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15장. 관을 멘 사람을 만난 적 있습니까?
한참 뒤에야 그는 낯빛을 가다듬고 손가락을 튕겼다. 흰빛 한 줄기가 곧바로 양준에게 쏘아졌다. 이윽고 무겁은 우렁차게 말했다.
“그 속에는 제가 기연을 만났을 당시 과정과 기억이 모두 담겨 있습니다. 탐지해 보면 제가 거짓말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겁니다.”
“그럼 사양 않고 받겠습니다.”
양준은 곧 그 빛을 자신의 신혼 영체에 흡수했다.
“그 수단은 대단하지만 위험하기도 합니다. 막다른 골목에 이르지 않는 이상, 절대 사용하지 마십시오. 아니면 정말로 공간에서 길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제가 처음 사용했을 때…….”
무겁은 말하다가 그때 공포감을 떠올렸는지 흠칫 몸을 떨더니 더는 말을 잇지 못했다.
“아무튼 꼭 조심해서 사용하십시오.”
“알겠습니다.”
양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 자리에서 무겁이 넘겨준 정보를 탐지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한 가지만 더. 장오와 조관은 대인을 뒤쫓는 것을 금방 포기하지는 않을 겁니다. 따라서 저도 그들과 함께 한동안 그냥 대인을 쫓아다닐 겁니다. 하지만 그들이 어떻게 해도 대인을 따라잡지 못할 테니, 대인께서는 개의치 않을 거죠?”
“저는 괜찮습니다.”
“그럼… 전 이만 가 보겠습니다.”
양준의 약속을 받아낸 무겁은 무척 만족한 모습이었다.
양준은 손을 저어 신전지정의 속박을 풀었다. 이윽고 두 사람의 신혼 영체는 다시 육신으로 돌아왔다. 무겁은 양준에게 고개를 끄덕여 보이고 떠나려다가, 문득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혹시 관을 멘 사람을 만난 적 있습니까?”
그 말에 양준의 낯빛이 순간 차가워지더니 기운도 날카로워졌다. 무겁은 깜짝 놀라 얼른 말했다.
“흥분하지 마십시오. 그냥 물어본 겁니다.”
“그건 왜 묻는 겁니까?”
“그날 조관과 그의 부하 요적이 관을 멘 사람과 대인에 대해 말하는 것을 무심코 듣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물은 것입니다.”
“요적? 그들이 또 무슨 말을 하던가요?”
양준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리고 그때 열화성 밖에서 요적을 봤었던 기억을 떠올리고 다그쳐 물었다.
무겁은 고개를 저었다.
“두 사람이 몰래 한 얘기라 제대로 듣지 못했습니다.”
그러고는 다시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관을 멘 사람이 숨어 있는 곳에는 세상이 놀랄 만한 보물이 있다고 전해지던데, 만약 누군가 관을 멘 사람의 비밀을 파헤치면 한 지역의 패자가 될 만한 힘을 가지게 되겠죠……. 소문이 진짜인지, 가짜인지는 알 수 없지만요. 너무 신경 쓰지 마십시오. 그럼 전 이만 가 보겠습니다.”
말을 마친 무겁은 멀리 도망쳐 버렸다.
양준은 멀리 사라지는 그의 뒷모습을 지켜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나랴? 관을 멘 사람의 소문이 모두 사실인 것은 아니지만, 다 거짓인 것도 아니었다. 관을 멘 사람의 배후에는 확실히 한 지역을 제패할 수 있는 힘이 있었다. 다만 그 힘은 누구나 쉽게 얻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무겁은 무심코 이 사실을 누설한 듯했지만, 사실은 양준에게 관을 멘 사람과의 관계를 누설하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말해 주는 것이었다.
‘무겁… 생각이 참 깊은 사람이야. 게다가 아낌없이 투자하는 사람이기도 하고.’
단지 양준의 미래가 밝다고 생각해 그와의 우호 관계를 맺으려 하다니, 어떻게 보면 무겁은 정말 멀리 앞을 내다보는 선견지명이 있는 듯했다. 양준은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어느 한 방향으로 날아갔다.
장오와 조관은 여전히 그림자처럼 그를 뒤쫓았다. 장오는 입성 경지 2단계인 만큼 신식의 힘이 강했고, 양준이 그에게 자신의 기운을 완전히 숨기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난 다음에야, 양준은 장오 일행의 추적에서 벗어났다는 느낌이 어렴풋이 들었다. 쫓고 쫓기는 시간이 길어지자, 양준뿐만 아니라 장오와 조관도 답답함을 떨칠 수 없어 아예 쫓기를 포기한 듯했다.
양준은 근처에서 며칠간 어슬렁거리다가 장오 일행의 종적이 느껴지지 않자,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들이 자신을 따라잡을까 봐 걱정이 되는 것은 아니었지만, 계속해 쫓겨 다니는 것도 기분이 별로였다.
앞쪽은 울창한 산림으로 영기가 매우 짙었다. 양준은 신식을 펼쳐 주위 환경을 살펴보았다. 가끔씩 요수 몇 마리가 활동한 흔적이 보이는 것 외에, 사람의 종적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는 정신이 번쩍 들어 곧바로 산봉우리로 날아갔다.
*
새들이 지저귀고 꽃들이 만발한 푸른 산에는 평온한 기운이 깃들어 있었다.
산허리의 어느 한 동굴 안,
양준은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다. 그의 머릿속에는 누군가의 기억이 펼쳐지고 있었다. 그는 신식으로 기억 속의 광경과 인물을 감지하고 있었는데 마치 직접 겪는 것만 같았다. 이 기억은 무겁이 넘겨준 것으로, 그가 기연을 만난 과정을 담고 있었다.
장오 일행의 추적에서 벗어난 양준은 천소종으로 서둘러 돌아가지 않고, 근처에서 자리를 잡고 공간을 찢는 신비한 수단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만약 이 수단을 깨우치게 되면, 나중에라도 상대할 수 없는 적수를 만나게 됐을 때 손쉽게 도망칠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무겁이 떠나기 전에 해준 충고로 보아, 이 수단을 사용하려면 큰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듯했다.
양준은 마음과 정신을 가다듬었다. 이윽고 기억 속의 광경이 그의 눈앞에 생동하고 또렷하게 나타났다.
짧은 이틀 동안, 그는 신비한 수단의 모든 것을 파악할 수 있었다. 그리고 무겁이 왜 대범하게 자신의 기연을 그에게 보여주었는지 깨닫고는 실소하고 말았다. 이 수단을 사용하는 데는 어려운 요소가 많았다. 양준은 원래 무겁에게 다른 속셈이 있는 건 아닌가 의심했었지만, 사실은 무겁이 이 수단을 그에게 알려주어도 큰 문제가 없기 때문에 거리낌없이 알려준 것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신비한 수단은 사실 간단했다. 그것은 무공 같기도 하고, 신혼기 같기도 했다. 그것을 사용하게 될 경우, 진원뿐만 아니라 신식의 힘도 소모되는데 둘 다 소모량이 엄청났다. 무겁 정도의 고수도 한 번 펼치고 나면 한참 동안 기운이 없을 정도였다.
무겁은 아마 이제 겨우 초범 경지 2단계인 양준이 신비한 수단을 깨우친다 해도 짧은 시간 내에는 펼칠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한 듯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것은 그의 오판이었다. 양준의 몸속 진원과 신식의 힘은 무겁이 짐작한 것보다 몇 배는 더 강해, 이 수단을 펼치는 데 충분했다. 또한 진원과 신식의 힘이 방대할수록, 순간 이동할 수 있는 거리는 더 멀었다.
양준은 정신을 집중해 신통력을 조용히 몸으로 익혔다.
통현대륙의 모든 허공 통로와 소현계는 아주 오래전의 고수들이 전투를 치르면서 만들어낸 것이라고 전해지고 있었다. 소문이 사실이 아닐 수도 있었지만, 왠지 모르게 양준은 그때 시기의 통현대륙의 무인들은 모두 엄청난 재주가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공간을 찢어 순간 이동하거나 공간을 만들어 내는 것 같은 것은 그때 당시 무인들에게는 손쉬운 일이었을 것이다. 다만 오랜 시간이 흐르고 무도가 점차 몰락하면서, 이런 재주도 점차 전승이 끊기게 되었던 것일 터였다.
혹여 오늘날 통현대륙의 입성 경지 3단계 최절정 고수들은 어쩌면 그런 재주의 문턱을 밟고서 십몇 리 내지 몇십 리를 순간 이동할 수도 있겠지만, 공간을 찢고 순식간에 천 리 밖으로 순간 이동하는 재주는 없을 것이다. 이는 허공 통로만이 가능했다.
양준은 동굴 속에서 보름 정도를 죽 치고 앉아서 연구한 결과, 이 신통력을 능숙하게 다룰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이 생겼다. 이윽고 그는 당장이라도 수단을 펼쳐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겁이 꼭 조심해서 사용하라고 일깨워 줬지만, 이미 수단을 깨우친 이상 시도해 보지 않는다는 건 그의 성격에 전혀 맞지 않았다. 직접 시도해 보아야 자신이 정말로 공간을 찢을 수 있는지, 또한 무겁이 허풍을 친 건 아닌지 알 수 있을 게 아닌가? 그렇지 않고 한 번도 시도해 보지 않았다가, 나중에라도 위험에 맞닥뜨렸을 때 이 수단을 이용하다가 실패라도 하면 더욱 큰일이었다.
양준은 오랫동안 생각하다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곧이어 그의 온몸의 진원이 용솟음치고 동시에 신식의 힘도 폭발했다. 그리고 두 힘이 하나로 뭉치는 순간 미묘한 변화가 일면서 순식간에 허공을 갈랐다.
양준의 눈앞에는 잔물결이 겹겹이 일었다. 잔물결이 퍼져 나가자, 그는 계속해 진원과 신식의 힘을 방출했고, 동시에 정신을 가다듬고 잔물결의 흐름에 따라 무엇인가를 찾아보았다.
꽤 오랜 시간이 흘러서야 그의 눈이 반짝 빛났다. 마음이 평온한 가운데 그는 눈앞의 공간이 평소와 조금은 다른 것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다시 자세히 살펴보려는 순간, 흔적들이 스쳐 지나갔다. 양준은 가볍게 숨을 들이쉬고 침착하게 진원과 신식의 힘을 거두어들인 다음, 잠시 동안 운기조식했다.
비록 이 신통력을 훤히 꿰고 있지만, 실제로 펼칠 때는 여전히 어려운 점이 많았다. 그는 먼 옛날의 고수들이 도대체 무슨 수로 허공 통로와 소현계를 만들어 냈는지 알 수 없었다. 게다가 그런 것들은 모두 전투 가운데 무심코 만들어진 것이었다. 전설적인 고수들과 비교했을 때, 그는 자신이 너무나 보잘것없는 것만 같았다.
반나절이 지나 기운이 온전히 회복되고 나서야, 양준은 다시 한번 시도했다.
진원과 신식이 동시에 폭발하고, 잔물결이 겹겹이 퍼져 나가는 과정에서 그는 공간의 봉인을 뚫을 수 있는 허점을 찾아내려고 노력했다. 이번에 그의 감각은 전보다 훨씬 더 또렷해졌다. 그는 기쁜 나머지, 더욱 정신을 집중했다.
눈앞의 세계가 점차 변화하면서 공간이 기괴하게 주름지고 일그러지는 것 같았다. 마치 누군가 투명한 천을 접어 놓은 듯했다. 그리고 접힌 부분에서 특별한 기운이 흘러나왔다. 양준은 흠칫 놀란 동시에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진원과 신식의 힘을 예리한 공격으로 바꿔 접힌 부분을 공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