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련전봉-789화 (788/853)

제 789장. 이렇게 놀랄 일인가요?

어느 한 폐허 앞,

서휘는 놀란 눈빛으로 양준을 바라보았다.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해도 도무지 믿을 수가 없는 듯했다. 그의 옆에 서 있던 사곤이나 정월동도 마찬가지였다.

“이렇게 놀랄 일인가요? 제가 진작 성릉에서 죽은 줄 아셨나 봐요?”

양준이 웃으며 말했다.

서휘는 그제야 겨우 정신을 차리고 기쁜 나머지 눈물을 줄줄 흘렸다. 그는 온몸을 떨면서 공수했다.

“성주께서 출관하신 것을 감축드립니다!”

“성주께서 출관하신 것을 감축드립니다!”

사곤과 정월동을 포함한 다른 이들도 공손한 표정으로 축하했다. 양준의 출현으로 그들 얼굴의 드리웠던 먹구름이 한순간에 가시었다. 덩달아 근처에 있던 성지의 제자들도 모두 모여들어 양준을 구세주처럼 바라보았다.

양준은 미간을 찌푸린 채 손을 들어 저지했다.

“성주라고 부르지 말아 주십시오. 옥영 장로님과 안령아에게서 대체적인 상황을 들었습니다. 제 도움이 필요하면 말씀해 주십시오. 제가 할 수 있는 데까지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서휘는 순간 당황하다가 곧 양준의 뜻을 알아차렸다. 그는 양준의 비위를 상하지 않게 하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아닐세. 이쪽 일은 다 사소한 일들이네. 제자들의 마음을 달래 주고 부상자를 치료하는 것은 자네가 할 필요 없네.”

그러더니 시선이 양준의 손 쪽을 훑었고, 얼굴에는 저도 모르게 실망한 기색이 떠올랐다.

“이걸 찾는 겁니까?”

양준이 손을 뒤집어 영혼 반지를 꺼냈다.

사람들은 모두 놀란 표정으로 고풍스러운 반지를 뜨겁게 바라보았다. 서휘는 연신 고개를 끄덕이더니 생기가 넘치는 얼굴로 흥분해서 말했다.

“역시 자네가 영혼 반지를 가지고 나왔군.”

양준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사람들의 앞에서 반지를 손에 끼고 느긋하게 말했다.

“원래는 이걸 당신들께 돌려드리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뜻밖의 변고가 생겨서 제가 한동안 보관하겠습니다. 제가 입성 경지에 오르게 되면 돌려드릴 겁니다.”

양준은 입성 경지에 오르게 되면 자신의 신혼 낙인을 반지에서 제거해, 반지와 자신의 연계를 해제할 수 있을 것이라 짐작했다.

“괜찮네. 영혼 반지는 원래 자네 것일세. 얼마 동안 보관하든지 상관없다네.”

서휘는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다른 장로와 호법들도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를 표했다.

“영혼 반지가 있으니 일이 많이 쉬워지겠군. 우선 지금 도와야 할 일이 몇 가지 있다네.”

서휘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말씀하십시오.”

양준은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제자들이 부상을 당했는데 지금 치료용 단약과 약재가 부족하네. 나와 함께 창고로 가서 물건들을 꺼내 주게.”

“네, 그럼 갑시다.”

서휘는 다른 호법과 장로들에게 일 처리를 지시한 다음, 양준을 거느리고 한 방향으로 걸어갔다.

두 사람이 자리를 뜬 다음에야, 여러 호법과 장로들은 경악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정말 성릉에서 나왔군. 9개월이나 지났잖는가.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사곤은 연신 고개를 저었다. 그로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기록을 깨뜨린 거 아닌가? 내 기억으로는 가장 오래 걸린 분이 2개월이었던 거 같은데.”

“시험을 통과하는 데 이렇게 많은 시간이 걸리다니? 이번 성주는 실력이 너무 약한 거 아닌가? 우리가 과대평가했던 거 같군.”

“그게 뭔 상관인가? 결정적인 순간에 성주의 영혼 반지를 가지고 나오지 않았는가. 이제 진법과 결계를 재가동할 수 있을 테니, 그자들의 침입도 막을 수 있겠군.”

사람들은 수군덕거리느라고 여념이 없었다. 오직 옥영만 복잡한 표정으로 조용히 서 있었다.

그녀는 아직까지도 방금 전 양준이 어떻게 자신의 신식을 속이고 기척 없이 옆에 나타났는지 알 수 없었다. 설령 구천신기의 도움을 받았다고 해도, 본인의 신식의 힘이 강하지 못하면 그 정도로 할 수 없었다.

‘도대체 그를 과소평가한 거야, 아니면 과대평가한 거야?’

“옥영, 무슨 일이야?”

정월동은 그녀가 넋 넣고 있는 것을 보고 다가와 물었다.

“아무것도 아니야. 그냥 미래의 성주가 다른 이들과는 다른 거 같아서.”

“어떻게 달라?”

정월동은 금세 흥미가 동해 물었다.

“딱히 뭐라고 말할 수 없어.”

옥영은 고개를 절레절레 젓더니 옆쪽에 대고 호통을 쳤다.

“뭣들 하는 거야? 다들 할 일이 없어?”

그곳에 모여 있던 제자들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뿔뿔이 흩어져 각자 일하러 갔다.

곧이어 새 성주가 성릉의 시험을 통과하고 출관했다는 소식이 순식간에 널리 퍼졌다. 소식을 들은 성지 제자들은 모두 사기가 진작하였다.

*

한참 뒤, 양준과 서휘는 지하 창고 앞에 이르렀다. 오는 길에 서휘는 양준에게 지금 상황에 대해 간단하게 말해 주었다.

양준은 신식을 펼쳐 보아도 창고가 무슨 재료로 만들어졌는지 알 수 없었다. 그의 강한 신식도 안쪽으로 전혀 침투할 수가 없었다. 창고 겉면의 재질만 보아도 매우 단단한 것이 철옹성 같았다.

구천성지의 물자는 모두 창고에 보관하는데, 오랜 시간이 지니다 보니 그 양이 엄청났다. 그리고 전임 성주가 세상을 뜬 뒤부터는 줄곧 창고를 열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게 2년 가까이 지나자, 성지에 남겨 둔 물자가 얼마 남지 않았고 그것마저도 이번 재난을 겪으면서 아예 바닥이 나고 말았다. 수련용 단약은 물론이고, 부상당한 제자들이 쓸 치료용 단약도 없었다.

지금은 우선 창고를 열고 물자를 꺼내는 게 급선무였다. 창고를 여는 열쇠는 바로 양준이 가지고 나온 영혼 반지였다.

서휘의 지시에 따라 양준은 영혼 반지에 진원을 주입한 다음, 창고 대문 한가운데 있는 홈에다 넣었다. 그러자 아름다운 빛이 흐르더니 철옹성 같던 대문이 천천히 열렸다.

곧이어 엄청나게 큰 지하 창고가 눈에 들어왔다. 창고 안에는 연단용 약재, 연기용 재료 그리고 완제품 단약과 비보가 가득했다.

양준은 물자의 양과 질에 눈이 어지러울 정도였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역시 큰 세력의 저력은 그의 상상을 훨씬 뛰어넘고 있었다.

“보고 필요한 게 있으면 가지게나. 난 제자들을 불러 물자를 옮기겠네.”

서휘는 양준에게 말하고는 다시 자리를 떴다.

양준은 기쁜 얼굴로 창고를 누볐다.

이곳에는 여러 가지 종류의 물자들이 있었는데 적어도 만 명 정도의 수요를 만족시킬 수 있었다. 근처 세 곳의 세력들이 모험하면서까지 구천성지를 공격하려는 이유를 알 것도 같았다. 수련하기 좋은 산 아홉 개뿐 아니라 이곳의 물자만으로도 족히 탐낼 만했다. 모든 이가 이익에 좇아 움직이는 것은 천고불변의 이치였다.

양준은 사양하지 않고 연단용 재료들을 찾아 검은 책 공간에 넣었다.

그의 연단술은 아직 더 갈고 닦아야 했다. 현재 성급 하품 단약을 만들 수 있었지만, 아직 능숙하지 못했다. 성급 중품 단약을 만들 수 있을 정도가 되어야만, 그는 설산에 가서 관노를 찾고, 다시 소현계에 들어가 고마 일족의 봉인을 풀어줄 수 있었다.

구천성지와 비교했을 때, 양준은 려용과 한비의 힘을 더 중요시했다. 그가 구천성지의 성주가 되려 하지 않는 것도 어찌 보면 고마 일족과 연관이 있었다. 인간과 마족이 대립각인데, 구천성지의 성주이면서 동시에 고마 일족의 통솔자가 된다면 혹시라도 두 세력 사이에 충돌이 생겼을 때, 가운데 끼어 양쪽으로 원망만 들을 수 있었다.

양준은 한참을 바쁘게 돌아다니며 대량의 약재를 갈무리했다. 심지어 고마 일족의 성급 단약을 만들 재료도 한 가지 찾게 되었다. 이제 고마 일족을 위한 성급 단약을 만들 재료는 모두 준비된 상태였다. 여기에 더해 수련용 정석까지 챙기고 난 그는 기분이 매우 좋아졌다.

서휘는 바삐 움직였다. 건곤대에 각종 물자를 넣어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 제자들에게 넘겨주고, 그들더러 성지의 연단사들에게 가져가라고 지시했다.

반나절이 지나서야 물자 배급이 마무리되었다.

“자네는 필요한 게 없나?”

서휘는 양준이 빈손인 데다가 건곤대도 없는 것을 보고 오해하고 말았다. 그러나 다시 자세히 살펴보면 창고의 물건들이 많이 줄어든 것 같기도 했다. 특히 연단용 재료들이 많이 빈 듯했다. 이에 그는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필요한 게 없습니다.”

양준은 고개를 저었다.

“그럼 나갑세. 필요하면 아무 때나 와서 가져가도 되네.”

서휘는 웃으며 더 길게 말하지 않았다. 그리고 창고를 나서자 서휘가 다시 말했다.

“자네, 나와 함께 가서 진법과 결계를 다시 재가동해줘야겠네.”

양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성지의 심오한 결계와 진법은 역대 성주들이 오랫동안 설치하고 보강한 것으로, 입성 경지 고수들의 맹공격을 막아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짧은 시간 안에는 훼손될 위험이 없었다. 성주들이 모두 입성 경지 3단계 최절정 고수라고 하지만, 그들이 항상 성지에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때문에 성주가 외출했을 경우, 결계와 진법을 쳐놓으면 성지는 안전했다.

결계와 진법은 양준이 거의 접촉해 보지 못한 영역이었다. 그러나 영혼 반지가 있고, 서휘가 옆에서 가르쳐 주었기에 그리 힘들이지 않고 해결할 수 있었다.

산 아홉 개를 누비다 보니, 진원의 소모가 엄청났다. 그렇게 반나절이 지나고 나서야, 양준은 결계와 진법을 모두 재가동할 수 있었다. 이내 천지간 영기가 짙어지고 유동 속도도 빨라졌다. 그리고 육안으로 볼 수 없는 엷은 기운의 장막이 구천성지 전체를 뒤덮었다.

서휘는 놀라움을 금할 수가 없었다. 그는 진법을 가동하는 데 얼마나 많은 진원과 기운이 소모되는지 잘 알고 있었다. 전임 성주도 성지 전체를 뒤덮는 결계와 진법을 재가동하는 데 반나절 이상 걸렸었다. 하지만 양준은 반나절만에 모두 마쳤다. 게다가 힘들어하는 모습도 전혀 보이지 않았다.

서휘는 양준의 몸속에 도대체 얼마나 방대한 양의 진원이 내재돼 있는지 짐작할 수가 없었다. 그는 놀라는 한편, 더욱더 공손해졌다.

지금은 자신의 경지가 양준보다 높지만, 시간이 지나면 양준은 기필코 자신이 닿지 못한 높이에 이를 것이 분명했다. 이제 구천성지는 양준에게 기대를 걸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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