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78장. 강요하지 마십시오
이 정도면 양준이 안령아의 인정을 받았다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더욱 중요한 건, 그의 경지도 초범 경지 2단계에 달한다는 것이었다. 서휘는 그들을 찾아오는 동안 미래의 성주가 신유 경지 수준이라고 해도 그럭저럭 괜찮다고 생각했었다. 성지의 자원과 비급으로 몇십 년이면 결국 무도의 정상에 오를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현재 상황은 그의 짐작을 뛰어넘고 있었다. 이렇게 젊은 무인이 초범 경지 2단계까지 오른 경우는 대륙 전체에서도 보기 드물었다.
다시 전령이 죽기 전에 남긴 전음을 떠올린 서휘는 저도 모르게 미소를 머금었다. 양준이 점점 더 마음에 들었다.
“성녀 전하, 7세가 연맹 섬에서는 어떻게 도망친 겁니까? 그 섬들은 모두 남성고가 훼손시켜 살아남은 이가 거의 없는 거로 알고 있습니다.”
가는 도중, 서휘가 호기심을 가지고 물었다.
안령아는 양준을 흘끔 보았다. 양준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 나서야 그녀는 바다 밑 유적지에 대해 말해 주었다.
“허공 통로요? 정말 하늘이 우리 성지를 보우하신 모양입니다. 그러니까 허공 통로에서 나와 마강에 떨어진 겁니까?”
서휘는 눈썹을 치켜세우며 말했다.
“네. 마강에 떨어졌다가 그만 설리에게 잡히고 말았죠. 며칠 전에 겨우 도망쳐 나온 겁니다.”
“마장 설리요?”
서휘의 얼굴빛이 확 바뀌었다. 다른 세 명도 놀란 모습이었다. 그들은 양준과 안령아가 그런 인물의 손에서도 도망칠 수 있었다는 데에 감탄해 마지않았다. 솔직히 말해서 그들이 설리에게 잡혔다면, 거의 죽는 길밖에 없었다.
이렇게 되자, 구천성지의 고수들은 미래의 성주인 양준을 점점 더 공경하게 되었다.
산과 강을 수없이 넘으면서도 서휘 일행은 속도를 전혀 늦추지 않았다. 하루에 몇천 내지 만 리 정도를 날다 보니, 남성고의 추격에서는 진작 벗어나 있었다.
가는 길에 서휘는 양준의 출신을 물었고, 천소종 출신이라는 말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천소종도 큰 세력이었지만, 구천성지와 멀리 떨어져 있어 서로 간에 왕래가 없었다.
“천소종도 요 근래 실력이 많이 올랐습니다. 한꺼번에 입성 경지 고수 네 명이 많아진 걸로 알고 있거든요. 그렇게 되면 그들의 전체적인 실력은 우리 성지 이상일 겁니다.”
얼굴이 허연 노인이 탄식하며 말했다.
“네 명이 늘었다고요?”
양준은 그 말에 사숙 넷을 떠올리고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부운성에서 얻은 천년마화의 약물이 큰 도움이 된 모양이었다.
“그 일에 대해서는 저도 들었습니다. 네 사람은 2년 전에 연단사 한 명을 데리고 중립 지역인 부운성에 가서 천년마화 쟁탈전에 참가했다고 하더군요……. 내가 잘못 기억한 게 아니라면 그 연단사도 젊은이로, 우리 미래 성주님하고 비슷한 나이인 듯했습니다.”
서휘는 그렇게 말하면서 의미심장하게 양준을 힐끗 보았다.
양준은 담담한 표정으로 못 들은 척했다. 이럴 때는 어떤 말을 해도 ‘그게 바로 나요’라고 말하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서휘는 늙은 여우로 이미 무언가 짐작한 듯했다. 하지만 서휘가 자신에게 악의가 없었기에, 그리 걱정되지는 않았다.
양준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서휘가 웃으며 말했다.
“남의 문파를 부러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 성지도 새로운 성주가 오셨으니, 얼마 안 되면 곧 원기를 회복할 겁니다. 한층 더 발전할 수도 있고요.”
“맞습니다. 맞네요.”
다른 사람들도 맞장구를 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들 양준에게 큰 기대를 품고 있는 게 분명했다.
양준은 미간을 찌푸리고 입을 열었다.
“저는 성주 자리에 관심 없습니다. 이제 적절한 시기가 되면 우리 헤어지죠.”
“네? 성주가 될 마음이 없다는 말씀입니까?”
“이미 안령아와 몇 번을 말했습니다. 구천신기 세 가지를 배운 것도 얼떨결에 상황을 모르고 배운 겁니다. 아니면 이렇게 합시다. 앞으로 절대로 그 구천신기들을 쓰지 않겠습니다.”
“그건…….”
몇 사람은 황당해 입을 다물지 못했다.
안령아가 입술을 깨물더니 말했다.
“이 일은 전적으로 제 책임이에요. 양준은 구천신기를 배울 마음이 없었어요. 장로님들께서는 저를 나무람하세요.”
서휘는 미간을 찌푸리고 양준과 안령아를 번갈아 보다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갑자기 통쾌하게 웃으며 말했다.
“이 일은 미뤄 두지요. 천소종 출신이라 우리도 난감하게 할 생각이 없습니다. 이렇게 하는 건 어떻습니까? 괜찮다면 우리와 함께 성지로 가서 한동안 지내 보십시오. 직접 성지가 어떤 곳인지 보고, 그때 가서도 마음이 변하지 않는다면 우리도 강요하지 않겠습니다.”
양준의 눈빛이 반짝였다. 입성 경지 고수 네 명 앞에서 그는 차마 거절할 수가 없었다. 거절하면 그를 상처 입히지는 않겠지만 강제로 구천성지에 끌고 갈 것이 분명했다. 서휘도 말로 성의를 보이며 이미 많이 양보한 것이었다. 그의 신분과 실력으로, 무력을 사용한다면 양준은 반항할 수가 없었다.
“좋습니다.”
양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장로들과 더 이상 논쟁하고 싶지 않았다.
양준이 승낙하자, 안령아는 저도 모르게 기쁜 표정을 지었다.
일행은 다시 길을 재촉했다.
그전의 화기애애한 분위기와 달리, 양준이 성주가 될 마음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자 네 장로들은 끊임없이 눈빛 교류를 하며 전음으로 대화했다.
양준은 모든 것을 감지할 수 있었지만 모른 척했다.
잠시 뒤, 네 장로는 번갈아가며 구천성지의 강함과 저력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또한 양준이 성주가 된 다음에 얻을 수 있는 여러 가지 이득과 아름다운 미래에 대해서도 말해 주었다. 그들은 이런 것들로 양준을 유혹하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아무리 좋은 말을 해도 양준은 귓등으로 흘리면서 시종일관 태도를 바꾸지 않았다. 이에 장로들도 어찌할 방법이 없었다.
그래도 양준은 그들의 말 가운데서 구천성지의 저력을 알 수 있었다. 구천성지의 성주들은 모두 수명이 길지 않았지만, 모든 성주들이 입성 경지 3단계라는 무도의 정상에 오를 수 있었다. 어느 세력이든지 입성 경지 3단계의 고수가 있으면 그 세력은 최정상으로 평가되었다. 게다가 그들이 성주를 양성하는 방식은 남달랐다. 성지 안에는 오직 성주만 진입할 수 있는 곳들이 있는데 이런 곳에서 수련하면 실력이 급성장할 수 있다고 했다. 그중의 비밀과 현묘함에 대해서는 장로들도 잘 알지 못하는 듯했다.
또한 성녀가 수련을 도와주기도 하는데, 성녀들은 많게는 7~8명, 적게는 3~4명이 있어 성주의 실력이 빨리 향상될 수밖에 없었다. 성녀들은 모두 엄격하게 선택한 이들로, 미모나 모든 조건들이 최상이었다. 그리고 성녀들은 성주에게 절대적으로 복종하고, 성주는 성녀들에게서 원하는 만큼 취할 수 있었다.
구천성지의 성주가 되면 성지의 모든 것을 누릴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한 지역의 패자가 될 수 있고, 나아가 천하를 호령할 수도 있었다. 유일한 폐단은 수명이 짧은 것이었다. 성주뿐만 아니라 성녀의 수명도 마찬가지로 짧았다.
전임 성주는 원래 여섯 명의 성녀들이 있었으나 지난 오십 년 동안 성녀 다섯 명이 차례로 죽었고 남성고만 남았었다. 그러다가 성주가 죽으면서 남성고도 함께 유명을 달리하게 된 것이다. 전임 성주와 성녀들이 모두 죽었기 때문에, 지금 성지는 모든 희망을 양준과 안령아에게 걸고 있었다. 그러니 장로들이 어떻게 쉽게 양준을 보내줄 수 있겠는가?
“대장로님, 다른 성녀들은요?”
안령아는 서휘의 말에서 심상치 않은 소식을 읽고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러자 서휘의 낯빛이 어두워지더니 잠깐 주저하다가 대답했다.
“다 죽었습니다. 네 명 가운데서 지금 전하만 남고, 세 사람은 남성고에게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럴 수가……!”
안령아는 입을 틀어막았다. 눈동자가 파르르 떨렸다. 그녀는 다른 세 명의 성녀가 성주 적임자를 데려오기를 기대했었다. 그러면 장로들도 성주가 되라고 양준을 강요하지 않을 수 있었다. 그런 와중에 비보를 듣게 되자 순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면 성녀들의 행차 대열에는 입성 경지 고수가 없었다. 때문에 남성고가 찾아내는 순간, 결말은 오직 죽음뿐이었다. 자신은 운이 좋아 양준을 만났고, 마침 사전에 허공 통로가 있는 곳을 알고 있어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이었다. 아니면 그녀의 운명도 다른 세 명의 성녀와 다를 바가 없었을 것이다.
“전하, 너무 상심하지 마십시오. 때문에 지금 성지는 모두 두 분만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서휘는 얼른 안령아를 위로했다. 그러고는 다시 형형한 눈빛으로 양준을 바라보며 말했다.
“무례할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우선 젊은이라고 부르겠네. 젊은이가 성주 자리를 거절하면 백 년이 안 되어 성지는 이 세상에서 사라질 수 있다네.”
서휘가 간절한 표정을 하고서 무거운 말투로 말했다. 다른 세 장로들도 얼른 사정했다.
“무례한 요구인 줄 알지만 허락해 주게나. 성지의 전승이 우리 대에서 끊어지게 할 수는 없잖는가.”
양준이 가볍게 숨을 들이쉬고는 위로했다.
“꽃이 피고 지는 것처럼 어느 세력도 영원히 존재할 수는 없잖습니까. 마음을 넓게 가지십시오. 대마신처럼 강한 이도 결국에는 죽지 않았습니까? 또한… 세상에 성주 적임자가 어찌 저 하나뿐이겠습니까. 안령아가 아직 찾지 못했을 뿐입니다.”
“젊은이는 상세한 연유를 몰라 그렇게 이야기하는 걸세. 성지의 성녀는 평생 성주 적임자를 한 명밖에 선택할 수 없다네. 일단 선택하면 다른 이들에게는 감응할 수가 없지. 지금 성녀 전하께서 자네를 선택했으므로 더는 다른 이를 선택할 수가 없네.”
“그래서 지금 세상에 성주의 적임자가 저밖에 없다는 말인가요?”
양준은 미간을 찌푸렸다. 일이 생각보다 더 골치 아프게 된 듯했다.
장로들은 엄숙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젊은이가 받아들이지 않으면 우리 구천성지는 멸하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네.”
“성주 자리를 계승해 주게나.”
“강요하지 마십시오. 계속 이렇게 나오면 화낼 겁니다.”
그 말에 서휘는 곧 낯빛이 바뀌더니 얼른 말했다.
“강요하는 게 아니네. 아닐세.”
양준이 짜증을 내자 안령아가 얼른 말했다.
“지금은 이 일에 대해서 얘기하지 않기로 했잖아요. 왜 또 꺼내는 거예요?”
서휘가 난감한 미소를 지으며 자조적으로 말했다.
“나이가 들어서 그랬네. 젊은이, 너무 탓하지 말게나. 일단 먼저 성지로 돌아갑세. 우리가 잘 접대할 테니까, 성지 구경도 하고 말이네.”
“이제 3~5일 정도 더 가면 곧 성지라네.”
다른 장로가 말을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