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86장. 분신지술
양준은 눈을 뜨고 본 것도, 신식으로 감지한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싸움 장면은 하나도 빠짐없이 모두 그의 의식으로 전해졌다. 곧이어 그는 싸움에 정신을 빼앗겨 자신의 고통도 잊고 골똘히 지켜보았다.
결투를 하는 쌍방은 모두 최정상급 고수로 공격을 펼칠 때마다 퍼져 나오는 원기 파동이 천지를 뒤엎을 위력을 지니고 있었다.
한쪽은 사악한 기운을 내뿜는 방자한 모습의 고수였고, 다른 한쪽은 모든 동작에 여유가 느껴지는 멋있는 중년 남자였다.
사악한 기운의 소유자는 왠지 눈에 익었다. 잠깐 생각을 더듬던 양준의 눈이 반짝 빛났다. 대마신이었다. 그는 틀림없는 전설 속 최강 실력자 대마신이었다.
양준은 일찍이 고마 일족이 거주하는 소현계 안에서 대마신의 조각상을 본 적이 있었다. 눈앞의 사람은 조각상의 모습과 거의 일치했다. 대마신은 전설 속의 존재로 그 시대에는 세상 사람들이 모두 인정하는 천하 제일이었다. 또한 그의 통치 하에 있던 마족들의 군사력이 강해, 수적으로 가장 많은 인간들도 그들을 피할 정도였다고 했다. 그리고 대마신 이후부터 마족의 통치자는 누구도 감히 마신이라고 부르지 못하고 모두 마존이라고 칭했다.
후에 한 마존이 주제 파악을 못 하고 스스로 마신이라고 칭했다가, 권리를 며칠 누리지도 못하고 부하들에게 포위, 공격당해 죽었다고도 전해졌다. 이는 대마신이 마족에게 얼마나 지대한 영향을 미쳤는지 알 수 있었다.
눈앞의 결투 장면으로 보아 대마신은 아직 최고에 이르지 못하고 성장 과정에 있는 듯했다. 그렇다 해도 그의 실력과 겨룰 수 있는 사람은 극히 적었다. 중년 남자는 그럴 자격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바로 당시 구천성지의 성주로, 팔 할의 뼈가 부서진 해골의 주인이었다.
양준은 저도 모르게 흥분했다. 자신이 왜 오래전에 있었던 싸움을 볼 수 있는지 알 수 없었지만 마신의 피와 연관이 있다는 것쯤은 짐작할 수 있었다. 아마도 마신의 피에 그의 기억이 담겨 있어서 이런 것들을 볼 수 있는 듯했다.
대마신과 당시의 성주는 모두 입성 경지 3단계로 이는 최정상 고수 간의 접전이었다.
싸움이 일어난 연유는 알 수 없었다. 다만 치열한 접전 가운데서 쌍방은 모두 전력을 다하고 있었다.
땅에서 하늘로, 하늘에서 별 세계로, 별 세계에서 다시 땅으로, 장소가 순식간에 바뀌었다. 두 사람의 실력은 비등비등해서 짧은 시간에 승부를 가릴 수 없었다. 그러나 양준은 전혀 지루함을 느끼지 않고 싸움 구경에 흠뻑 빠져들었다.
이런 천지를 뒤흔들 싸움을 관전하는 것은 그의 성장에 큰 도움이 되었다. 큰 세력의 젊은이들은 늘 선배들이 데리고 다니며 경지 높은 무인들 간의 싸움을 견학하고 그중에서 평소 수련에서는 깨우치기 어려운 것을 각성할 수 있었다.
지금 양준의 눈앞에 펼쳐진 것은 기연이었다.
싸움 과정에서 두 사람의 무공과 기운들은 많을 것을 생각하게 했다. 양준은 자세히 살펴보고 자신이 싸울 때의 상황과 하나하나 비교하며 검증해 보았다.
시간이 한참이나 흘러 원래 대등하던 두 사람의 싸움은 점차 한쪽으로 기울어졌다.
구천성지의 성주가 날린 초식 하나가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면서 그는 금세 열세에 처했다. 대마신은 이 기회를 틈타 미친 듯이 공격을 날렸다.
한창 흥미진진하게 보고 있는데, 눈앞의 장면이 연이어 바뀌었다. 시간이 너무 오래 지난 탓인지 마신의 피에 담긴 기억은 차례로 이어지는 게 아니었다. 다시 시작되는 장면은 이미 승부를 가른 다음이었다. 성주는 창백한 얼굴로 끊임없이 피를 토하고 있었다. 곧 그의 신형은 무지갯빛으로 바뀌며 대마신의 앞에서 도망쳤다. 떠나기 전, 그는 대마신의 금빛 피 한 방울을 가져갔다.
대마신은 그 자리에 멈춰 서서 싸늘하고 도도한 눈빛으로 성주가 도망치는 모습을 지켜보며 그를 쫓아가지 않았다. 잠시 뒤, 그의 신형이 움찔하더니 자리에서 사라졌다.
양준의 머릿속에서 펼쳐지던 화면은 거기에서 중단되었다.
*
양준은 숨을 내뱉고 천천히 마음을 가라앉혔다. 그는 이런 방식으로 대마신을 직접 보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었다.
양준은 통현대륙에 오고 나서부터 여러 사람들에게서 대마신의 전설을 들었고, 또한 대마신은 그와 여러모로 연관되어 있었다. 그가 가지고 있는 금신, 멸세마안 모두 대마신의 것이었고, 심지어 검은 책도 대마신이 만든 것이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대마신은 죽은 지 오래되어, 만나볼 수 없었다. 그런데 오늘 그는 소망을 이루게 되었다.
대마신이 남겨 준 것들은 양준의 성장 과정에서 큰 도움을 주었다. 그렇지만 대마신이 이미 닦아 놓은 길이라고 해서 자신이 속박받지는 않을 것 같았다. 그는 오히려 자신이 대마신이 닿지 못한 길로 더 나아가 대마신의 성취를 뛰어넘을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또 그렇게 되어야만 양준은 자신이 얻은 방대한 자원에 부끄럽지 않을 수 있고, 그렇게 해야만 자신의 모든 성취가 대마신이 마련해준 게 아니라는 것을 증명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번 접전을 보고 양준은 관 속에 있던 뼈가 부러진 해골이 어찌된 영문인지 알 수 있었다.
성주의 몸에 남겨진 상처는 당시 대마신과의 싸움으로 인한 것이었다. 성주는 접전을 마치고 성지로 돌아왔지만 얼마 안 되어 결국 부상 때문에 죽은 듯했다. 마신의 피를 남긴 것도 마음속으로 불복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뜻밖에도 이는 양준의 호기심을 불러일으켰고, 이로써 양준은 마신의 금빛 피를 얻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혈전을 견학하게 되었다.
성릉 안,
양준은 천천히 눈을 떴다. 소현계는 어둠이 가시고 다시 음산한 모습으로 돌아간 상태였다.
양준은 자신의 몸을 감지해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몸에 상처가 났으나 강한 회복력 때문에 크게 문제되지는 않았다. 중요한 것은 몸속에 마신의 금빛 피 한 방울이 더해진 결과, 몸에 큰 변화가 생겼다는 점이다. 금빛 피가 더 많아졌고, 금신 안에 가득 찬 사악한 기운도 더 순수해졌다. 또한 은연중 대마신의 신통력 중 하나인 분신지술(分神之術)을 각성하게 되었다.
이는 본인의 신혼 낙인에 방대한 신혼의 기운을 주입한 다음, 특수한 방법으로 하위 신혼(分神)을 형성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하위 신혼을 다른 육신에 불어넣으면 주체 외의 분신(分身)이 생겨나는 기술이었다.
분신의 수련 정도에 따라 주체의 각종 능력을 가질 수 있는데, 가장 높게는 주체의 팔 할 정도의 실력까지 발휘할 수 있었다.
양준은 눈앞이 밝아지는 것만 같았다. 문득 애당초 중도 쪽에서 마장 몽과의 하위 신혼을 만났던 것을 떠올렸다. 흉살사동에서 양준은 아무것도 모르고 쇄마련을 이용해 몽과의 하위 신혼을 죽였고, 그때 당시 몽과에게 위협도 받았었다. 통현대륙에 와서야 그는 몽과의 정체와 그의 강한 실력을 알게 되었다.
당시 몽과는 분신지술을 시전해 분신을 흉살사동에 보냈던 것이다. 하지만 대마신의 분신지술과 비교해 보면 적잖은 차이점이 있었다. 몽과의 하위 신혼은 너무 약했다. 몽과는 아마 대마신이 남겨 둔 비급을 얻어서 분신지술을 배운 듯했다. 하지만 분신지술에 능숙하지 못했고, 제대로 각성하지도 못했던 것이다.
분신지술을 수련했을 때 좋은 점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하위 신혼이 생기면 식해 안에는 신혼이 두 개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때문에, 신혼 두 개가 같이 수련하는 만큼 신식의 힘은 남보다 두 배로 강해질 수 있었다.
물론 그에 앞서 많은 대가를 치러야 했다. 하위 신혼을 형성하는 데는 방대한 신식의 힘이 필요했다. 하지만 양준에게 있어서 그런 것들은 별문제가 아니었다. 육색 온신련이 수시로 그의 신혼을 보강해 주고 있고, 신식의 힘도 수시로 보충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양준이 주변을 둘러보니, 성릉 안은 난장판이었다. 그가 들어오는 바람에 소현계는 완전히 훼손된 상태였다. 이다음부터 이곳에 들어오는 성주는 어떤 좋은 점도 얻을 수 없고 동시에 예전 성주들에게 세뇌당하지도 않을 터였다.
양준은 매우 난감해졌다. 장로와 호법들이 강요해서 이곳에 들어온 건 사실이지만 성릉은 어쨌든 구천성지의 토대였다. 만약 자신이 이곳을 훼손시켰다는 것을 그들이 알게 된다면 아마 그를 쉽게 보내 주지 않을 것이고, 적어도 그를 성주의 자리에 앉혀야 가만히 있을 터였다. 더욱이 영혼 반지에는 그의 신혼 낙인이 들어 있었다.
양준은 머리가 터질 것만 같았다.
‘이거 큰일 났네. 구천성지와 척을 짓지 않으면 일이 마무리가 될 거 같지 않은데.’
양준은 한참 동안 탄식하다가 급하게 떠나지 않기로 했다. 그는 아예 성릉에 남아서 대마신의 분신지술을 수련했다.
양준은 식해 안으로 들어가 신혼 낙인을 응결시키고 특수한 방식으로 신혼 낙인에 신식의 힘을 주입해 자신의 하위 신혼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신식의 힘의 소모가 대단했다. 육색 온신련의 보충으로도 감당이 안 되었다. 다행히 그의 검은 책 공간에는 비상 단약이 적지 않았는데, 그중에는 신식의 힘을 보충하는 것도 있었다. 또한 만약영액, 영유, 영고도 있었기에 보충 문제는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시간은 덧없이 흘러갔다.
어두운 성릉 안,
양준은 밖으로 나가기 싫었다. 그는 시간이 많이 흘러 서휘 일행이 더는 자신을 신경 쓰지 않기를 바라면서 수련에 매진했다. 분신지술에 일정한 성과가 있어, 드디어 식해 안에 하위 신혼이 만들어지고 나서야 그는 수련을 멈추었다.
나머지는 조바심을 낼 필요가 없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의 하위 신혼은 점점 더 단단해지고 강해질 터였다. 안타까운 건 하위 신혼에는 의식과 감정이 없다는 점이었다.
하위 신혼을 일정한 정도로 성장시킨 다음, 다시 알맞은 육신을 찾아 하위 신혼을 그 속에 불어넣으면 자신의 분신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이렇게 만들어낸 분신은 의식과 생각이 없었지만, 그것을 조종해 자신이 가기 어려운 곳에 보낼 수 있었다. 또는 경우에 따라 뜻밖의 기능을 할 수도 있었다.
양준은 천천히 일어서서 신식을 펼쳐 성릉의 출구를 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