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80장. 그의 비위를 맞춰 주면 어떤가?
양준은 다시 신식을 펼쳐 자신의 몸속의 피와 살, 진원의 변화를 감지해 보았다. 초범 경지 2단계에 진급한 뒤, 진원의 강도와 순수도가 많이 향상되었다. 그리고 수차례의 혈전을 통해 그의 육신도 더 단단해졌다. 물론 신식의 힘도 강해졌다. 육색 온신련이 끊임없이 영양분을 제공하고 있었기에 이번 돌파를 통해 그의 신식 경지는 크게 향상되었다. 지금 그의 신식의 힘은 입성 경지 1단계 무인과 정면으로 싸워도 결코 뒤처지지 않았다. 또한신식의 불꽃의 존재까지 더하면 일반 입성 경지 1단계 무인이 그와 신식 싸움을 하는 경우, 큰코다칠 수도 있었다. 그리고 그에게는 신전지정 같은 신비한 비보도 있었기에 상대의 신혼 영체를 강제로 백색 공간에 끌어들여 신식 싸움을 해도 되었다.
양준은 한층 강해진 실력에 자신감이 고취되었다. 지난 일 년 동안 연이은 재난과 좌절은 모두 그가 강해지는 동력과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어떤 강자든 목숨을 건 싸움에서 평소 얻지 못한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다. 수많은 위험과 죽음의 문턱을 넘나드는 순간에야말로 평소 느끼지 못했던 것을 감지할 수 있는 것이다.
성공한 무인은 모두 생사를 넘나들며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가 있어야 역경 속에서 좌절하지 않고 더욱더 강해질 수 있었다. 온실에서 자란 기린아들은 성장 과정에서 어떤 역경도 부딪치지 않기 때문에, 조그마한 좌절이라도 겪게 된다면 그대로 주저앉아 결국 사람들의 시야에서 사라지기 마련이었다.
양준은 수련을 시작하고 나서부터 시종일관 가시덤불을 헤치면서 여기까지 이르렀다. 죽음의 문턱에서 수없이 헤맸기에 동년배를 훨씬 뛰어넘는 경지를 가질 수 있었던 것이다. 지금까지 이룬 그의 모든 성취는 운이나 우연이 아니라, 모두 그가 하나하나 쌓아 올린 것이었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그의 심경에는 미묘한 변화가 일면서 더욱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다. 그는 시간이 좀 더 지나면 반드시 무도의 정상에 서서 사람들을 굽어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이윽고 양준은 흥분한 마음을 가라앉히고 계속해 몸을 살펴보았다. 놀랍게도 몸속에 흐르는 금빛 피가 전에 비해 꽤 늘어나 있었다. 몸속의 피가 모두 금빛으로 변하게 되면 이는 마신의 피를 가진 것과 마찬가지로, 대마신의 대단한 재주를 가지게 될 것이라고 일찍이 려용과 한비가 그에게 말해 주었었다.
대마신은 전설과 같은 인물로 그때 당시는 인간, 요족, 마족 모두가 인정하는 천하제일이었고, 그가 살아 있던 시대에는 감히 그의 위엄에 도전하는 이가 없었다고 했다. 금빛을 띠는 마신의 피는 쓰임새가 많았다. 지금도 양준의 몸에는 마신의 피가 흐르는 덕분에 육신이 이토록 단단하고 회복력도 놀랄 만큼 강한 것이었다.
양준은 자신의 몸속의 피가 모두 금빛으로 변하는 순간, 육체가 얼마만큼 강해질지 너무나 기대되었다. 고마 일족의 육신이 단단한 것도 그들이 마신의 혈맥이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대마신의 후계자로서 순수한 혈통을 지닌 자신은 어떠하겠는가.
양준은 다시 신혼을 검은 책 공간에 침투시켜 당나무와 소통했다. 그의 육신은 스스로 공법을 운행하면서 수련했다.
양준이 성장하는 만큼 당나무도 끊임없이 진화하고 성장했다. 당나무는 양준의 허락을 받고 매일 만약영액 한 방울을 흡수하고 있었다. 만약영액의 도움을 받아 당나무의 의식은 점점 더 또렷해졌고, 지능도 점점 더 높아졌다. 지금은 양준과 막힘없이 소통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간혹 주동적으로 묻기도 했다.
양준은 아이를 대하는 것처럼 당나무의 물음에 성심성의껏 답해 주었다.
*
시간은 유수처럼 흘러 양준이 구천성지에 온 지도 어언 두 달이 지나갔다. 그동안 양준은 점차 구천성지에서의 생활에 적응되었다. 이곳에서 쉽사리 떠날 수 없는 것을 제외하고 대우는 매우 좋았다.
대장로 서휘는 그에게 가장 높은 대우를 해주었다. 수련에 필요한 대량의 영단묘약을 제공했을 뿐만 아니라 젊고 아름다운 시녀 몇 명을 보내 시중을 들게 했다. 심지어 그에게 구천성지의 무공 비급도 많이 보여주었다.
양준은 시녀를 거부한 것 외에 다른 건 모두 누릴 수 있으면 누렸다. 그는 매일 수련에 매진했고, 초범 경지 2단계 실력도 빠르게 다져졌다.
서휘를 포함한 장로, 호법들은 사흘이 멀다 하게 양준을 찾아와 한담을 나눴지만 성주 직위를 이어받는 것에 대한 이야기는 꺼내지 않았다. 간혹 한가하면 그들은 양준을 데리고 성지의 산들을 구경했다. 그에게 성지의 아름다움과 저력을 보여주려는 것이었다. 그들은 이런 방식으로 양준의 마음을 움직여 그가 주동적으로 성지를 받아들이게 하려고 했다. 안타깝게도 두 달이 되어도 이런 방식은 아무 소용이 없었다. 때문에 장로, 호법들은 조바심이 났고, 점차 인내심도 바닥나고 있었다.
*
우뚝 솟은 한 산봉우리의 웅장한 건축물 안.
서휘를 필두로 한 성지의 장로와 호법들은 한데 모여 무언가를 의논하고 있었다.
구천성지는 원래부터 실력이 강했다. 전임 성주는 무도의 최정상인 입성 경지 3단계였고, 남성고와 서휘는 입성 경지 2단계, 나머지 장로, 호법 가운데서 옥영(玉瑩), 라생(羅生), 사곤(史坤), 맹천비(孟天飛), 정월동(程月彤)은 모두 입성 경지 1단계였다. 이중 옥영과 정월동은 여인이었다.
한 세력에 이 정도의 입성 경지 고수들이 있는 곳은 세상에서 보기 드물었다.
“대장로, 미래의 성주는 어떤 태도인가?”
먼저 입을 연 이는 옥영으로, 그녀는 중년의 아름다운 부인이었다. 그녀가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물었다.
그녀의 물음에 다들 서휘에게 시선을 돌렸다.
서휘는 눈썹을 찌푸리고 탄식했다.
“그냥 그대로일세. 한동안 그 일에 대해 일부러 꺼내지 않았지만 성주가 되려는 마음이 없다는 걸 느낄 수 있네.”
“녀석, 참 재미있군. 세상에 구천성지의 주인이 되기 싫어하는 사람이 어디 있는가. 다들 벼락출세를 원하지 않나. 왜 그 녀석은 그리 덤덤하지? 마치 우리가 강요하는 것처럼 말일세.”
라생이 놀란 표정으로 연신 감탄했다.
“말 좀 조심하지 그래. 녀석이 아니라 미래의 성주란 말일세.”
흰 옷을 입은, 차가운 분위기의 정월동이 라생을 흘겨보았다. 라생은 멋쩍게 웃고는 조심스레 서휘의 눈치를 살폈다. 서휘가 화내는 기색이 없자, 그는 그제야 한시름을 놓았다.
“그런데 정말 이상하군. 우리 성지가 마음에 안 드는 건가?”
정월동이 눈썹을 살짝 찌푸렸다.
“그럴 리가? 전 성주께서 유명을 달리했지만 우리 성지는 내로라하는 큰 세력일세. 천소종보다 명성이나 실력에서 훨씬 앞섰단 말이네. 어떻게 마음에 안 들 수가 있는가?”
“정말 마음에 안 들 수도 있네. 요 며칠 이곳저곳 구경시키면서 성지의 저력을 보여주었잖는가. 뭐 좋다고 말하기는 했지만 생각처럼 감탄하거나 하지는 않았다네. 그의 눈에는 모든 게 뜬구름 같아 보이는 모양일세.”
“녀석… 흠, 미래의 성주가 그런 모습을 보인다고?”
라생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대장로, 아니면 그의 비위를 맞춰 주면 어떤가? 성지에는 주인이 하루라도 없으면 안 되네. 그런데 전 성주께서 돌아가신지, 벌써 일 년이 지났단 말일세. 성주 적임자를 찾아오지 못한 것도 아니고, 지금 성지에 있지 않는가. 제자들은 왜 취임식을 하지 않는지 매일 숙덕거리고 있다네. 계속 이러다가는 제자들도 수련할 마음이 없어질까 두렵군.”
맹천비가 제안했다.
“맞네. 그가 뭘 좋아하는지 알면 잡아둘 수 있겠군. 적어도 성지에 조금이라도 귀속감이 생겨야 하는데. 그래야 성지의 번영을 유지할 수 있을 게 아닌가.”
옥영도 고개를 끄덕였다.
“한동안 살펴본 결과 그가 유일하게 추구하는 건 힘뿐이었네. 그걸 제외하고 다른 건 모두 생활의 조미료로 취급하는 것 같더군. 심지어 내가 배치한 시녀 몇 명은 거들떠보지도 않는다네.”
서휘의 눈동자에 예리한 빛이 스쳐 지나갔다.
“세상에 미녀를 싫어하는 남자도 있다고?”
라생은 눈알이 튀어나올 정도로 놀랐다. 그로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다 자네처럼 여색을 밝히겠어?”
옥영이 차갑게 콧방귀를 뀌며 언짢은 표정을 지었다. 라생은 금세 난감해했다.
“혹시 성녀 전하를 좋아해서 다른 여인들을 보지 않는 건 아닐까?”
정월동은 문득 다른 가능성을 떠올렸다. 보통 좋아하는 여인 앞에서 다른 여인에게 관심을 보이는 남자는 없었다. 만약 성녀 안령아 때문이라면 양준의 그런 행동들도 충분히 납득이 되었다.
다들 그 시기를 지나온 사람들이라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서휘는 쓴웃음을 지었다.
“아닐세. 정반대로 우리 성녀 전하께서는 그를 애모하나, 그는 성녀 전하를 친구처럼 대한다네.”
“불쌍한 령아……!”
옥영과 정월동은 서로 마주 보고는 안령아의 처지에 가슴 아파했다. 두 사람은 옆에서 안령아가 자라는 것을 지켜본 이들로 당연히 그녀에 대한 감정이 깊었다.
“미래의 성주는 평범하지 않다네……. 난 여태껏 이렇게 젊은 초범 경지 2단계를 본 적이 없네. 자네들은 본 적 있나?”
서휘가 갑자기 물었다.
장로들 모두 고개를 저었다.
“천소종에서 대단한 인물이 나왔군. 그런데 이상한 것이, 왜 전에는 그에 대한 소식을 전혀 듣지 못했던 거지? 이 정도로 출중한 젊은이면 진작 대륙에서 크게 이름을 날렸어야 하는 게 아닌가? 하지만 그전까지 전혀 알려진 게 없지 않는가. 참 이상한 일일세. 게다가 그는 성녀를 데리고 마장 설리의 손에서 도망쳐 나왔지. 도대체 어떻게 도망친 건지 난 상상조차 할 수 없다네.”
“그리고 남성고한테서도 도망쳤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