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련전봉-810화 (809/853)

제 810장. 아무도 없습니다

하루 밤낮을 바삐 보내고 나서, 모든 것이 자리를 잡게 되었다. 음기로 가득 찼던 성릉은 구천성지의 제자 몇천 명이 들이닥치자 곧 생기가 넘쳐났다. 인원수가 적지 않았지만, 성릉은 그들을 받아들이기에 충분했다. 또한 장로와 호법들은 성지의 제자들이 성릉 안에서 오래도록 생활할 수 있게 많은 생활 물자를 준비해 두었다.

양준은 장로와 호법들에게 잠시 동안 모든 것을 내려놓고 이곳에서 수련에 몰두하고 있으라고 당부했다. 그리고 적절한 시기가 되면 반드시 그들을 소현계에서 불러낼 것이라고 약속했다. 장로와 호법들은 입을 모아 그러겠다고 대답했다.

*

성릉에서 나온 양준은 홀로 성지의 한 산봉우리에 단정히 앉아 오랫동안 맥을 이어온 성지의 모습을 굽어보고 있었다. 그의 마음은 매우 평온했다.

이 순간, 구천성지는 적막에 싸여 그를 제외하고는 그림자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양준은 정신을 가다듬고 공법을 돌리며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그는 두 눈을 번쩍 뜨고 한 방향을 뚫어지게 바라보더니 씩 웃었다.

장오 일행이 다시 찾아와 결계 앞에서 욕설과 함께 맹공격을 퍼붓고 있었다. 연이은 굉음이 성지에 울려 퍼졌다.

양준의 신형이 움찔했다. 그의 신형이 다시 나타났을 때는, 이미 장오 일행 앞에서 멀지 않은 곳이었다.

“당신들과 대적하는 데 대장로까지 나설 필요가 없죠!”

양준은 입을 삐죽거리며 말했다.

“방자하구나. 내 손에 잡힌 다음에도 그리 방자할 수 있나 어디 두고 보자.”

장오는 화가 치밀어 손을 휘두르며 일갈했다.

“여러분, 손속에 자비를 두지 마십시오. 제가 이 녀석을 잡아둘 테니까, 여러분은 손잡고 저 결계를 뚫으시면 됩니다. 일이 성사되면 성지의 재산은 여러분과 함께 나눌 것입니다.”

그의 말에 여전히 망설이고 있던 무인들의 눈빛이 금세 뜨거워졌다. 구천성지의 저력은 대단했다. 성지 안에 얼마나 많은 보물들과 영단, 현묘한 공법과 무공들이 있겠는가. 조금만 나눠 가져도 모두에게 큰 이익이었다. 사람은 재물을 위해 죽고, 새는 먹이를 위해 죽는 법, 장오의 유혹에 적지 않은 이들이 전의를 불태웠다.

조관과 무겁의 지휘 하에 입성 경지 고수 열몇 명이 일제히 결계를 맹공격했다. 장오는 자신의 비보를 꺼내 결계의 봉인을 뚫고 양준을 공격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양준을 잡아 두려는 것이었다.

싱긋 웃는 모습의 양준은 장오와 맞서려는 생각이 전혀 없는 듯했다. 그는 훌쩍 물러서서 장오의 공격을 피하고는 담담한 표정으로 차갑게 구경했다. 심지어 그들이 결계를 공격하는 것도 막지 않았다.

장오는 순간 가슴이 철렁하면서, 안 좋은 예감이 들었다. 그는 상대의 꼼수를 꿰뚫어 보려는 듯이 양준을 뚫어지게 지켜보았다.

찌지직-

슈욱- 슈욱- 슈욱-

하늘을 찢는 듯한 소리가 귀청을 때리더니 무수한 공격이 천지를 뒤덮으며 결계에 떨어졌다. 모든 사람들의 예상과 달리, 오늘 구천성지의 결계는 마치 종잇장처럼 한 주먹에 나가떨어졌다.

고수들이 손잡고 공격한지 얼마 안 되어, 성지를 감싸고 있던 결계가 산산조각 나며 그들의 앞길이 탁 트였다.

모든 사람들이 깜짝 놀랐다. 다들 일이 이처럼 순조롭게 진행될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던 것이다.

장오는 잠깐 멍해졌다가 곧이어 기뻐하며 소리쳤다.

“녀석, 꼼짝 말고 기다려!”

이와 동시에 입성 경지 고수 열댓 명이 성지로 뛰어 들어가 양준을 겹겹이 포위했다.

그들의 뒤로 이곳에 모여들었던 세력들이 줄지어 달려갔다. 그들은 조금만 늦으면 남에게 보물을 빼앗길까 걱정되는 마음에 서두르는 모습이었다.

독오맹의 맹주 운성은 표정이 바뀌더니 신식을 방출해 성지 내부를 자세히 탐지해 보았다. 잠깐 뒤, 그의 표정이 살짝 흔들리더니 앞으로 걸음을 내디디려 했다. 하지만 그가 미처 걸음을 떼기도 전에 누군가 그의 옷자락을 잡아당겼다. 고개를 돌려 보니, 운훤이 애원하는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운훤아, 왜 그러느냐?”

운성이 미간을 찌푸리고 물었다.

“아버지… 성지의 결계가 이미 뚫렸습니다. 나머지 일은 남들한테 맡기고, 우린 이만 돌아가죠.”

운훤은 붉은 입술을 꼭 깨물고 말했다.

“지금 돌아간다고? 어젯밤에 너에게 지금 상황을 자세히 말해 주지 않았느냐? 왜 또 그런 말을 하는 것이냐?”

“아버지, 저를 믿어 주세요. 지금 남는다면 우리에겐 아무 이득도 없을 거예요.”

“맹주님, 그들이 모든 주의력을 저 나쁜 놈에게 돌렸을 때, 어서 돌아가야 합니다.”

완심어도 다급해하며 말했다.

“너도 같은 생각이냐? 너희 둘 다 그 녀석을 믿는 것이냐?”

운성은 의미심장하게 완심어를 힐끗 보았다.

전날 밤, 운훤이 양준의 뜻을 전해주면서, 운성도 새 성주가 자신의 딸과 만났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그는 양준의 말을 전혀 믿지 않았다. 쌍방의 실력 차이가 너무 컸기 때문이었다. 운성은 구천성지가 도대체 무슨 수로 이번 재난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알 수가 없었다. 구천성지가 믿을 것은 성지의 진법과 결계뿐이었다. 하지만 지금 성지는 그 두 가지도 모두 포기한 상황이었다.

“운훤아, 혹시 옛정을 생각해서 그러느냐? 걱정하지 마라. 그 녀석이 정말 재주가 있어 이번 재난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우리 독오맹 하나가 더 힘을 보탠다 해도 문제될 것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만약 그럴 재주가 없다면, 우리 독오맹 하나가 줄어든다고 해봤자……. 하지만 내가 보건데 그 녀석은 궁지에 빠진 것 같구나. 참 안타까운 일이야.”

운성은 운훤의 마음속 걱정을 콕 짚어 말했다. 이윽고 운성은 가볍게 탄식했다. 원래 그는 구천성지의 성주가 독오맹이 강해질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다. 자신의 딸과 구천성지의 성주가 꽤 깊은 사이인 것 같으니, 만약 구천성지에서 이번 재난을 버텨내면 앞으로 독오맹에 든든한 뒷배가 생기는 게 아니겠는가? 하지만 이제 보니, 구천성지는 속 빈 강정이었다. 이런 위험천만한 순간에 새로운 성주 한 사람만 나서서 적과 맞섰고, 장로와 호법들, 그리고 모든 제자들은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운성은 새 성주가 이곳에 방패막이로 남겨져 장오 일행의 주의력을 끌고, 다른 사람들은 모두 도망친 게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걱정하지 마. 장오는 그 녀석을 죽이지 않을 거야. 그 녀석이 장오에게는 매우 중요하거든.”

운성이 운훤을 위로했다.

장오가 이렇게 많은 세력들을 끌어 모아 구천성지와 맞서는 가장 큰 원인은 바로 구천성지의 전승 때문이었다. 지금 양준이 그 전승을 모두 장악하고 있는데, 장오가 어찌 그를 죽일 수 있겠는가?

“정 그와 적이 되는 게 싫다면… 심어와 함께 멀리 숨어 있거라.”

운성은 곧 기염에게 분부했다.

“운훤을 안전한 곳으로 데려가거라.”

“네.”

기염은 나지막하게 대답했다. 곧이어 그는 온몸의 진원을 돌려 다짜고짜 운훤과 완심어를 감싸고서 멀리 날아갔다.

운훤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아버지를 계속해 설득하고 싶었지만, 뭐라고 말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녀는 걱정 어린 눈빛으로 많은 고수들에게 둘러싸인 양준을 바라보며 점점 멀어져 갔다.

운훤이 떠나자, 운성은 그제야 가볍게 콧방귀를 뀌고는 앞쪽으로 날아갔다.

*

“그냥 꼼짝 말고 항복하거라!”

장오는 양준에게 높은 목소리로 일갈했다. 그는 의기양양한 표정을 하고서 눈동자에는 열망으로 가득 차 있었다. 마치 이미 구천성지의 전승을 얻은 듯한 모습이었다. 조관도 함께 고함을 지르며 양준에게 항복하라고 설득했다.

양준은 두 사람을 덤덤하게 지켜보며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지금 그는 사방팔방으로 포위된 상태였다. 입성 경지 고수 열댓 명과 초범 경지 무인 수십 명이 악의에 찬 표정으로 그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다.

하지만 양준이 여유 있는 모습을 보이자, 사람들은 모두 두려움이 생겨 누구도 감히 먼저 나서서 공격하지 못했다. 이곳은 성지의 결계 안이었고, 양준은 앞서 이곳에 있는 산봉우리의 기운의 도움을 받아 입성 경지의 수단을 선보였었다. 만약 정말 그를 궁지에 몰아넣어 그가 죽기 살기로 달려든다면, 그들 중에서는 장오를 제외하고 누구도 막아낼 수 없었다.

“녀석, 이 정도에서 끝내는 거야. 살짝 실망스러운데.”

유명종의 무겁이 갑자기 의미심장하게 한마디 하고는 야릇한 웃음을 흘렸다.

양준은 그를 흘끗 보고는 피식 웃었다.

“그럼 제가 어찌하길 바랐는데요?”

무겁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그의 온몸의 녹색 기운이 일렁이자 귀신처럼 무시무시했다.

“난 또 너한테 더 멋진 수단이 있는 줄 알았지. 보아하니 내가 널 과대평가한 거 같구나. 정말 이 정도가 끝이라면 그냥 얌전히 항복하는 게 좋을 거야. 장오나 조관은 널 다치게 할 수도 있지만, 난 그저 네 진원을 봉인할 거야.”

“호의는 고맙지만 당신들이 절 사로잡기엔 역부족인 거 같군요.”

양준이 가볍게 웃었다.

“방자하기 그지없군!”

조관은 화가 정수리까지 치밀어 올랐다. 어떤 초범 경지 무인이 감히 이리 많은 입성 경지 고수들 앞에서 이런 망발을 할 수 있겠는가?

“문주님……! 안에는 한 사람도 없습니다. 구천성지의 제자들이 모두 사라져 버렸습니다.”

멀지 않은 곳에서 그림자 하나가 빠르게 날아와 조관에게 다가가더니 보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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