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19장. 손옥의 기연
금빛 원기 바다에 감싸인 세계에서 양준은 약 가마를 꺼내 신식의 불꽃으로 연단하면서 자신의 연단술을 갈고 닦았다. 지금 그는 성급 연단사와는 한 끗 차이가 있었다. 이곳에서 기다리는 동안, 따로 할 일도 없었기에 그는 연단하는 것으로 시간을 보냈다.
손옥도 부지런한 사람이었기에 한동안 이곳에서 나갈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수련하기 시작했다.
이곳의 신성한 위엄을 지닌, 정체 모를 금빛 원기는 매우 짙었지만 이상하게도 양성 원기가 아니었다. 다만 수련하는 데에는 크게 문제가 없었다. 또한 금빛 원기 속에는 무시무시한 위력이 내재돼 있어, 손옥이 조금이라도 흡수할 수 있다면 수련에 큰 도움이 될 수 있었다.
한 사람은 수련하고, 다른 한 사람은 연단하면서 시간도 훌쩍 지나갔다.
양준은 연단 재료들을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그는 구천성지를 떠날 때, 그곳의 창고를 싹쓸이해서 검은 책 공간에 넣었기에 한동안 마음껏 연단할 수 있었다.
이날, 양준은 성급 단약을 제련해 냈다. 마침 손옥이 수련을 마치고 한쪽에 조용히 앉아 눈 한 번 깜짝하지 않고 그의 움직임을 지켜보고 있었다.
“연단에 대해 알아?”
양준이 미소를 띤 채 물었다.
손옥은 성실하게 고개를 젓고는 의아한 말투로 물었다.
“선배가 연단하는 기법은 이상하네요. 제가 전에 봤던 사람들하고는 달라요.”
“어디가 이상한데?”
“선배는 진원을 사용하지 않잖아요……. 다른 사람들은 연단할 때, 진원이 용솟음치고 진원 소모가 매우 빨랐어요. 하지만 선배는 연단할 때, 진원을 쓰지 않고 속도도 그 사람들보다 훨씬 빨라요……. 어떤 품급의 단약인가요? 현급이에요?”
손옥의 물음에 양준의 낯빛이 시커메졌다.
‘안목이 꽝이군. 힘들게 만든 성급 단약이 보잘것없는 현급 단약으로 보이다니?’
손옥은 양준의 표정을 살피더니 놀라서 다시 물었다.
“설마 그럼 영급 단약인가요?”
“뭐, 그렇다고 해두자.”
양준은 손옥에게 길게 설명하고 싶지 않았다.
“선배, 정말 대단하네요… 영급 단약을 한두 시간만에 뚝딱 제련해 내다니요. 우리 용봉부의 연단사들이 알게 된다면 아마 부끄러워 낯을 들지 못할 거예요.”
갖은 풍파를 다 겪은 양준이었지만 손옥의 말에 저도 모르게 어깨가 으쓱해졌다. 더욱이 손옥은 자신을 엄청 숭배하는 듯했다.
“수련이 벌써 끝났어?”
양준은 성급 단약을 갈무리하고 물었다.
손옥은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
“무슨 영문인지 전 이곳의 원기를 흡수할 수 없어요……. 그리고 몸에 지니고 있던 정석 두 개도 모두 흡수했거든요.”
양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곳의 원기는 수련 가능하긴 했지만, 손옥은 실력이 낮기에 흡수할 수 없을 터였다.
양준은 눈썹을 찌푸리고 손옥을 훑어보다가 문득 물었다.
“너 힘을 원해?”
손옥은 순간 당황하다가 곧이어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왜 힘을 원하지?”
“남자니까요. 남자라면 물론 힘을 원하죠. 나중에 좋아하는 여인을 만났는데 힘이 없으면 어떻게 사랑하는 사람을 보호하나요?”
손옥은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이 대답했다.
양준은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그래, 맞아!”
남자라면 당연히 힘을 원하기 마련이었다.
손옥은 머리를 긁적이며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양준을 훑어보았다. 양준은 별안간 진지한 표정을 짓고서 나지막하게 말했다.
“나와 거래 좀 할래?”
“선배, 그렇게 말씀하지 마세요. 만약 분부할 일이 있으면 그냥 시키세요. 제가 최선을 다해 돕겠습니다.”
손옥은 난감해하며 말했다.
양준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고집을 꺾지 않았다.
“난 그냥 너하고 거래하고 싶어.”
손옥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그는 양준이 자신에게 중요한 일을 말할 것을 인지하고, 한참을 침묵하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선배의 신임에 감사드립니다. 그럼 말씀해 보세요.”
“네가 힘을 원하니 힘을 줄게! 다만 한 가지 요구가 있어……. 음, 그러니까 우리가 이곳을 떠나 네가 용봉부로 돌아간 다음, 나에 대한 이야기를 절대 누설하지 말아 줘.”
양준이 씩 웃으며 말했다.
손옥은 깜짝 놀랐다.
“무슨 이유라도 있나요?”
“아무 이유도 없어. 그냥 내 말에 따라 줘.”
“선배께서는 이곳의 금제를 열 수 있으니 틀림없이 저희 종문과 연관이 있을 거예요……. 게다가 종주님은 평생 이 순간만을 기다려 왔는데…….”
“아직 그들에게 내 존재를 알리고 싶지 않아. 나중에 시간이 되면, 내가 다시 너희 종주를 만나러 갈 수도 있어.”
양준은 되는 대로 둘러댔다.
구천성지의 문제도 아직 마무리 짓지 못했는데, 또 용봉부와 관계를 가진다면 아마 평생 편할 틈이 없을 터였다. 하지만 봉소에 봉후의 전승이 숨겨져 있는 이상, 나중에라도 반드시 소안을 데리고 한 번쯤은 찾아와야 했다.
용봉부의 사람들은 아마 손옥이 이곳의 금제를 열었다고 생각할 것이 틀림없었다. 따라서 손옥의 실력을 향상시키면, 사실을 숨기기도 쉬웠다. 물론 손옥이 비밀을 누설하지 않는다는 전제 하에서만 가능했다. 양준은 손옥을 좋게 보았기에 그를 죽여 입막음하고 싶지는 않았다.
지금 양준이 가지고 있는 자원으로 손옥을 양성하는 것은 매우 쉬운 일이었다. 설령 손옥의 자질이 평범하다고 해도 양준은 그를 환골탈태시킬 재주가 있었다. 게다가 손옥이 수련하는 공법은 양준과 같은 성질이었다. 지금 손옥은 고개를 끄덕이기만 하면, 남들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기연을 얻을 수 있었다.
손옥은 한참을 생각하고 나서야 대답했다.
“선배께서 왜 이리하는지 알 수 없지만, 선배 나름의 이유가 있을 테니까… 진짜 우리 용봉부에 해가 되는 일은 없는 거죠?”
“당연하지. 절대 그런 일은 없어.”
양준은 실소하고 말았다.
“그럼 좋아요. 절대 선배의 존재를 누설하지 않겠다고 약속할게요.”
“녀석, 상황 파악이 빠르구나!”
양준은 손옥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
눈 깜짝할 사이에, 또 두 달이 지나갔다. 그동안 손옥의 실력은 진원 경지 7단계에서 진원 경지 정상에 이르렀다.
손옥은 기뻐 어쩔 줄 몰라 했다. 올해 그는 열다섯 살로 자질이 좋지도, 나쁘지도 않아 예전과 같은 수련 속도라면 반년 내지 일 년이 걸려야 진원 경지 정상에 이를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 두 달 동안에 이런 성취를 이루게 되었던 것이다. 그는 모든 게 양준의 덕분인 줄 알고 있기에, 양준을 점점 더 공경하고 숭배했다.
두 달 동안, 양준은 그에게 수련용 정석을 제공하는 것 외에, 매일 이름 모를 약물을 주었다. 손옥은 약물에 도대체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는지 정확히 알 수 없었지만, 두 달 동안 지속적으로 약물을 복용한 결과 환골탈태한 느낌이 들었다. 몸이 전보다 많이 가벼워졌고, 경맥이 단단해지고 넓어졌으며 피와 살도 전보다 더 힘이 있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몸속 진원이 이전과는 전혀 다른 차원으로 순수해졌다는 점이었다. 진원이 경맥 속에서 흐를 때면, 그는 심지어 미묘한 소리를 들을 수도 있었다. 이는 모두 자신이 강해졌다는 증거였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수련 시 정석이 소모되는 시간이었다. 예전에는 정석 하나를 적어도 대엿새 동안에야 말끔하게 흡수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하루에 정석 하나를 소모했고, 소모 속도가 점점 더 빨라지고 있었다.
다행히 양준은 부유해서 정석의 소모량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듯했다. 매번 그에게 정석을 한 더미씩 주었고, 손옥이 다 소모하고 나서 말만 하면 다시 또 한 더미를 꺼내 주었다. 또한 양준은 그에게 대량의 수련용 단약을 제공했다. 손옥은 양준에게 감격해 마지않았다.
양준은 비록 그에게 신비한 공법이나 무공을 별도로 가르쳐 주진 않았지만, 수련의 밑바탕인 육신을 개선해 줌으로써 그의 체질과 자질이 바뀌게 했다. 이는 그에게 평생 도움이 될 터였다.
‘이게 진짜 전설 속의 기연인가?’
손옥은 흥분하여 떨리는 마음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예전에 용봉부에 있을 때, 그는 사부나 동문들이 누군가 기연을 만나 벼락출세를 하고 패자가 되었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을 많이 들었었다. 하지만 그는 그런 것들을 어디까지나 전설로만 생각하고 사실로 받아들이지 않았었다.
‘그렇게 좋은 일을 그리 쉽게 만날 수 있을까?’
그런데 그런 기적 같은 일이 손옥 자신에게 일어난 것이었다. 손옥은 마음속으로 여러모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자신이 가장 늦게 용곡에 진입해서 다행이었고, 정체 모를 힘에 끌려 금빛 세계에 들어오게 된 것이 다행이었으며, 양준 같은 좋은 사람을 만난 것도 다행이었다.
손옥은 아름다운 미래가 자신에게 손짓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렇기에 조금도 해이해지지 않고 더욱더 수련에 매진했다. 이런 기연은 누구나 만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는 혹시라도 자신이 기연에, 그리고 양준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할까 걱정되었다.
양준은 그의 노력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대견스러워했다.
‘각오도 있고, 끈기도 있군. 가장 중요한 건 얌전히 말도 잘 듣고, 게다가 고독을 견뎌낼 줄도 안단 말이야.’
양준은 손옥이 점점 더 마음에 들었다. 원래 그는 손옥에게 이득을 좀 쥐여주고 입막음을 하려고 했었다. 하지만 손옥의 노력을 지켜본 다음에는 전력을 다해 양성하기 시작했다. 그는 매일 손옥에게 만약영액 한 방울을 복용시켰고, 또한 정석과 자신이 제련한 현급, 영급 단약을 마음껏 사용하게 했다.
양준은 노력하는 사람들은 모두 그에 걸맞은 기회를 얻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이었다. 때문에, 그는 힘을 추구하는 길에서의 자신의 힘듦을 떠올리자 저도 모르게 손옥을 좀 더 이끌어 주고 싶어졌다. 그런 와중에 다행인 것은 손옥이 수련에도 강약 조절을 해야 할 때가 있다는 것을 안다는 것이었다. 진원 경지 정상까지 돌파하고 한동안 수련하던 그는 벽을 만나게 되자 조급해하지 않고, 도리어 긴장을 풀고서 양준이 연단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무도에 대해 묻기도 했다.
진원 경지에서 신유 경지로 진급하는 것은 고비를 넘는 것과 같았다. 양준도 일찍이 그 단계에서 막혔었기에 경험이 있었다. 그래서 지나가는 말로 몇 마디 일깨워 주었더니, 손옥은 금세 눈을 반짝이며 하루 밤낮을 심사숙고하고 나서 다시 수련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