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01장. 그들이 공격했습니까?
두 사람은 한참 동안 유쾌하게 담소를 나누었다.
비우가 빚은 술은 결국 대존이 혼자 다 마셨지만, 양준은 술이 아깝지 않았다. 그에게 있어 요족과 우호 관계를 맺는 것이 술보다 훨씬 더 중요했다. 물론 그 중에는 일부 이익과 갈등이 섞여 있었지만 크게 중요하지는 않았다.
화생지는 그가 이번에 보수했기에, 짧은 시간 안에는 문제가 없을 것이었다. 또, 대존에게 가르쳐 줄 영진도 몇 개뿐이어서 양준에게는 어떤 손해도 없었다. 이윽고 양준은 작별을 고했다. 대존은 물론 그를 잡지 않았다.
뇌목부 아래쪽에서 양준이 구해 준 백옥록이 양준을 기다리고 있었다. 인간의 모습으로 변형한 그는 부끄러움을 타는 소년일 뿐이었다. 피부가 여인처럼 희고 깨끗해 무척이나 순수해 보였다. 백옥록은 직접 양준에게 감사의 인사를 하고 무척이나 뿌듯해했다.
이에 양준은 자신에겐 큰일이 아니니 신경 쓸 필요 없다며 한참 인사치레를 하고 나서, 그대로 왔던 길로 도로 나가 구천성지 쪽으로 향했다. 수해밀림에 발을 딛고 나서부터 뇌목부에 이르기까지 족히 사흘이 걸렸다. 다시 돌아갈 때도 똑같은 시간이 필요했다. 하지만 시간이 충분했기에 양준은 조급해하지 않았다.
이틀 뒤, 양준은 비행 중에 어떤 기운이 빠르게 접근해 오는 것을 느꼈다. 그는 한참이나 감지해 보고서 미소를 지으며 걸음을 멈췄다.
얼마 안 되어, 광사가 다가오며 소리쳤다.
“친구, 돌아왔어?”
“네. 또 만났군요.”
양준은 광사에게 고개를 끄덕여 인사했다.
광사는 입을 삐죽 내밀고 말했다.
“줄곧 이곳에서 널 기다렸어… 대존께서 네 부탁을 받아들였어?”
“네. 아마 며칠 뒤면 대존께서 사람들을 거느리고 성지로 갈 겁니다.”
“하하, 정말이야?”
광사는 무척이나 기쁜지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그는 한참을 덩실덩실 춤추다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참 잘된 일이야. 줄곧 밖에 나가 보고 싶었는데, 이제 더는 밀림에 갇혀 있을 필요가 없어. 온종일 탐지만 하고 심심해 죽겠단 말이야.”
양준은 광사가 왜 이리 기뻐하는 지 알아채고는 실소하고 말았다. 이내 그는 공수하며 말했다.
“형님도 오시면 물론 환영입니다. 때가 되면 꼭 잘 접대할게요.”
“물론 꼭 갈 거야. 인간 세계에는 신비한 물건들이 많다면서? 난 꼭 세상 구경을 할 거야.”
“신비한 물건들은 많습니다. 하지만 위험한 것도 많죠. 조심해야 할 겁니다.”
“위험한 게 뭐 대수야. 위험할수록 더 좋아. 아니면 이곳에 있는 것처럼 여전히 심심할 거 아니야?”
“형님께서 그렇게 생각하면 상관없죠… 음, 전 이만 가 봐야겠습니다. 그럼 성지에서 대존과 여러분을 기다리겠습니다!”
“그래, 조심히 가.”
광사는 손을 저어 인사했다. 양준이 떠나고 나서 그는 다시 방향을 돌려 뇌목부 쪽으로 날아갔다. 아마 대존에게 성지로 가겠다고 자청하려는 모양인 듯했다.
*
또 이틀이 더 지나, 양준은 구천성지에 무사히 돌아왔다. 조용히 신식을 방출한 그는 곧 떠나기 전과 다른 점들을 발견했다. 성지와 십 리 정도 떨어진 곳에서 수많은 인간들의 종적이 느껴졌다. 또한 성지의 결계와 금제도 공격을 받았는지 많이 약해져 있었다.
양준의 낯빛이 차가워졌다. 곧이어 그는 적들이 약속을 어기고 며칠 전에 공격을 해왔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다만 탐색이 목적이었는지, 결계에는 큰 문제가 없었다.
양준이 돌아왔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서휘를 포함한 장로, 호법들이 곧 모여들었다.
대전 안,
성지의 입성 경지 여섯 명과 유일하게 남은 성녀, 안령아까지 모두 모였다. 그들은 모두 양준을 간절히 바라보며 그가 입을 열기를 기다렸다.
“일은 잘 풀렸습니다. 요족의 대존은 저희를 도와 이번의 위험한 고비를 넘겨주기로 했습니다. 물론 그에 따른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다들 도무지 믿을 수가 없다는 표정이었다. 사실 그들은 양준의 계획과 제안에 동의했지만 큰 기대를 하지 않았었다. 새 성주의 체면을 고려해 반박하지 않았을 뿐이었다. 이번에 양준이 만나야 할 사람은 요족의 대존으로, 상대하기 만만치 않은 이였다. 하지만 고작 열흘 만에, 양준은 일을 해결하고 돌아왔다.
“우리가 어떤 대가를 치러야 하는가?”
서휘는 의혹이 담긴 말투로 물었다.
“요족들이 힘을 기르는 동안, 성지의 모든 연단사와 연기사들은 남아서 그들을 위해 일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성지 안의 정석을 채굴할 겁니다.”
“그 두 가지뿐인가?”
“네, 두 가지뿐입니다.”
사람들은 서로 마주 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요족들이 정석을 채굴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성지의 사람들이 여기서 철수하게 되면 정석 광맥은 적들의 손에 떨어지게 될 터인데, 그럴 바엔 요족들이 이득을 보게 하는 쪽이 나았다. 연단사와 연기사를 남겨 요족들을 위해 일하게 하는 것도 별문제가 안 되었다. 다들 이처럼 간단한 조건은 받아들일 수 있었다. 이렇게 되면, 구천성지가 요족에게 도움을 청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구천성지가 요족의 힘을 빌려 적들을 물리치는 것과 같았다.
다만 요족들도 상대하기 만만치 않았다. 요족들이 정말 성지에 터를 잡는다면, 그들을 다시 쫓아내려고 해도 힘을 많이 들여야 할 터였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렇게 멀리까지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어찌됐든 이것은 새 성주의 결정이고, 그들은 그 결정에 따르면 될 일이었다. 언젠가 새 성주가 실력이 강해지면 다시 성지를 찾는 것은 식은 죽 먹기일 것이라 다들 믿어 의심치 않았다.
지난 며칠 동안, 양준은 성지를 위해 멀리 요역까지 다녀왔다. 서휘는 양준이 성지의 일에 점점 더 열정적인 것 같아 기쁨을 감출 수가 없었다. 이대로 나아간다면, 양준은 조만간 성주의 자리를 계승하게 될 것이 분명했다. 따라서 서휘는 눈앞의 재난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대장로, 결계가 공격을 받은 것 같더군요. 제가 없는 동안, 그들이 공격했습니까?”
양준은 다른 생각에 넋을 놓은 서휘를 바라보며 물었다.
서휘는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하루 전에 그들이 탐색전으로 공격했었네. 성지의 진법이 다시 가동된 것을 보고 금방 포기했지. 하지만 그들이 모인 상황을 보니 대규모 공격이 하루이틀 사이에 있을 것 같네.”
“시간은 충분합니다. 지금 먼저 제자들의 철수를 준비하십시오. 준비가 다 되면 저를 부르세요.”
“알겠네.”
장로, 호법들은 거듭 고개를 끄덕였다.
양준은 요족 대존과 친분을 다졌고 그에게 빚까지 지게 했지만, 성지의 사람들이 이곳에 남아 요족과 공존하는 것은 좋지 않다고 생각했다. 때문에 성지 사람들은 반드시 철수해야 했다. 괜히 두 종족 사이에 불쾌한 일이 생겨, 자신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갈 수도 있었다. 더욱이 그가 성지의 사람들을 위해 마련한 곳은 폐관 수련하기 안성맞춤인 곳이었다.
장로, 호법들은 철수 준비에 바삐 보냈다.
안령아는 양준의 곁을 따라다니면서 그에게 영혼 반지의 다른 쓰임새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영혼 반지는 구천성지 성주의 징표로, 그것이 있어야만 열 수 있는 곳들로는 창고, 성지의 진법 등이 있었다. 그 외에도 성지 진법의 도움을 받으면, 성주가 시전한 구천신기의 위력이 몇 배는 더 강해질 수 있다는 사실도 알려주었다. 산마다 현묘한 기운이 내재되어 있는데, 각각 구천신기 아홉 가지에 대응한다고 했다. 때문에, 성주가 성지에서 전투를 벌이게 되면, 경지가 너무 떨어지지 않는 한 거의 천하무적이라고 할 수 있었다.
안령아의 설명을 들은 양준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는 서둘러 영혼 반지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제야 그는 영혼 반지에 숨겨진 비밀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에 따라 그는 다가올 전투에 자신이 생겼다.
양준은 틈을 타 구천성지의 창고에 다녀왔다. 그는 아무 거리낌도 없이 창고 안의 모든 것을 싹쓸이해 검은 책 공간에 넣었다. 아무튼 성지의 사람들은 잠시 동안 철수할 터였다. 물건들을 이곳에 남겨 뒀다가 외부인들에게 넘어가느니 자신이 챙기는 게 나았다.
양준은 각종 약재, 광물, 비보, 정석들을 두둑하게 챙기고 단번에 벼락부자가 되었다.
*
이틀 뒤, 동이 틀 무렵.
별채에서 눈을 감고 쉬고 있던 양준은 문득 기운 파동이 성지의 어느 한 곳에서 전해지는 것을 감지했다. 그는 눈을 뜨고서 차가운 눈빛으로 그쪽을 바라보았다.
드디어 적들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이곳에 모여들었던 고수들이 끝내 기다리지 못하고 구천성지를 공격한 것이다.
양준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성큼성큼 밖으로 걸어 나갔다.
별채 밖,
서휘를 포함한 장로, 호법들이 한 줄로 서 있었다. 다들 엄숙한 표정으로 양준을 기다리는 듯했다. 그들은 하나같이 무거운 표정으로, 살짝 긴장한 듯하면서도 적개심을 불태우고 있었다.
양준이 나타나자, 다들 예를 올렸다.
양준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가 봅시다. 도대체 누가 이리 죽으려고 환장했는지!”
장로, 호법들의 눈에는 날카로운 빛이 스쳐 지나갔다. 그들은 얼른 고개를 끄덕이고 양준의 뒤를 따랐다.
그제야 그들은 양준이 요역에서 돌아온 뒤로 전처럼 자신들을 싫어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비록 스스로 인정하지는 않았지만, 양준은 일 처리나 언사에 있어 성주로서의 책임을 다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이러한 변화를 느끼고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들은 저도 몰래 성지의 미래에 기대를 품게 되었다.
쿠웅- 쿠웅- 쿠웅-
굉음이 성지에 울려 퍼졌다. 어느 한 곳의 결계에 잔물결이 겹겹이 일었지만 여전히 철옹성처럼 끄떡없었다. 적들이 아무리 맹공격해도 결계는 조금도 손상되지 않았다.
영혼 반지는 양준의 손에 끼워져 있었고, 성지의 결계도 그가 가동한 것이었다. 때문에 그는 결계와 미묘한 연결 고리가 있었다. 양준은 결계에 떨어지는 공격을 누구보다도 더 뚜렷하게 느낄 수 있었다. 이는 초범 경지 무인들의 공격으로, 입성 경지 무인들은 아직 나서지 않은 듯했다.
얼마 안 되어, 일행은 성지의 변두리에 이르렀다. 그들은 허공에 우뚝 서서 아래쪽을 굽어보았다. 양준은 저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렸다.
“사람들이 참 많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