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18장. 양 선배를 뵙습니다
이곳이 용봉부라는 것을 듣고, 양준은 곧바로 자신과 소안이 전승동천에서 얻었던 전승이 바로 이 세력의 것임을 확신할 수 있었다.
“선배님은… 어디에서 오신 분이죠? 어떻게 선배님이 용곡에 오랫동안 봉인되었던 금제를 열게 된 겁니까? 그전까지 저희는 그것이 모두 전설인 줄로만 알았거든요.”
“나? 너희 용봉부와 조금 연관이 있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지.”
양준은 생각나는 대로 아무렇게나 둘러댔다.
소년은 기쁜 표정으로 얼른 말했다.
“그럼 한집 식구군요?”
“한집 식구? 허허, 뭐 그렇게 생각해도 돼.”
소년의 표정은 금세 풀렸다.
“오늘 이곳에서 죽는 줄 알았어요.”
“내가 널 죽일까 봐 두려워?”
양준이 소년을 흘겨보며 물었다.
소년은 난감한지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제가 괜한 걱정을 한 거예요. 전 용봉부 제자 손옥(孫玉)이에요. 선배는요?”
“난 양씨야…….”
양준은 미소를 띤 채 대답했다.
“양 선배를 뵙습니다.”
손옥은 들뜬 표정으로 마치 종문의 사형을 만난 것처럼 공손한 태도로 인사했다.
그가 이처럼 생각하는 것도 당연했다. 용곡의 금제를 열 수 있는 사람은 반드시 용봉부와 연관이 있을 터였다. 게다가 양준은 스스로 용봉부와 연관이 있다고 밝혔다. 이에 손옥은 한시름을 놓게 되었다. 한집 식구인 만큼 이젠 그렇게 마음을 졸일 필요가 없었다.
“어서 앉아. 아직 몇 가지를 더 물어봐야겠어.”
양준이 친근하게 말했다.
“물어보세요. 아는 대로 모두 알려드릴게요.”
손옥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손옥과 한참 동안 이야기를 나누고 나서, 양준은 용봉부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용봉부는 강하지도, 약하지도 않은 세력이었다. 종문에는 입성 경지 고수가 한 명 있었는데, 바로 산골짜기 입구에 있던 종주 진주(陳州)였다. 그는 비록 입성 경지 1단계밖에 안 되지만, 용봉부의 안전을 가까스로 책임질 수 있었다.
용곡의 시험은 3년을 주기로 한 번씩 진행된다고 했다. 참가 인원 대부분은 용봉부가 근처의 산하 세력에서 선발한 소년들로, 일부는 용봉부의 제자들이었는데 손옥이 그중 한 명이었다. 산하 세력이나 작은 가문에서 선발된 제자들은 만약 시험에 통과하지 못하면, 원래의 세력으로 돌아가야 했다.
용봉부의 종주가 바뀔 때마다 끊임없이 이 시험을 지속하며 누군가가 시험을 통과하여 용봉부의 빛났던 과거를 재현하기를 기대했다. 하지만 오랜 시간이 흐르고 종주도 여러 명이 바뀌었지만, 줄곧 한 사람도 시험에 통과하지 못했다. 이 때문에 용봉부에서 종주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은 용곡에 아무런 비밀도 없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다 오늘 양준이 무의식중에 이곳에 오게 된 덕분에, 그들은 희망을 보게 된 것이었다.
손옥은 말을 하다가 문득 허벅지를 찰싹 치면서 소리를 질렀다.
“큰일 났어요. 종주님은 제가 금제를 열고 용곡의 시험을 통과했다고 생각할 거예요.”
“그냥 그렇게 생각하게 내버려 둬. 무슨 문제 있어?”
양준이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하지만… 전 그냥 산골짜기 안에서 걷다가 어떤 힘에 끌려 이곳에 오게 된 것뿐이에요. 안 되겠어요. 제가 지금 당장 나가서 종주님께 여쭐게요.”
“지금 나갈 수 없어. 너뿐만 아니라 나도 나갈 수 없어. 금룡이 금빛 기운을 말끔하게 흡수하기 전에는 나갈 수 없을 거야.”
양준은 고개를 젓고는 주위를 둘러보면서 말했다.
“설마요? 그럼 어떡해요?”
손옥은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기다려야지.”
양준은 전혀 긴장하지 않고 간단하게 말했다. 양준이 여유 있게 나오자, 손옥도 그 기운에 물들었는지 한시름을 놓고는 다시 양준의 앞에 앉았다.
또다시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양준은 용곡에 숨겨진 것은 용황의 전승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용봉부에는 용곡 외에 또 다른 금지 구역인 봉소(鳳巢)가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봉소에는 봉후의 전승이 숨겨져 있다고 했다.
무릇 용곡의 시험을 통과한 자는 마음에 드는 여인을 찾아, 그 여인이 봉후의 자리를 계승하게 할 수 있었다. 용황과 봉후는 오래전 용봉부의 가장 강한 두 사람의 호칭이었다. 이 두 사람이 있어야만, 용봉부는 대륙의 거대 세력 중 하나가 될 수 있었다. 때문에, 오늘날 용봉부의 통솔자는 종주라고밖에 부르지 못했다.
양준의 표정이 살짝 흔들렸다. 그는 봉소에 호기심이 동했다. 그곳은 소안이 가야 할 곳인 듯했다.
“저희처럼 선발된 제자들은 용곡의 시험을 통과하지 못해도, 종주께서 공법 한 가지를 내려주십시다. 자신과 어울리는 여인만 찾게 되면 저희 수련 속도도 그리 늦지 않을 거예요.”
“쌍수공법?”
양준이 한마디로 비밀을 까밝혔다. 손옥은 얼굴을 확 붉히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마음에 드는 여인은 있어?”
손옥은 볼이 빨갛게 달아오른 채, 고개를 저었다.
“워낙 종문에 예쁜 낭자들이 많다 보니 저희가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어요. 다만 선택하면 평생 함께해야 하죠.”
양준의 표정이 다시 흔들렸다. 오직 쌍수공법을 수련해 본 사람만이 평생 함께한다는 게 무엇인지를 알 수 있었다. 그는 손옥의 말에 공감하며 손옥을 바라보는 눈빛도 많이 부드러워졌다.
*
용곡 밖,
용봉부의 모든 고위층이 한곳에 모여 들뜬 표정으로 산골짜기를 바라보고 있었다. 종주인 진주는 상기된 표정으로 시종일관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용봉부는 다른 세력과 달리 쌍수공법을 수련했기에 거의 모든 고수에게는 동반자가 있었다. 이 순간, 진주의 동반자 여정의(餘婷衣)는 옆에 서서 남편의 손을 가볍게 잡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가 옆에서 손을 잡아주고 있음에도 진주의 몸은 여전히 떨리고 있었다.
여정의는 풍만한 몸매를 가진 중년의 부인으로, 남편보다 자질이 떨어지는 탓에 경지가 초범 경지 3단계밖에 안 되었다. 그녀는 남편의 흥분한 모습을 보고서 웃으며 말했다.
“여보, 그만 좀 하세요. 전승이 다시 나타난 거잖아요. 뭐 그 정도로 흥분할 거 있나요?”
진주는 심호흡을 크게 하고서 말했다.
“당신은 몰라! 역대 종주들은 모두 전승을 재현하는 것을 자신의 책임으로 알고 있었다고. 그리고 오랜 세월이 흘러 끝내 내 손에서 전승이 다시 나타나게 되었어. 이제 우리는 과거의 번성과 영광을 회복할 수 있게 되었단 말이야……. 소령(蕭翎), 소령은 아직 안 왔어?”
이때, 그림자 하나가 멀리서 날아오는 동시에 목소리가 먼저 들려왔다.
“종주님, 제가 돌아왔습니다.”
바로 전까지 진주의 곁에 있던 초범 경지 무인이었다.
진주는 급히 다가서며 물었다.
“알아봤어? 어디 출신이야? 용봉부의 제자냐, 아니면 산하 세력의 제자냐?”
“손옥이라는 소년으로 우리 용봉부의 제자입니다. 어려서부터 종문에서 자랐습니다.”
소령이 얼른 대답했다. 그의 대답에 진주는 웃음꽃을 활짝 피우며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좋았어.”
손옥이 산하 세력의 제자라 해도 문제될 점은 없었지만, 그래도 어려서부터 용봉부에서 자랐으면 종문에 대한 감정이 더욱 두터울 것이었다.
“그의 사부는 누구냐?”
“능견(凌堅), 능 장로입니다.”
소령은 대답하는 한편, 반쯤 몸을 비켜섰다.
“저기, 능 장로께서 오셨습니다.”
진주가 고개를 들어 보니 마침 능견이 호탕하게 웃으며 걸어오고 있었다. 두 사람은 한바탕 인사치레를 했다. 이윽고 진주가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능 장로, 참 수고가 많았네. 좋은 제자를 키워 냈군.”
능견은 함박웃음을 지으며 겸손을 떨었다.
능견은 경지가 초범 경지 1단계밖에 안 되는 탓에, 장로 중에서도 말단에 위치해 평소 주목을 받지 못하는 처지였다. 더하여 나이도 지긋해 장로 이름만 걸어 놓고 천수를 누리는 중이었다. 그런데 뜻밖에 오늘 이런 경사가 생길 줄 누가 알았겠는가!
능견이 가르친 제자가 오랫동안 봉인되었던 용봉부의 금제를 열게 되었던 것이다. 만약 이변이 없이 순조롭다면 그의 제자는 용황의 전승을 얻을 수 있었다. 제자가 전승을 얻으면, 그를 가르친 사부로서 능견의 위치와 신분 또한 올라갈 게 뻔했다. 또한 용황이 성장할 경우, 그의 위치는 종주와 비견될 수 있었다.
평소라면 진주는 나이 든 능견을 만나도 크게 신경 쓰지 않았을 터였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예의를 갖춰 정중하게 대했다. 이에 능견은 일시적으로 적응하기 어려웠지만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용봉부의 다른 고위층들은 시샘에 눈동자가 빨갛게 달아오른 채, 이 광경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왜 내가 키운 제자는 용황 전승을 얻지 못한 거지? 그놈들이 이런 기연을 만났으면 지금 종주와 이야기꽃을 피웠을 사람은 나일 텐데.’
장내는 시끌벅적했다.
진주는 능견에게 손옥의 각종 상황을 끊임없이 물었고, 능견은 자신이 알고 있는 만큼, 손옥의 성장 과정에서의 사소한 일까지도 모두 털어놓았다. 진주는 이런 자질구레한 이야기들을 들으면서도 따분함을 전혀 느끼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흥에 겨운 모습이었다. 그는 연신 손옥을 뛰어난 후계자라고 칭찬하며 앞으로 용봉부의 미래는 모두 손옥과 능견에게 달렸다는 등의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능견은 종주의 말에 큰 위로를 느끼며, 지금 이 자리에서 당장 승천해도 원이 없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러한 북적거림은 며칠간 이어졌다. 용곡 밖에는 매일 적지 않은 사람들이 모여서 산골짜기를 바라보았지만,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용곡은 원래부터 안개가 자옥해 다년간 햇빛이라고는 볼 수 없는 곳이었다. 게다가 지금은 금빛이 뒤덮인 채, 놀라운 원기 파동이 전해지고 있었기에 누구도 감히 접근하지 못했다.
진주는 손옥이 전승을 얻을 때 방해를 받지 않도록 용봉부의 모든 정예 고수들을 파견해 용곡을 겹겹이 감싸게 하는 등 보호 조치도 취했다.
사람들은 손옥이 용곡에서 나오기를 손꼽아 기다렸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도 손옥이 나올 기미가 보이지 않자 다들 조급해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