걸려 있었다.
양준이 온 것을 느끼자, 구척은 얼른 뒤돌아 쉿 소리를 내고는 야릇한 표정으로 그에게 손짓했다.
양준은 구척이 무슨 짓을 하는지 몰라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그는 안령아를 데리고 살금살금 걸어갔다. 그러고는 암석 옆에 다가가서 그쪽을 기웃거려 보았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뭐 하는 거야?”
양준이 나지막하게 물었다.
“저길 봐.”
구척이 조용히 한쪽을 가리켰다.
양준과 안령아는 그가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다가 금세 눈을 가느다랗게 떴다.
그쪽 호숫가에는 옷가지들이 반듯하게 놓여 있었다. 그리고 옷의 양식과 색상으로 보아 여인의 복장이 틀림없었다. 옷이 있는데 사람이 없는 것을 보니 호수 안에서 헤엄치고 있는 게 분명했다. 양준은 금세 눈치챌 수 있었다. 구척과 마족 사내는 이곳에 숨어서 미인이 목욕하고 나오는 순간을 훔쳐보려는 것이었다.
“망나니!”
안령아는 상기된 얼굴로 이를 악물고서 낮은 목소리로 욕했다. 그녀의 눈동자에는 경멸이 서려 있었다. 그녀는 양준을 잡아당기며 말했다.
“넌 저 자들과 똑같이 나쁜 짓을 하면 안 돼.”
양준은 연신 입을 삐죽거리며 말했다.
“난 항상 몸가짐을 바르게 했어. 저런 망나니짓은 절대 안 해.”
그러면서 호수 쪽을 연신 힐끔거렸다.
구척은 양준의 그런 모습을 지켜보면서 음탕하게 웃었다.
“동생, 역시 통하는 데가 있다니까.”
그 순간, 그는 마치 지기를 만난 것처럼 양준이 괜히 마음에 들었다.
양준은 얼굴빛을 바로 하고 말했다.
“이러는 건 아니야. 만약 들키기라도 하면…….”
“들키면 어때서? 뭐 나를 잡아먹기라도 하겠어?!”
구척은 콧방귀를 뀌고는 전혀 걱정하지 않았다. 지금 그는 금제에 걸려 있어 힘을 사용할 수는 없지만, 어쨌든 신분이 있었다. 일반적인 마족은 그를 어쩌지 못하기에 설령 훔쳐보다가 들킨다고 해도 문제될 것은 없었다.
“여자가 궁한 것도 아니고, 굳이 이런 짓을 할 필요 있어?”
남자들의 여색을 탐하는 마음은 미묘했다. 양준도 이런 남자들의 특성을 알고 있지만 왠지 어딘가 잘못된 느낌이 들어 두 사람을 설득해 떠나려고 했다.
그러자 구척이 간사하게 웃으며 말했다.
“여인이야 많지만, 이런 게 더 자극적이잖아.”
옆에 있던 마족 사내도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구척의 말에 동의를 표했다. 그러고는 눈 한 번 깜빡이지 않고 호수를 지켜보며 호수에서 사람이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양준은 어쩔 수 없어 입을 다물었다.
바로 이때, 호수에서 갑자기 물보라가 일었다. 마족 두 명은 순간 숨을 죽이고 눈동자가 튀어나올 정도로 커다랗게 눈을 떴다. 이윽고 하늘을 가르는 소리가 들려오더니 호수에서 날카로운 물 화살들이 날아왔다.
사람들의 낯빛이 크게 변했다. 양준과 안령아는 얼른 정신을 차리고 피했다. 반면 구척과 마족 사내는 운이 나빴다. 두 사람은 조금이라도 더 잘 보려고 암석에 거의 붙어 있다시피 하다 보니 공격을 피할 수가 없었다.
쿠웅-
암석이 깨지면서 돌 부스러기가 흩날렸다. 돌 부스러기에는 세찬 기운이 섞여 있었다. 구척과 마족 사내는 처절하게 비명을 지르며 눈도 제대로 뜨지 못했다. 순식간에 두 사람은 상처투성이가 되었다.
이때, 양준은 하얀 형체가 호수 밑에서 튀어나오는 것을 보았다. 어렴풋한 가운데 잘 빠진 몸매가 얼핏 보였다. 하지만 제대로 보기도 전에 그 모습은 종적을 감추었다. 양준은 순간 깜짝 놀랐다.
모든 것이 평온해진 뒤, 구척은 욕설을 퍼부었다.
“망할, 어떤 계집이 감히 나를 공격해?”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찰싹 소리가 들려왔다. 구척은 허공에서 몇 바퀴나 뒹굴다가 땅바닥에 털썩 떨어졌다. 그가 다시 일어섰을 때는 뺨이 퉁퉁 부어 있었고, 미간에는 포악한 기운이 흘렀다. 그는 목숨을 걸고 싸울 것처럼 사방을 둘러보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멀지 않은 곳 상공에 아름다운 부인이 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녀는 음산한 표정으로 양준 일행 네 명을 지켜보고 있었다. 옅은 남색의 궁장(宮裝) 차림을 한 여인은 어깨를 반쯤 드러내고 있었고, 금방 목욕을 한 탓에 옷이 몸에 착 들러붙어 아름다운 몸매가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아름답기 그지없는 모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