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93장. 내부 첩자
양준이 앞쪽 큰 나무 아래에 서 있었다. 그는 어느샌가 그들의 뒤쪽으로 날아갔고, 지금 미소를 머금은 채 조롱 섞인 눈빛으로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다들 온몸의 진원을 모으며 경계 어린 눈초리로 양준을 바라보았다. 이 신출귀몰하는 수단만으로도 양준의 대단함을 알 수 있었다. 그들 역시 안목이 있기에 양준이 결코 쉬운 상대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특히 통솔자인 초범 경지 무인은 가까운 거리에서 신식을 방출해 양준을 탐지하려 했으나, 신식이 모두 상대에게 흡수되면서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하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내가 한동안 잡아 둘 테니까, 너희들은 흩어져 도망쳐.”
초범 경지 무인이 나지막하게 분부했다.
양준은 싱긋 웃으면서 아무것도 못 들은 것처럼 그들에게 성큼성큼 다가갔다. 양준이 가까이 다가갈수록, 사람들은 마치 산사태처럼 거대한 압박감이 자신들을 덮치는 것을 느꼈다. 신유 경지 무인들은 저도 모르게 땅바닥에 무릎을 꿇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상대의 압박감에 자신이 한순간에 가루가 되어 뼈도 추리지 못할 것만 같았다.
“가자!”
초범 경지 무인이 분노해서 큰 소리로 외치며 억지로 진원을 돌려 하늘로 솟구쳤다.
“갈 수 있을 것 같아?”
양준은 차갑게 콧방귀를 뀌었다. 곧이어 신식 한 가닥이 날카로운 공격으로 변해 초범 경지 무인의 머릿속을 뚫고 들어가며 한순간에 그의 식해의 방어를 찢었다.
그가 몸에 지녔던 옥패 하나가 반짝하더니 쩍, 하는 소리와 함께 가루가 되었다. 옥패는 신혼 방어 비보로 상대방의 신식 공격을 막을 수 있었다. 등급도 족히 현급 중품이나 되었지만 양준의 신식 공격에 순식간에 산산조각 나 버렸다.
하늘로 솟구쳐 올랐던 초범 경지 무인의 몸은 땅바닥에 털썩 떨어졌다. 반짝이던 눈동자는 빛을 잃고 있었다. 그는 머리를 감싸 쥐고 땅바닥에 뒹굴며 처참하게 비명을 질렀다. 그의 비명에 사람들은 등골이 서늘해졌다. 어벙한 청년은 그제야 양준과 자신의 실력 차이가 얼마나 큰 지 깨달았다. 또한 방금 전에 선배가 한 말이 전혀 과장된 게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어떤 수를 썼는지 모르지만, 초범 경지 무인을 한순간에 저런 꼴로 만들다니? 경지가 도대체 어느 정도일까?’
처참한 비명은 얼마 안 되어 멈췄다. 초범 경지 무인은 몸이 굳어진 채 땅바닥에 누워 꼼짝달싹하지 못했다. 이미 그에게서 생명의 기운은 느껴지지 않았다. 나머지 신유 경지 무인 열댓 명은 모두 전율했다. 그들은 이를 덜덜 떨며 두려움에 사로잡혀 멍하니 양준을 바라보았다.
양준은 그들을 덤덤하게 훑어보았다. 그와 시선이 마주치는 순간, 하나같이 저도 모르게 그의 눈을 피했다.
‘신유 경지 열댓 명……?!’
양준은 실소했다. 중도에 있을 때만 해도, 이 정도 실력이면 매우 강한 편이었다.
몇 년이 지난 지금, 양준은 차가운 시선으로 이들을 굽어볼 수 있게 되었다. 지금 그의 눈에 그들은 개미와 다름없었다.
“몇 가지 물을 건데, 대답할 사람?”
양준이 갑자기 말문을 뗐다.
그들은 두려움에 휩싸여 모두 죽을 줄로만 알고 있었기에 양준의 물음에 아무도 반응하지 못했다. 이때, 어벙한 청년이 빠르게 정신을 차리고 얼른 대답했다.
“저요!”
양준은 그를 흘끔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너희들 지금 어디에 진을 치고 있어?”
“구천성지에서 오십 리 떨어진 산골짜기 안에 있습니다.”
청년은 혹시라도 대답이 늦어 양준이 불쾌해할까 서둘러 대답했다.
“인원수는?”
“적어도 삼천 명…….”
“적지 않군. 입성 경지는 몇이나 돼?”
양준이 계속해 질문했다.
삼천 명이면 구천성지 제자들의 절반 정도밖에 안 되었다. 하지만 정말 맞서 싸우게 되면 싸움의 결과는 결국 고수들의 수에 좌우되었다. 초범, 입성 경지 고수들에게 초범 경지 이하의 무인들은 아무리 많아도 별거 아니었다.
“류귀(劉貴), 감히 적에게 정보를 누설해? 돌아가면 목이 떨어질 줄 알아.”
인파 속에서 한 신유 경지 무인이 정신을 번쩍 차리고 나지막하게 일갈했다. 다른 이들도 분노에 차서 경멸 어린 눈빛으로 류귀를 바라보았다. 류귀는 당황해서 우물쭈물하며 더는 말하지 못했다. 동시에 양준이 자신에게 불만을 가질까 두려워 떨리는 눈빛으로 양준을 바라보았다.
양준은 잔인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하지 마. 약속할게. 누구도 네가 나한테 이런 것들을 말해 줬다는 걸 모를 거야. 그러니까 다 말해도 괜찮아.”
한편 그는 손을 내밀어 휘저었다. 순간 신유 경지 무인들은 모두 몸이 굳어진 채, 제자리에 꼼짝 못 하고 서 있었다. 또한 입을 열어 말할 수도 없었다. 그들은 식은땀을 흘리며 두려움에 떨었다.
양준이 약속하자, 류귀는 마음을 놓고 자신이 아는 만큼 빠짐없이 털어놓았다. 그의 말을 듣던 양준의 얼굴빛이 점점 더 흐려졌다. 이번에 구천성지에는 그야말로 큰 재난이 닥친 듯했다.
파현부, 전혼전, 유명종 세 문파는 구천성지가 안팎으로 재난을 겪는 틈을 타, 문파의 식구, 친구들을 끌어들였을 뿐만 아니라 남성고가 밖에서 난동을 피운 것을 빌미로 열몇 개의 세력을 부채질해 구천성지를 응징하려 하고 있었다. 열몇 개의 세력은 실력이 강한 편이 아니었기에 세력마다 기껏해야 입성 경지가 한 명 정도 있었고, 심지어 없는 세력도 있었다.
주모자 세 문파의 입성 경지 여섯 명까지 합하면 입성 경지만 열댓 명 정도 되었다. 입성 경지의 인원수에서 이미 구천성지보다 배는 많았고, 초범 경지는 셀 수 없이 많았다. 만약 정말 싸우게 되면 구천성지는 승산이 거의 없었다. 설령 진법과 결계의 위력으로 버틴다 해도, 잠시 동안 그들을 저지할 수 있을 뿐이었다.
서휘가 말했던 것처럼 주모자인 세 문파는 성지와 척지는 것을 선택한 이상, 만반의 준비를 하고서 성지에 재기할 기회를 주려 하지 않고 있었다.
지난 보름 동안 공격하지 않은 것은 첫째로 보름 전에 약속한 것이 있고, 둘째로는 다른 조력자들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제 약속한 날짜가 되면 그들은 오랫동안 이어져온 구천성지라는 큰 세력을 뒤엎고 자신들이 성지의 영기와 자원을 누릴 준비를 하고 있었다.
주모자 세 문파를 제외하고 다른 세력들은 모두 남성고 때문에 이곳에 모인 것이었다. 그 외에 구천성지와는 다른 원한이 없었다.
류귀는 어벙하게 생겼지만 영리한 사람이었다. 동료들의 분노에 찬 시선을 받으면서도, 그는 각종 정보를 또박또박 열심히 말했다. 류귀의 말을 듣고 나서, 양준은 마음속으로 결론을 내렸다. 그러고는 고개를 끄덕여 만족을 표하고는 친근하게 류귀의 어깨를 다독이며 칭찬했다.
“앞날이 훤하군. 잘해 봐.”
“네, 네. 칭찬 감사합니다.”
류귀는 난감한 표정으로 대답하고서 문득 낯빛이 바뀌더니 의아한 눈초리로 양준을 바라보았다. 방금 전, 찰나의 순간 그는 자신의 식해 속에서 무언가 없어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으나 다시 감지해 보아도 알아낼 수가 없었다.
양준은 웃으며 말했다.
“만일의 경우에 대비해 네 신혼 낙인을 당분간 내가 가지고 있을게. 돌아가서 내 정보를 조금이라도 흘려서는 안 돼.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난 쉽게 널 죽일 수 있거든.”
류귀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 몇 걸음 물러섰다.
“신혼 낙인을?”
“맞아. 그리고 도망칠 생각도 하지 마. 수시로 너의 위치를 감지할 수 있어. 감히 딴 마음을 품으면… 어떤 결과일지는 너도 잘 알 거야.”
“네, 알겠습니다.”
류귀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양준이 자신의 몸에 어떤 꼼수를 부렸는지 알 수 없었지만 아무튼 자신의 목숨이 남의 손에 쥐어져 있다는 느낌이 드는 것만은 확실했다.
“그래. 그럼 난 이만 갈게.”
양준은 씨익 웃었다. 곧이어 그의 신형이 움찔하더니 한순간에 류귀의 눈앞에서 사라졌다.
류귀는 흠칫 놀랐다가, 다시 제자리에서 꼼짝달싹 못 하는 동료를 가리키며 물었다.
“이 자들은 어떻게 합니까?”
하지만 아무 대답도 없었다. 이내 류귀의 표정이 변화무쌍하게 바뀌었다.
잠시 뒤, 요족의 영토로 날아가던 양준은 처참한 비명과 절규들을 어렴풋이 들을 수 있었다. 아마 류귀가 신유 경지 무인들을 죽이는 모양이었다.
류귀도 결코 좋은 사람은 아니었다. 평소에도 치졸한 인간이었을 것이다. 방금 전의 비밀이 새어 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그는 당연히 사람을 죽여 입막음을 하려 했다. 이런 인간들이 가장 비열하고 뻔뻔스러웠다. 하지만 지금 양준은 적진에 내부 첩자를 심어 두고 그들의 동향을 살펴야 했다. 그처럼 죽음을 두려워하고 치졸한 인간이 내부 첩자로는 안성맞춤이었다.
류귀가 돌아가서 어떻게 해명할지는 그 자신의 문제였다.
*
양준은 서휘가 알려 준 방향대로 번개처럼 날아갔다.
만 길 되는 산을 넘자, 곧 특별한 곳에 도착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공기 속에는 기괴한 천지 기운이 은은하게 흐르고 있었다. 마강에서 천지의 기운이 옅은 마기를 띠고 있던 것처럼, 요역에서는 마찬가지로 옅은 요기가 느껴졌다. 하지만 요기든, 마기든 모두 천지 기운의 서로 다른 형태였다. 이곳에서 장기간 생활하는 생명체에 의해 천지의 기운이 살짝 바뀐 것뿐이었다.
높은 산의 뒤쪽은 밀림이었다. 수해밀림은 요족의 영토였다. 아름드리 거목들이 햇볕을 가리고 있었다.
양준은 이곳에 들어서는 순간, 근처에서 한 요수가 자신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신식을 펼쳐 살펴보니 6급 요수인지라 더는 신경 쓰지 않고 계속해 앞으로 질주했다. 그는 소통할 수 있는 요수나 요족들을 만나기를 기대했다. 곧이어 그는 이곳의 요수가 자신이 전에 만났던 요수들과는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요수는 줄곧 그의 뒤를 쫓았지만, 지능이 있는지 그를 감시할 뿐 섣불리 공격하지 않았다. 그리고 지나는 곳마다 요수들은 다른 요수와 연락을 취하는 듯했다. 안으로 들어갈수록 그의 뒤를 따르는 요수들이 점점 더 많아졌다.
요수들은 조직적이고 기강이 잡혀 있는 듯했다. 즉, 지능은 있지만 그리 높은 수준은 아닌 것 같았다. 이를 감지한 양준은 걸음을 멈추고 요수들과 소통을 시도하려고 주변에 의념을 전했다.
그는 이 방면에서 경험이 풍부했다. 당나무와 소통하고 교류하는 동안, 지능이 높지 않은 생명체를 어떻게 상대해야 할지를 터득하게 되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