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련전봉-769화 (768/853)

제 769장. 너를 반드시 죽이려는 듯하더군

대지는 피로 물들었다. 양준은 볼품없이 피하는 반면, 상대는 맹공격을 퍼부었다.

사내는 싸움이 고조에 이르자 주먹으로 양준을 하늘로 날렸다가 그가 땅으로 떨어질 때 등에 주먹 한 방을 더 날려 아예 그를 땅속에 묻어 버렸다. 먼지가 장내를 가득 채우면서 관람석에 있는 사람들은 경기장의 상황을 제대로 볼 수가 없었다. 또한 투기장 외곽에 결계와 금제가 걸려 있었기에 입성 경지의 고수들도 신식을 펼쳤지만 많은 상황을 탐지하기는 어려웠다. 다만 어렴풋이 싸움이 끝났다는 것을 알 수 있을 뿐이었다.

‘정말 멋대가리가 없군!’

모든 이들의 생각이었다.

바로 이때, 세찬 기운이 먼지 가운데서 퍼져 나오더니 폭풍이 휘몰아치면서 순식간에 먼지를 휩쓸어 갔다.

눈앞의 상황을 확인한 사람들은 일제히 놀라서 소리를 질렀다.

땅에 쓰러져 있거나 아니면 분명 중상을 입고 죽었어야 할 양준이 멀쩡한 다른 한 손으로 상대를 땅바닥에 내리누리고 있었다. 그 손은 사내의 얼굴을 덮고 있었는데 강한 압박감이 느껴졌다. 사내는 아무리 발버둥 쳐도 일어날 수가 없었다.

방금 전, 먼지 속에서 무슨 일이 발생했는지 그 누구도 보지 못한 상황이었다. 그리고 먼지가 사라졌을 때에는 지금과 같은 뜻밖의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관람석에 있는 사람들도 그동안 최후의 반격을 통해 역전하는 싸움을 보지 못한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번처럼 얼떨떨한 상황이 벌어진 적은 없었다. 이 순간, 양준의 얼굴에 쓴 가면도 냉혹하게 보였다.

바람과 우레의 힘이 용솟음치며 양준의 손바닥을 통해 사내의 몸속으로 흘러 들어갔다. 사내의 몸속은 곧 살육의 장이 되었다.

파아앙-

건장한 체구의 사내는 뼈도 추리지 못한 채 피 안개가 되었다.

관람석에 있던 설리의 눈동자가 반짝 빛났다. 그녀는 깜짝 놀라며 양준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양준의 놀라운 활약에 입꼬리를 위로 끌어올리며 미소를 지었다.

“저 녀석 실제 실력은 어느 정도야?”

설리가 안령아에게 나지막하게 물었다.

“알려주지 않을 거예요.”

안령아는 연신 고개를 저었다.

“안 알려 줘? 그럼 수단을 써서 알아내면 되지.”

설리는 화내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생각에 잠기더니 싱긋 미소를 지었다.

아래쪽 경기장 안,

양준은 한쪽 팔을 늘어뜨린 채, 온몸에 상처를 가득 입고서 통로 쪽으로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가고 있었다. 이를 바라보며 설리는 문득 양준이 남다른 재주를 가지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관람석은 한참 동안 정적에 빠졌다가, 순식간에 떠들썩해졌다. 대다수는 지금의 결과를 받아들이지 못해 의견이 분분했다.

양준이 통로로 돌아오자, 욱말은 서슬 퍼런 눈빛으로 그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병색을 띤 사내는 입을 떡 벌린 채 제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 마치 눈알이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큰소리치던 인간 녀석이 정말 이각도 채 안 돼서 상대를 죽였군.’

“어때? 무척 힘들게 이겼지?”

양준은 가면을 벗고 욱말을 바라보며 물었다.

욱말은 입꼬리를 실룩거리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무척 힘들게 이겼을 뿐만 아니라 전혀 허점이 없이 완벽했다. 욱말마저 양준이 죽는 줄 알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마지막 순간에 이런 놀라움을 안겨줄 줄 누가 알았겠는가.

‘녀석, 너무 대담한데. 공격을 버텨 내지 못하고 죽을까 봐 걱정되지도 않나?’

양준은 그제야 어깨를 흔들었다. 그러자 부러진 팔에서 딸깍, 소리가 나더니 곧 이어졌다.

“다음 결투에는 초범 경지 2단계를 배치해 줘. 그러면 너희들도 더 많은 이득을 챙길 수 있고, 나도 몸값을 빨리 벌어서 하루라도 빨리 떠날 수 있을 거 아니야.”

양준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욱말은 순간 넋이 나간 듯 잠자코 있었다. 양준은 그의 뒤를 따라 궁전으로 돌아와 휴식을 취했다.

이번 승리로 양준에 대한 대우가 전보다 좋아진 듯했다. 준비해 준 음식에 보양식이 들어 있었고, 안령아도 설리의 허락을 받고 양준을 찾아왔다. 두 사람은 오랫동안 대화를 나누었다.

사흘이 지난 뒤, 양준은 두 번째 결투에 나가게 되었다.

지난번 결투에서의 뜻밖의 활약 때문인지, 그가 다시 가면을 쓰고 출전하자 적지 않은 이들의 주목을 받았다. 이번에 그의 상대는 초범 경지 2단계 무인이었다.

고전을 거쳐 양준은 다시 한번 구사일생으로 승리를 거두었다. 마족들은 연신 감탄하며 믿을 수 없다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경지를 뛰어넘어 싸우는 일은 극히 소수만이 가능했다. 특히 초범 경지 이후부터는 실력이 작은 단계 하나만 차이 나도 실제 전투력은 하늘과 땅 차이였다. 초범 경지 2단계 무인은 손쉽게 초범 경지 1단계 무인을 죽일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런 상식이 양준에게는 전혀 통하지 않았다. 이번에도 그는 여전히 욱말이 건 금제를 풀지 않았기에 전성기의 힘으로 싸울 수 없었다. 지난번에 연기했던 것과 달리, 이번 싸움에서는 정말 목숨을 걸고 싸웠다.

이런 목숨을 건 싸움에서 양준은 적지 않은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다. 그는 이런 혈전이 자신의 성장에 큰 도움을 주는 것 같아 뛸 듯이 기뻐했다. 이제 그는 마음속으로도 이런 결투 방식을 꺼려하지 않고 오히려 은근히 기다리게 되었다. 이는 자신을 갈고 닦을 수 있는 기회였다. 무인의 성장은 문을 닫아 걸고 수련만 해서 되는 것이 아니었다. 결투에서 살아남는다는 전제 하에 어쩌면 목숨을 건 혈전이 더욱 큰 깨달음을 얻을 수도 있었다.따라서 양준은 욱말에게 더욱 강한 적수를 배치해 달라고 끊임없이 졸랐다.

욱말은 황당한 나머지, 미친놈을 보듯이 양준을 바라보았다. 그동안 잡아왔던 다른 종족 무인들 가운데 양준처럼 투기장 결투에 나가겠다고 스스로 요구하는 이는 없었다. 반면, 설리는 현명하게 대처했다. 양준이 요구하자마자 곧바로 그가 원하던 대로 배치해 준 것이다.

상대하는 적수의 실력이 점점 더 강해질수록 양준도 더욱 힘들게 이겼지만, 매번 사람들이 놀랄 만한 기적을 만들어 내곤 했다.

석 달간 양준은 도합 열네 차례의 결투에 나갔다. 상대는 모두 초범 경지 2단계로 인간, 요족, 마족 다 있었다. 다들 서로 다른 원인으로 투기장 결투에 나섰지만 모두 양준에게 패했다. 양준은 많은 성과를 거두었다. 목숨을 건 혈전에서 스스로 각성했을 뿐만 아니라 상대의 신혼을 흡수하면서 그들의 천도, 무도에 대한 깨달음도 얻게 되었고, 자신도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다.

또한 석 달 동안, 양준은 무의식중에 명성을 드날리게 되었다. 이제 사성에서는 설리 휘하에 초범 경지 1단계밖에 안 되지만 초범 경지 2단계 무인을 열몇 명이나 죽인, 가면을 쓴 신비한 인간 무인이 있다는 사실을 모두 알고 있었다.

투기장에서는 양준의 승률에 대한 배당률을 끊임없이 고쳤지만, 여전히 그에게 판돈을 거는 사람들의 열정을 저지할 수 없었다.

설리는 물주로서 당연히 손실을 볼 리가 없었다. 하지만 양준의 무시무시한 성장 속도는 그녀의 경계심을 불러일으켰다. 그녀는 양준이 혈전 가운데서 어떻게 성장했는지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었다.

*

어느 날, 설리의 행궁에 사절이 찾아와 설리와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눈 뒤,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떠나갔다.

한 시진 뒤, 양준이 설리에게 불려 갔다.

별실 안에는 맡으면 기분이 상쾌해지는 은은한 향기로 가득 차 있었다. 그 가운데, 설리는 침대에 요염한 자태로 엎드려 있었고, 안령아는 한쪽에서 반쯤 무릎을 꿇고 그녀에게 안마해 주고 있었다.

욱말은 양준을 데리고 별실에 들어선 뒤, 한쪽에 고개를 숙이고 서서 감히 설리를 바라보지 못했다. 그러나 양준은 침대 가에 서서 설리의 아름다운 몸매를 훑어보고 눈을 반짝였다.

설리는 심성이 지독했지만 몸매가 빼어났고, 게다가 성숙미에 분위기까지 갖추고 있었다. 그녀는 풋풋한 안령아와는 달리 농익은 복숭아 같았다. 이런 여인은 어떤 남자에게 있어서도 치명적인 유혹이었다.

하지만 설리만큼 강한 인물은 남자에게 마음이 흔들리지 않을 터였다. 그녀의 마음을 흔들 수 있는 건, 오직 모든 것을 뛰어넘을 수 있는 힘뿐이었다.

한참을 기다리자 설리가 입을 열었다.

“방금 전에 구경이 사람을 보내왔다.”

“네? 저와 연관 있나요?”

양준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래. 구경은 너를 반드시 죽이려는 듯하더군.”

“그래서 뭐라고 대답했나요? 저를 팔아 넘기지는 않았겠죠?”

양준은 차갑게 그녀를 바라보며 조소 어린 말투로 물었다.

“그럴 생각이 있었지만 거절했어.”

“왜 그랬는데요?”

“구경이니까. 난 그자의 뜻에 따를 생각이 없거든. 하지만 그가 보낸 사절이 한 가지 제안을 했단다. 그건 승낙했지.”

양준은 묻지 않고 그녀가 사실을 말해 주기를 기다렸다.

“내일 투기장에서 넌 구경이 파견한 사람과 싸워야 한다. 이기면 넌 몸값을 챙길 수 있고, 패하면 죽음뿐이야.”

설리가 덤덤하게 말했다.

양준은 눈썹을 치켜세우며 웃었다.

“구경이 보내온 사람의 실력이 높겠군요?”

설리는 그를 힐끔 보더니 대답했다.

“초범 경지 3단계야.”

그 말에 한쪽에서 고개를 숙이고 있던 욱말도 얼굴빛이 살짝 변했다.

“지금 둘이 손잡고 저를 죽이려는 겁니까?”

양준은 전혀 당황하거나 두려워하지 않고 싱긋 웃었다.

“구경은 물론 널 죽이려 하지. 난 말이야, 네 한계치가 어디까지인지 무척이나 궁금해. 네놈이 시종일관 실력을 감추고 있다는 걸 내가 모를 줄 알아? 아직도 많은 수단을 사용하지도 않은 거 같은데.”

설리가 차가운 표정으로 말했다.

양준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냥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그래서 네가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내일이 기대돼. 절대 날 실망시키지 마.”

“그럼 지켜봐 주십시오.”

설리는 가볍게 냉소하고는 욱말에게 분부했다.

“금제를 풀어줘. 녀석이 구경의 부하의 손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지 보고 싶구나.”

욱말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진원 한 갈래를 쏘아 양준의 실력을 억제하던 금제를 풀어주었다.

“한 가지는 확실히 하고 싶군요. 만약 내일 제가 이기면 제 몸값만 갚는 겁니까? 그럼 안령아는요?”

설리는 그를 바라보더니 활짝 웃었다.

“물론 너의 몸값뿐이다. 하지만… 내일 이기기만 하면 너희 둘을 놓아 줄게.”

“당신이 약속한 겁니다. 마장의 말이면 믿을 만하겠죠? 번복하는 일은 없었으면 합니다.”

설리는 눈을 꼭 감더니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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