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련전봉-777화 (776/853)

제 777장. 대장로 서휘

마족의 입성 경지 고수 세 명은 내막을 모르고 남성고와 맞서 싸우다가 순식간에 고전에 빠지고 말았다. 상대가 세 명이었지만, 남성고는 경지가 그들보다 작은 경지 하나가 높았기에 일 대 삼으로 싸워도 전혀 열세에 처하지 않았다.

이 광경을 본 양준은 기뻐서 어쩔 줄 몰랐다. 그는 말 한마디 없이 안령아를 잡아끌고 멀리 도망쳤다.

“너 이 자식……!”

욱말은 그 모습을 보았지만 싸움에서 빠져나와 저지할 수가 없어 이를 갈았다. 곧이어 이번 임무는 완수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떠오르자 그는 모든 분노를 남성고에게 쏟아내며 손속에 전혀 자비를 두지 않았다. 그가 꺼낸 성급 비보도 거대한 위력을 발휘했다.

일 각이 지난 뒤, 양준과 안령아는 이미 백 리 밖으로 도망쳐 있었다. 이렇게 멀리 떨어져 있음에도 입성 경지 고수들 간 싸움의 무시무시한 파동은 여전히 감지할 수 있었다.

입성 경지와 초범 경지 사이에는 본질적인 구분이 있는 듯했다. 큰 경지 상의 차이가 문제가 아니라, 그가 만난 입성 경지 고수들마다 몸속에서 흐르는 진원이 초범 경지와는 다른 것 같았다. 입성 경지에 이르지 못하면, 어떻게 해도 입성 경지의 현묘함을 알 수 없는 듯했다. 이는 나중에 사람을 찾아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어~?!”

안령아가 갑자기 놀란 듯이 소리쳤다. 무엇인가를 감지한 듯했다.

그와 동시에 양준의 낯빛도 굳어졌다. 신식으로 감지해 보니 앞쪽에 실력이 강한 최정상급 고수 몇 명이 빠르게 이쪽으로 접근해 오고 있었다. 그들의 몸에서 발산하는 기운은 욱말 일행보다 못하지 않았고, 심지어 그중 한 명은 남성고와도 견줄 수 있었다. 이처럼 황량한 벌판에 갑자기 이렇게 많은 입성 경지 고수가 나타나다니, 양준은 신경 쓰지 않을 수 없었다.

양준이 안령아를 이끌고 마주 오는 고수들을 피하려는 순간, 안령아가 갑자기 활짝 웃었다. 그녀의 미간에도 큰 걱정을 내려놓은 듯한 홀가분함이 드리웠다.

“우리 성지 사람들이야.”

“어? 뭐라고?”

양준은 깜짝 놀랐다.

“이젠 살았다. 서휘(徐匯) 대장로님께서 사람들을 거느리고 오셨어.”

그녀의 말에 양준은 미간을 찌푸렸다. 공교롭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충분히 이해는 되었다. 만약 구천성지의 고수라면 남성고의 뒤만 따르면 안령아의 종적을 찾을 수 있었다. 물론 안령아가 살아 있다는 전제 하에서 말이다.

양준은 본능적으로 멀리 달아나고 싶었다. 그는 구천성지의 사람들과 만나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었다. 하지만 그는 곧바로 이 생각을 억눌렀다. 지금 떠나면 괜히 도둑이 제 발 저려서 달아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오히려 고수들의 의심을 살 수 있었다. 게다가 안령아와 헤어지면 남성고가 자신을 놔줄 거라는 확신도 들지 않았다. 만약 남성고가 욱말 일행을 물리치고 혼자인 그를 추격한다면 그는 도저히 막아낼 수가 없었다. 지금 상황에서는 앞쪽의 고수들과 같이 있는 게 가장 안전했다.

“안령아!”

양준이 나지막하게 불렀다.

“왜 그래?”

“그동안 내가 널 어찌 대했어?”

“어찌 대했냐고? 잘 대해 줬어.”

안령아는 순간 당황하다가 자세히 생각해 보고는 얼굴을 붉히며 가볍게 대답했다.

바다 밑에서나, 소현계에서나, 마강에서나 양준은 언제나 그녀를 보살펴 주었다. 물론 도망칠 때도 언제나 그녀를 데리고 다녔다. 거의 일 년간 동고동락하다 보니, 그녀는 양준을 운명 공동체로 여기고 있었다.

“그럼 도와줘. 너희 성지 사람들을 만나면 절대 성주에 관해서 얘기하지 마. 내가 너한테서 구천신기 세 가지를 배웠다는 얘기는 더욱 안 되고.”

“그렇게 성주 자리가 싫어?”

안령아는 곧 양준의 의도를 알아차렸다.

“내가 말했잖아. 성주가 안되어도 난 그 정도 경지에 오를 수 있어. 그런데 너희들 성주가 되면 3백 년만 지나면 죽을 거 아니야. 죽는 건 괜찮은데, 내가 죽으면 슬퍼할 사람들이 많거든.”

“다 여인들이지?”

안령아는 질투가 가득 담긴 말투로 나지막하게 물었다.

“흐음… 여인은 한두 명쯤.”

양준이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알았어. 네가 그렇게 성주가 되기 싫다면 말하지 않을게. 안전한 곳에 이르면 스스로 떠나. 아마 대장로님도 너를 난감하게 하지는 않을 거야.”

안령아가 입술을 살며시 깨물며 말했다.

“음, 그래.”

양준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속도를 줄이지 않고 곧바로 앞쪽으로 나아갔다.

두 사람이 대화하는 동안, 맞은편에서 신식 몇 갈래가 이쪽을 감지하고 있었다. 곧이어 그쪽 고수가 뻗은 신식에서 기쁨과 흥분이 느껴졌다. 안령아의 기운을 알아차린 것이 분명했다.

잠시 뒤, 무지갯빛 몇 갈래가 시야에 들어왔다. 멀리서 누군가 소리쳤다.

“성녀 전하십니까?”

“대장로님!”

안령아가 얼른 대답했다.

“과연 성녀 전하셨군요.”

무지갯빛 갈래들의 속도가 더 빨라지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양준과 안령아의 코앞에 다가왔다. 입성 경지 네 명이었다.

앞장선 이가 안령아가 말하던 서휘 대장로로, 그는 입성 경지 2단계였다. 회색 장삼 차림에 눈동자가 반짝였으며 위엄이 서려 있었다. 그의 뒤로는 다른 입성 경지 고수 세 명이 따르고 있었다. 이를 통해 구천성지의 저력을 알 수 있었다. 만약 전임 성주와 남성고가 죽지 않았다면 성지에는 최정상 고수가 여섯 명이나 되는 것이었다.

천소종 같은 큰 세력에도 입성 경지 고수는 두 명뿐이었다. 초능소와 양준이 본 적 없는 사숙조 한 분밖에 없었다. 구천성지와 비교하면 천소종은 많이 약소했다. 이만한 저력이 있는 만큼 구천성지는 대륙 전체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의 큰 세력이었다. 그러나 전임 성주와 남성고가 같이 유명을 달리하는 바람에, 지금은 구천성지의 실력이 많이 약해졌을 터였다.

“성주께서 하늘에서 굽어보시어 성녀 전하께서 무사하신 겁니다.”

서휘는 얼른 공수하며 예를 올렸다. 그의 미간에는 한시름을 놓은 듯한 기색이 서려 있었다. 다른 세 명의 고수들도 같은 표정이었다. 모두 안령아의 안위를 걱정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윽고 그들은 안령아의 상태를 두루두루 물었다.

안령아는 연신 손을 내저으며 무탈했음을 알렸다.

말하는 동안, 서휘는 갑자기 날카로운 눈빛으로 양준을 바라보더니 감탄의 뜻을 비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 분은 미래의 성주이시죠?”

양준은 얼굴빛이 살짝 바뀌며 저도 몰래 미간을 찌푸렸다.

‘만나자마자 이런 소리를 하다니, 이거 뭐라 대답하지?!’

안령아가 깜짝 놀라며 연신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대장로님께서 오해한 거예요…….”

“허허, 성녀 전하께서는 숨기지 마십시오. 7세가 연맹 섬에서 있었던 일은 전령에게서 들어 다 알고 있습니다. 젊은데 능력이 있군요. 한꺼번에 구천신기 세 가지를 각성하다니. 역대 성주들은 이루지 못했던 쾌거입니다.”

양준은 속으로 놀랐지만, 냉담한 표정을 하고서 전혀 내색하지 않았다. 물론 말하려 하지도 않았다. 반면 안령아는 순간 당황하더니 기뻐하며 물었다.

“전 아저씨께서 살아계신 건가요?”

7세가 연맹 섬에서 양준과 안령아에게 달아날 시간을 벌어 주기 위해, 전령과 구천성지의 다른 몇몇 초범 경지 고수들은 남성고를 막아섰었다. 그리고 양준은 도망치면서 전령이 남성고에게 죽임을 당하는 것을 직접 봤었다. 전령이 살아남았을 리가 없었다.

서휘는 어두운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전하의 행차 대열에서 전하를 제외하고 모두 다 죽었습니다. 전령이 죽기 전에 의념을 남겼을 뿐입니다. 그래서 저희는 전하께서 미래의 성주를 찾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죠. 그리고 남성고의 종적을 쫓아 오늘 전하를 찾게 된 겁니다.”

이는 양준의 짐작과 거의 비슷했다. 하지만 그는 전령을 떠올리자 왠지 괘씸한 생각이 들었다.

‘그냥 조용히 죽지, 죽기 전에 이런 골칫덩이를 만들어 주다니!’

안령아는 몰래 양준을 힐끗 보았다. 그의 표정이 안 좋은 것을 보자 그녀는 깜짝 놀라 어찌 할 줄을 몰랐다.

“여기는 오래 머무르면 안 됩니다. 어서 떠나시죠.”

서휘가 백 리 밖을 바라보며 말했다. 다른 이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양준이 미간을 찌푸리고 말했다.

“저 남성고는… 그냥 내버려 두는 겁니까?”

서휘가 난감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웃을지 모르겠지만, 저는 남성고의 상대가 안 될 수도 있습니다. 어찌할 방법이 없는 겁니다.”

“그럼 앞으로 계속해 저와 안령아를 죽이려고 쫓아다니면요?”

양준은 불쾌한 기색을 띠고서 물었다.

“성지로 돌아가면 괜찮습니다. 성지에 들어가면 남성고가 쫓아오지 못할 겁니다.”

다른 한 입성 경지 고수가 대답했다.

“얼른 성지로 돌아가야 합니다.”

서휘는 말하면서 양준을 조심스럽게 바라보았다. 그를 매우 존중하는 모습이었다.

양준은 기분이 언짢았고 구천성지와 어떤 관계도 맺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상대의 태도가 이러하니, 지금 상황에서는 그들과 함께 갈 수밖에 없었다. 양준은 그들을 한동안 지켜보기로 했다. 그리고 만약 길에서 조금이라도 이상한 기미를 보이면, 곧바로 떠나서 나중에 확실하게 고수가 되기 전까지는 구천성지 사람들 앞에 절대 나타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문제는 서휘 일행이 이미 자신이 구천신기를 배웠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므로 쉽사리 놔줄 것 같지 않다는 점이었다. 그는 괜히 머리가 지끈거렸다.

양준의 허락을 받고서야 서휘는 긴장을 풀더니, 진원으로 양준과 안령아를 감싸고서 급히 자리를 떴다.

얼마 안 되어 일행은 마강을 벗어났다. 양준과 안령아의 몸에 고정되었던 남성고의 의념도 거리가 멀어지자 단절되었다. 그제야 양준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날아가는 내내 서휘는 앞만 보는 것 같았지만, 사실은 몰래 양준을 훑어보고 있었다. 그는 마음속으로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안령아는 양준에게 관심이 많은 듯했다. 그런데 그것은 성녀가 성주에 대한 관심이 아니라, 여인으로서 남자에 대한 관심이었다. 그녀는 시시때때로 양준의 눈치를 살폈다. 그러다가 양준이 무거운 표정을 짓기만 하면 그녀는 마음을 졸이며 심장 박동마저 빨라졌다.

‘미래의 성주께서 대단하군!’

안령아가 어떤 성정인지, 서휘는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었다. 성지에서 양성한 성녀들은 하나같이 콧대가 하늘을 찌를 지경이었다. 그런데 미래의 성주는 짧은 시간 동안 성녀를 얌전하게 길들였다. 이 점에서 성주의 매력과 수단을 미루어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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