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련전봉-799화 (798/853)

제 799장. 제가 좀 시도해 봐도 될까요

양준이 떠나려는 순간, 화생지에서 놀랄 만한 원기가 폭발했다. 화생지 전체가 갑자기 들끓으며 아래쪽에서 기포가 부글부글 끊임없이 올라왔다. 이와 동시에 산골짜기의 영기가 어지러워졌고, 화생지 주변에는 거대한 진법이 스쳐 지나갔다.

양준은 순간 눈을 반짝 빛내며 걸음을 멈추었다. 그는 형형한 눈빛으로 화생지를 포함한 주변을 바라보며 신식을 폭발시켜 땅 밑까지 침투해 탐지하기 시작했다.

갑자기 변고가 생기자, 채접은 양준과 실랑이질하지 않고 묘낭과 함께 화생지 속에서 발버둥 치며 처참하게 울부짖는 백옥록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미간에는 짙은 걱정이 드리웠다.

화생지 옆에 서 있던 대존의 표정이 좀 전보다 더 어두워졌다. 몸속의 원기가 거세게 흘러나와 화생지 주변으로 퍼져 나갔지만 여전히 아무 소용도 없었다. 대존 같이 강한 고수도 화생지 속 원기의 폭발을 억제할 수 없었던 것이다.

화생지에 몸을 담그고 있던 백옥록은 뛰쳐나오려고 했지만, 무형의 큰 손에 사로잡힌 것처럼 좀처럼 그곳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백옥록의 입에서 다급한 비명이 연신 터져 나왔다. 대존을 바라보는 그의 눈동자에는 온통 생명에 대한 미련으로 넘쳐났다.

이 광경을 본 요족들은 슬픔에 잠겼다. 분위기가 금세 무거워졌다.

육안으로 볼 수 있는 신비한 힘이 백옥록의 몸속에서 날뛰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수많은 벌레처럼 백옥록의 피와 살 속을 누비고 다녔다. 그러다 때때로 백옥록 몸의 어느 한 곳이 혹처럼 커다랗게 불거져 나오기도 했다.

이내 새빨간 피가 백옥록의 온갖 구멍에서 흘러나왔다. 인간의 모습을 갖출 수 있는 조건을 구비한 7급 요수가 폭발해서 죽기 일보 직전이었다. 대존의 몸속에서 방출되던 원기도 많이 줄어들었다. 대존은 착잡한 표정으로 백옥록을 바라보며 무기력감을 드러냈다.

백옥록은 조금 뒤면 죽게 될 판이었다. 다들 제자리에 서서 묵묵히 애도했다. 적지 않은 이들은 눈물을 흘렸다.

“언니, 백옥록을 좀 구해 줘…….”

묘낭이 훌쩍거리며 채접에게 애원했다.

채접은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소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대존도 속수무책인데, 그녀인들 무슨 수가 있겠는가?

“제가 좀 시도해 보면 안 될까요? 혹여 백옥록의 목숨을 구할 수도 있습니다.”

줄곧 화생지를 살펴보던 양준이 갑자기 말했다.

채접은 순간 놀라면서 의혹에 찬 눈으로 그를 힐끗 보고는 노기를 띤 채 말했다.

“겨우 인간 따위가?”

양준은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당당하게 그녀를 마주 보았다.

채접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양준이 무슨 자신감으로 나서는지 알 수 없었지만, 그녀는 하찮다는 듯이 말했다.

“백옥록을 구할 재주가 있어? 대존께서 네 조건을 승낙했다고 함부로 나대려 하지 마. 여긴 요역이지, 너희들 인령이 아니란 말이다. 날 잘못 건드리면 언제든지 죽여 버릴 수 있어.”

“저하고 이런 말을 할 시간이면 대존께 여쭤 보시죠. 대존께서 어떻게 결정하실지?”

양준은 차갑게 콧방귀를 뀌었다. 채접은 그를 만나자마자 적대감을 드러냈다. 자신이 어떤 면에서 그녀에게 밉보였는지, 그로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제가 나서면 백옥록을 살릴 수도 있고, 아니면 그냥 죽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당신이 계속해 지금처럼 쓸데없는 소리만 하면 백옥록은 반드시 죽을 겁니다. 가망이 없지만 무슨 수라도 써봐야 할 거 아닙니까?”

채접은 차가운 표정으로 또다시 뭐라고 말하려 했다. 이때, 묘낭이 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대존께 물어볼게.”

말을 마친 소녀는 민첩하게 몇 번 폴짝폴짝 뛰어 화생지로 가서는 급히 대존에게 물었다.

채접은 미간을 찌푸린 채 그쪽을 바라보다가 다시 싸늘하게 양준을 보고는 나지막하게 일갈했다.

“뭔 꼼수를 부리려는 거야? 화생지를 훼손하려는 건 아니겠지?”

양준은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원래 그렇게 의심이 많습니까? 그리고 인간을 무척이나 싫어하는 거 같은데, 혹시 인간한테 무슨 일이라도 당했습니까?”

채접의 눈동자에서 순간적으로 살기가 흘러넘쳤다. 양준의 말이 그녀 마음속 상처를 꼬집었는지, 그녀의 예쁜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녀가 화내기 전에 양준이 얼른 말을 이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화생지에는 흥미가 없습니다. 제가 흥미가 동하는 것은 화생지 아래쪽에 있는 물건입니다.”

“아래쪽에 뭐가 있어?”

채접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녀가 미처 물어볼 새도 없이 묘낭이 다시 돌아와서는 다짜고짜 양준을 끌고 화생지 쪽으로 질주했다.

“대존께서 빨리 오라고 했어.”

양준은 고개를 끄덕이고 채접의 경계 어린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묘낭을 따라 화생지 곁으로 다가갔다.

“뭔 꼼수를 부리는지 지켜볼 거야.”

채접은 차갑게 콧방귀를 뀌고는 얼른 쫓아갔다.

요족 고수들도 이 광경을 보고 너도나도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그들은 이런 중요한 순간에 대존이 왜 인간을 부르는지 알 수 없었다.

잠시 뒤, 양준은 화생지 옆에 이르렀다. 그곳에서는 화생지 안에서 뿜어져 나오는 방대한 기운의 무시무시함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너한테 방법이 있다고 하던데?”

대존은 위엄 어린 눈빛으로 양준을 바라보며 나지막하게 물었다.

“시도해 보겠습니다.”

양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확실하게 장담하지는 않았다.

“그냥 시도해 본다고?”

대존은 불쾌한지 미간을 잔뜩 구겼다.

“어차피 이대로 시간이 지나면 백옥록은 죽을 게 뻔하지 않습니까? 제가 시도해 보면 혹여 위험에서 벗어날 수도 있고요.”

양준이 옅게 웃으며 대답했다.

대존은 잠깐 망설이다가 결단력 있게 말했다.

“좋아. 해봐! 성공하든, 못 하든 사후에 나한테 합리적인 해명을 해야 할 거야.”

“알겠습니다.”

양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나서서 돕기로 한 이상, 이미 대존이 연유를 따져 물을 것에 대비하고 있었다. 이윽고 그는 두 눈을 감았다. 파도 같은 신식이 미친 듯이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그의 신식에 내재된 힘을 감지한 요족 고수들은 일제히 낯빛이 바뀌었다. 대존도 엉겁결에 나지막하게 소리쳤다.

“신식의 불꽃?”

이쪽으로 걸어오던 채접은 순간 걸음을 멈췄다. 그녀의 눈동자가 가볍게 떨렸다.

양준은 신식을 한꺼번에 폭발시키다 보니 더는 신식의 경지를 숨길 수가 없었다. 이는 입성 경지 1단계와 비견될 수 있는 신식의 힘이었고, 또한 특수한 것이기도 했다.

양준의 신식의 힘은 모두 땅 밑으로 스며들었다. 그 누구도 양준이 도대체 무엇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단지 그의 신식의 힘이 규칙적으로 땅 밑을 누빈다는 것을 감지할 수 있을 뿐이었다.

화생지를 중심으로, 대지에는 이따금씩 밝은 원기 회로가 반짝였다.

화생지 속에 있는 백옥록은 여전히 고통스럽게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온몸의 피와 살도 불규칙적으로 꿈틀거리고 뼈에서도 뿌드득, 소리가 들려왔다. 몸속에서 세차게 흐르는 신비한 기운은 그를 산산조각 내려 하고 있었다.

백옥록의 눈에 맺힌 피가 방울방울 굴러 떨어졌다. 하지만 백옥록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기대와 애원이 담긴 눈빛을 한 채 양준을 바라보고 있었다.

양준은 전혀 흔들리지 않고 더욱 빠르게 신식을 방출했다. 그러자 점차 화생지의 어지러운 기운이 평온해지기 시작했다.

모든 이들은 눈앞이 밝아지는 것만 같았다. 원래 양준에게 편견을 가지고 있던 채접마저도 저도 모르게 기대와 관심이 섞인 눈빛을 보냈다. 양준이 대존도 못한 일을 해냈던 것이다.

“백옥록, 힘내!”

묘낭은 백옥록을 응원하는 한편, 긴장한 표정으로 양준을 주의 깊게 살펴보았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화생지의 기포는 점점 크기가 작아지고 양도 적어졌다. 기운이 평온해지자 화생지에 있던 백옥록은 더는 고통스러워하지 않고 오히려 즐거운 표정을 지었다.

“정말 해냈네?”

채접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눈앞의 광경을 바라보며 순간 넋이 나가고 말았다.

주변에서 보고 있던 요족 고수들도 모두 멍해서 숨을 죽이고 지켜보았다. 하지만 그들의 얼굴에는 흥분과 기쁨이 더 많이 서려 있었다. 그들은 백옥록이 죽음에서 벗어난 것을 못내 기뻐했다.

반 시진 뒤, 모든 것이 다시 질서가 잡혔다.

한 시진 뒤, 아직 화생지 속에 있던 백옥록에게서 이전과 같은 상황이 발생했다. 또다시 피와 살이 꿈틀거렸고, 온몸의 뼈가 소리를 내고 있었다. 백옥록은 참을 수 없는 고통을 겪는지, 연신 비명을 질렀다. 그러나 이를 지켜보는 요족 고수들은 전혀 걱정하지 않았고, 오히려 기쁜 표정을 지었다.

백옥록이 드디어 사람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던 것이다. 아니다 다를까, 백옥록의 형체가 점차 사람 모습으로 변해 갔다.

양준은 눈을 커다랗게 뜨고 신비한 광경을 지켜보며 혀를 내둘렀다.

변형 과정은 오래도록 지속되었다. 화생지 속에서 이마에 사슴 뿔 두 개가 난 알몸의 소년이 나타났을 때, 요족 고수들은 모두 환호성을 터뜨렸다.

화생지 옆에 있던 대존이 손을 휘저어 진작 준비해 둔 옷으로 소년을 감싸고는 흡입력으로 소년을 화생지에서 끌어내었다.

소년은 땅바닥에 무릎을 꿇은 채, 온몸을 격렬하게 떨면서 숨을 몰아쉬었다. 한참이나 지나서야 소년은 휘청거리며 일어나더니 고개를 돌려 주변을 둘러보았다. 소년의 초롱초롱한 눈은 온통 호기심으로 가득 차 있었다.

“또 한 명이 늘었네. 히히! 아이, 좋아.”

묘낭은 폴짝 뛰어가서 소년의 머리를 다독이며 기쁜 표정으로 말했다.

소년은 고개를 돌려 양준을 보고는 입을 벌름거렸다. 아직 말을 할 수 없었지만 그의 앳된 얼굴에는 감동한 기색이 역력했다.

“조급해하지 마. 며칠 쉬고 나면 누나가 말하는 걸 가르쳐 줄게.”

묘낭이 위로하자, 소년은 사랑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채접, 데려가서 쉬게 해.”

대존이 낮은 목소리로 분부했다.

채접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복잡한 시선으로 양준을 바라보더니 묘낭과 함께 소년을 데리고 뇌목부 쪽으로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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