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련전봉-775화 (774/853)

제 775장. 앞에는 늑대, 뒤에는 호랑이

풍표든, 욱말이든 신분과 경지를 믿고 다른 마족들과 함께하려 하지 않았다. 이는 양준에게 있어 최상의 기회였다.

가벼운 기척 소리와 함께 바람과 우레의 힘이 용솟음치며 양준의 등 뒤에서 풍뢰우익이 현란하게 활짝 펼쳐졌다. 날갯짓을 하자, 원래부터 빠르던 속도가 순간 정신이 아찔할 정도로 빨라졌다. 안령아는 실눈을 뜨고서 진원을 돌려 역풍을 막아야만 했다. 그렇게 두 사람은 한순간에 풍표와 욱말의 신식의 범위를 벗어나게 되었다.

안령아는 참지 못하고 탄성을 터트렸다. 양준이 풍뢰우익을 펼치는 것을 처음 보는 것은 아니었다. 전에 남성고에게서 도망칠 때에도 그는 풍뢰우익을 펼쳤었다. 하지만 몇 번을 보든지, 그녀는 여전히 아름다운 날개에 넋을 잃고 말았다. 덩달아 날개의 소유자인 양준도 지금 순간만큼은 늠름하고 멋있어 보였다.

안령아는 입술을 오므리고 양준의 옆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빛은 순간 몽롱해졌고, 저도 모르게 양준에게로 다가들며 그의 팔을 끌어안았다.

“이봐, 미남 구경도 상황을 봐 가면서 해야 하는 거 아냐?”

양준은 곧 그녀의 이상한 상태를 감지하고 흘겨보았다. 팔에 전해지는 놀란 만한 탄력과 부드러움에 그는 하마터면 기운이 흐트러질 뻔했다.

안령아는 순간 얼굴이 상기되어 억지를 부렸다.

“무슨 허튼 소리야. 난 그냥 바깥 세상이 참 다채롭다고 생각했던 거야. 성지에서 지낼 때 생각했던 것과는 전혀 달라.”

양준을 만난 다음부터 안령아는 줄곧 긴장감 넘치는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녀는 이런 긴장감이 두려우면서도 좋았다. 마치 양준이 옆에 있으면 어떤 위험도 다 이겨 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일반인들은 이처럼 다채로운 생활을 할 수 없어.”

양준을 입을 삐죽거리며 끊임없이 날갯짓을 했다. 그의 몸은 무지갯빛과 같았고, 속도도 점점 더 빨라졌다.

줄곧 뒤따르던 마족들은 하나같이 안색이 급변했다. 원래는 손쉽게 양준이 시야에 들어왔었는데, 찰나에 그의 종적을 잃어버린 것이다. 대열 중에 있던 입성 경지 고수들도 깜짝 놀라, 방심하지 않고 속도를 올려 추격했다.

이때, 그들의 위로 그림자 두 개가 날아갔다. 무언가 잘못된 것을 알아차리고 속도를 내서 양준을 뒤쫓는 풍표와 욱말이었다. 두 사람의 낯빛은 말할 수 없이 무거웠다. 특히 욱말은 더 했다. 지금에 이르러서야 그는 적효와의 혈전에서도 양준이 수단을 숨겼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놀랄 만한 속도 하나만으로도 양준은 적효를 손안에 쥐고 주무를 수 있었다. 하지만 양준은 지금에서야 이 수단을 펼쳤다. 사전에 준비했던 게 분명했다. 정말이지양준을 도무지 방비할 재주가 없었다. 때문에 지금도 순간적으로 그를 놓쳐 버리고 만 것이다.

“젠장!”

욱말은 난감한 낯빛으로 욕을 퍼붓는 한편 온 힘을 다해 뒤쫓았다.

또 한 시진이 지났다. 양준을 뒤쫓던 마족들은 천천히 속도를 늦췄다. 그들은 더는 양준과 입성 경지 고수들이 어디로 갔는지 알 수가 없었다. 목표가 보이지 않자 그들은 하나둘 기가 꺾인 채, 탄식하며 사성으로 돌아갔다.

*

사성에서 이천 리 떨어진 곳, 양준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입성 경지 고수들의 수단은 그의 짐작을 넘어섰던 것이다. 이미 풍뢰우익을 펼쳐 짧은 시간 동안 그들의 신식의 범위에서 벗어났었다. 하지만 그들은 무슨 수단을 펼쳤는지 여전히 정확하게 그가 있는 위치를 알아내고서 끝까지 달라붙었다.

마강은 영토가 넓었다. 때문에 양준은 자신이 가고 있는 방향이 맞는지 알 수 없었다. 그저 인적이 없는, 황량한 곳으로 도망치다가 순조롭게 마강을 벗어날 수 있기를 바랄 뿐이었다. 강한 신식의 힘은 이럴 때 큰 도움이 되었다. 양준의 육신의 경지는 초범 경지 2단계밖에 안 되었지만 신식의 힘은 입성 경지 무인 못지않았다. 풍표와 욱말과 비교하면 심지어 더 강했다. 덕분에 양준은 신식의 힘을 이용해 사람들이 밀집된 지역을 피할 수있었다. 괜히 다른 마족들을 만나 불필요한 문젯거리를 만들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오랜 시간 동안 도망치다 보니 양준도 힘이 들었다. 체력적, 정신적으로 소모가 너무 컸던 것이다. 안령아도 기운을 차리지 못했다.

두 사람은 도망치다가 숨기를 반복하며 움직였지만, 어떻게 해도 풍표와 욱말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다른 입성 경지 고수들은 양준을 며칠 뒤쫓다가 포기했다. 하지만 이 둘은 마치 미친개처럼 양준의 꼬리를 물고서 절대 놓지 않으려 했다. 원래 서로 사이가 안 좋던 두 적수는 이번에 양준의 뒤를 쫓으면서 점차 같이 어울렸다.

그렇게 보름이 지나고, 한 달이 지났다.

양준은 안령아를 데리고 마강 내에서 십몇만 리나 질주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공기 속의 마기도 점차 옅어졌다. 순간 양준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가 달려온 방향이 정확한 듯했다. 계속 이 방향으로 도망치다 보면 마강을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았다. 마강에서 벗어나면 풍표와 욱말도 더는 쫓아오지 못할 것이다. 희망이 보이자, 양준은 다시 기운이 넘쳤다.

어느 날, 질주하던 양준은 갑자기 낯빛이 바뀌었다. 그는 우뚝 멈춰 서서 정신을 가다듬고 앞쪽 밀림을 바라보았다. 앞쪽에는 적지 않은 고수들의 기운이 모여 있었는데 아마도 그가 그물에 걸려들기를 기다리는 듯했다.

양준이 멈춰 서는 순간, 밀림 속에서 음산한 눈빛이 그에게로 향했다.

“녀석, 경계심이 대단한데.”

감탄하는 마족 고수의 얼굴에는 놀라운 기색이 서렸다. 그가 데려온 사람들은 기운을 거의 완벽하게 숨겨 주위 환경과 하나로 어우러져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대에게 발각되었던 것이다.

“숨어서 뭐 하는 거야? 나오지 그래!”

양준이 한참을 살펴보다가 가볍게 숨을 들이쉬고는 소리쳤다.

마족 고수는 씩 웃더니 더는 숨지 않고 하늘로 솟구쳐 양준에게 다가갔다.

양준은 자신에게 다가오는 마족 고수를 바라보며 의아함을 감출 수 없었다. 상대는 만난 적 없는 이였다. 또한 그들의 태세를 봐서는 그와 안령아를 기다리고 있던 게 분명했다. 상대의 경지는 입성 경지로 풍표와 욱말보다는 못하지만 별로 차이가 나지는 않았다. 마족 고수의 등 뒤로 적지 않은 이들이 나타나서는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그를 훑어보았다.

그때, 등 뒤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양준의 얼굴빛이 어두워졌다. 풍표와 욱말도 쫓아왔던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잠시 뒤, 풍표와 욱말이 나타나 그의 뒤쪽을 막았다.

“욱말, 이놈이 사성에서 도망쳐 나온 인간 녀석이야?”

앞쪽을 막아선 마족 고수가 여유 있게 양준을 바라보며 물었다. 욱말은 차가운 얼굴로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괘씸하다는 듯이 양준에게 고함을 질렀다.

“녀석, 빠르구나. 내가 만성(蠻城) 성주에게 전음을 보내지 않았으면 막지 못했겠지.”

욱말은 설리의 명령을 받고 손쉽게 양준을 사로잡아 돌아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뜻밖에도 한 달 동안 뒤쫓게 되었고, 생각보다 많은 힘을 소모한 탓에 하마터면 힘들어 죽는 줄 알았다. 때문에 그는 양준을 사로잡으면 반드시 혼쭐을 내, 마음속 답답함과 원한을 털어내겠다고 벼르고 있었다.

욱말의 말을 듣고, 양준은 금세 상황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욱말은 그를 추격하면서 만성 성주에게 전음을 보내, 사전에 이곳에 매복해 그를 기다리게 했던 것이다. 양준은 쓴웃음을 지었다. 어쨌든 이곳은 남의 세력 범위였다. 열심히 도망쳤지만 결국 오늘 이곳에서 막히게 되었다. 이제는 도저히 피할 곳도, 도망칠 곳도 없었다.

욱말과 만성 성주가 이야기하는 동안, 풍표는 한쪽에 서서 냉담한 표정으로 눈알을 끊임없이 굴렸다. 주위 상황을 살피는 듯했다. 그는 욱말과 목적이 달랐다. 그는 양준을 죽여 구경이 준 임무를 완수해야 했다. 하지만 지금 욱말이 조력자들을 부르는 바람에 임무를 완수하기가 쉽지 않을 듯했다.

양준을 죽이려는 풍표의 심사는 욱말뿐만 아니라 만성 성주도 속일 수 없었다. 만성 성주는 의아한 눈빛으로 풍표를 바라보며 웃는 낯으로 말했다.

“풍표 아닌가? 청료성에서 구경 대인을 시중들지 않고 이런 황야에는 무슨 일로 왔나?”

욱말이 가볍게 말했다.

“풍표, 오늘은 난감하게 하지 않을 테니까, 그냥 꺼져.”

풍표는 차갑게 콧방귀를 뀌었다. 그는 독기 어린 눈빛으로 양준과 욱말을 번갈아 보더니 일정한 거리를 두고 물러선 뒤 덤덤하게 말했다.

“녀석을 잡을 거면 잡아. 난 끼어들지 않을 테니까. 하지만 전에 일어났던 일들은 하나도 빠짐없이 구경 대인께 보고드릴 거야. 너희들이 결과를 감당할 수 있길 바라.”

방해하지 않겠다는 풍표의 말에 욱말은 더는 그와 쓸데없는 실랑이를 하지 않고 양준을 곁눈질하며 냉소했다.

“스스로 항복할 거야, 아니면 나한테 잡힐 거야. 미리 말해 두는데, 내가 공격하면 부상을 입을 수 있어.”

“그렇게 자신 있어?”

양준은 담담하게 웃었다.

만성 성주는 양준의 말에 놀라서 눈이 튀어나올 지경이었다.

“욱말, 이 인간 녀석은 정체가 뭐야? 건방이 하늘을 찌르는데.”

‘입성 경지 고수들 앞에서 저리 큰소리를 치다니? 머리가 돈 건가?’

“건방을 떨 실력이 있어. 사성 투기장에서 일 대 일로 적효를 죽였거든.”

욱말이 간단하게 설명해 주었다.

“뭐라고? 뭔가 잘못된 거 아니야? 저 자가 적효를 죽였다고? 이제 초범 경지 2단계밖에 안 되는 거 같은데.”

만성 성주는 낯빛이 급변하며 놀라서 말했다.

“내가 직접 본 거야. 틀릴 리가 없지. 게다가… 저 녀석이 적효를 죽일 때는 초범 경지 1단계였어. 적효를 죽이고 나서 경지를 돌파해 지금 경지에 이른 거야.”

“거짓말이 아니라고?”

만성 성주는 도저히 믿을 수가 없다는 눈치였다.

“아니면 나와 풍표가 왜 한 달 동안이나 뒤쫓았겠어? 망할, 그만 물어. 어디 낯을 들고 다닐 수가 있어야지.”

욱말이 이를 악물고 말했다.

“하하하하! 아니지?! 지금 한 달 동안 뒤쫓았는데도 못 따라잡았던 거야?”

만성 성주는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조소 어린 표정을 지었다. 곧이어 그는 낯빛이 차가워지더니 나지막하게 말했다.

“그러니까, 정말 좀 재주가 있단 말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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