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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련전봉-814화 (813/853)

제 814장. 상황 파악이 빠르군요!

이날, 질주하던 양준은 문득 걸음을 멈추고 앞쪽 멀지 않은 곳을 지켜보았다. 앞쪽에서 예사롭지 않은 기운이 느껴져, 그는 저도 모르게 경계심이 생겼다.

잠시 뒤, 기운이 갑자기 짙어지더니 육안으로 볼 수 있는 비취색 안개가 나타났다. 이윽고 검은 장포를 입고서 온몸에 녹색 기운을 두른 남자가 기괴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양준은 눈을 찌푸리고 눈앞에 있는 사람을 날카롭게 바라보다가 소리쳤다.

“무겁?”

양준은 유명종의 문주가 도대체 무슨 신통력으로 순식간에 자신의 눈앞에 나타났는지 알 수가 없었다. 이런 신비한 수단은 양준의 상식을 벗어난 것이었다. 하지만 무겁은 무척이나 피곤한 모습이었다. 원래부터 무섭고 음산하던 그의 얼굴은 하얗게 질려 있었고, 숨을 가쁘게 쉬면서 몸속의 진원도 불안정한 상태였다.

양준은 얼른 신식을 펼쳐, 자신의 신식이 탐지할 수 있는 범위 안에 아무런 위험도 없다는 것을 확인한 다음에야 나지막하게 외쳤다.

“신전지정!”

그러자 갑자기 흰빛이 나타나더니 현묘한 힘이 양준의 몸속에서 폭발했다. 무겁은 미처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신혼 영체가 끌려나왔다.

“어……!”

무겁은 대경실색해서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곧이어 눈앞이 어질하더니, 그가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는 신혼 영체가 이미 식해를 떠나 하늘도, 땅도 없는 백색 세계에 갇힌 뒤였다. 그와 멀지 않은 곳에는 양준의 신혼 영체가 못마땅한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신전지정은 양준과 안령아가 함께 바다 밑 유적지에 갔을 때 얻은 성급 비보로, 이번에 처음으로 사용하는 것이었다. 신전지정의 기능은 특별했다. 적의 신혼 영체를 강제로 끌어내어 신식 싸움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폐단도 있었다. 이것을 사용할 때면, 양준의 신혼 영체도 백색 세계에 들어가야 했다.

양준은 상대가 입성 경지 1단계인 만큼 자신의 육신 경지로는 이길 수 없다고 판단하고, 주저 없이 신전지정을 펼쳐 속전속결로 끝내려고 했다. 그의 눈동자에는 전의가 활활 불타오르고 있었다. 그는 사실 자신의 현재 신식의 힘이 입성 경지 고수와 맞붙을 수 있는지 무척 궁금했다. 그리고 백색 세계는 가장 좋은 점검 장소였다.

양준의 의도를 알아차린 무겁은 얼른 손을 들고 자신의 뜻을 밝혔다.

“이봐, 흥분하지 마. 내가 이곳에 온 건 너와 싸우려는 게 아니야.”

양준은 미간을 찌푸리고는 가볍게 냉소했다.

“이제 와서 그런 말을 하면, 무슨 소용이 있죠?”

“날 믿지 못하는 거야? 내가 정말 너에게 악의가 있었다면 이런 방식으로 네 앞에 나타나지 않았겠지. 네가 느꼈다시피 지금 나는 힘을 많이 소모해서 전성기의 수준이 전혀 아니란 말이야.”

양준은 실눈을 뜨고서 무겁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그는 의념으로 무겁의 주변을 훑어보며 상대의 말이 진심인지, 아닌지를 확인하려고 했다.

무겁은 태연한 표정으로 떳떳해 보였다.

한참이나 지나서야 양준은 적의를 거두어들이고 가볍게 콧방귀를 뀌었다.

“싸우려는 게 아니라면, 왜 제 앞에 나타났습니까?”

“물론 의논할 일이 있어서.”

무겁은 양준의 태도가 부드러워지자, 표정이 풀리면서 심지어 웃음을 터뜨렸다.

양준은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눈썹을 잔뜩 찌푸렸다.

“뭔가 착각한 거 아닙니까? 우린 적대관계인데 저하고 뭘 의논할 게 있습니까?”

“전 당신과 적대할 생각이 없었습니다. 그건 성주 대인의 일방적인 생각이죠.”

“그게 무슨 뜻인가요?”

양준은 차가운 시선을 그를 바라보았다.

“그러니까 전 대인과의 우호 관계를 원합니다. 대인의 생각은 어떠합니까?”

“당신이 원해도, 저는 싫습니다. 날 이리 오랫동안 쫓아온 데다 그전에도 날 괴롭혔는데, 당신의 몇 마디 말만 듣고 그전의 원한이 모두 해소될 수는 없잖습니까. 당신 너무 단순한 거 아닌가요?”

“저도 어쩔 수 없었습니다……. 장오와 조관이 손잡고 저를 강요하는데, 눈치껏 공격하는 척이라도 해야죠. 지난번 구천성지를 공격할 때, 저희 유명종 사람들은 얼마 들어가지도 않았고 또 별반 나서지도 않았지만, 요족들에게 많은 제자들이 당했습니다.”

“쌤통이네요!”

양준이 코웃음을 쳤다. 하지만 무겁의 말은 사실이었다. 지난번 전투에서 양준은 유명종 사람들이 공격하는 모습을 거의 보지 못했었다.

“허허… 대인께서 제 말을 믿지 않을 거란 걸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어떻게 설명해야 될까요… 저희 유명종의 철칙은 돈을 받은 만큼 움직이는 것입니다. 전 장오와 조관에게서 받은 보수가 있기 때문에 당연히 그들과 함께 움직여야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저는 생각을 바꿨습니다.”

“연유는요?”

양준은 형형한 눈빛으로 그를 노려보았다.

“제 느낌에 대인께서는 장차 틀림없이 큰 인물이 될 겁니다! 장오와 조관은 대인을 사로잡으면 구천성지의 전승을 얻을 수 있고, 따라서 입성 경지 3단계에 진급할 희망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그들은 결국 힘에 대한 집착 때문에 정상적인 사고력을 상실한 겁니다.”

“그럼 당신 생각은요?”

양준은 문득 흥미가 동해 무겁을 바라보았다.

무겁은 진지하게 고개를 저었다.

“만약 입성 경지 3단계에 진급하는 것이 그렇게 쉬웠다면 구천성지에서 왜 오직 성주 한 사람만이 그 경지에 올랐겠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입성 경지 3단계가 되어 진작 천하무적의 큰 세력이 됐겠죠. 당신들의 전승에 무슨 비밀이 숨겨져 있는지 알 수 없지만,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 세상에 대가 없는 이득은 없습니다. 성지의 성주들은 모두 장수하지 못했고, 그리고 매 세대에서 오직 성주 한 사람만 입성 경지 3단계에 진급할 수 있었습니다. 이로 미루어 보아, 성지의 전승은 강하지만, 대신 그에 따른 폐단도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죠……. 장오와 조관이 당신을 사로잡아 전승을 얻는다고 해도 입성 경지 3단계에 진급할 수 있다고 장담할 수도 없고, 실패할 가능성이 클 겁니다.”

“당신은 그 두 사람과 달리 사실의 본질을 꿰뚫었군요.”

양준은 무겁을 다시 보게 되었다. 검은 장포로 감싼 온몸에서 녹색 기운을 내뿜어, 귀신처럼 무시무시해 보이는 무겁이 두뇌가 이처럼 명석할 줄 누가 알았겠는가!

“과찬이십니다. 바로 이런 연유로 저는 당신과 적대관계가 되고 싶지 않습니다. 게다가 당신은 자신의 실력도 확실하게 보여줬죠……. 여태껏 어떤 초범 경지 무인도 입성 경지 무인 세 명의 추적 하에 이렇게 오랫동안 무사할 수 없었습니다. 만약 장오가 입성 경지 2단계가 아니었다면, 저희는 진작 대인의 자취마저 찾지 못했을 겁니다. 아마 평생 대인을 사로잡지 못할 테지요.”

무겁은 미소 띤 얼굴로 공수하고는 겸손하게 말했다.

“하지만 당신은 지금 제 앞길을 막아서지 않았습니까?”

양준의 낯빛이 차가워졌다. 그는 신출귀몰하는 무겁의 수단이 살짝 꺼려졌다.

“이 수단은 큰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사실 전 어렸을 때 기연을 만난 적이 있는데, 그때 공간을 찢고 순식간에 천 리를 이동할 수 있는 신비한 수단을 얻게 되었습니다.”

무겁은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공간을 찢는다고요?”

“네. 하지만 이 수단을 펼치면 미로에 빠진 것처럼 공간 속에서 영원히 출구를 찾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이번엔 대인을 도저히 따라잡을 수가 없어서 이런 모험적인 수단을 사용한 겁니다. 이 수단을 얻고 나서부터 지금까지 전 두 번밖에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매번 큰 위험을 감수해야 했고요.”

무겁은 확실하게 자신의 성의를 보여주었다. 그는 자신의 비밀 수단을 양준에게 숨김없이 모두 말해 주었다.

“대인께서 흥미가 동한다면, 제가 기꺼이 알려드리겠습니다.”

무겁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순간 양준의 표정이 흔들리며 눈빛이 반짝거렸다. 공간을 찢고 순식간에 천 리를 이동할 수 있는 수단이 궁금한 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양준은 무겁의 태도가 의미심장하게 느껴졌다.

“도대체 뭘 원하는 건가요?”

양준이 미간을 찌푸리고 나지막하게 물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대인을 찾아온 것은 제 태도를 알려드리기 위해서입니다……. 유명종은 성주 대인과 영원히 우호 관계를 맺고 싶습니다. 대인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양준은 차갑게 무겁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는 무겁의 말의 요점을 파악할 수 있었다. 무겁은 구천성지가 아닌, 양준과 친분을 맺으려 했다. 적어도 무겁에게 있어서 양준이란 사람이 구천성지보다 더 사귈 가치가 있다는 것이었다.

“그럼 저한테는 무슨 이득이 있죠?”

양준의 표정이 풀렸다. 무겁의 신혼 영체에 별다른 파동이 느껴지지 않는 것으로 볼 때, 그는 진심이었다.

“방금 전 말했던 신비한 수단이 필요하지 않습니까? 제가 다른 장기는 없어도 상황 파악 하나는 끝내주죠. 유명종이 오늘까지 발전할 수 있었던 것도 모두 제 안목 덕분입니다. 현재 대인의 경지는 저보다 낮지만 불과 몇십 년 뒤면 반드시 모든 사람들의 위에 군림할 것입니다. 저는 오늘날 지은 죄 때문에, 그때 가서 대인께 멸문당할 생각이 없거든요. 게다가… 전 왠지 지금도 대인과 맞대결을 한다면, 결코 이길 거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무겁은 미소 띤 얼굴로 차분하게 말했다.

“당신은 확실히 상황 파악이 빠르군요!”

양준은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사악하게 웃었다. 그는 문득 무겁이 재미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소인배지만 떳떳한 소인배로, 안목까지 좋았다. 신전지정 안에서 그는 확실히 무겁이 두렵지 않았다.

“유명종은 이전까지 구천성지 전임 성주의 보호를 받았습니다. 앞으로는 대인의 보호를 받기를 원합니다. 저는 많은 게 필요 없고, 오직 유명종이 계속해 명맥을 이어갈 수 있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약속할게요!”

“고맙습니다!”

무겁은 진중한 표정으로 공수했다.

“나중에 당신은 자신의 현명한 선택을 다행으로 생각할 겁니다.”

양준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장오와 조관은 아마 곧 불행해지겠죠…….”

무겁은 의미심장하게 말하면서 양준을 마주 보더니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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