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련전봉-804화 (803/853)

제 804장. 일거양득

“운훤이와 저 사람 사이에 뭔가… 있는 게 아닌가?”

운성은 그의 말에 미간을 찌푸리더니 의미심장하게 물었다.

기염은 헛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때 당시 봤을 때는 그런 듯했습니다. 하지만 그가 죽은 줄 알았기에 이 일을 맹주님께 보고드리지 않았습니다. 저를 벌하여 주십시오.”

운성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괜찮네. 운훤이도 다 큰 처녀인데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 건 당연한 거지……. 그래서 독오성에 돌아온 뒤 한동안 울적해 있었군. 난 또 걔가 예전의 일 때문에 나와 감정의 골이 있어 그런 줄 알았지. 그럼 저 사람은 운훤을 잘 대해 주던가?”

“그런대로 괜찮은 편이었지만, 특별히 관심을 쏟는 모습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젊은이들 일이란 게… 허허!”

“그래? 그렇다면 만약 이번에 구천성지가 무너지지 않으면 우리 독오맹에도 기회가 있겠군!”

“그 말씀은…….”

기염은 운성의 속뜻을 곧바로 알아챘다.

“지켜봅세. 혹시 이번 난관을 버텨내지 못할 수도 있으니까. 만약 이번 고비를 넘기면 그때 다시 이야기하는 거로 하지. 음, 우린 이번에 눈치껏 싸우는 척만 해야 하네. 이번 풍파에 휘말려서는 절대 안 되네.”

“맹주님, 영명하십니다.”

*

다른 한쪽, 마찬가지로 누군가 흥미진진하게 양준을 훑어보고 있었다. 양준이 열화성에서 관을 멘 사람에게 잡혀 갔던 그 젊은이라는 것을 확신한 그는 옅은 미소를 띤 채, 서둘러 앞쪽으로 걸어갔다.

얼마 안 되어, 그 사람은 전혼전 조관의 옆에 이르렀다.

“보고드릴 일이 있습니다.”

조관은 한창 차가운 시선으로 음산하게 양준을 지켜보고 있다가, 그 말을 듣고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좀 있다 말해.”

“이 일은 성지의 새 성주와 관련된 일입니다.”

그 사람이 나지막하게 말했다.

조관은 그제야 고개를 돌려 사람을 확인하고는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요적이군……. 무슨 일인가?”

요적은 얼른 조관의 귓가에 대고 소곤거렸다. 만약 양준이 요적을 봤더라면 그의 모습을 떠올릴 수 있었을 것이다. 양준이 열화성에서 관을 멘 사람을 만났을 때, 요적도 현장에 있었다. 요적과 함께 그 자리에 있던 이들은 뇌광신교의 허기, 현천맹의 추흥이었다. 당시 운훤은 이 세 사람의 신분을 양준에게 특별히 따로 말해 주었었다. 그때, 이 세 사람은 열화성까지 관을 멘 사람을 뒤쫓아간 것이었다.

요적의 말을 들은 조관의 눈이 점점 더 밝아지더니 놀라서 소리쳤다.

“정말인가?”

요적은 거듭 고개를 끄덕였다.

“틀림없습니다. 그자의 모습을 확실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거 재미있게 됐군. 보아하니 이거 자칫하면 일거양득이 될 수도 있겠네. 저 자를 잡으면 구천성지의 전승을 얻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관을 멘 사람의 비밀까지 알 수 있겠군……. 새 성주에 관해서 자네 말고 또 누가 알고 있는가?”

요적은 미간을 찌푸리고 한참을 생각하다가 말했다.

“독오맹의 기염도 새 성주를 알아봤을 겁니다. 그때 당시 그자도 현장에 있었거든요.”

“독오맹… 흥, 두려워할 필요 없어. 자네가 독오맹을 예의 주시하고 있게나. 감히 새 성주의 소식을 흘리면 내가 그냥 죽여 버릴 테니까.”

조관은 하찮다는 표정을 지었다.

요적은 얼른 고개를 끄덕이고 시선을 독오맹 쪽으로 돌렸다.

독오맹에서 가장 강한 고수는 맹주 운성으로, 그는 초범 경지 3단계였다. 입성 경지 고수가 한 명도 없는 세력을 조관이 안중에 둘 리가 없었다. 통현대륙에서는 입성 경지 고수가 있는 세력만이 큰 세력에 속했다.

*

서휘는 결계 안에서 간절한 말투로 사람들에게 말했다.

“여러분들은 남성고의 일에 대해서 알고 있을 겁니다. 정말로 성지에서 지시한 것이 아닙니다. 만약 지금이라도 우리 성지와 맞서지 않고 물러간다면, 남성고 때문에 생긴 여러분의 손해는 우리 성지에서 반드시 배상할 것입니다. 하지만 꼭 우리 성지의 적이 되겠다고 한다면, 맞붙어 싸울 수밖에 없습니다.”

“배상? 사람 목숨도 배상할 수 있나? 자고로 사람을 죽였으면 목숨을 내놓아야지. 아니면 자네가 죽음으로 사죄하려는 건가?”

적지 않은 사람들은 새 성주가 나타나자 돌아가려 했다. 이를 지켜보던 장오가 곧바로 노기에 차서 호통을 쳤다.

“장오, 지금 너무한 거 아닌가?”

서휘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장오는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내가 너무하다고? 분명 구천성지에서 위세를 등에 없고 사람 목숨을 초개같이 여긴 것이네. 우린 그냥 도리를 따지러 온 것뿐이고.”

“왜 이렇게 끝까지 몰아붙이려 하는 건가? 남성고의 문제는 우리가 해결할 걸세. 그리고 남성고 때문에 손해를 입은 세력들에게는 우리 성지에서 모두 배상할 것이네. 장오, 이래도 끝까지 사람들을 선동해 우리 성지와 척을 지려는 것인가? 우리가 자네의 속셈을 모를 것 같은가?”

서휘가 많은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속셈을 까밝히자, 장오는 냉소를 짓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소탈하게 말했다.

“좋네, 그럼 자네의 말을 한번 믿어 보지. 하지만 성지에서 약속을 이행하기 전에, 멀리서 이곳까지 찾아온 사람들에게 담보로 뭔가를 내놓아야 할 게 아닌가? 그런 것도 없이 누가 구두 약속을 믿고 기다리겠나? 나야 자네를 믿지만, 다른 사람들도 자네를 믿는 건 아닐세.”

“담보로 뭘 원하는가?”

서휘가 미간을 찌푸렸다.

장오는 양준과 안령아를 훑어보더니 음험하게 웃으며 말했다.

“새 성주와 성녀가 우리 파현부에 한동안 머물러 있게 하게나. 자네들이 전임 성녀의 문제를 해결하기 전까지 우리가 그들을 보살필 걸세.”

조관은 장오의 말에 얼른 맞장구를 쳤다.

“좋은 제안이군요. 저희 전혼전도 동의합니다. 대장로, 걱정하지 마십시오. 새 성주와 성녀 전하를 우리가 털끝 하나 건드리지 않고 잘 보살필 겁니다.”

외롭게 한쪽에 서 있던 무겁은 아무 의견도 말하지 않고 의미심장하게 웃을 뿐이었다.

“꿈 깨게나!”

서휘가 대노해 호통 쳤다.

새 성주가 젊지만 어쨌든 구천성지의 주인이었다. 그런데 만약 다른 세력에 인질로 잡혀 가게 된다면, 세상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될 게 뻔했다. 그리고 장오가 무슨 속셈인지 뻔히 알고 있는데, 이런 터무니없는 요구를 수락할 리 없었다.

“그럼 쓸데없는 말은 그만두지. 우리는 구천성지를 제거해, 죽은 가문 사람들과 지인들을 위해 복수를 할걸세.”

장오는 잔인한 표정으로 사납게 일갈했다. 그의 일갈에 적지 않은 이들이 흥분하기 시작했다.

“이젠 더 길게 말할 필요 없습니다. 우리는 배상까지 약속했습니다. 이제부터 성지와 화해하려는 분들은 모두 친구이고, 그래도 여전히 화해할 생각이 없다면 모두 적으로 간주할 겁니다.”

양준이 가볍게 숨을 들이쉬고 우렁차게 소리쳤다. 동시에 덤덤하게 인파를 한 번 훑어보았다.

문득 그의 표정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그의 시선은 인파 속에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두 여인에게 고정되었다. 그중 한 명은 이를 갈며 나지막하게 무언가를 중얼거리고 있었고, 다른 한 명은 흔들리는 눈동자로 그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운훤과 완심어였다.

양준은 한눈에 그녀들을 알아보았다. 몇 년 만에 만났지만, 그녀들은 여전히 예전 모습 그대로였다. 다만 운훤은 성숙미가 더 짙어졌고, 완심어는 거의 변하지 않은 듯했다. 유일하게 달라진 것은 둘 사이 관계였다. 예전에 둘은 서로 상대하기 싫어하는 사이였으나, 지금은 자매처럼 사이가 좋아 보였다.

시선이 마주치는 순간, 운훤은 가슴이 떨렸다. 눈앞의 사람은 그녀가 밤낮으로 그리워하던 양준이었다. 그의 표정과 눈빛이 찰나 흔들렸다가 곧바로 평온을 되찾았지만, 그녀의 눈을 속일 수는 없었다.

“봐? 내가 그 자식이라고 했잖아. 매정한 자식, 잘 살고 있었잖아.”

완심어는 괘씸해하며 말했다.

운훤은 순간 어찌해야 할지를 몰라 마음이 어지러웠다. 지금과 같은 상황이 아니었다면, 그녀는 다짜고짜 달려가 양준에게 왜 자신에게 연락하지 않고, 안부조차 전하지 않았는지 따져 물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그녀는 감히 자신의 감정을 드러낼 수 없었다.

완심어가 양준을 소리쳐 부르려는 순간, 운훤은 그녀를 와락 잡아채서 뒤돌아갔다.

“아니야. 닮았지만 아니야…….”

이런 상황에서 양준과 해후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았다. 그에게든, 자신에게든 아무 이득이 없었다. 운훤은 그를 못 본 척하기로 마음먹었다.

“그 자식이 아니라고? 그놈이 틀림없어.”

“내가 아니라고 했잖아.”

운훤이 퉁명스럽게 말했다.

“그래, 알았다, 알았어. 아니면 됐어. 내가 괜히 오지랖이 넓은 거지.”

완심어는 화가 나서 말했다.

양준은 두 여인의 멀어져 가는 뒷모습을 바라보며 얼른 마음을 가다듬었다. 독오맹이 왜 이번 풍파에 말려들었는지 알 수 없었지만, 아마 남성고 때문인 듯했다.

“녀석, 참 불쌍하구나! 넌 아마 구천성지에서 재임 기간이 가장 짧은 성주가 될 거다. 너희들 성주가 원래부터 장수하지는 않았지만, 네가 기록을 돌파할 것 같구나.”

장오는 싸늘한 시선으로 양준을 훑어보며 말했다.

“그런가요? 어떻게 저를 죽일지 참 궁금하군요!”

양준은 가볍게 냉소했다. 사람들은 전혀 당황하지 않고 오히려 여유까지 부리는 그의 모습에 의아함을 감출 수가 없었다.

슈욱-

곧이어 양준의 몸에서 뜨거운 진원이 폭발하더니 결계를 뚫고 나가 공중에서 십몇 장에 달하는 금빛 찬란한 장검으로 변했다. 구천신기 중 하나인 현천검이었다. 이와 동시에 성지의 한 산봉우리에서 기묘하고 세찬 원기가 뿜어져 나왔다. 성지 진법의 도움을 받아 무시무시한 기운이 현천검에 더해졌고, 현천검은 순식간에 팽창해 몇십 장으로 커지더니 하늘을 가를 듯한 기세로 장오에게 떨어졌다.

공간을 찢는 폭발음이 연이어 귀청을 때렸다. 아래로 떨어지는 현천검은 마치 큰 산이 내리누르는 것 같아, 사람들은 막거나 반항할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의 낯빛이 크게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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