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11장. 어디서 온 요수들이지?
“한 사람도 없다고?”
조관은 깜짝 놀랐다.
“네!”
이와 동시에 장오와 무겁도 똑같은 소식을 전해 듣게 되었다. 이에 세 사람은 경계심을 높이면서 낯빛이 무거워졌다. 그들은 구천성지에서 무슨 꼼수를 부리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몇천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한순간에 사라지다니, 너무나 이례적인 상황이었다.
옅은 불안감이 엄습하자, 장오는 더는 지체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시간을 더 끌었다가는 문제가 생길 것만 같았다. 그는 곧바로 소리 높여 일갈했다.
“여러분, 저와 함께 일단 이 녀석을 사로잡읍시다. 이 녀석을 손아귀에 잡고 있으면, 서휘 일행이 날고 기는 재주가 있어도 어쩌지 못할 겁니다.”
장오의 일갈에 사람들은 일제히 진원을 모아 공격을 펼치려 했다. 다 함께 손잡고 단번에 양준을 제압하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미처 공격하기도 전에, 멀지 않은 곳에서 갑자기 다급한 비명이 들려왔다. 느닷없는 비명에 사람들은 모두 얼굴빛이 급변했다.
양준을 둘러싸고 있던 고수들은 너도나도 신식을 방출해 탐지하고는 곧바로 표정이 어두워졌다. 각자 신식으로 탐지한 결과, 성지 밖에서 포악한 기운이 들이닥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순간 성지 전체는 공포에 휩싸였다.
멀리 하늘가에서 먹장구름처럼 들끓는 기운이 빠르게 성지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먹장구름 사이로 어렴풋하게 그림자들이 보였는데, 그들은 하늘에 우뚝 서서 냉담한 시선으로 아래쪽을 굽어보고 있었다. 이윽고 마치 큰 산이 내리누르는 듯한 압박감이 밀려왔다.
장오의 낯빛이 크게 바뀌더니 양준을 공격하지 못하고 다급히 물었다.
“무슨 상황이야?”
비명이 끊이지 않고 피비린내가 하늘을 찌르는 가운데, 장오의 물음에 대답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한참이나 지나서야 온몸이 피투성이가 된 파현부 제자가 황급히 달려와 보고했다.
“큰일 났습니다. 수많은 요수들이 쳐들어왔습니다!”
“요수들이?”
장오는 실눈을 뜨고서 그쪽을 바라보았다. 마침 녹색 눈의 커다란 구렁이가 한 무인을 한입에 삼키는 무시무시한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어느 세력인지 알 수 없는 무인은 신유 경지 정상으로 실력이 그리 낮은 편이 아니었지만, 거대한 구렁이 앞에서는 전혀 반항할 힘이 없었다. 구렁이의 쩍 벌린 입에서 무궁무진한 흡인력이 뿜어져 나와 무인을 빨아들이는 듯했다. 커다란 혹 같은 것이 구렁이의 목을 따라 내려가는 게 또렷이 보였다.
찌지직-
수많은 공격이 구렁이의 몸에 떨어지며 눈부신 불꽃들이 피어올랐다. 하지만 검은색 비늘로 뒤덮인 구렁이의 온몸은 단단하기 그지없어 어떤 손상도 받지 않았다. 놈이 머리를 흔들고 꼬리를 치는 가운데, 다시 무인 몇 명이 놈의 입에 빨려 들어갔고, 또 다른 몇 명은 꼬리에 맞아 그 자리에서 핏빛 안개가 되어 버렸다. 하지만 이는 모두 핏빛 지옥의 일부일 뿐이었다.
멀리 바라보면, 이 순간 성지에는 곳곳에 모양새가 서로 다른 포악한 요수들로 꽉 차 있었다. 요수들은 잔인한 본능이 살아났는지 눈동자가 뻘겋게 달아오른 채, 인파 속에서 파죽지세로 살육을 벌이고 있었다.
비명으로 점철된 가운데, 성지는 무시무시한 공포로 물들어 있었다.
“어디서 온 요수들이지?”
장오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 두려운 눈빛으로 먹장구름을 지켜보며 물었다.
“수해밀림 쪽에서 온 것 같군요.”
조관이 서둘러 대답했다.
양준의 주변을 둘러싸고 있던 고수들은 그 말에 순간 등골이 서늘해졌다. 수해밀림은 요족의 영토로, 그곳의 요족 대존은 통현대륙의 최절정 고수였다.
다시 신속하게 다가오는 먹장구름을 바라보던 사람들은 그제야 무슨 일이 생겼는지를 알 수 있었다.
“망할 녀석, 감히 사악한 요족들과 결탁하다니!”
장오는 고개를 돌려 노기에 찬 눈빛으로 양준 쪽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는 곧 깜짝 놀라고 말았다. 그곳에 있어야 할 양준은 온데간데없고, 몇십 명의 고수들이 그곳을 둘러싸고 있을 뿐이었다.
먹장구름이 드디어 성지의 하늘에 이르렀다. 일렁이는 구름파도 속에서 무지갯빛이 반짝이더니 아리따운 그림자가 날갯짓을 해 아래로 내려왔다. 예쁜 얼굴은 싸늘하기 그지없었다. 채접이었다.
채접의 뒤로 사람 모습을 갖춘 요족 고수 이삼십 명이 바싹 뒤따르고 있었다. 그들은 저마다 잔인한 미소를 띠고서 기세 드높게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중 광사는 포탄처럼 땅바닥에 떨어져 커다란 구덩이를 만들더니 곧이어 번개같이 한 초범 경지 무인에게 달려들었다. 그는 상대의 공격이 단단한 육신에 떨어지는 대로 내버려 두고, 상대를 잡아서 목부터 물어뜯었다. 피가 뿜어져 나오자, 광사의 눈동자에 희열이 넘쳤다. 초범 경지 무인은 반항할 생각도 하지 못하고 그대로 목이 물어 뜯겨 죽었다.
이처럼 피비린내 나는 광경에, 곁에 서 있던 무인들은 순간 간담이 서늘해져 사방으로 도망칠 뿐 광사와 싸우려는 생각은 하지도 못했다. 그들이 안전한 곳으로 도망치기도 전에, 옆에서 요수 몇 마리가 뛰쳐나오더니 앞길을 막았다.
*
성지의 어느 한 산봉우리, 양준은 그곳에 서서 싸늘한 눈초리로 아래쪽 핏빛 지옥을 지켜보고 있었다.
이때, 그림자가 번쩍하더니 요족 대존이 그의 곁에 나타났다.
“좀 많이 늦었습니다.”
양준이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사람들을 부르는 게 쉬운 일이 아니란다. 그리고 시간도 너무 짧았잖아.”
대존은 차갑게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얼마쯤 데리고 왔습니까?”
“6급 이상 3천, 7급 이상 80명, 8급 이상 9명.”
양준은 저도 모르게 눈썹을 치켜세웠다.
“전투력이 대단하군요.”
“넌 나 혼자서 수해밀림의 안전을 수호할 수 있었다고 생각해? 그렇게 했다면 아마 우리 요족들은 진작 너희 인간들에게 전멸되었을 거야. 너희들 구천성지와 같은 도리야. 너희들이 너무 성주에게만 매달리니까, 전임 성주가 죽자마자 성지가 힘없이 무너지잖아.”
“그건 성지고, 저는 아닙니다.”
양준이 웃으며 대답했다. 그 역시도 구천성지의 폐단을 알고 있었다. 요족에는 최절정 고수인 대존 외에도, 고수들이 적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 날 갑자기 대존이 죽는다고 해도, 누구든 수해밀림을 섣불리 공격할 수 없었다.
“약속한 일은 기억하고 있겠지.”
대존이 양준을 흘끗 보았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약속을 어기는 일은 없을 겁니다.”
“내가 성지를 침범한 적들을 어떻게 처리하면 좋겠어?”
“대존 마음대로 처리하십시오.”
양준은 대수롭지 않은 듯이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대존이 비웃으며 한마디 했다.
“엉큼한 자식, 내가 저들을 모두 죽여 버렸으면 좋겠지?”
양준은 헛웃음을 지으며 대답하지 않았다. 묵인한 것이었다.
“네가 실망할 텐데? 너무 많은 사람들을 죽이면, 우리 요족들에게도 좋지 않아. 괜히 너희 인간들의 보복을 불러올 뿐이지.”
대존은 가볍게 콧방귀를 뀌었다. 그는 진작부터 양준이 요족의 힘을 이용해 성지의 위기를 해소하려는 속셈을 눈치채고 있었다. 성지를 침범한 사람들을 죽이면, 인간들은 그 원한을 모두 요족에게 돌릴 것이고, 성지와는 관계없는 일이 될 것이었다. 대존은 이러한 문제점을 알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준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도 구체적으로 일을 처리할 때는 양준의 생각에 따를 의향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한 가지만은 아직 잘 모르겠어. 내 의문을 풀어줄 수 있을까?”
대존이 양준을 곁눈질하며 물었다.
“무슨 일입니까?”
“구천성지의 그 많던 사람들은 다 어디 갔지? 지금 이곳에는 너 혼자뿐인 거 같은데?”
“물론 안전한 곳에 숨겨 두었습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곳의 일이 마무리되면 약속했던 대로 연단사와 연기사들은 제시간에 돌아올 것입니다.”
“그럼 됐어. 네가 감히 날 속이지는 못하겠지?!”
*
수많은 고수들로 구성된 요족들이 기세등등하게 들이닥치자, 장오를 포함한 고수들은 이번 일이 실패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들은 곧 모두 진원으로 몸을 감싸고서 신법을 펼쳐 밖으로 나가는 길을 뚫기 시작했다. 실패가 달갑지 않아도 어쩔 수 없었다.
독오맹의 맹주 운성은 거의 넋이 나간 상태였다. 휘하 제자들이 수없이 많이 죽어 나가자, 그제야 그는 후회막심이었다. 방금 전에 딸아이의 설득을 듣고 제자들을 이끌고 곧바로 철수했었다면, 이번 풍파에 말려들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사상자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철수하려고 해도 늦은 뒤였다. 몇백 명의 제자들 가운데서 반 이상이 죽거나 다쳤고, 그 자신도 요족 고수들의 맹공격을 받아 볼품없이 도망치는 처지였다.
요족들이 들이닥치자 이 각도 되지 않는 시간에 전투가 점차 마무리되었다. 성지 안에는 곳곳에 시체와 피 웅덩이가 널려 있어 차마 눈 뜨고 보기 힘들 정도였다. 성지에 모여들었던 무인들 중에서 적어도 천 명 정도가 죽어 나갔다. 거대한 몸집의 요수들은 지옥 같은 땅 위에서 질주하며 인간 무인들을 마음껏 쫓아다녔다.
“그만 쫓아!”
이때, 갑자기 매서운 외침이 전해졌다. 이윽고 채접이 사뿐 착지했다. 성지를 벗어나 무인들을 쫓아가던 요수들은 그녀의 외침에 마치 주문에라도 걸린 것처럼 순식간에 멈춰 서더니 하늘을 향해 길게 포효했다.
포효가 전해지자, 겨우 목숨을 부지한 인간 무인들은 공포에 빠져 젖 먹던 힘까지 다해 도망치기에 여념 없었다.
“손에 힘이 있으니 일 처리가 쉽군요.”
양준이 탄식하며 말했다. 요족들은 구천성지가 맞닥뜨린 큰 재난을 손쉽게 해소했다. 양쪽을 비교해 보면 그야말로 기운이 빠지는 일이었다.
“이러한 힘들은 우리 요족들이 몇백 내지 천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쌓아온 거야. 이만한 힘이 손쉽게 이루어질 거 같아? 사실 너희 구천성지도 괜찮았어. 우리 요족보다 좀 뒤처지지만 말이야.”
대존이 비웃으며 말했다.
“요족보다 뒤처진 건 사실입니다. 아니면 당신들의 도움을 받지 않았겠죠.”
“잘 수련해 봐. 백 년이 채 안 돼, 나와 같은 수준이 될 수 있을 테니까. 그때가 되면 너희 구천성지도 다시 강해질 거야.”
“백 년이요? 대존께서는 저를 너무 얕보는 거 아닙니까?”
“나한테 또 2~30년이란 소리는 하지 마. 난 그런 터무니없는 소리를 믿지 않으니까.”
“그럼 두고 보십시오.”
양준은 눈을 희번덕거렸다.
이때, 채접이 날아오더니 두 사람 앞에 사뿐 내려섰다. 그녀는 양준을 담담하게 바라보고는 대존에게 보고했다.
“인간들은 이미 모두 도망쳤습니다.”
“알았다. 싸움터를 정리한 다음, 다들 편한 대로 하라고 전해. 지금부터 성지는 우리 요족의 영토니까, 이곳의 자원을 잘 이용해야 한다.”
“네, 알겠습니다.”
“녀석, 네 난제를 해결해 주었으니까, 이젠 네 약속을 이행할 때도 된 거 같은데?”
양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기왕 대존과 약속한 이상, 그는 번복할 생각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