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련전봉-781화 (780/853)

제 781장. 성릉

사람들은 순간 조용해졌다. 이야기하지 않았을 때는 몰랐지만, 지금 다시 생각해 보면 다들 놀라움을 금할 수가 없었다. 초범 경지 2단계가 몇 번이고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았다니, 이는 운수대통이 아니면, 놀라운 수단을 가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들은 두 번째 가능성을 더욱 믿었다. 이에 따라 그들은 양준의 실력을 짐작할 수가 없었다. 지금까지 구천성지의 성주들은 자리에 오르기 전에 별의별 직업이 다 있었고 경지도, 자질도 모두 제각각이었다. 설령 성녀가 찾아온 성주 적임자가 신유 경지라고 해도, 그들은 최정상 고수로 그를 양성할 자신이 있었다. 하물며 양준은 자질이고, 실력이고 모두 그들의 예상보다 수십 배는 뛰어났다.

“어쨌든 반드시 그가 성주의 자리를 잇게 해야 하네. 성주의 영혼 반지(靈戒)가 없으면 많은 곳을 열 수가 없단 말일세. 이제 더는 지체할 수 없네.”

서휘가 단호한 표정으로 나지막하게 말했다.

“그런데 본인이 싫어하지 않는가?”

옥영이 눈썹을 찌푸리고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싫어해도 떠밀어야 돼. 입성 경지가 몇 명인데, 젊은이 한 명을 어찌할 방법이 없겠어?”

사곤은 조금도 지체하려 하지 않았다.

“지금 무력을 사용하려는 건가?”

옥영이 실눈을 뜨며 사곤을 차갑게 지켜보았다.

“나도 같은 마음일세. 그의 태도는 너무 단호하네. 계속 이렇게 기다리기만 해서는 소용없을 거 같군. 그러니까 도박한다 치고 그를 그냥 성릉(聖陵)에 떠밀어 넣읍세.”

서휘는 가볍게 숨을 들이쉬고 말했다.

그의 말에 다들 눈썹을 꿈틀했다. 성릉에는 무시무시한 위험이 도사리고 있어 입성 경지 고수들조차 두려워하는 곳이었다.

“만약… 나오지 못하면 어떡하려고? 이번 세대 성녀는 령아밖에 남지 않았네. 그리고 이미 성주 적임자를 선택했기에 다시 찾을 수도 없는데, 만약 나오지 못하면…….”

정월동이 걱정했다.

“그가 나오지 못하면 성지를 봉인하는 수밖에……. 그리고 다음 세대 성녀가 성장하기를 기다려야 할 걸세.”

다음 세대 성녀는 아직 선발하지도 않았다. 그리고 성녀가 성장하려면 적어도 20년이 필요했다. 지금 성지는 주인이 없었고, 전임 성주와 함께 성릉 속에 들어간 성주의 영혼 반지를 꺼낼 수가 없어 많은 곳을 열 수가 없었다. 20년이 그리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20년이라는 세월이면 구천성지 같은 큰 세력도 무너질 수 있었다.

그들은 너무 오래 기다릴 수 없었기에 지난 두 달 동안 경거망동하지 않고 양준이 스스로 태도를 바꾸기를 원했다. 하지만 양준의 태도가 워낙 단호하다 보니, 서휘는 생각을 바꿀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구천신기를 아직 각성하지 못했는데 어떻게 들어갈 수 있겠는가. 성릉은 구천신기가 탄생한 곳이기 때문에 반드시 구천신기에 능통해야 들어갈 수 있다고 들었네.”

“이미 세 가지를 각성했네. 충분할 걸세. 이는 다 성지를 위한 것이네. 설령 그가 미래의 성주라고 해도 희생해야 할 때는 희생해야지. 만약 순조롭게 나올 수 있다면 반드시 오늘 우리의 결정을 고맙게 생각할 걸세.”

서휘가 나지막하게 일갈했다.

“맞네.”

사곤과 맹천비는 그의 말에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여태까지 성릉에서 나온 성주가 성지에 귀속감을 가지지 않는 경우는 없었다. 성녀들이 밖에서 찾아온 성주들이 평생 전심전력으로 성지를 위할 수 있는 것은 어쩌면 성릉의 비밀과 연관이 있을 수도 있었다. 누구도 성릉에 무슨 비밀이 있는지 알지 못했지만, 그들은 이에 대해 믿어 의심치 않았다.

옥영과 정월동은 서로 눈빛을 교환했다. 그녀들은 왠지 걱정이 되었지만 지금 상황에서 뭐라고 말할 수도 없었다.

의논을 마치고 사람들은 양준을 성릉으로 들여보내기 위해 준비했다.

*

이튿날, 궁전에서 가부좌를 틀고 앉아 수련하던 양준은 눈을 번쩍 떴다. 서휘가 사람들을 거느리고 오는 듯했다. 오늘은 여느 때와 다르게 자주 찾아오는 몇 사람 외에도, 낯선 이가 몇 명 더 있었다.

그들은 잘 숨긴다고 했지만 양준은 그들의 호흡과 기운에서 신중함을 읽을 수 있었다. 그들이 뭔 꼼수를 부리려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에 그는 경계심을 높였다.

잠시 뒤,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양준이 대답하자마자 방문이 열리며 서휘를 포함한 장로, 호법들이 줄지어 들어왔다.

양준은 저도 모르게 눈썹을 치켜세웠다. 은연중 서휘가 성지에 관한 이야기를 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면 성지의 고수들이 모두 이곳에 모여들 수가 없었다.

한참 동안 인사치레를 하고, 서휘는 양준에게 처음 보는 이들을 일일이 소개했다. 양준은 그들에게 고개를 끄덕여 인사했다.

“대장로, 오늘은 무슨 일입니까?”

양준은 예리한 눈빛을 감추고서 에두르지 않고 직접 물었다.

“우리와 함께 갈 곳이 있네.”

서휘가 친근한 표정으로 미소를 지었다.

“이곳 산들은 모두 구경했는데 아직 구경할 곳이 남았습니까?”

“있네. 성지에는 자네가 평소 보지 못했던 비밀이 많다네. 이번에 갈 곳은 그중 하나일세.”

양준은 눈을 가느다랗게 뜨며 덤덤하게 말했다.

“비밀이라면 외부인에게 공개하는 건 안 좋을 것 같은데요?”

“자네는 외부인이 아니잖는가. 게다가 그곳은 자네를 제외하고 다른 이들은 들어갈 수가 없다네.”

서휘가 진지하게 말했다.

“네? 저를 제외하고 누구도 들어갈 수 없다니. 그러면 성주만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닙니까? 허허, 지금 제가 거절하면 안 되겠죠?”

양준은 눈썹을 치켜세웠다.

서휘는 살짝 난감한 기색을 떠올리더니 공수하며 말했다.

“양해해 주게나. 그럼 우리와 함께 가봅세.”

양준은 가볍게 냉소하며 눈앞의 입성 경지 고수들을 슬쩍 훑어보았다. 그리고 만약 지금 반항하면 이곳에서 도망칠 확률이 얼마나 될까 궁리했다. 곧이어 그는 도망칠 생각을 포기했다. 입성 경지 고수들이 너무 많았다. 그가 모든 실력을 전력으로 펼친다고 해도 이곳에서 도망칠 수 있을 리 없었다.

양준은 다시 느긋한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그럼… 갑시다. 어디 한 번 가보죠.”

그의 말에 사람들은 기쁜 표정을 지었다. 서휘는 아예 웃음꽃을 피우며 얼른 말했다.

“자, 갑세.”

서휘는 오늘 기필코 미래의 성주와 충돌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또한 만약 상대가 정말 반항한다면 밉보이더라도 억지로 끌고 갈 생각이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양준은 굽혀야 할 때 굽힐 줄도 알았다. 이러면 서로 간에 난감함도 많이 덜 수 있었다. 어쨌든 미래의 성주인데, 만약 오늘 충돌이라도 생기면 나중에 그에게 앙갚음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궁전을 나선 사람들은 양준을 에워싸고서 한 산봉우리로 날아갔다. 사람들은 아무렇게나 따라가는 것 같았지만, 사실은 양준의 모든 퇴로를 차단하고 있었다. 그가 심상치 않은 모습을 보이는 순간 제압하려는 것이었다.

“대장로, 어떤 곳으로 가는지 말해 줄 수 있습니까?”

“성릉이네.”

“성릉이라? 어째 사람을 묻는 곳 같죠?”

양준이 놀라면서 캐물었다.

“맞네. 성지의 역대 성주들은 죽음이 임박하면 성릉에 들어가서 죽기를 기다리지. 그곳은 우리 역대 성주들의 무덤이네.”

“위험한 곳이죠?”

양준이 웃는 얼굴로 아무렇지도 않게 물었다.

“우리한테는 위험한 곳일세. 성주를 제외한 사람들은 그곳에 들어가면 다 죽거든. 하지만 자네에게는 마지막 관문이기도 하네.”

“무슨 뜻이죠?”

서휘가 대답을 망설이고 있는 사이, 양준이 얼른 덧붙여 말했다.

“말할 수 없는 거면 말씀하지 마십시오. 전 남의 비밀에 관심이 없거든요. 특히 큰 비밀은 더욱 싫습니다. 이런 일은 아는 게 많을수록 더 위험하니까요.”

서휘가 어색하게 웃었다.

“말할 수 없는 게 아니고… 이젠 자네한테 다 털어놓겠네. 역대 성주들 모두 성녀들이 밖에서 데려온 이들인 건 사실일세. 하지만 매번 성녀들이 데려온 사람이 한 사람뿐인 건 아니었네. 성녀들이 여럿이기에 각자 자신의 안목과 공법의 감응도에 따라 성주 적임자를 찾아 성지로 데려왔지. 그리고 다시 성녀들을 통해 구천신기를 각성하고 성릉에 들어갔네. 성릉에서 살아서 나오는 사람만이 진정한 성주가 되는 것일세.”

“그럼 전 정말 행운이군요. 이번에는 저와 경쟁할 상대가 없잖습니까.”

양준이 야릇한 말투로 비아냥거리며 말했다.

서휘는 억지웃음을 지었다.

“뭐 그렇다고 말할 수도 있지.”

“안에는 무엇이 있습니까?”

양준이 차가운 얼굴로 물었다.

“나도 모르네… 그곳이 역대 성주들의 무덤이라는 것 외에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네. 나뿐만 아니라 다른 호법, 장로들도 마찬가지로 모르네. 구천신기를 각성한 사람만이 성릉에 들어갈 자격이 있기 때문일세.”

“그러니까 구천신기가 그곳에 들어가는 열쇠라는 말씀입니까?”

양준이 뭔가를 생각하는 듯한 표정으로 물었다.

“아마도. 하지만 성릉이 위험하다는 것만은 확실하네. 자네, 들어가서도 사고가 나지 않게 꼭 조심하게나.”

이때, 정월동이 갑자기 한마디 했다.

“위험한 만큼 좋은 점도 많다네.”

“좋은 점요? 어떤 좋은 점인지 말씀해 주십시오.”

양준이 그녀를 힐끗 보더니 금세 흥미를 가졌다.

정월동은 미소를 지었다.

“구체적인 건 나도 모르네. 다만 전임 성주께서도 그곳에서 수련을 하셨다네. 매번 폐관 수련을 끝낼 때마다 실력이 향상되었지. 또한 전임 성주께서 처음으로 들어갔을 때도 큰 수확을 얻었다고 전해 들었네.”

“음, 사실이네. 전임 성주께서 사용하던 비보도 성릉에서 얻은 것이었지. 세상에 몇 개 없는 성급 상품이었네.”

“성주들이 사용하던 비보는 다 좋은 것이었네. 그리고 그분들이 성릉에 묻히면서 같이 묻혔지. 자네의 기연을 봐야 하네. 어쩌면 그 속에서 알맞은 비보를 얻을 수도 있지 않는가.”

서휘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성급 상품의 비보요? 그런 사실은 미리 말씀해 주셨어야죠. 그러면 여러분께서 이리 애쓰지 않아도 저 스스로 진작 성릉에 들어갔을 겁니다.”

양준은 갑자기 흥이 나서 말했다.

그 말에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전 모험하기 좋아하거든요. 위험한 곳일수록 더 좋아하죠. 특히 성릉 같은 곳 말입니다.”

양준은 씩 웃었다. 그의 얼굴은 알 수 없는 흥분으로 가득 차 있었다.

서휘는 얼굴을 실룩였다. 그로서는 양준이라는 사람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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