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련전봉-812화 (811/853)

제 812장. 그건 알려드릴 수 없습니다

양준은 사전에 말해 두었던 연단사와 연기사들을 성릉에서 데리고 나와 대존에게 넘겨주었다.

이에 대존은 무척 만족해했다. 성지의 연단사와 연기사들은 처음 요족을 마주했을 때는 살짝 겁에 떨었지만, 그들의 안전을 보장한다는 대존의 약속에 모두 마음을 진정시켰다.

이후 양준은 요족들을 대신해 성지의 진법을 작동시켰다. 그러자 성지의 영기가 다시금 짙어지기 시작했다.

양준은 미리 신식으로 좋은 옥석에 약속했던 영진을 새겼다가 대존에게 넘겨주었다. 대존 스스로 각성하게 하려는 생각이었다. 영진은 요족의 화생지에 관련된 것으로, 대존이 가장 중요시하는 물건이었다.

*

성지에서 백 리 떨어진 곳의 어느 밀림 속,

수많은 무인들이 이곳에 숨어서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있었다. 나뭇잎 사이로 흩뿌려진 햇볕에 사람들의 얼굴빛이 밝아졌다, 어두워졌다를 반복했다.

그날 요족들에게 쫓겨 도망친 뒤로 벌써 열흘이나 지나갔다. 지난 열흘 동안, 장오는 그날의 광경을 떠올릴 때마다 아쉬움으로 가득했다. 원래는 계획대로 양준을 사로잡고 구천성지의 전승을 얻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결정적인 순간에 요족들이 끼어드는 이변이 생겼던 것이다. 요족 대존이 고수 몇십 명을 거느리고 달려들자, 그들은 꼬리를 말고 도망치는 수밖에 없었다.

가득 모여들었던 여러 세력들은 진작 뿔뿔이 흩어졌고, 이제는 파현부, 전혼전, 유명종 세 세력밖에 남지 않은 상황이었다. 이 정도 전투력으로는 원래의 구천성지도 이길 수 없었다. 물론 요족들을 찾아가 복수하는 것은 언감생심이었다. 게다가 그들 세 세력도 손실이 막대해, 고수도 얼마 남지 않은 상태였다.

지금 상황에서는 이대로 철수하는 것이 최선책이었다. 하지만 장오는 어떻게 해도 화를 삭일 수가 없었다. 그렇게 많은 세력을 동원했는데도 구천성지를 어쩌지 못하다니, 이 소식이 세상에 알려지는 순간, 파현부는 세상 사람들의 조롱거리가 될 게 뻔했다. 장오는 생각할수록 기혈이 들끓었고, 따라서 얼굴빛도 점점 더 음침해졌다.

“비열한 자식, 감히 사악한 요족과 결탁하다니.”

장오는 나지막하게 으르렁거리며 새빨간 눈동자로 구천성지 쪽을 바라보았다. 씁쓸함과 아쉬움이 뒤섞인 눈빛이었다. 조관도 마찬가지로 분노에 차서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감히 세상 사람들에게 비난받을 일을 했으니, 이 소식이 퍼지면 그 녀석은 통현대륙에서 더는 발을 붙이지 못할 겁니다.”

무겁이 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구천성지도 참 재미있군요. 어떻게 요족과 손잡을 생각을 했지, 정말 뜻밖인데요.”

“이는 분명 서휘의 생각이 아닐 걸세. 내가 서휘와 몇십 년을 알고 지냈는데, 그의 성정을 잘 알고 있지. 그는 이런 일을 벌일 수가 없다네. 아마 그 젊은 녀석이 일방적으로 밀어붙였을 거야.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그 녀석을 어떻게 요족의 수중에서 빼내오는가 하는 걸세.”

장오가 차갑게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좋은 생각입니다. 다만 좀 어려울 것 같군요.”

조관은 미간을 잔뜩 구겼다.

“아직도 포기하지 않은 겁니까? 요족 대존이 보호하고 있는데, 무슨 재주로 그 녀석을 잡을 겁니까?”

무겁은 놀란 눈빛으로 두 사람을 바라보며 연신 고개를 저었다.

“그 녀석이 평생 밖으로 나오지 않겠는가? 그 녀석을 사로잡지 못하면 결코 그만두지 않을 걸세.”

장오는 포악한 표정으로 이를 갈았다.

“나도 같은 생각입니다. 그런데 무겁 자네는 우리에게서 이득을 취했으면서, 이제 와 발을 빼려는 건가?”

조관은 말하면서 음산한 눈초리로 무겁을 쳐다보았다.

무겁은 얼른 손을 들고 충성을 표했다.

“돈을 받은 만큼 움직이는 것은 우리 유명종의 철칙입니다. 제가 두 분에게 이득을 얻었으니 꼭 끝까지 도와드릴 것입니다.”

“약속을 지키는 게 좋을 걸세.”

장오는 만족해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세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성지에 가서 염탐을 하고 온 무인이 돌아와 공손하게 예를 올린 다음 보고했다.

“성지는 이미 요족들이 차지했습니다. 구천성지의 제자들은 한 명도 없고, 모두 요수와 요족 고수들뿐이었습니다. 그들은 정석 광산을 채굴하려고 바삐 움직이는 것 같았습니다.”

그 말을 들은 장오와 조관은 얼굴을 실룩였다. 그들은 자신들의 보물을 빼앗긴 것처럼 속상하기 이를 데 없었다. 만약 이번에 요족들이 끼어들지 않았다면, 그 광맥은 그들이 차지했을 터였다.

“구천성지의 제자들이 한 명도 없는 게 확실한 게냐?”

장오는 미간을 찌푸리고 물었다. 이 소식이 왠지 신경 쓰였다. 전에 싸움이 일어났을 때, 구천성지의 제자들이 한 명도 보이지 않은 건 모두 숨어 있었던 것이라 생각했는데, 아직까지도 한 명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예사로운 일이 아니었다.

“네. 저를 비롯해 몇십 명이 밖에서 하루 밤낮을 지켜봤지만, 구천성지의 제자들은 한 명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몇천 명이나 되는 제자들이 갑자기 사라지다니? 혹시 요족들이 그들을…….”

조관이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한참을 망설이다가 말했다.

장오는 조관의 말에 흠칫 놀라더니 사악하게 웃었다.

“그럴 수도 있겠군. 요족들이 그리 만만할 리 없지. 그 녀석이 요족들과 결탁했다가 도리어 당했을 수도 있겠군. 그야말로 도끼로 제 발등 찍은 거지!”

“그렇다면 정말 쌤통입니다. 그런데 그 녀석은 요족 대존의 손에 잡혀 있는 것이 분명한데, 어떻게 그놈을 빼내오죠?”

조관은 순간 기분이 좋아져 하늘을 나는 것만 같았다. 장오는 양미간을 찌푸린 채,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는 한참을 생각해도 뾰족한 수가 떠오르지 않아, 그만 다시 깊은 침묵에 빠지고 말았다.

*

커다란 궁전 안,

양준과 요족 대존이 가부좌를 튼 채 마주 앉아 있었다. 그리고 두 사람 사이에는 섬세하게 새겨진 영진이 놓여 있었다.

양준은 인내심을 가지고 대존에게 하나하나 가르쳐 주었다. 그는 사실 화생지와 관련된 영진을 모두 옥석에 새겨서 대존에게 주었었다. 그러나 대존은 한참이나 살펴보더니 전혀 알아보지 못하겠다면서 기어코 양준더러 직접 설명해 달라고 했다.

다행히 대존의 이해력은 좋은 편이었다. 때문에, 처음으로 접하는 영진이었지만 양준이 열흘 동안 열성껏 가르쳐준 결과, 대존은 몇 가지 영진의 중요한 부분을 모두 깨우치게 되었다. 나머지는 대존 스스로 각성해야만 했다.

이제 요족들이 변형할 때 문제가 생기면, 대존은 스스로 화생지를 보수할 수 있기에 양준의 손을 빌리지 않아도 되었다. 양준이 설명을 마치자, 대존은 그제야 가볍게 숨을 내쉬었다. 그는 놀라운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이 영진들은 천도에 부합하고, 무도의 수련에도 큰 도움이 되는구나. 누가 너에게 이런 것들을 가르쳐준 것이냐?”

“그건 알려드릴 수 없습니다.”

“알겠다. 네 비밀까지 캐지는 않으마. 다만 영진에 숨겨진 수많은 현묘함과 비밀에 대해서, 네 지금의 경지와 안목으로는 알아내지 못할 것이야. 영진에 대한 조예는 내가 너보다 못하지만, 사람과 물건을 보는 안목은 너보다 훨씬 낫지. 그 영진들을 잘 연구해 봐. 언젠가 그 속에 네가 상상했던 것보다 더 큰 힘이 숨겨져 있다는 걸 알게 될 테니까.”

양준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고 잠깐 생각에 잠겼다.

“전에 연단사라고 했었지?”

대존이 갑자기 양준에게 물었다.

“네.”

“그냥 이곳에 남아서 우리 요족들을 위해 연단하는 건 어때? 네 연단술이 괜찮을 거 같은데 말이야. 우리 요족들이 그동안 수많은 희귀 재료들을 수집했거든. 너희 인간들은 평생 찾을 수도 없는 것들이야.”

“아니요. 전 생각이 없습니다.”

양준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렇게 야멸차게 거절할 거 없잖아. 어떤 대우를 원하는지 말해 봐. 내가 다 들어줄게.”

대존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양준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호의는 마음으로만 받겠습니다. 전 아직 해야 할 일이 있어, 이곳에서 오래 머무를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때 말했던 영월담을 꼭 잘 지켜 주십시오. 나중에 누군가 그곳을 찾아올 겁니다.”

“지금 떠나려고?”

대존이 미간을 구겼다.

“지금 떠나지 않으면, 아마 영원히 떠나지 못할 것 같은데요?”

양준은 대존의 눈을 마주 보며 두려워하지 않고 침착하게 말했다. 그러자 대존이 웃음을 터뜨리고는 잠깐 침묵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가 봐. 후에 또 만나지.”

“안녕히 계십시오. 몇 년 지나지 않아, 제가 꼭 성지를 되찾으러 올 겁니다. 그러니 그동안 이곳의 자원을 마음껏 사용하십시오.”

양준은 말을 마치기 무섭게, 대존의 답도 기다리지 않고 신형을 움찔하더니 궁전에서 사라졌다.

양준이 떠난 뒤에야, 대존의 표정이 무거워지더니 피식 웃었다.

“몇 년? 녀석이 사람을 너무 얕보는데.”

그는 수해밀림에서 요족들을 거느리고 이곳으로 넘어와 인간과 원한을 맺을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양준을 도와 성지의 위기를 해결해 주었다. 이토록 야단법석을 떨었는데 어찌 성지를 몇 년 동안 차지하는 것만으로 만족할 수 있단 말인가?

“대존, 그자를 이리 보내 줘도 됩니까? 그자는 화생지의 비밀까지도 알고 있습니다.”

채접이 귀신처럼 나타나 눈썹을 찌푸리고 물었다.

“하지만 그는 우리 요족에게 은혜가 있잖느냐. 네가 무얼 걱정하는지 알고 있다. 하지만 그 녀석은 믿을 만해. 외부에 화생지의 비밀을 쉽사리 누설하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도 인간들처럼 은혜를 원수로 갚는 일을 해서는 안 되지. 너도 다른 꼼수를 부리려 하지 말거라. 그자를 가두어 두려는, 네 그 비열한 생각은 어서 거두거라.”

대존은 착잡한 표정으로 말했다.

“네. 그런데 그자도 참 방자하군요. 전에는 2~30년 안에 대존의 수준에 이를 수 있다고 큰소리 뻥뻥 치더니, 이번에는 몇 년 뒤에 성지를 되찾으러 올 거라고 하네요. 정말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가 없어요.”

채접은 공손하게 대답하고 나서 양준이 사라진 방향을 담담한 눈빛으로 힐끔 보더니 별안간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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