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련전봉-817화 (816/853)

제 817장. 너희는 어느 세력이야?

거의 백 명에 달하는 소년들 중에서 남아 있는 사람은 점점 줄어들었고, 실패한 소년들은 모두 한숨을 푹푹 내쉬면서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양준은 무거운 표정으로 조용히 산골짜기 깊은 곳을 살펴보았다.

매번 부드러운 힘이 나타나 소년들을 밀어낼 때마다, 그는 등이 근질거리는 것 같았다. 처음에는 그저 자신이 착각한 거라고 생각했고, 어떤 고수가 옆에 숨어서 자신을 놀리는 줄 알았다. 하지만 여러 번 반복되자, 세심한 관찰을 통해 진실을 알게 되었다. 등의 근질거리는 느낌과 무엇인가 기어다니는 듯한 촉감은 그의 등에 금룡 무늬가 흐르고 있기 때문이었다. 귀담아듣다 보면, 심지어 용의 포효도 은은하게 들려왔다.

그의 등에 있는 금룡 무늬와 소안의 등에 있는 빙황 무늬는 모두 음양합환공 전승을 얻으면서 새겨진 것이었다.

‘이곳과 연관이 있는 건가?’

양준은 잠깐 생각하다가 숨어 있던 곳에서 나와 산골짜기 안쪽으로 걸어갔다. 신식을 펼쳐 감지하던 그는 곧바로 표정이 이상해졌다.

앞서 그는 산골짜기 입구 쪽 사람들의 움직임을 몰래 지켜보았지만, 이곳의 지형은 살펴보지 않았었다. 이 순간에 이르러서야 그는 구불구불 길게 뻗어 나간 산골짜기가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마치 커다란 용이 엎드려 있는 듯한 모양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산골짜기 입구는 용미(龍尾)고, 깊은 곳은 용두(龍頭)이며, 옆쪽에 뻗어 나간 몇 갈래 샛길은 용의 발 같았다. 또한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그의 등 쪽 가려움은 더욱 뚜렷해졌고, 금룡 무늬도 점점 더 빠르게 움직였다.

양준은 자신과 소안이 얻은 전승이 이곳과 연관이 있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이런 우연이 또 있을까?!’

양준은 몰래 눈썹을 찌푸렸다. 순간 이동 수단을 펼치다가 무의식중에 이런 곳으로 올 줄 누가 알았겠는가. 만약 이게 사실이라면 이곳이 어떤 세력의 지역인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

산골짜기 입구 쪽,

입성 경지 고수는 눈썹이 일직선이 되도록 미간을 잔뜩 구기고서 힘없이 소리쳤다.

“다음 사람!”

준수하게 생긴 소년이 대답하고서 대열에서 나와 산골짜기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소년이 안개 속으로 사라진 다음에야, 입성 경지 고수는 슬며시 한숨을 내쉬었다.

“종주, 이번 아이가 마지막 한 명입니다.”

옆에 서 있던 초범 경지의 무인이 말했다.

종주라고 불린 사람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알았다. 이번에도 희망이 없는 것 같구나.”

초범 경지 무인은 미간을 찌푸리며 대답했다.

“백여 명의 소년들을 찾아 시험하는 의식을 이렇게 오랫동안 지속해 왔는데도 아무런 효과가 없습니다. 혹시 우리의 방식이 틀린 건 아닙니까?”

종주는 상대를 흘끗 보더니 물었다.

“뭐가 의문스러운 것이냐?”

“소인이 어찌 감히 의심하겠습니까. 다만…….”

“지금 우리가 강하진 않지만, 기억하고 있거라. 아주 아주 오래전, 우린 세상에서 가장 강한 세력 중의 하나였다. 누구든지 우리를 만나면 예우하고, 우리의 제자들이 대륙 어디를 다녀도 감히 건드리는 사람이 없었다.”

“예, 알겠습니다.”

종주는 매섭게 일갈하고 나서 다시 그늘진 표정으로 탄식했다.

“선조들이 이런 일들을 모두 기록하고 있었던 것은, 바로 우리들더러 그때 당시 종문의 번성과 강함을 잊지 말라는 것일 터. 안타깝게도 이리 오래도록 용곡(龍谷)의 시험을 통과한 사람이 없어 선조들의 눈부셨던 과거와 종문의 전성기를 재현할 수가 없구나.”

“종주님은 그때 당시…….”

초범 경지 무인은 호기심에 차서 물었다.

종주는 암담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나도 통과하지 못했다. 다행스럽게도 지금은 입성 경지를 돌파했으니 망정이지, 아니면 이 토대도 보존하지 못했을 것이다.”

아직 세상 물정에 어두운 소년들은 두 사람의 대화를 귀담아들으면서, 생기가 넘치는 눈동자에는 온통 호기심으로 가득 차 있었다.

바로 이때, 다년간 용곡에 뒤덮여 있으면서 사라지지 않던 뿌연 안개가 갑자기 어지러워지더니 용곡 전체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산골짜기 입구에 서 있던 사람들은 모두 얼굴빛이 크게 바뀌었다. 다들 무슨 변고가 생긴 건지 알 수 없었다.

소년들은 당황하여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이윽고 우렁찬 용의 포효가 산골짜기 깊은 곳에서 울려 퍼지더니, 곧이어 황금빛이 하늘로 솟구치면서 마치 태양처럼 눈부시게 빛났다. 종주는 순식간에 눈이 휘둥그레져 뚫어지게 황금빛을 바라보았다. 곁에 서 있던 초범 경지 무인도 마찬가지였는데, 그의 얼굴에는 놀라움과 함께 두려움도 섞여 있었다.

황금빛은 끊임없이 바뀌고 일그러지더니, 잠시 뒤 위엄이 넘치는 용두가 되어 싸늘하고 도도한 눈빛으로 아래쪽을 굽어보았다. 용의 눈빛에 사람들은 모두 자신이 보잘것없다는 느낌이 들었다.

종주와 같은 고수도 저도 모르게 온몸을 떨며 금빛 용두를 가리키더니 떨리는 목소리로 소리쳤다.

“나타났다. 드디어 나타났어……! 기록에 적혀 있는 것과 똑같아. 금빛 용두가 나타나면 용황이 돌아온다…….”

“종주님… 이, 이게 그러니까… 누군가 시험을 통과한 겁니까?”

초범 경지 무인은 눈이 휘둥그레져서 물었다. 종주는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눈물바람이 되어 있었다. 때문에, 그 말을 듣고도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은 채, 여전히 황금빛 용두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한참이나 지나서야 종주가 문득 입을 열었다.

“방금 전에 들어간 소년은 어디 사람이고, 이름이 무엇이냐?”

*

산골짜기 가장 깊은 곳,

양준은 갑자기 나타난 금빛 용두를 지그시 바라보며 마음이 복잡해졌다. 이내 등 뒤의 가려움이 한계에 달하자 우렁찬 용의 포효와 함께, 그의 등 뒤에 새겨져 있던 금룡 무늬가 슈욱 튀어나가더니 하늘의 용두를 덮쳤다.

순식간에 금빛이 폭발하며 눈부셔서 눈을 뜰 수가 없었다.

모든 것이 평온해진 다음에야, 양준은 자신이 금빛 찬란한 세계에 서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주변에는 방대한 기운이 흐르고 있었고, 몇 장 정도 길이의 금룡이 끊임없이 그 기운들을 흡수하고 있었다. 그는 잠깐 감지해 보고 불안한 마음을 내려놓았다.

몇 장 길이의 금룡에서 그의 기운이 느껴졌다. 그의 등에 새겨져 있던 무늬가 금룡으로 변했던 것이다. 게다가 금룡은 금빛 기운을 흡수함에 따라 미묘한 변화를 일으켰다. 몸집이 점점 더 커졌고, 기운도 점점 더 깊고 짙어졌다.

이때, 등 뒤에서 무언가 쓰러지는 기척이 들려왔다. 양준이 고개를 돌려 보니, 열네댓 살 된 소년이 얼굴이 하얗게 질려 땅바닥에 넘어진 채, 두려움으로 가득 찬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양준은 미간을 찌푸렸다.

방금 전, 그는 이곳의 이변에 정신이 팔려 소년이 언제 말려들어 왔는지도 알아채지 못했던 것이다. 상대방은 진원 경지 7단계 수준으로, 이 정도 실력은 양준의 앞에서 거의 개미와 다름없었다.

양준은 신식을 펼쳐 보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곳에서는 신식이 금빛 원기 바다에 봉인되어 바깥의 상황을 전혀 탐지할 수가 없었다. 또한 멀리 내다보아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지금 이 순간, 이곳에는 그와 소년밖에 없었다.

양준은 빙그레 웃으며 소년에게 다가갔다. 그의 머릿속은 온통 의문투성이였는데 마침 소년에게 확인할 수 있을 듯했다.

소년은 공포감에 휩싸여, 양준이 미처 자신의 근처에 다다르기도 전에 혼절하고 말았다.

“뭐 이럴 정도야?”

양준은 깜짝 놀랐다. 그는 비록 특별히 준수한 외모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무섭게 생긴 것도 아니었다.

‘간이 콩알만한 녀석이군!’

그는 어쩔 수 없이 가부좌를 틀고 앉아 소년이 깨기를 조용히 기다리는 한편, 주위의 상황을 탐지해 보았다. 이곳은 이미 황금빛 원기 바다에 뒤덮인 상황이었다. 그의 등 뒤에서 튀어나온 금룡은 여전히 끊임없이 금빛 기운을 흡수하고 있었다. 양준은 원기의 봉인을 뚫을 수 있는지 시도해 보았지만 역부족이었다. 금빛 원기는 철옹성처럼 이곳을 감싸고 있었다. 그가 입마를 펼쳐도 성공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공간을 찢어 순간 이동하면 이곳에서 벗어날 수 있겠지만, 등 뒤에 금룡 무늬가 이곳에 남아 있어서 불가능했다. 아무튼 바깥 쪽 사람들도 이곳으로 들어오지 못할 터이니 당분간은 이곳에 머물러 있어도 안전할 듯했다.

양준은 소년을 훑어보았다. 놀랍게도 소년은 그와 같은 양성 공법을 수련하고 있었다. 몸속 진원은 특별히 짙은 편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소년의 경지로 보았을 때, 그리 뒤처지는 것도 아니었다.

소년은 반나절이나 지나서야 서서히 깨어났다. 그는 눈을 떴지만, 한참 동안 눈앞의 상황을 파악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앞에 앉아서 웃는 낯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양준을 보는 순간, 낯빛이 확 바뀌더니 얼른 뒤로 한참을 기어갔다. 소년의 눈동자에는 온통 경계와 두려움이 서려 있었다.

양준이 웃으며 말했다.

“두려워하지 마. 그냥 몇 가지만 물을 거니까.”

소년은 여전히 경계심을 풀지 않고, 마치 궁지에 몰린 쥐가 고양이에게 덤비듯이 몸속 진원을 돌렸다.

양준의 얼굴에는 저도 모르게 칭찬의 빛이 서렸다. 그는 강적과 마주했을 때에도 반항할 준비를 하는 눈앞의 소년에게서 오래전 자신의 모습을 보는 것만 같았다.

“내가 널 죽이려면 그냥 손가락만 까딱해도 돼. 넌 전혀 막을 수가 없어.”

양준은 씩 웃으며 하얀 이를 드러내 보였다.

양준의 말에 소년은 그게 사실이라는 것을 알아차리고 한숨을 내쉬더니 엉덩이를 툭툭 털고 일어서서 정중하게 말했다.

“선배님, 마음껏 물어보십시오.”

“선배?”

양준은 깜짝 놀랐다. 이런 호칭은 처음 들어보는 것이었다. 다시 생각해 보니 아무튼 자신은 소년보다 실력이 훨씬 더 높고, 나이도 거의 열 살은 차이가 났기 때문에 선배 소리를 들어도 괜찮을 것 같았다.

“너희는 어느 세력이야?”

양준이 잠깐 침묵하다가 물었다.

소년은 눈을 반짝이며 잠깐 주저하다가 대답했다.

“용봉부입니다……. 선배님은 용봉부를 모르시나요?”

“용봉부라고… 역시 맞구나!”

양준은 가볍게 숨을 들이쉬었다. 그는 등 뒤에 금룡 무늬가 이상하게 움직이는 것을 느꼈을 때부터 용봉부를 떠올렸었다. 지금은 소년에게서 자신의 짐작을 확인한 것뿐이었다.

용봉부에 대해서는 빙종에 있을 때 청아에게서 들었었다. 청아는 그에게 그와 소안이 얻은 전승은 용봉부와 연관이 있을 거라고 말해 주었다. 용봉부는 아주 오래전의 거대 세력으로, 빙종에 못지않았다고 했다. 다만 이변이 생겨 전승이 끊기면서 점차 몰락했다고 했다. 하지만 거대 세력은 몰락해도 맥은 끊어지지 않고 있었다. 같은 이변을 겪었던 세력으로는 용봉부 외에도 몇 개 세력이 더 있는 듯했다.

그때 당시 양준은 나중에 기회가 되면 용봉부에 찾아가 사건의 전말을 알아보려 했었다. 하지만 빙종에서 나오고 나서부터 일련의 골치 아픈 일에 말려들다 보니 기회가 없었다. 그러다가 오늘 순간 이동 수단을 펼치면서 우연히도 이곳에 오게 되었던 것이다.

‘아마 이것도 하늘의 뜻인가 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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