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련전봉-795화 (794/853)

제 795장. 뇌목부

짧지 않은 대화를 통해 양준은 광사가 지능을 가졌지만 속셈은 전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광사는 대다수의 요족들처럼 그냥 스스로의 본능에 따라 행동하고 있었다. 어쨌든 요수에서 인간으로 변한 것이기에 이해할 수 있었다. 이런 사람은 아무 꿍꿍이속도 없이, 모든 감정을 얼굴에 그대로 드러내기 때문에 어울리기 쉬웠다. 그러나 한편 이런 사람은 안면을 바꾸는 것도 빨랐다. 상대가 마음에 들면 살갑게 대하다가, 혹시라도 잘못 건드리면 그대로 싸움으로 번질 수도 있었다. 어떤 의미에서 양준은 이런 사람들을 상대하는 게 더 좋았다. 때문에 그는 광사를 편하게 대했다.

“알았어. 뇌목부(雷木府)까지 데려다 줄게. 하지만 대존께서 너를 만나 줄지는 내가 결정할 수 있는 게 아니야.”

광사는 한참이나 망설이다가 승낙했다.

“고맙습니다.”

양준은 몰래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뇌목부는 어디지?’

구체적으로 어떤 곳인지 알 수 없었지만, 양준은 은연중에 요족 대존이 거주하는 곳이라고 짐작했다.

광사는 시간을 지체하지 않고 곧바로 양준을 데리고 뇌목부로 향했다. 동시에 꼼수를 쓰지 말라느니, 안 그럼 혼쭐을 내겠다느니 하며 으름장을 놓았다.

양준은 군소리 없이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가는 길에 그는 수해밀림이 생각보다 더 광활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곳에서 생활하는 요수들은 몇만 마리에 달했는데, 갓 태어난 아기 요수부터 인간으로 변한 고수까지 요족의 모든 종류를 망라하고 있었다. 이 같은 요족 집결지는 요역 내에서 몇 곳 되지 않았으며, 집결지마다 요족 대존이 따로 관리했다.

인령, 요역, 마강 중에서 인간의 영토가 가장 드넓고, 그 다음이 마강 그리고 면적이 가장 작은 곳은 요역이었다.

수해밀림은 요역 전체의 십 분의 일의 영토를 차지하고 있었다. 이곳에서 뇌목부로 가려면 적어도 사흘 정도가 걸렸다. 그러니까 한 번 다녀오는 데 엿새가 걸리는 것이었다. 시간이 급박하지 않았기에 양준은 조급해하지 않고, 늦지도 빠르지도 않게 광사의 뒤를 따라 날며 수해밀림의 풍경을 눈에 담았다.

신식으로 감지해 보니 각종 광물과 영초, 영약이 밀림 속에 널려 있었다. 그런데 관심을 가지는 이도, 채굴하는 이도 없었다. 가끔 일부 요수들이 보기 드문 영초나 영약을 그대로 입에 넣고 씹어 먹고 있는 모습이 보일 뿐이었다. 이를 보는 양준은 정말 피를 토할 것만 같았다. 그 재료들로 단약을 제련하면 적어도 몇 배로 기운을 더 끌어올릴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것을 따질 때가 아니었다.

양준은 안타까웠지만 그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수해밀림의 풍요로움과 아름다움에 연신 감탄했다. 그런 말들은 광사의 마음에 꼭 들었다. 하루 동안의 접촉을 통해 광사는 양준이 좋아졌을 뿐만 아니라, 그의 칭찬에 귀가 솔깃해졌다. 이윽고 양준이 그에게 알맞은 비보를 건네자, 광사는 곧바로 그를 살갑게 대했다.

성릉에서 얻은 성급 비보들은 아무한테나 선물할 수 없었다. 그 비보들은 모두 가치가 어마어마한 비보들로 세상에서 보기 드문 것들이었다. 만약 선물한다 해도,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 선물해야 했다. 하지만 양준에게는 등급이 어중간한 비보들도 적지 않았다. 그는 지난번 안령아와 함께 바다 밑에 내려갔을 때 유적지에서 얻은 비보들을 이 기회에 광사에게 선물로 주었다.

광사는 단약에 비보까지 챙기게 되자, 이제는 아첨하는 표정마저 지었다. 양준이 그를 다시 친구라고 불렀을 때, 더는 싫어하지도 않았다.

가는 내내 평온했다. 광사가 앞서자 지나는 곳마다 가끔씩 요족 고수들이 놀라기는 했지만 양준을 힘들게 하지는 않았다. 구천성지의 새 성주라는 말을 듣고는 다들 호기심 어린 시선을 보내며 무탈하게 보내 주었다.

요족들도 구천성지의 존재가 사라지는 것이 그리 달갑지 않은 것 같았다. 예전에는 일정한 시기마다 전임 성주가 대량의 정석과 단약, 비보를 가지고 왔었다. 하지만 지난 2년 동안 다시는 그런 것들을 못 보게 되자, 당연히 그때 그 시절이 그리워진 것이다.

사흘 뒤, 구름층을 뚫고 우뚝 솟은 아름드리 고목이 시야에 들어왔다.

고목은 마치 산봉우리처럼 하늘 높이 솟아 있었고, 거대한 수관(樹冠)은 사방 몇십 리의 햇빛을 거의 다 가리고 있었다. 그리고 비스듬히 자란 나무 줄기들은 무성했다.

양준은 순간 깜짝 놀라 멍하니 서 있었다.

고목을 보는 순간, 그는 자신이 잘못 본 줄 알았다. 자세히 확인하고 나서야 진짜 나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세상이 넓다 보니 별의별 기이한 게 다 있었다. 이 고목과 비교하면 검은 책 공간의 당나무는 약소하기 그지없었다.

광사는 양준의 놀란 표정을 지켜보면서 의기양양해하며 말했다.

“봤지. 이게 바로 뇌목부야. 여긴 우리 대존과 여러 고수들이 거주하는 곳이거든. 대존께서는 최정상에 있는 통나무집에 계셔.”

“왜 뇌목부라고 부르죠?”

양준은 호기심이 동해 물었다.

“이건 만 년 된 뇌서목(雷噬木)으로 태생적으로 우레와 번개의 힘을 끌어들이지. 너도 들어서 알겠지만, 우리 대존의 본체는 적염뇌룡이야. 그래서 수련할 때, 우레와 번개의 힘이 필요하거든. 그래서 이곳이 딱 안성맞춤인 거지.”

“우레와 번개의 힘을 끌어들인다고요? 그럼 다른 사람들은 괜찮습니까?”

“대존의 실력은 네가 상상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야. 하늘에서 떨어지는 우레와 번개의 힘은 모두 대존이 흡수하기 때문에 다른 이들에게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아. 물론 우레와 번개로 수련하는 이들도 몇 명 있어, 대존께서 그 힘을 나눠 주기도 해.”

광사는 매우 자랑스럽다는 듯이 설명했다.

이곳으로 오는 동안 양준은 광사가 대존을 얼마나 숭배하는지 알 수 있었다. 광사는 대존과 연관된 모든 것에 경의를 표했다. 때문에 양준은 이런 광사의 모습에 무덤덤해져 고개만 끄덕였다.

“그렇군요. 대존께서는 정말 대단하십니다.”

“당연하지. 난 아마 평생 대존의 실력을 따라가지 못할 거야. 말은 이제 그만하고, 얼른 따라와. 금방이야.”

양준은 고개를 끄덕이고 광사의 뒤를 따랐다.

잠시 뒤에 두 사람은 고목의 아래쪽에 이르렀다.

그곳에 이르자마자 사방팔방에서 신식이 날아와 양준의 몸에 고정하더니 온몸을 구석구석 빈틈없이 감지했다.

양준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그들이 감지하게 내버려 두었다. 또한 싫어하거나 반항하는 내색도 보이지 않은 채 그냥 차가운 시선으로 주변을 훑어보았다.

고목의 아래쪽에는 수많은 요수들이 모여 있었다. 하나같이 험상궂게 생기고 체격이 장대했다. 자배혈주(紫背血蛛), 금선강귀(金線鋼龜), 녹린표(綠磷豹), 적화초(赤花貂)… 등등 별의별 요수들이 다 있었다.

요수들은 양준의 기운에 이끌렸는지 너도나도 일어서서 시큰둥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동시에 서로 의념을 전하면서 교류하는 듯했다.

양준은 깜짝 놀랐다. 그는 곧 이곳의 요수들이 수해밀림에서 만났던 요수들과는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이곳의 요수들은 높은 지능을 지녔으며 모두 7급 이상이었다. 아마도 사람으로 변하지 못했거나, 아니면 본체의 모습을 유지하는 것을 좋아하는 요족 고수들인 듯했다.

양준은 이 같은 주목을 받으면서도 태연하고 여유로운 모습이었다. 이는 더욱더 요수들의 관심을 끌었다. 반면 이곳에 도착하자, 광사는 매우 조심스럽게 행동했다. 그는 싱겁게 웃으며 여기저기 인사를 건네고는 양준에게 말했다.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 채접(彩蝶) 대인께 보고 드리고 올게. 대존을 만날 수 있는지는 채접 대인께 물어봐야 해.”

양준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광사는 몸을 날려 고목 위쪽으로 솟구치더니 곧이어 모습을 감추었다.

양준은 제자리에 서서 기다렸다. 실력이 강한 요수들은 그를 둘러싸고 빙빙 돌았다. 환영받지 못하는 불청객과 같은 취급이었지만, 양준은 진작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던 터라 크게 개의치 않았다.

슥- 슥- 슥-

위쪽에서 기척 소리가 들려오더니 그림자 몇 개가 나무 줄기에 내려섰다. 그들은 비웃는 표정으로 양준을 굽어보았다.

기척을 들은 양준은 고개를 들고 바라보다가 저도 모르게 실눈을 떴다.

나무 줄기에 서 있는 이들은 이미 인간으로 변한 요족 고수들로, 광사처럼 간단한 차림새를 하고서 야생적인 면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다. 게다가 그들은 적게나마 요수 특유의 흔적을 그대로 남겨 두고 있었다.

왼쪽의 중년 남자는 각진 얼굴에 구레나룻이 덥수룩했고 눈에는 위엄이 서려 있었다. 그리고 등 뒤에 털북숭이 꼬리가 달려 있었다. 겉모습으로 보아, 본체는 원숭이인 듯했다. 오른쪽에 있는 여인은 풍만한 몸매의 소유자로서 희고 늘씬한 다리와 평평한 아랫배를 드러내고 있었다. 입가에 뻗어 나온 덧니는 차가운 빛을 반짝였고, 머리 위에는 작고 귀여운 고양이 귀가 양쪽에 달려 있었다. 본체는 호랑이인지, 고양이인지 알 수 없었다.

양준은 그들을 바라보며 혀를 내둘렀다.

그들은 나무 줄기에 서서 양준을 지켜볼 뿐 그를 괴롭힐 생각은 없는지 침묵했다. 고양이 귀를 가진 여인은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덧니가 무척이나 눈에 띄었다.

상대와 시선이 마주칠 때마다 양준은 가볍게 묵례했으나 요족 고수들은 냉소했다.

이때, 고목 위쪽에서 비명이 들려왔다. 그 소리에 양준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이는 광사의 목소리였다. 누군가에게 된통 맞고서 위쪽에서 떨어진 듯했다.

요란한 소리와 함께 광사의 거대한 몸뚱이가 수많은 나무 줄기를 부러뜨리며 땅바닥에 털썩 떨어졌다. 땅바닥에는 곧바로 커다란 구덩이가 생겨났다.

“감히 마음대로 인간을 뇌목부로 끌고 와? 광사, 너 죽고 싶어 환장했구나. 그게 사실이라면 지금 당장이라도 그냥 죽여 버릴 거야.”

위쪽에서 여인의 호통소리가 들려왔다. 그와 동시에 무지갯빛이 양준의 눈앞에서 번쩍하더니 곧이어 아름다운 그림자가 기괴하게 나타났다. 아름다운 그림자는 하늘에 뜬 채로 입으로는 광사를 야단치며, 서슬 퍼런 시선으로 양준을 지켜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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