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련전봉-792화 (791/853)

제 792장. 태도가 바뀌다

양준은 누구한테 좌지우지되는 것이 싫었다. 자신의 운명은 끝까지 스스로 결정하고 싶었다. 때문에 그는 줄곧 구천성지의 성주가 되는 것에 반감을 가지고 있었다. 이는 그가 원했던 바가 아니었다. 성지의 사람들이 그에게 아무리 친근하게 대해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그에게 원하는 바가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하응상과 몽무애가 이곳에 왔었고, 또 영월담에 무언가를 설치해 두었다는 것을 안 다음부터 구천성지에 대한 그의 반감은 크게 줄어들었다. 구천성지의 힘을 보존하고 있으면, 나중에 이곳에서 하응상과 다시 만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소안은 빙종에 남아 수련하고 있고, 지마는 원래 호락호락하지 않기에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지금은 하응상의 종적이 묘연하여 걱정될 뿐이었다. 그런데 드디어 하응상을 찾을 만한 확실한 희망을 보게 되었다. 양준은 이 희망이 외부의 침입으로 사라지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때문에 먼저 서휘를 찾아가 제안했던 것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서휘가 소식을 가져왔다. 양준이 짐작했던 것처럼 성지의 제자들을 안전하게 데려갈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자, 여러 장로, 호법들은 잠시 철수하는 데 동의했다. 다들 먼저 힘을 보존했다가 다시 재기해 치욕을 씻으려 했다. 다만 그들은 6천 명이 넘는 제자들이 있을 곳을 거듭 캐물었다. 하지만 양준은 지금 당장은 말해 주려고 하지 않았다. 결국 안령아가 나서서 설득하고 나서야 장로, 호법들은 더는 캐묻지않았다.

“철수하기로 결정했으면, 이제 저한테 요족 대존의 상황을 상세하게 말씀해 주십시오.”

양준은 장로와 호법들을 바라보며 나지막하게 말했다.

양준이 통현대륙에 와서 여태껏 만난 요족은 한 명뿐이었다. 바로 매요로 신식에 독소를 띠고서 사람의 마음속 깊은 곳에 있는 욕망을 자극하는 음탕한 요녀였다. 양준은 요족에 대해서 아는 것이 거의 없었다. 그리고 이제 요족의 대존을 만나러 가야 하므로 당연히 만반의 준비를 해야 했다.

“우린 누구도 요족 대존을 만난 적이 없네. 다만, 전임 성주께서 대존의 본체는 8급 요수인 적염뇌룡(赤炎雷龍)이라고 알려주었네. 태생적으로 두 가지 속성의 힘을 수련할 수 있어 경지가 높을 뿐만 아니라 신통력도 가지고 있다고 하더군.”

“8급 요수라고요…….”

양준은 미간을 찌푸렸다.

6급 요수가 인간의 신유 경지, 7급 요수가 인간의 초범 경지, 그렇다면 8급 요수는 인간의 입성 경지에 맞먹을 터였다. 그러니까 요족 대존은 입성 경지의 고수로 적어도 입성 경지 2단계, 아니면 입성 경지 3단계일 수도 있었다.

“대존의 휘하에는 본체가 8급 요수인 부하가 몇 되지만 실력은 다 대존보다 낮다고 했네. 그 외에 6급, 7급 요수가 많지만 인간으로 변한 이는 약 스무 명 정도라고 했네.”

“그 스무 명은 모두 초범 경지로, 그러니까 7급 이상의 요수만…….”

“그들은 타고난 전투력이 있어 어떤 무공을 수련하지 않아도 전투력이 강하다고 하더군.”

“그런데 그들은 진법에 대해 모른다고 했었네. 온전히 자연 그대로라 살고 있는 곳의 영기가 그리 짙지 않은 걸세.”

장로, 호법들은 자신이 알고 있는 것들을 모두 털어놓았다.

양준은 자세히 귀담아듣고서 그들의 말이 끝난 다음에야 호기심 어린 말투로 물었다.

“인간과 요족은 대립각이 아닙니까? 그런데 전임 성주와 요족 대존은 어떻게 친분을 쌓게 된 거죠?”

서휘가 웃으며 대답했다.

“요족들의 영토에는 정석이 없지만 영초, 영약이 많이 자란다네. 한번은 전임 성주께서 외출했다가 요족 대존을 만나 한바탕 싸웠지. 그러다가 싸움 끝에 정이 든다고, 나중에는 서로 물물교환을 하기로 했다네. 그 뒤, 일정 시기마다 전임 성주께서는 정석을 들고 가서 대량의 영초와 영약 그리고 희귀 광물을 바꿔 왔지. 아, 그리고 요족들은 연단이나 연기를 잘 모른다네. 그들이 사용하는 비보나 단약은 모두 전임 성주께서 가져다준 것일세.”

“그렇다면 요족 대존이 전임 성주와의 옛정을 생각한다면, 제가 이번에 찾아가도 큰 위험은 없을 듯하군요……. 확실히 아직 옛정을 봐서 움직이지 않는 모양입니다.”

“그건 또 무슨 소린가?”

서휘가 놀라서 물었다.

“전임 성주께서 유명을 달리한 지 이미 2년이 다 되어 가니, 요족들도 진작 소식을 들었을 겁니다. 하지만 아직까지 어떤 움직임도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이건 요족 대존이 구천성지를 공격하려는 생각이 없기 때문이죠. 아니면 지금 성지는 설상가상의 위험한 상황에 빠졌을 겁니다.”

양준의 말에 다들 잠깐 생각해 보더니 고개를 끄덕여 동의를 표했다.

“그리고 요족들에게는 화생지라는 신비한 곳이 있다고 들었습니다만?”

양준이 갑자기 물었다.

“맞네. 화생지는 요족의 근본이지. 어떻게 생긴 건지 알 수 없지만 화생지가 있는 곳은 모두 요족의 집결지이기도 하네. 그쪽의 상황도 마찬가지일세. 요수들은 7급으로 진급하면 화생지에 들어갈 자격이 있다네. 그리고 운과 기연이 따라 주면 인간으로 변할 수 있지. 그렇지 않으면 요수들은 영원히 요수의 형태를 유지할 수밖에 없다네.”

서휘는 고개를 끄덕이며 설명해 주었다.

“정말 신비하군요.”

양준은 금세 흥미가 동해 꼭 가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서휘가 다시 고개를 저으며 말을 이었다.

“화생지에 들어갔다고 해서 모두 인간으로 변할 수 있는 건 아닐세. 많은 요수들이 실패한다고 들었네. 그리고 설령 인간의 모습을 가지게 되었다고 해도, 요족들은 본체에 습관되어 늘 요수의 모습으로 나타난다고 하더군. 그러니까 요족 중에 초범 경지의 수가 스무 명 정도만은 아닐 걸세. 아마 갑절은 될 거네.”

“그럼 대단한 실력이군요.”

양준은 연신 감탄했다.

구천성지에도 초범 경지는 그 정도밖에 안 되었다. 이렇게 비교해 보니, 요족의 실력은 전성기의 구천성지와 비등했다.

“먼저 정석을 좀 준비해 주십시오. 처음 만나는데 후배로서 선물을 준비해야죠. 아니면 요족 대존과 만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내가 지금 가서 준비하겠네.”

서휘가 대답하고서 걸어 나갔다.

한 시진 뒤, 만반의 준비가 끝났다. 양준은 정석을 꽉 채운 건곤대 두 개를 들고서 사람들이 알려 준 방향으로 날아갔다. 여러 호법과 장로들은 그가 떠나는 것을 바라보면서 모두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대장로, 새로운 성주의 태도가 갑자기 많이 변한 거 같지 않은가?”

사곤이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그러게 말일세. 왜 갑자기 성지의 일에 열정적으로 나서지? 전에는 냉담하게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처럼 굴었는데.”

정월동도 눈썹을 살짝 구겼다.

“글쎄, 난 모르겠네. 아무튼 좋은 일 아닌가. 지금은 성지의 일에 열심이고, 좀 지나면 성주의 자리를 계승하겠다고 할지도 모르잖는가.”

서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아마도 영월담의 일과 연관이 있는 거 같아요.”

안령아가 중얼거렸다.

“뭐? 무슨 일 있었어?”

“그냥 짐작해 본 거예요.”

안령아는 생긋 웃기만 할 뿐, 구체적인 원인을 말하지는 못했다.

“령아, 그런데 저 사람을 믿어도 돼? 이렇게 많은 성지 제자들을 머물게 할 곳이 있다고 하질 않나, 요족 대존을 만나러 가질 않나, 난 좀 불안하구나.”

옥영이 걱정 어린 얼굴로 물었다.

“어차피 여러 세력들과 죽기 살기로 싸우려고 했던 거 아닌가요? 양준이 찾아가서 성공하면, 성지는 태세 전환을 할 수 있고요. 만약 성공하지 못한다고 해도 원래 계획대로 하면 되잖아요. 그러니까 양준을 믿든, 안 믿든 무슨 상관이 있나요?”

“그래, 네 말이 맞구나.”

옥영은 피식 웃으며 걱정을 내려놓았다.

“하지만… 전 양준을 믿어요. 그는 늘 위험한 상황을 어떻게 해서든 잘 넘겼거든요. 이번에도 마찬가지일 거예요.”

“정말 그렇게 된다면, 그가 승낙하든 말든 반드시 성주로 모실 겁니다.”

서휘가 가라앉은 목소리로 나지막하게 말했다.

“대장로 말씀이 맞네.”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의 눈동자에는 기대의 빛이 어려 있었다.

*

양준은 성지를 벗어나자마자 누군가에게 미행당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파현부, 전혼전, 유명종 세 세력은 많은 고수들을 부채질해 끌어 모았다. 그들은 보름 전에 구천성지를 공격했다가 잠시 철수했지만, 멀리 가지 않은 게 분명했다. 아마 근처에 진을 치고서 구천성지를 감시하는 한편 약속한 시간을 기다리는 모양이었다.

무릇 성지를 벗어난 사람들은 모두 그들의 감시를 받았다. 그러나 양준은 전혀 당황하지 않았다. 신식을 펼쳐 살펴보자, 뒤따라온 사람들의 경지를 낱낱이 알 수 있었다. 초범 경지 1단계 한 명에, 신유 경지 열댓 명이었다.

지금의 양준에게 있어서 이 정도 인원수와 경지는 한 주먹거리도 안 되었다. 산에 산을 넘으며 한 시진 동안 뒤쫓던 사람들은 어느 순간 양준의 종적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통솔자인 초범 경지 무인은 무거운 표정을 하고서 우뚝 멈춰 섰다. 그는 신유 경지 무인들에게 멈추라고 손짓한 다음, 자세히 감지해 보았지만 시종일관 양준의 위치를 찾을 수 없었다.

“선배, 그 녀석은요?”

대열 중에서 어벙해 보이는 청년이 의아한 말투로 물었다. 초범 경지 무인은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어두운 낯빛을 하고서 말했다.

“녀석이 뭔 수단이 있는 거 같군. 먼저 돌아가자.”

“나이가 어려, 실력이 높을 거 같지 않던데요.”

청년은 콧방귀를 뀌었다. 선배가 지나치게 조심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뭘 안다고 그래? 세상 젊은이들이 다 너처럼 무지렁인 줄 알아? 너보다 나이가 어려도 내 미행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건 경지가 높다는 말이야. 아니면… 진작 우리를 발견하고 앞에 함정을 파 놓고 기다리고 있을 수도 있어.”

청년은 납득할 수 없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

“제가 보기에는 그리 대단하지 않았어요.”

“네가 그자보다 더 강하다고 생각하면 지금이라도 그냥 쫓아가 봐. 살아 돌아올 수 있을지 보고 싶구나.”

초범 경지 무인은 냉소를 머금고서 더는 청년과 실랑이질하지 않고 뒤돌아 걸어갔다.

양준을 쫓던 일행은 같은 세력들이 아니었다. 구천성지의 움직임을 감시하기 위해 파견된 이들로 인원수가 많고 복잡하다 보니 아무렇게나 한 조를 이루었던 것이다.

청년은 한바탕 야단을 맞자 기분이 나빴다. 그는 입으로는 센 척했으나, 선배가 돌아가자 혼자서 양준을 쫓을 용기가 없어 뾰로통한 채로 사람들의 뒤를 따라갔다.

바로 이때, 앞장서서 나아가던 초범 경지 무인이 걸음을 멈추었다. 그는 경악과 공포에 찬 얼굴로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의 눈은 마치 무시무시한 광경을 본 것처럼 멍하니 초점을 잃고 있었다.

“또 뭐야?”

야단맞았던 청년은 참지 못하고 중얼거리면서 그의 눈빛을 따라 바라보았다. 순간 그 역시 눈이 휘둥그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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