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련전봉-784화 (783/853)

제 784장. 그런 거였군

양준이 구천신기 한 가지를 깨우칠 때마다 눈앞의 길은 더욱 넓어졌다. 그리고 아홉 가지를 다 깨우치고 나자 소현계 전체가 많이 밝아졌고, 양준도 성릉 내부를 살펴볼 수 있게 되었다.

신식으로 한 바퀴 훑어본 양준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곳의 천지간 기운이 너무나 짙어, 그는 소현계가 매우 광활한 줄 알았었다. 하지만 지금 자세히 살펴보니 겨우 조그만 도시 하나 정도의 크기밖에 되지 않았다. 그가 지금까지 본 소현계 중 면적이 가장 작은 소현계였다. 이 작은 공간에 어떻게 마르지 않는 기운이 흐를 수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마치 어느 한 곳에서 기운이 끊임없이 밀려들어와 이곳에 들어온 사람이 아무리 기운을 흡수해도 영향을 받지 않는 듯했다.

그 외에도 성릉 안에는 각종 위험한 금제들이 걸려 있었다. 그리고 그것들은 모두 은밀한 원기 파동과 위험한 기운을 내뿜었다. 조금이라도 방심하다가 자칫 잘못 건드리면 무시무시한 공격을 받게 될 것만 같았다.

양준이 모든 것을 다 꿰뚫어 볼 수 있는 건 시력이 좋아서가 아니라 구천신기의 봉쇄를 푼 것과 연관이 있었다. 깨우친 구천신기의 가짓수가 많을수록 알아볼 수 있는 금제도 더 많은 듯했다. 그리고 양준은 구천신기 아홉 가지를 모두 깨우치고 머릿속에 깊이 새겼기에 당연히 성릉 안의 모든 금제들을 꿰뚫어 볼 수 있었다.

양준이 서 있는 곳과 멀지 않은 곳에는 해골 몇 구가 널브러져 있었다. 물론 옷은 진작 가루가 되어 사라지고 없었다.

해골들은 아마 이전에 성릉 안에 들어왔다가 시험을 통과하지 못하고 이곳에서 죽은 이들의 것인 듯했다. 여러 연대의 사람들이 성릉 전체 이곳저곳에 널려 있었는데 적어도 몇십 명은 되어 보였다. 그 외에도 커다란 관들이 구석구석에 놓여 있었다. 관들은 모두 모양새가 기괴하고 색깔도 서로 달랐지만 전체적으로 음산하고 공포감을 주었다.

양준은 진원을 모아 경계하며 발 가는 대로 가장 가까운 관 쪽으로 걸어갔다.

관 앞쪽에 이르러 보니 뚜껑은 아직 닫히지 않은 상태였다. 그 안에는 반듯하게 차려입은 중년으로 보이는 사람의 시체가 누워 있었다.

양준은 눈썹을 치켜세우며 그 사람의 왼손에 낀 구릿빛 반지를 바라보았다. 그는 관 옆에서 한참을 지켜본 뒤 관에 아무런 장치도 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확인한 다음에야 한 손을 내밀어 반지를 만지작거렸다.

짐작이 맞는다면 이 반지는 서휘가 말하던 성주의 영혼 반지일 터였다.

성주들마다 죽음이 임박하면 영혼 반지를 가지고 성릉 안에 들어간다고 했다. 때문에 후임 성주의 가장 큰 임무는 바로 성릉에서 영혼 반지를 가지고 나가는 것이기도 했다. 영혼 반지는 구천성지의 운영, 관리와 연관되어 반지가 없는 경우 많은 곳을 드나들 수가 없었다.

중년 남자의 육신의 상태로 미루어 볼 때, 죽은 지 얼마 되지 않는 듯했다. 그는 전임 성주가 확실했다.

입성 경지 3단계 고수로서 기껏 3백 년밖에 살지 못한다니, 세상에서 오직 구천성지에서만 이런 상황이 나타나고 있었다.

양준은 중년 남자를 바라보며 저도 모르게 탄식했다. 만약 자신이 이곳의 주인이 되면 저것이 바로 3백 년 뒤 자신의 모습일 것만 같았다. 그는 전임 성주의 손가락에서 반지를 빼낸 뒤 한참 동안 살펴보고 몰래 고개를 저었다. 무슨 재료로 만들었는지 알 수 없었다. 특수한 기능이 있는 비보인 듯했다. 반지 안에는 알 수 없는 은밀한 기운이 세차게 흐르고 있었는데 몇천 내지 만 년이 다 되었지만 기세가 전혀 약해지지 않은 상태였다. 또한기운이 흐르는 방식은 매우 기괴했다. 은연중에 알 수 없는 규칙이 있는 듯했지만 도저히 규칙을 알아낼 수가 없었다.

한창 반지를 살피고 있는데 반지 속에서 갑자기 흡입력이 전해졌다. 마치 반지 속에서 커다란 손이 튀어나와 공간의 속박을 뚫고 양준의 식해 깊은 곳까지 닿는 것만 같았다. 그의 신혼이 순간 전율했다.

“균천인!”

양준은 낯빛이 확 바뀌었다. 영혼 반지에서 튀어나온 기운에 구천신기의 오묘함이 담겨 있다는 것을 알고 얼른 막았다. 하지만 이미 늦은 뒤였다. 어렴풋한 빛이 양준의 식해 안에서 스쳐 지나갔다.

곧이어, 그와 영혼 반지 사이에 미묘한 연계가 생겼다.

양준은 어두운 낯빛으로 제자리에 서서 손에 들고 있는 영혼 반지를 바라보았다. 그는 당장이라도 반지를 없애 버리고 싶은 마음이었다.

균천인은 다른 이의 신혼 낙인을 끌어내어 장악할 수 있었다. 애당초 그는 안령아가 방심한 틈을 타 이 초식으로 그녀의 신혼 낙인을 빼내 그녀의 생사를 장악했고, 그녀의 마음도 탐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영혼 반지에 누군가 사전에 균천인을 걸어 놓아, 그의 신혼 낙인이 반지에 들어가게 되었다.

더 생각할 필요도 없이 이는 전임 성주가 죽기 전에 손쓴 것이 분명했다. 입성 경지 3단계 고수가 펼친 수단이라 양준은 막을 수도, 해제할 수도 없었다. 이젠 반지를 버리려 해도 버릴 수가 없었다. 그 속에는 그의 신혼 낙인이 있기에 만에 하나 다른 이가 얻게 된다면 그를 통제할 수도 있었다.

양준은 참지 못하고 욕설을 퍼부었다. 원래는 영혼 반지를 가지고 나가서 서휘에게 주고 이를 빌미로 이곳에서 떠나려 했었다. 하지만 지금 영혼 반지에 그의 신혼 낙인이 들어간 이상, 남에게 줄 수 없었다. 그는 순간 기분이 나락으로 떨어졌다.

양준이 미처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관 안에 누워 있던 전임 성주의 육신 속에서 방대하고 사람을 전율케 하는 기운이 튀어나왔다. 이와 동시에 사방팔방에 놓여 있던 관 속에서도 그에 못지않은 기운들이 튀어나와 양준에게 달려들었다.

마치 양준이 그것들을 끌어들이는 근원지인 듯했다.

순간, 식해의 방어가 찢기며 기운들이 모두 양준의 식해로 흘러 들어갔다. 양준은 의식이 희미해지고 머리가 깨지는 것만 같았다. 얼굴마저 하얗게 질려 있었다. 그는 지체하지 않고 얼른 가부좌를 틀고 땅바닥에 앉아 신혼을 식해에 침투시켜 신혼 영체로 나타났다. 살펴보니 식해는 파도가 일렁이고 있었다. 기운들의 침입 때문에 식해가 스스로 반격하고 있는 듯했다.

활활 타오르는 불길 같은 바닷물도 출렁이며 거친 파도를 만들어 불쑥 들어온 기운들을 덮쳤다. 기운들은 신식의 불꽃이 두려운지 모두 피하느라 바빴다. 동시에 형체 없는 정신 파동이 기운들에서 퍼져 나오더니 양준의 신혼 영체와 충돌했다. 그는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눈도 깜빡하지 않고 식해에 흘러든 기운을 바라보았다. 이내 몸과 마음이 점차 평온해졌고, 출렁이던 바닷물도 점차 잠잠해졌다.

기운들은 모두 구천성지 역대 성주들이 죽은 뒤에 남긴 집념으로, 엄격하게 말하면 그들의 신혼이었다. 무슨 연유에서인지 지금 신혼들은 거의 의식이 없고 그냥 생전에 정해 준 뜻에 따라 기계적으로 임무를 완수하는 것만 같았다. 그들은 양준을 해칠 생각이 없었고, 그저 끊임없이 정신 파동을 발산해 그의 신혼 영체에 무엇인가를 주입시키려 했다.

양준은 고개를 갸웃하고 잠깐 생각하다가 스스로 신혼의 방어를 풀고 그들이 주입하려는 것들을 받아들였다.

잠시 뒤, 양준의 표정이 이상해졌다. 그의 생각과 달리 성주들의 신혼은 무슨 대단한 공법이나 비밀 무공을 주입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그를 세뇌시키려는 것이었다. 짧은 시간 동안, 양준은 구천성지에 대한 자신의 생각이 바뀌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무의식중에 이곳에 남아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주가 되면 권력을 거머쥐고 수많은 제자들을 호령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짧은 시간 안에 무도의 정상에 오를 수도 있었다. 이는 혼자 세상을 누비며 갖은 고초를 다 겪는 것보다 훨씬 나았다.

양준은 곧 나태하고 해이해지면서 역대 성주들의 신혼도 친근하게 느껴지고 그들의 말을 더 많이 듣고 싶어졌다. 순간 그는 가슴이 철렁했다. 양준은 얼른 자신의 신혼 영체를 봉인하고 잡생각들을 떨쳐 버린 다음, 그의 주변을 맴도는 신혼들을 싸늘하게 바라보았다.

“이런 거였군!”

양준은 가볍게 냉소하며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그동안 성녀들이 데려온 성주 적임자들은 곧바로 이곳을 인정하고, 설령 수명이 짧아진다는 것을 알면서도 성주가 되려고 했다. 양준은 여태껏 그 원인이 궁금했었다. 이제 보니 다들 성릉 안에서 신혼들에게 세뇌당한 것이었다. 만약 신식의 힘이 남다르지 않았다면 그 역시도 다른 이들처럼 한두 시진 안에 역대 성주들처럼 되었을 것이다.

역대 성주들의 신혼이 발산한 정신 파동은 강한 안정 작용이 있을 뿐만 아니라 이곳에 온 누구라도 구천성지를 인정하고 귀속감을 느끼게 했다. 그리고 나아가 이곳을 자신이 평생 추구해야 할 목표로 생각하게 했다.

그동안 성릉 안에 들어온 성주 적임자들 중 가장 강한 이가 초범 경지 1단계였기에 신식의 경지가 낮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양준은 달랐다. 경지가 낮지 않았고, 신식의 힘은 육신의 경지를 훨씬 뛰어넘었기에 세뇌에 저항할 힘이 있었다. 거기에 더해 그는 원래 성주가 되려는 생각이 없었기에 순식간에 안일함에서 깨어날 수 있었다.

성릉의 비밀을 알게 되자 양준은 금세 두려운 것이 없어졌다. 만약 다른 비밀 장치나 금제라면 혹여 두려워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역대 성주들의 신혼은 신식의 방어를 뚫고 그의 식해에 들어오지 말았어야 했다. 양준의 식해에서는 그 자신이 유일한 주인이었다.

양준은 여러 가지 방식으로 성주들의 신혼과 소통하려 했으나 실패했다. 역대 성주들은 죽은 지 너무 오래되었던 것이다. 그들의 신혼이 무슨 방식으로 여태까지 남아 있는지 모르지만, 의식이 없이 그냥 기계적으로 생전의 뜻을 완수하려는 것뿐이었다.

정신 파동은 여전히 끊임없이 발산되며 그의 신혼 영체를 세뇌시키려 했다. 그는 짜증이 나서 의념을 발동했다. 그러자 식해에 떠 있던 멸세마안이 천천히 눈을 떴다.

위엄이 서려 있는 금빛 눈동자가 덤덤하게 아래쪽을 바라보자, 곧 금빛이 내리쬐었다.

촤르륵-

입성 경지 3단계 고수들의 신혼의 기운이 한순간에 정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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