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련전봉-782화 (781/853)

제 782장. 구천신기를 깨우치다

어느 한 산봉우리의 기슭에서 일행은 걸음을 멈췄다.

양준은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눈앞에는 딱 맞게 자른 것처럼 반듯하고 커다란 청석(靑石)이 세워져 있었다. 이끼가 가득 낀 청석에는 힘찬 필체로 ‘성릉’이라는 두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이곳은 성릉의 입구였다. 양준은 실눈을 뜨고 살펴보았다. 아무런 단서도 찾지 못했지만 청석에서 은은한 원기 파동이 느껴졌다.

서휘가 앞으로 나아가 현묘한 인결 몇 갈래를 쏘았다. 그러자 청석은 갑자기 물속의 달처럼 일렁이며 어렴풋해지더니 잠시 뒤, 그 가운데에 동굴 입구가 나타났다.

양준은 살짝 놀라며 나지막하게 소리쳤다.

“허공 통로!”

서휘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허공 통로라고 할 수 있지. 이곳으로 들어가면 성릉일세. 역대 성주들의 무덤이기도 하고. 이는 독립된 소현계로, 역대 성주들은 성주 자리를 계승하기 전에 이곳에서 시험을 통과해야 했다네. 들어간 다음, 조심하게. 그리고 어떻게 해서든 전임 성주께서 끼고 있는 영혼 반지를 가지고 나오게나. 그건 성지의 열쇠와 마찬가지라네.”

“꼭 살아 나오게나.”

옥영이 진지하게 당부했다.

“성지의 미래는 자네에게 달렸네.”

정월동이 얇은 입술을 가볍게 깨물었다. 다른 이들도 기대와 걱정이 섞인 표정으로 멍하니 양준을 바라보았다.

양준은 그들을 휙 둘러보더니 야릇하게 웃었다.

“아마 제가 나오지 않기를 기도해야 할 겁니다.”

“그게 무슨 말인가?”

서휘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물었다.

양준은 싸늘한 눈빛으로 그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제가 나오게 되면 결코 당신들을 가만두지 않을 테니까요.”

사람들은 순간 당황했다. 곧이어 그들은 양준이 자신을 억지로 성릉에 들여보내는 일에 대해 무척이나 반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 그들이 뭐라고 말할 겨를도 없이 양준은 허공 통로 속으로 뛰어들었다.

“미래의 성주가… 아량이 넓지 못하군. 정말로 나중에 우리에게 따지고 드는 건 아니겠지?”

사곤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서휘의 표정도 종잡을 수 바뀌더니 탄식했다.

“젊은이라… 아직 성숙하지 못하군.”

“아무튼 대장로가 제안하고 앞장선 일이잖는가. 난 그냥 쪽수나 채운 걸세. 미래의 성주가 죄를 물어도 대장로가 책임져야지.”

맹천비가 고소해하는 표정으로 말했다.

사람들은 모두 그에게 조소 어린 눈빛을 보냈다.

*

성릉 안,

양준이 들어가자마자 등 뒤의 허공 통로가 닫혔다.

사방을 둘러보니 주변에는 초록빛이 번쩍이는 것이 마치 저승 같았고, 음산한 바람과 함께 귓가에 아우성치는 듯한 소리가 은은하게 들려와 등골이 서늘해졌다.

또한 빛이 밝지 않아 겨우 물건을 볼 수 있는 정도였는데, 천지간의 기운이 무척 짙은 곳이었다. 기운은 짙다 못해 뭉게뭉게 흰 구름같이 응결되어 있었고, 여기저기서 떠돌아다니는 것이 솜처럼 두꺼워 보였다.

신비한 소현계였다. 양준은 이곳처럼 천지의 영기가 짙은 곳은 처음 보았다. 가장 좋은 지맥에 맞먹는 수준이었다. 구천성지의 전임 성주가 왜 이곳에서 폐관 수련했는지 알 거 같았다. 이 정도로 짙은 천지간의 영기라면, 단약이나 정석 같은 건 전혀 필요가 없었다. 그냥 허리띠를 풀고 마음껏 천지간의 기운만 흡수하면 되었다.

이곳은 수련의 성지가 확실했다. 다만 분위기가 음산했다.

경계 어린 눈초리로 주변을 살피던 양준은 순간 얼굴빛이 바뀌었다.

사방팔방에서 순식간에 살벌하기 그지없는 원기 덩어리가 생겨나더니 빠르게 그에게로 달려들었다. 원기 덩어리는 매우 기괴했다. 그것들은 줄곧 이곳에 있다가 양준이 오자마자 그를 덮쳤다. 미처 정신을 차릴 새도 없이 원기 덩어리들은 그를 겹겹이 둘러쌌다.

양준은 진원을 모으며 경계했다. 그러나 곧 어딘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원기 덩어리들은 그를 둘러싸고 있을 뿐, 그에게 어떤 상처도 입히지 않았다.

양준은 미간을 찌푸리고 자세히 감지해 보았다. 잠시 뒤, 그는 놀라움과 함께 경이로움을 느꼈다.

원기 덩어리는 모두 아홉 개였다. 그 속에는 심오하고 현묘한 의념이 내재돼 있었는데 인위적인 것 같기도 하고, 자연스럽게 생겨난 것 같기도 했다. 그중 세 개에 내재된 의념은 익숙했다.

양준은 조심스럽게 신식을 펼쳐 그중 한 덩어리를 살펴보았다. 곧 그중에서 구천신기 중 하나인 현천검의 흔적을 찾을 수 있었다.

양준의 낯빛이 바뀌었다. 조금은 짚이는 데가 있어 다시 익숙한 느낌을 주는 원기 덩어리들을 살펴보았다. 과연 그 속에는 유천쇄와 균천인에 대한 의념이 들어 있었다.

이 세 가지는 양준이 안령아에게서 배웠던 초식이었다.

‘그렇다면 앞쪽 원기 덩어리 아홉 개는 구천신기 아홉 가지란 말인가?’

양준은 미간을 살짝 찌푸린 채 생각했다. 십중팔구는 맞는 짐작일 듯했다.

서휘는 성릉에 들어가려면 반드시 구천신기를 각성해야 한다고 했다. 구천신기를 알아야만 안전하게 성릉에 들어올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지금 그를 감싸고 있는 원기 덩어리 아홉 개는 그의 앞길을 막는 난관인 듯했다. 이것들을 돌파하지 못하면 성릉 안쪽에 깊숙이 들어갈 수 없었다.

양준은 한순간에 성릉의 일부 비밀을 알아차렸다. 잠깐 생각해 보고서 그는 아예 가부좌를 틀고 앉아 정신을 가다듬고 현천검의 의념을 담고 있는 원기 덩어리를 바라보았다.

구천신기는 매우 독특했다. 무공으로서 진원을 이용해 펼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신혼기로도 사용할 수 있었다. 다른 어떤 무공도 이렇게 사용하는 경우는 없었다.

눈앞의 난관을 헤쳐 나가려면 구천신기를 펼쳐 원기 덩어리들의 봉쇄를 풀고 살길을 찾아야 했다.

곧이어 양준의 신식의 힘이 폭발했다. 그림자도 형체도 없는 신식은 거대한 검으로 바뀌어 원기 덩어리를 찔렀다. 그러나 원기 덩어리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양준의 강한 신식의 공격도 아무 흔적 없이 원기 덩어리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그는 미간을 찌푸렸다. 다시 현천검을 몇 번이나 더 펼쳤지만 매번 어떤 반응도 없었다.

‘이거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닌 것 같군!’

양준은 다시 한번 서휘 일행이 했던 말과 구천성지의 여러 가지 정보를 되새겨 보았다. 문득 머릿속에 한 가지 가능성이 떠올랐다.

‘내가 현천검에 능숙하지 못하고, 그중의 비밀을 깨닫지 못해서 눈앞의 원기 덩어리의 봉쇄를 풀 수 없는 건 아닐까?’

그가 각성한 구천신기는 안령아에게서 배운 것이었다. 때문에 그가 깨우친 수준도 안령아가 각성한 수준과 동일했다. 안령아는 나이가 많지 않았기에 구천신기를 온전히 각성하지 못한 건 당연한 일이었다.

양준은 남성고가 펼치는 현천검을 직접 보았었다. 그녀의 것과 비교하면 자신이 펼친 현천검은 전혀 다른 차원이었다. 남성고는 현천검의 최고의 경지에 달했던 것이다.

게다가 구천성지의 역대 성주들은 성주 자리에 오르기 전에 반드시 성릉에 들어가야 했다. 그들은 경지가 양준보다 높은 것도, 실력이 양준보다 강한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들 모두 성릉의 시험을 통과했다. 이로 미루어 볼 때, 눈앞의 난관은 실력과 상관없이 구천신기의 각성 정도에 연관되는 듯했다.

양준은 마음을 진정하고서 더는 보잘것없는 자신의 현천검을 펼치지 않았다. 대신 온몸의 긴장을 풀고서 몸과 마음을 현천검의 의념을 담고 있는 원기 덩어리에 집중해 탐지하고 각성했다.

시간이 흐르고 양준은 원기 덩어리에서 현천검의 탄생과 펼치는 과정을 무수히 많이 보게 되었다. 따라서 그 속에 숨겨진 비밀도 점점 더 많이 알게 되었고, 곧이어 그 의념을 자신의 영혼 깊은 곳에 새겨 넣었다.

다시 눈을 떴을 때, 양준은 원기 덩어리에 숨겨진 현천검의 비밀과 규칙을 쉽게 깨달을 수 있었다.

신식의 힘이 다시 한번 폭발하며 현천검이 나타났다. 이번에는 순수한 구천신기로 안령아가 각성한 것보다 훨씬 강했다.

촤르륵-

소리와 함께 원기 덩어리는 신식의 공격을 받아 흩어졌다. 그와 동시에 성릉 깊은 곳까지 닿는, 구불구불한 길이 기괴하게 눈앞에 나타났다.

양준은 미소를 지었다. 이제 성릉에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는지를 알게 되었던 것이다.

구천신기를 각성하지 못한 사람이 이곳에 진입하면 아홉 개 원기 덩어리에 찢겨 가루가 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을 각성한 사람은 달랐다. 그중 어느 하나의 봉쇄만 풀어도 나가는 길을 찾을 수 있었다. 게다가 봉쇄를 많이 풀수록 나가는 길도 더 밝고 안전했다.

서휘의 말은 정확했다. 구천신기는 성릉으로 들어가는 열쇠였다.

양준은 급하게 길을 재촉하지 않고 시선을 다른 한 원기 덩어리에 돌렸다.

아무튼 장로, 호법들의 강요로 성릉에 들어온 이상, 양준은 이곳에서 이득을 챙길 수 있는 것은 다 챙길 생각이었다. 아니면 자신이 너무 손해였다.

구천신기는 초식마다 정묘하고 신통력이 있었다. 그는 남성고가 몇 번 시전하는 것을 보고 부러워 죽을 뻔했었다. 지금 그것들을 배울 좋은 기회가 눈앞에 있는데 양준이 놓칠 리가 없었다. 마음을 다잡은 그는 곧 이미 배웠던 다른 두 가지 구천신기의 비밀을 파헤치기 시작했다.

그렇게 양준은 3~5일 뒤 유천쇄를 깨우쳤고, 다시 3~5일이 더 지나자 균천인도 깨우칠 수 있었다.

그 다음부터 그의 각성 속도는 확 느려졌다. 앞의 세 가지는 안령아에게서 배운 것이었기에 어느 정도 아는 편이었다. 하지만 나머지 여섯 가지는 전혀 접촉해 보지 못했기에 처음부터 하나하나 배워야 했다. 다행히 원기 덩어리 속의 의념과 비밀은 모두 그가 각성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양준은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성릉 안에서 구천신기를 배웠다.

*

하지만 성릉 밖에서 기다리는 장로, 호법들은 하루가 일 년 같았다.

양준이 성릉에 들어간 처음 며칠, 사람들은 기대를 품고서 기다렸다. 그들은 양준이 가뿐하게 성주의 영혼 반지를 가지고 나와 성주의 자리를 계승하길 바랐다.

그러나 열흘이 지나자, 사람들은 점차 초조해지며 걱정하기 시작했다. 딱히 말하지는 않았지만 다들 양준이 안에서 난관에 부딪쳤을 거라고 짐작했다.

한 달 뒤, 분위기가 무거워졌다.

두 달 뒤, 사람들의 낯빛이 암담해졌다. 때때로 탄식 소리가 들려오기도 했다.

그렇게 석 달, 넉 달이 지났다…….

성릉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장로, 호법들도 점점 줄어들었다. 다들 양준이 성릉에서 나오지 못할 거라고 생각한 것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