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67장. 실력 점검
욱말이 양준을 데리고 도착한 곳은 지난번에 왔던 대전이었다. 대전 안에는 설리가 기다리고 있었고, 안령아는 보이지 않았다.
욱말은 양준을 데려온 다음, 공손하게 보고하고는 한쪽에 서서 싸늘한 눈빛으로 양준을 지켜보았다. 설리는 고개를 살짝 끄덕인 뒤 눈꺼풀을 들어 양준을 힐끗 보더니 덤덤하게 말했다.
“이리 오랫동안 먹여 살렸는데 날 위해 가치를 보여줄 준비는 했겠지?”
양준은 미간을 찌푸렸다.
“무슨 얘기신지?”
설리는 소리 내어 웃으며 천천히 몸을 일으키더니 나긋나긋하게 말했다.
“내가 말했었지. 우리 사성에서 폐인은 거두지 않는다고. 너를 살려 두었지만 그냥 먹여 줄 수는 없잖아. 음, 초범 경지 1단계라… 인간 가운데서 네 나이에 그 정도 경지가 되려면 쉽지 않을 텐데. 아마 큰 세력의 핵심 제자겠지?”
양준은 가타부타 대답하지 않았다.
“그런 건 나와 아무 상관도 없어. 네가 어느 세력 출신이든 나한테 잡힌 이상, 얌전히 굴어야 할 거야. 그냥 시키는 대로 해. 만약 감히 거역한다면… 결과는 너도 알 거야…….”
설리의 눈동자에 차가운 한기가 스쳐 지나갔다.
“그래서 지금 저한테 뭘 시키려는 겁니까?”
양준이 나지막하게 물었다.
“사람을 죽이거나, 아니면 죽임을 당하거나.”
설리는 가볍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욱말, 녀석한테 상세하게 말해 줘. 이젠 녀석을 내보낼 때가 됐어.”
그녀는 의자에 도로 앉더니 비스듬히 누워서는 여유 있게 양준을 바라보았다.
욱말은 제자리에 서서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
“사성 근처는 토지가 척박해. 대인이 관리하는 다른 지역도 그리 부유하지 않아. 심지어 천지 간의 기운도 부족하지. 게다가 이곳은 사막과 인접해 있어 오가는 상인들도 없어. 도리대로라면 설리 대인의 영토는 빈곤해야 마땅해.”
“빈곤한 거 아닌가?”
양준은 고개를 갸웃하고서 그를 바라보았다.
욱말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니야. 오히려 그 반대지. 우리 사성은 마강의 여느 성곽과도 비견될 수 없을 정도로 부유해. 해마다 이곳에서 드나드는 재물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지.”
양준은 살짝 놀란 듯이 눈썹을 치켜세웠다.
욱말은 의기양양한 모습으로 양준을 바라보았다. 그는 양준이 원인을 물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한참을 기다려도 양준은 입을 열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는 금세 머쓱해져서 입을 삐죽이고는 계속해 설명했다.
“사성에는 마강의 여러 인물들을 매료시킨 곳이 있지. 사성에서 가장 큰 화수분이야. 심지어 다른 세 마장들도 이곳에 사람을 상주시켜.”
“어떤 곳이길래 그렇게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 거야?”
양준은 저도 모르게 흥미가 동했다.
“투기장. 간단하게 말하면 경지가 비슷한 무인들을 그곳에 보내 목숨을 걸고 싸우게 하는 거야. 거물급 인물들은 자신만의 안목과 취향에 근거해 많은 정석 또는 물자를 어느 한 사람에게 걸지. 만약 그 사람이 이기면 수익을 얻게 되고. 사전에 정한 배당률에 따라 수익도 달라. 운이 좋으면 몇 배 내지 몇십 배의 수익을 얻을 수도 있어.”
“도박 아니야?”
“맞아. 도박이야.”
“물주는 사성이겠군. 그렇다면 사성은 영원히 이득을 얻겠네.”
양준이 웃으며 말했다.
“우리도 수련해야 하고, 수련하려면 물자가 필요해. 영토가 척박하니, 수단을 만들어 거물들의 주머니나 털어야지.”
“나도 가서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하는 거야?”
“맞아. 원래 이쪽에 몇 명 있었는데 최근에 다 맞아 죽었어. 우리도 정석을 적지 않게 썼지. 넌 초범 경지 1단계밖에 안 돼서 싸우면 별로 볼거리가 없겠지만 잘 운영하면 손실을 만회할 수 있어.”
“그럼 나한테는 무슨 이득이 있지?”
“지금 이 상황에서 이득을 챙기려고?”
욱말은 그 말에 황당해하며 물었다.
“물론이지. 목숨을 걸고 싸우는데 이득이 하나도 없다는 게 말이 돼?”
양준이 당연하다는 듯이 대답했다.
“거 참, 재미있는 놈이야. 대인, 저 녀석이 이득을 요구하는데 어쩌죠?”
욱말이 고개를 들어 설리를 바라보며 물었다.
“맛보기로 좀 줘.”
욱말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양준에게 말했다.
“대인께서 말씀하셨으니 한 번 이기면 절반의 수익을 줄게.”
양준은 잠깐 침묵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고개를 돌려 설리를 바라보며 물었다.
“만약 이 방법으로 몸값을 마련하면 저를 놔줄 건가요?”
설리는 눈을 뜨고 싸늘하게 양준을 바라보더니 다시 눈을 감고서 덤덤하게 말했다.
“내 기분을 봐서. 네가 얌전하게 말을 잘 들으면 다시 의논해볼 수 있어. 하지만 네가 다시 한번 이것저것 고르거나 요구하면 곧바로 죽여 버릴 거야. 욱말, 녀석의 재주를 시험해 봐. 괜히 입만 번지르르한 폐물이면 안 되니까.”
그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욱말의 몸속에서 무시무시한 위압감이 뿜어져 나와 양준을 덮쳤다.
양준은 순간 몸이 꺾이며 하마터면 땅바닥에 무릎을 꿇을 뻔했다. 위압감 속에 내재된 강한 힘을 느낀 그의 얼굴빛이 크게 바뀌었다. 진원이 경맥 안에서 미친 듯이 돌며 욱말이 주는 위압감을 막아냈다.
“어?”
욱말은 놀라는 한편 의혹이 들었다. 그는 진작부터 양준이 언짢아서 이번 기회에 된통 혼내 주려고 했었다. 그래서 손속에 여지를 두지 않았고, 일격에 무릎을 꿇려 양준의 패기를 꺾으려 했다. 하지만 뜻밖에도 양준이 그의 위압감을 버텨낸 것이다.
욱말의 낯빛이 차가워지더니 다시 힘을 더했다.
양준은 나지막하게 신음을 흘렸다. 몸이 점차 아래로 꺾이며 무릎이 굽혀졌다. 그는 붉게 달아오른 얼굴로 이를 악물고서 욱말을 노려보았다. 온몸의 피와 살이 꿈틀거렸다.
쩌어억-
바닥의 흰색 옥석이 산산조각 났다. 양준을 중심으로 기파가 바깥쪽으로 퍼져 나가며 대전을 둘러싼 벽들이 당장이라도 무너질 듯이 갈라졌다. 드디어 설리도 눈을 뜨고 양준을 뚫어지게 지켜보았다. 그녀의 눈에는 기대의 빛이 어려 있었다. 그녀는 양준이 욱말의 공격에 쓰러지지 않고 버틸 수 있는지 궁금한 듯했다.
욱말의 무시무시한 위압감에 양준은 온몸이 전율하며 힘줄이 튀어나왔다. 하지만 잠시 뒤, 그는 점차 이런 압박감에 적응되었다. 계속해 꺾이던 몸도 다시 천천히 펴지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욱말의 낯빛이 변했다. 그는 자신이 얼마만큼의 힘을 사용했는지 잘 알고 있었다. 이 정도 위압감이면 초범 경지 1단계가 아니라, 초범 경지 2단계 무인도 반항할 힘이 전혀 없을 터였다. 초범 경지 3단계는 되어야 겨우 막아낼 수 있을 위력이었다.
‘이걸 버텨내다니… 좀 힘들어 보이긴 하지만 말이야.’
욱말은 차갑게 콧방귀를 뀌고는 다시 한번 힘을 더했다.
푸욱-
양준의 두 발이 땅속으로 빠지며 무릎까지 묻혔다.
바로 이때, 양준이 움직였다. 그의 몸이 시위를 벗어난 화살처럼 제자리에서 튕겨 나갔다. 그의 두 손에는 진원이 용솟음치더니 곧바로 황금빛의 커다란 검이 나타났고, 몸이 도착하기도 전에 먼저 검으로 욱말을 내리쳤다.
욱말의 눈에도 살기가 피어올랐다. 그의 온몸의 진원이 날름거리며 위험한 기운을 발산했다.
“그만해.”
설리의 덤덤한 호통소리가 대전에 울려 퍼졌다.
무형의 공격이 전해지더니, 양준의 몸은 정지되었고 손에 쥐었던 현천검도 순간 빛으로 변해 사라졌다. 이윽고 그는 땅바닥에 털썩 떨어졌다.
욱말도 온몸의 힘을 얼른 거두어들였다. 그는 미간을 찌푸린 채 땅바닥에서 일어나는 양준을 바라보며 차갑게 소리쳤다.
“지금 날 죽이려고 했어?”
양준은 음산하게 웃었다.
“양성 원기, 어우 싫어.”
설리는 미간을 찌푸렸다. 그녀의 경지로 양준의 진원에 억제당하지는 않았지만, 애초에 양성 원기와는 상극이었기에 그녀 몸속의 마원은 본능적으로 양성 원기를 밀어냈다.
“실력이 괜찮구나. 내가 널 얕봤군.”
설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욱말의 힘을 이 정도로 버텨낼 수 있고, 심지어 마지막 순간에는 감히 반격하며 욱말을 죽이려고 했다. 양준에게는 현재 자신의 경지를 뛰어넘는 전투력과 끈기가 있었다. 그녀는 입성 경지 고수로서 이 정도 안목은 있었다.
“대인, 녀석을 잘 활용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욱말이 싸늘하게 양준을 두어 번 훑어보았다.
“그래. 그 자식들이 돈을 잃을 때도 됐어. 내일 결투에 녀석을 배치해. 녀석이 엄청 힘들게 이기게 만들어.”
설리가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욱말은 잔인하게 웃었다. 그러고는 잡아먹을 듯한 눈빛으로 양준을 바라보았다.
“한 가지 요청이 더 있습니다. 마지막이에요.”
양준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물론 설리가 화내기 전에 한마디 덧붙였다.
“말해.”
설리는 뚱한 표정으로 나지막하게 말했다.
“외모를 바꿀 수 있는 비보를 주십시오. 제 모습을 알리고 싶지 않습니다. 분명 나중에 수많은 마족들이 저를 죽이려고 쫓아다닐 테니까요.”
양준이 말했다.
설리는 황당해하다가 곧 무슨 뜻인지 알아차리고 옅은 미소를 지었다.
“참 멀리도 생각하는구나.”
설리 쪽에서 잘 운영한다면 양준은 그녀에게 많은 이익을 가져다줄 수 있었다. 그렇게 되면 재물을 잔뜩 잃은 마족들은 상대를 찾아 화풀이하려 할 것이고, 설리는 감히 건드리지 못할 테니 그들의 분노는 모두 양준에게 쏟아질 게 뻔했다. 그러면 때가 되어 설리에게서 자유를 얻는다 해도, 마강을 떠나지 못할 수 있었다.
양준에게는 두만이 준 외모를 바꾸는 비보가 있었다. 하지만 그 비보는 감히 사용할 수가 없었다. 그 비보를 사용한 외모로 천년마화의 약물 쟁탈전에 참가했기 때문이었다. 만약 누군가에게 발각되면 괜히 문제가 더 커질 수 있었다. 그는 하는 수 없이 설리에게 도움을 청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비보는 나에게도 없어. 그게 얼마나 귀한데. 대신 가면을 줄게. 그냥 얼굴만 가리면 되잖아.”
설리가 말했다.
“그래도 됩니다.”
양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데려가. 오늘 밤 푹 쉬어. 내일 죽으면 안 돼.”
설리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욱말은 양준을 방에 데려다 주었다. 그는 떠나기 전 양준의 몸에 진원 몇 가닥을 쏘았다. 그러자 순식간에 양준 몸속 진원의 유동 속도가 훨씬 느려졌고, 덩달아 몸의 전체적인 반응도 느려졌다.
“왜 이러는지는 알겠지?”
양준은 반항하지 않고 고개를 가볍게 끄덕였다. 방금 전 설리의 말로 미루어 보면 그녀는 내일 자신이 막판에 겨우 이기는 역전극을 연출하기를 원하는 듯했다. 이렇게 조치함으로써 마족들의 눈을 속여 그들의 판단을 흐리게 하려는 것이었다. 그렇게 되면 앞으로 그가 출전할 때마다 사람들은 그의 전투력을 낮게 짐작해 판돈을 잘못 걸 테니까.
만약 욱말이 수단을 쓰지 않으면, 양준이 실수해 허점을 드러낼 수도 있었다. 판돈을 거는 마족들은 봉사가 아니었다. 오히려 그들은 눈썰미가 대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