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련전봉-796화 (795/853)

제 796장. 어떻게 증명하면 됩니까?

이윽고 위험한 기운이 덮쳐 오자, 양준은 온몸의 솜털이 곤두서는 것만 같았다. 몸속 진원이 스스로 돌아가며 무형의 압박감을 막아냈다.

상대는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우윳빛 긴 치마가 그녀의 풍만한 몸매를 감싸고 있었는데, 치맛자락에 수놓은 꽃무늬가 그녀의 아름다운 모습을 더욱 돋보이게 했다. 그러나 그녀의 기세는 날카롭기 그지없었다. 또한 그녀의 등 뒤에는 무지갯빛의 날개가 달려 있었다. 한 쌍의 날개는 양준의 풍뢰우익과 달리 나비의 날개처럼 나풀거렸다. 그리고 살짝 날갯짓을 하면 상큼한 향기가 풍겼다. 그녀의 날개는 가벼운 것 같았지만 실은 비보와 같았다. 날개의 가장자리에서는 차가운 빛이 반짝였는데, 단단한 돌도 절단할 수 있을 정도로 세상에서 가장 예리한 무기처럼 보였다.

여인이 나타나자, 양준을 지켜보고 있던 요족 고수들은 모두 엄숙한 표정으로 공손하게 예를 올렸다. 양준에게 주는 커다란 압박감으로 미루어 보아, 여인은 적어도 입성 경지 2단계인 듯했다.

“채접 대인, 그런 게 아닙니다. 제 말 좀 들어 보십시오.”

땅바닥에 떨어진 광사는 힘껏 뛰어 일어났다. 볼품없는 몰골이 되었지만, 그는 감히 불만을 표하지 못하고 급히 해명하려 했다.

“무슨 변명을 더 하려는 거야?”

채접은 싸늘하게 광사를 바라보며 흰 손을 흔들었다. 그러자 광사의 품에 있던 비보와 단약들이 무형의 흡인력에 이끌려 그녀의 손에 들어갔다.

“인간에게서 이득을 얻고서 뇌목부에 데려왔잖아? 광사, 너 간땡이가 부었구나!”

곧이어 날갯짓이 빨라지더니 그녀의 눈동자에는 차가운 살기가 내비쳤다.

광사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 연신 손을 내저었다.

“아닙니다. 그런 게 아닙니다……. 사실은 인간이 저에게 물건을 주면서 이곳으로 데려다 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연유가 있습니다.”

“연유가 무엇이든지 상관없어. 대존께서 정한 규칙을 어겼으니, 넌 죽어 마땅해!”

채접은 차갑게 콧방귀를 뀌고는 광사를 공격하려 했다.

양준은 서둘러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려 했다. 하지만 그가 발을 드는 순간, 요족 고수들의 신경을 건드린 듯 수많은 시선이 그에게로 고정되었다. 사방팔방에서 압박감이 물밀듯이 덮쳐 왔다.

양준의 피와 살이 꿈틀거리며 온몸이 가루가 될 것 같은 엄청난 압박감을 막아냈다. 그는 천천히 발을 내려놓고 앞으로 한 걸음 나아갔다.

요족 고수들은 모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들은 양준의 경지로 이 정도 압박감을 버텨 낼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던 것이다.

“채접 대인이시죠? 저는 구천성지의 새로운 성주 양준입니다. 제가 대존을 만나 의논할 일이 있어서 뇌목부까지 데려다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구천성지의 새로운 성주라고?”

채접은 눈썹을 찌푸렸다. 양준의 말을 믿지 않는 듯했다.

“사실입니다. 구천성지의 사람이라고 해서 데려온 겁니다. 아니면 제가 어찌 감히 인간을 데려왔겠습니까. 대인, 현명한 판단을 해 주시기 바랍니다.”

광사는 이마에 식은땀이 가득 밴 채,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이거 괜한 짓을 했군. 채접 대인이 이렇게 화낼 줄 알았으면 인간을 뇌목부에 데리고 오는 게 아니었는데.’

“네가 구천성지의 새로운 성주라고 말만 뱉으면 믿어 줄 거 같아? 성주라는 증거 있어?”

채접은 다시 차가운 표정으로 날카롭게 일갈했다.

“성주의 영혼 반지가 가장 좋은 증거입니다.”

양준은 손을 들어 반지를 내보였다.

요족 고수들은 한참을 들여다보더니 일제히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채접은 차갑게 콧방귀를 뀌었다.

“반지 하나로 네 신분을 증명할 수 있다고 생각해? 반지는 이전에 우리 뇌목부에 왔던 사람이 꼈던 게 맞다만, 네가 그것을 어디서 얻었는지 어떻게 알아?”

“그럼 제가 어떻게 증명하면 됩니까?”

양준은 냉담하게 그녀를 바라보았다.

채접은 입을 삐죽거리더니 훌쩍 뛰어내려 고양이 귀를 한 여인이 서 있는 나무 줄기에 앉았다. 그러고는 담담하게 말했다.

“굳이 증명하려 할 필요 없어. 인간이 이곳에 오면 오직 죽음뿐이다. 광사, 네가 데려왔으니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는 잘 알겠지?”

광사는 우물거리다가 복잡한 시선으로 양준을 바라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광사, 잘해 봐. 인간에게 지면 안 된다.”

“힘내. 그자의 심장을 파내야 한다. 인간 무인의 심장이야말로 참, 맛이 좋지.”

“너 지기만 해 봐, 우리 모두 널 보지 않을 거다.”

나무 줄기에 서 있던 요족 고수들이 왁자지껄 떠들어 댔다. 그들은 좋은 구경거리를 놓칠 세라 아예 나무 줄기에 앉아서 기다렸다.

광사는 속으로 욕을 퍼부었다. 그는 내키지 않았지만 채접이 명령을 내린 이상, 어찌할 방법이 없어 양준에게 말했다.

“미안하다. 네가 이곳에서 죽어도 내 손속이 잔인하다고 원망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괜찮습니다. 전력으로 공격하십시오. 저도 요족 고수의 실력을 알고 싶었습니다.”

양준은 미소를 짓고는 도발하듯이 채접을 바라보았다.

“언니, 저 인간 참 재미있네. 전혀 두려워하지 않잖아.”

고양이 귀를 한 소녀가 신기하다는 듯이 양준을 바라보며 말했다.

“흥, 인간은 원래 교활한 술수를 부리기 좋아하지. 기다려봐, 이제 된통 당할걸.”

채접은 인간에 대해 잘 아는 것처럼 코웃음을 쳤다.

“그래, 그래. 광사가 좀 있다가 저 인간을 그냥 찢어발길 거야.”

고양이 귀를 한 소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곧이어 광사는 포효와 함께 산발머리를 휘날리며 기세 좋게 양준에게 달려들었다. 그는 어떤 무공도, 특별한 능력도 사용하지 않았지만 달려드는 힘이 큰 산을 꿰뚫을 정도였다.

양준은 광사의 힘이 도대체 어느 정도인지 느껴 보고 싶어 제자리에 선 채 피하지 않았다. 그는 온몸에 힘을 꽉 주고서 두 손으로 맞받아쳤다.

쿠웅-

강렬한 원기 폭발 가운데, 양준은 앞쪽에서 강한 힘이 전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윽고 그의 몸이 거꾸로 나가떨어졌다.

양준의 표정이 한층 차가워졌다. 광사의 실력을 과소평가한 듯했다.

양준은 허공에서 얼른 몸을 가누고, 착지하면서 연신 몇 걸음을 뒷걸음질 치고 나서야 겨우 멈춰 섰다.

“이렇게 약하다니…….”

고양이 귀를 한 소녀는 실망스러운 듯이 연신 입을 삐죽였다. 반면 채접은 실눈을 떴다. 그녀의 눈동자에는 놀라움이 서려 있었다. 원래 그녀는 양준의 실력이 강하지 않다고 생각했었다. 그의 몸속에서 내뿜는 원기 파동으로 미루어 볼 때, 광사보다 실력이 한참 뒤처진다고 여겼던 것이다. 하지만 이번 접전으로 양준은 충돌을 막지는 못했지만, 부상도 당하지 않았다.

채접은 적어도 양준의 두 팔이 가루가 될 거라고 생각했었다.

‘뜻밖이야. 녀석이 재주가 있는 모양이군.’

채접은 금세 흥미가 동해 눈도 깜빡하지 않고 싸움을 지켜보았다.

광사는 양준이 나가떨어진 것만으로는 만족스럽지 않은지, 숨 쉴 틈도 주지 않고 다시 포효하며 달려들었다. 그의 온몸의 원기가 횡포한 기운을 내뿜었다.

“조심하십시오.”

양준은 싸늘하게 그를 지켜보다가 한 손으로 아래쪽을 향해 홱 그었다.

그러자 허공에 금빛 찬란한 검이 나타나더니 세찬 기세로 광사를 내리쳤다. 앞으로 질주하던 광사는 낯빛이 급변하더니 얼른 멈춰 서서 두 팔을 들어 앞을 막았다.

짤그랑-

현천검은 광사의 팔에 닿자, 마치 구리를 벤 것처럼 금속음을 내더니 이내 산산조각 났다. 광사의 우람한 몸은 살짝 꺾였고, 두 팔에는 옅은 상처가 나 피가 배어 나왔다.

“어?”

양준은 흥분한 표정으로 눈썹을 치켜세웠다.

광사는 두 팔로 현천검의 일격을 막아냈다. 그의 육신의 강도는 고급 비보 못지않았다.

광사는 팔의 부상을 괘념치 않았다. 곧이어 그의 몸속에서 눈부신 빛이 폭발했다. 양준이 잠깐 넋을 놓은 순간, 광사는 번쩍하고 양준의 등 뒤로 가 예리한 발톱을 세워 등을 할퀴었다.

광사의 일격에 양준은 두 쪽으로 나뉘었다. 그러나 광사는 찝찝한 느낌이 들었다. 어딘가 잘못된 듯했다. 방금 전, 그는 실물을 할퀴는 느낌이 없었고, 또한 피가 튄 흔적도 없었다.

“광사, 네 뒤에 있어.”

고양이 귀 소녀가 초조해하며 얼른 일깨워 주었다.

양준은 미소를 지었다. 이윽고 그의 손에는 기다란 창이 나타났다. 광사가 미처 뒤돌아서기 전에 양준이 창을 투척했다. 주천모였다.

광사는 반응이 빨랐다. 고양이 귀 소녀의 귀띔에 곧바로 자리에서 피해 하늘로 솟구쳐 올랐다. 그러고는 마치 독수리가 먹이를 채듯이 아래쪽으로 달려들었다. 그와 동시에 그의 온몸의 원기가 봉쇄된 공간을 형성하며 양준의 퇴로를 모두 차단했다.

그런데 이때, 맞은편에서 손바닥이 덮쳐 왔다. 손바닥은 점점 더 커지고 무시무시해지더니 아무것도 볼 수 없게 광사의 두 눈을 모두 가렸다. 차천수였다.

쿠웅-

광사는 양준의 공격에 열댓 번을 곤두박질하고 나서야 땅바닥에 털썩 떨어졌다.

요족 고수들은 모두 넋을 잃고 이 광경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들은 경지가 높기에 경지와 힘만 놓고 보았을 때, 양준이 전혀 광사의 상대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정작 싸움을 시작하자, 광사는 아예 상대의 손에 놀아나고 있었다. 상대의 몸에 접근하지도 못하고, 계속 얻어맞을 뿐 반격할 기회도 없었다. 그들은 이러한 결과를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이윽고 광사는 땅에서 기어 일어났다. 방금 전의 접전으로 정말 화가 난 듯했다. 지금 이 순간, 그의 몸속 원기는 매우 불안정했다. 그는 표정이 일그러지고, 눈동자가 빨갛게 달아오른 것이 반드시 양준을 죽일 듯한 기세였다.

양준은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는 구천신기만으로도 광사를 쉽게 상대할 수 있었고, 시종일관 전력을 다하지 않았다. 광사와의 싸움은 이곳을 예의 주시하는 사람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었다. 그의 짐작이 맞다면, 이곳을 주시하고 있는 사람은 바로 요족의 대존일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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