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련전봉-797화 (796/853)

제 797장. 요족 대존을 만나다

양준은 성릉에서 구천신기를 모두 각성했고, 지금 필요한 것은 숙련도와 경험이었다. 광사와 같은 초범 경지 3단계 무인은 그가 바라 마지않는 대련 상대였다. 전투 중 구천신기는 놀라운 위력을 발휘했다. 그리고 싸움이 지속될수록 구천신기에 대한 양준의 숙련도는 점점 더 높아졌다.

요족 고수들은 드디어 광사가 양준의 상대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언니, 저 인간은 수단이 참 많네.”

고양이 귀 소녀가 눈을 반짝였다. 그녀는 신기한 걸 본 것처럼 연신 감탄했다.

채접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상하게 설명해 주었다.

“인간은 내단과 타고난 강한 육신이 없단다. 그래서 몸속의 진원을 활용해서 무공을 펼치는 거야. 심지어 인간의 많은 무공들은 우리 요족의 수단을 본떠서 만든 것이기도 해. 앞으로 인간과 싸우게 되면 이런 것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괜히 큰코다칠 수 있으니까.”

“알겠어. 저 인간을 사로잡아 나하고 놀게 하면 안 돼? 수단이 저렇게 많은데, 같이 놀면 재미있을 것 같아.”

고양이 귀 소녀는 연신 고개를 끄덕이고는 문득 흥이 나서 말했다.

채접은 그 말에 깜짝 놀라더니 이내 이마를 문지르며 쓴웃음을 지었다.

“그건 안 될 거 같아.”

“왜 안 되는데?”

“왜냐하면…….”

채접은 말을 채 끝내지도 못하고 얼굴빛이 바뀌더니 고개를 들어 뇌목부의 위쪽을 올려다보았다. 이윽고 무슨 지시를 받았는지 정색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예!”

곧이어 사뿐 몸을 일으킨 그녀는 차가운 눈초리로 아래쪽 접전을 지켜보다가 소리쳤다.

“그만해!”

그녀의 명령에 광사는 얼른 양준에게서 물러섰다. 그러고는 기괴한 표정을 하고서 연신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너 대단하구나. 며칠 전에 섣불리 싸우지 않은 게 다행이야. 아니면 정말 큰코다칠 뻔했어.”

“과찬이십니다. 형님도 대단하십니다.”

양준이 웃으며 대답했다.

“그럼…….”

광사는 금세 또 의기양양해졌다. 이때 채접이 싸늘한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자, 광사는 멋쩍은 표정을 짓더니 얼른 도망쳤다. 이윽고 멀리서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전 이만 순찰하러 갈게요. 요즘 밀림이 태평하지 않군요.”

광사가 떠난 다음에야, 양준은 고개를 들어 채접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당신들의 시험을 통과한 겁니까?”

“잘난 척하긴! 따라와. 대존께서 만나 보자고 하신다.”

채접의 눈동자는 온통 혐오감으로 물들어 있었다. 그녀는 쌀쌀하게 말하고는 날갯짓을 해 위쪽으로 날아갔다.

양준은 고개를 끄덕이고 얼른 그녀의 뒤를 따랐다. 나무 줄기에 있던 요족 고수들은 그가 사라지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들 모두 여운이 남은 듯한 표정이었다. 방금 전 접전이 결판나지 않은 게 아쉬운 모양인 듯했다.

고양이 귀 소녀는 아예 입을 삐죽 내밀고 미련이 가득한 시선으로 양준을 바라보았다.

*

고목은 정말로 구름층을 뚫고 있었고, 나무 줄기가 넓고 컸으며 무성했다. 적지 않은 요족들은 나무 줄기에 구멍을 파거나, 아니면 통나무집을 지어 지냈다. 고목 전체가 삶의 터전으로, 곳곳에서 요수들의 모습이 보였다.

양준은 문득 이곳에는 남다른 결속력이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세상에 요수들은 많지만, 지능을 가진 요족은 적었다. 때문에 인간이나 마족과 비교했을 때, 더욱 결속력이 있었다. 대존 이하의 모든 이는 형제자매 사이처럼 끈끈했다. 광사가 채접을 만났을 때도 두려워하긴 했지만, 허례허식 같은 것은 없었다.

또한 인간의 모습을 갖춘 요족 고수는 더욱 적었다. 대다수는 본체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수해밀림에 들어오고 나서 지금까지 양준이 본 인간 모습을 한 요족 고수는 열 명을 넘지 않았다.

위로 올라갈수록 영기가 짙어졌고, 나무 줄기에는 적지 않은 우레 성질의 기운이 내재돼 있었다. 아마 오랜 시간 동안 우레와 번개의 힘을 끌어당기다 보니, 만 년 된 뇌서목에 우레의 기운이 밴 듯했다.

한참 동안 날아서야 두 사람은 구름층에 도착했다. 주위에는 솜덩이 같은 흰 구름들이 흐르고 있었다. 손을 뻗으면 닿을 것만 같은 흰 구름들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그리고 흰 구름 사이로 정교한 통나무집이 보였다. 통나무집은 고목의 비스듬히 뻗어 나간 나무 줄기 위에 우뚝 솟아 있었다.

이때, 은은한 기운이 통나무집 안에서 전해졌다.

양준은 마음속으로 흠칫 놀랐다.

“들어가. 대존께서 안에서 기다리고 있어.”

채접은 통나무집 앞에서 멈춰 서더니 양준에게 말했다.

“고맙습니다.”

양준은 채접에게 고개를 끄덕여 보이고는 통나무집으로 들어갔다.

집 안에 들어서자, 방 한가운데 단정히 앉아 있는 중년이 눈에 들어왔다. 중년은 준수한 외모에 소박한 베옷 차림을 하고 있어 크게 위협적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다만, 그의 이마 양쪽에는 짧은 뿔이 하나씩 나 있었는데, 붉은색과 남색의 두 뿔에는 짙은 화성, 뇌성(雷性) 기운이 내재돼 있었고, 수시로 신비한 빛이 스쳐 지나갔다. 본체가 8급 정상 요수 적염뇌룡인 요족 대존이었다.

양준은 숙연한 표정을 지었다.

대존은 천천히 두 눈을 뜨고서 양준을 덤덤하게 바라보았다. 전혀 쏘아보는 눈빛이 아니었음에도 양준은 저도 모르게 어색함을 느꼈다. 마치 자신의 모든 비밀이 대존에게 폭로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양준은 깜짝 놀라 얼른 식해를 봉인하고 자신의 기운을 거두어들였다.

대존은 미소를 지었다. 준수한 얼굴에 피어난 미소는 왠지 사악해 보였다.

“네가 그 사람의 후계자인 것이냐?”

“네!”

양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대존이 말하는 그 사람은 구천성지의 전임 성주일 터였다.

“경지는 그 사람보다 못하지만, 자질은 괜찮네.”

“과찬이십니다.”

“무슨 일로 찾아왔지? 수해밀림은 인간이 진입하는 것을 금지한다. 감히 이곳에 들어서는 자는 모두 우리 요족의 먹잇감이 되었지. 네가 그 사람의 후계자이기에 건드리지 말라고 한 것뿐이야. 하지만 네가 감히 날 언짢게 하면, 끝이 비참할 거야. 내가 그 사람과 친분이 있다고 해서, 그 사람이 몸 담고 있는 세력과도 친분이 있는 건 아니니까. 그러니… 잘 생각하고 대답해.”

대존은 덤덤한 말투로 말했지만 양준은 그의 말에서 언짢음을 읽을 수 있었다. 아마도 양준이 너무 젊고, 경지도 높지 않아 자신과 대등하게 대화할 자격이 없다고 여기는 듯했다.

양준은 씩 웃어 보이고는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침착하게 건곤대 두 개를 꺼내 그의 앞에 내려놓았다.

“전임 성주와 대존께서 사이가 좋았다고 들었습니다. 저는 전임 성주의 후계자로서 대존을 만나러 찾아왔습니다. 앞으로 계속해 왕래가 있을 것 같아서요.”

대존은 피식 웃고서 건곤대 두 개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하찮다는 듯이 말했다.

“내가 그 사람과 사이가 좋았던 것은 그의 실력을 인정하기 때문이었다. 그럼 너에겐 내가 인정할 만한 게 뭐가 있느냐? 몇백 년이 지나면 그럴 자격이 있을 수도 있겠지. 하지만 지금의 너는… 아직 아니야.”

“몇백 년이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겁니다. 기껏해야 2~30년 정도 되면 그만한 자격을 가질 수 있을 겁니다.”

대존은 가볍게 냉소하고는 고개를 저었다.

“방자하구나… 그럼 2~30년 뒤에 다시 찾아오너라. 그때까지 살아 있으면 말이다.”

자신 같은 사람은 분명 요절할 거라고 확신하는 듯한 대존의 표정에, 양준은 불쾌하기 그지없었다. 그는 미간을 찌푸리고서 다시 입을 열었다.

“투자성 거래를 할 의향은 없으신가요?”

“투자라고? 너한테 투자하라는 것이냐? 내가 왜 그래야 하지? 눈으로 확인할 수 없는 이득에 대해 나는 흥미가 없단다.”

대존은 양준을 곁눈질해 보고는 가볍게 웃었다. 그러고는 양준이 대답하기도 전에 한마디 덧붙였다.

“너희 성지가 요즘 힘들어 보이더구나.”

양준은 고개를 끄덕이고 나서 의아한 듯 물었다.

“대존께서도 성지의 지금 상황을 전해 들었습니까?”

“난 너희 쪽 일을 알아볼 생각이 없다. 하지만 그 사람이 임종 전에 여기에 다녀갔었다. 지금의 상황을 예견했었지.”

“전임 성주께서 지금의 상황을 예상했었다고요?”

“그래. 그는 자신의 죽음이 임박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죽기 전에 곁에 둔 여인을 죽여야 하지만 평생 함께한 여인이라 차마 손댈 수가 없다고 하더군. 그러니 그 여인은 반드시 천인공노할 짓을 저질렀을 것이고… 지금 너희들은 아마 포위 공격당하고 있겠지?”

양준은 정색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대존께서는 제가 찾아온 목적을 알고 계시겠군요.”

대존은 냉소하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당연히 알고 있지. 하지만 안타깝게도 난 널 도울 수 없어. 설령 네가 많은 물자를 가져다준다고 해도 말이다. 우리 요족이 이리 오래도록 맥을 이어올 수 있었던 것은 몇 안 되는 고수들 때문이 아니야. 중요한 것은 다른 종족의 일에 끼어들지 않았기 때문이지. 수해밀림을 떠나 너희들 인간의 세력 범위로 들어가면, 모든 상황은 내가 제어할 수 없게 된다. 얼마 되지 않는 이득 때문에 요족 전체를 위험한 상황에 빠뜨릴 수는 없지. 요족대존으로서 내가 그리 근시안적이겠느냐?”

대존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양준은 쓴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대존께서 상황을 이리 훤히 꿰고 계시니, 저도 말을 길게 하지 않겠습니다. 당신이 저를 돕든, 안 돕든 성지의 사람들은 위험하지 않을 겁니다. 이미 잠시 동안 성지를 포기하기로 했거든요. 언젠가 힘을 모아 다시 성지를 되찾을 테니까요. 하지만 성지의 자원을 외부인에게 그저 주고 싶지는 않습니다. 대존과 전임 성주께서 친분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에, 잠시 저희 대신 성지를 지켜 달라고 부탁하려던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되면 당신들도 이 기회에 실력을 높일 수 있지 않겠습니까?”

대존은 미간을 찌푸린 채 차가운 시선으로 양준을 바라보았다. 지금 이 순간 양준의 생각을 꿰뚫어 보려는 것만 같았다.

대존은 한참을 망설이다가 말했다.

“성지의 진법이 대단해 영기가 짙은 건 확실하지. 우리 요족들이 그곳에서 수련하면 실력이 빨리 오를 수 있고 말이야. 하지만 그 정도 이익만으로 수해밀림을 떠나 성지로 가지는 않을 것이다.”

“만약 성지의 연단사를 모두 남겨 두고 연단해드리면요? 요족 중에는 연단에 능통한 사람이 없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또한 연기사도 남겨 둘 수 있습니다. 저희가 돌아오기 전까지, 그들은 요족들에게 단약과 비보를 제련해 줄 것입니다. 물론 재료는 당신들이 제공해야 하지만요. 하지만 이건 큰 문제가 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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