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22장. 초범 경지 3단계 돌파
뿌연 안개로 자욱하던 용곡은 마치 광풍이 휘몰아친 것처럼 순식간에 쾌청해졌다. 이제는 한눈에 산골짜기를 모두 내려다볼 수 있을 정도였다.
진주는 우뚝 걸음을 멈추고, 떨리는 몸을 겨우 지탱하면서 눈도 깜빡하지 않고 그쪽을 지켜보았다. 암담한 낯빛이었던 능견도 마찬가지로 그쪽을 간절히 바라보고 있었다. 혼탁하던 그의 눈동자에는 기대의 빛이 서렸고, 두 손도 부들부들 떨렸다.
“기척이 있어!”
진주는 저도 모르게 나지막하게 소리쳤다.
진주를 모시러 왔던 소령도 저도 모르게 제자리에 우뚝 서서 산골짜기를 의혹에 찬 눈초리로 내려다보았다. 그의 기분도 미묘하게 들뜨기 시작했다.
사실 용봉부의 장로들은 지난 2년 동안 종주가 종문의 대소사를 관여하지 않고 온종일 용곡 입구를 지키고 있는 것을 못마땅해했다. 그리고 다들 손옥이 이미 죽어서 다시 돌아올 수 없을 것이라 여기고 있었다. 하지만 눈앞에 이상 현상이 나타나자, 소령도 역시 기대를 품을 수밖에 없었다. 어쨌든 그 역시도 용봉부의 사람이었다.
*
금빛 원기 바다에 감싸인 세계,
금룡이 드디어 모든 원기를 말끔하게 흡수하고서 온몸으로 눈부신 빛을 뿌렸다. 그것은 마치 진짜 용처럼 제자리에 똬리를 틀고서 위엄을 뿜어내고 있었다.
가부좌를 틀고 앉아 수련하고 있던 손옥은 놀라서 고개를 들고 올려다보았다. 커다란 용의 눈과 마주치는 순간, 그는 제자리에 얼어붙은 채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한순간, 그는 신혼이 식해에서 빨려 나갈 것만 같았다.
그때, 손옥의 앞에 그림자가 드리웠다. 양준이 손옥의 앞을 막아섰던 것이다. 손옥은 얼른 두 눈을 꼭 감고 마음을 가다듬은 다음 공법을 돌렸다.
이윽고 우렁찬 용의 포효가 울려 퍼지더니 거대한 금룡이 하늘로 솟구쳐 올라갔다. 이와 동시에 맑은 하늘이 찢기면서 순식간에 모든 빛이 가려졌고, 사방 백 리 안의 모든 사람들은 암흑 속에 갇혔다.
금룡은 몇천 년간 갇혀 있다가 드디어 속박에서 벗어난 듯이 하늘에서 마음껏 노닐었다. 그리고 잠시 뒤 짙은 파괴성을 지닌 채, 아래쪽으로 내리꽂히며 양준의 몸을 강타했다.
양준은 나지막한 신음을 흘렸다. 곧이어 잃어버렸던 물건이 다시 돌아왔음을 느낄 수 있었다. 게다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무시무시한 기운을 가지고 돌아온 듯했다. 그의 몸에 걸쳤던 옷가지들이 순식간에 터져 나가며 가루가 되었다.
양준은 서둘러 호천순 몇 개를 만들어 손옥의 주위를 감쌌다. 이와 동시에 은빛 나뭇잎 모양의 성급 상품 비보도 펼쳤다. 은빛 나뭇잎에서는 예사롭지 않은 파동이 겹겹이 일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거대하게 변해 손옥을 겹겹이 감쌌다. 양준이 이처럼 보호하지 않는다면, 손옥의 현재 실력으로는 이처럼 횡포한 기운을 막아내지 못하고 한순간에 흔적도 없이 사라질 수 있었다.
지난 2년 동안, 양준은 구천성지 전임 성주의 비보를 온전히 흡수했다. 은빛 나뭇잎은 수많은 형태로 변할 수 있었고, 쓰임새도 무궁무진했다. 성급 상품이라는 등급에 걸맞게 공격용으로도, 수비용으로도 모두 사용 가능했다.
우두둑- 우두둑-
양준의 몸속에서 뼈가 어긋나는 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왔다. 그의 모든 피와 살이 꿈틀거렸고, 몸속의 진원도 상상할 수 없는 속도로 회전하면서 경맥에 무리가 갔다. 순식간에 그의 피부 곳곳이 찢기며 피가 뿜어져 나오자 금세 황금빛에 뒤덮이게 되었다. 대마신의 금빛 피의 강한 회복력에 힘입어 손상된 곳은 곧바로 회복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몸속 기운의 충돌을 못 이겨 손상과 재생의 과정을 수없이 되풀이했다.
양준은 고통스러운 표정은커녕 오히려 생기가 넘치고 흥분한 모습이었다.
금룡이 다시 그의 몸속으로 돌아와 금룡 무늬로 바뀐 다음, 그는 눈앞의 세계에 미묘한 변화가 생긴 것만 같았다. 그리고 천지간에 흐르는 기운도 이전과는 전혀 다른 듯했다. 은연중 여러 가지 천도와 무도의 흔적이 보이는 듯했고, 예전에 미처 파악하지 못했던 부분도 지금은 손쉽게 알아챌 수 있었다.
그는 제자리에 우뚝 서서, 숨을 죽이고 두 눈을 감은 채 각성하기 시작했다.
*
날씨가 급변하면서 사방 백 리 내의 천지간 기운이 무형의 흡인력에 끌려 용곡 쪽으로 모여들었다. 용봉부의 고위층은 이런 횡포한 천지간 조화에 놀라 일제히 용곡 쪽으로 달려와 멍하니 바라보기만 했다.
이곳에서 줄곧 지키고 있던 진주와 능견은 흥분해서 눈을 반짝였고, 심지어 능견은 감격의 눈물까지 쏟아 내었다.
누구도 손옥의 기운을 느끼지 못했지만, 이 광경이 손옥과 연관이 있다는 것을 다들 알고 있었다. 아마도 손옥이 용황의 전승을 이어받고 마지막 시험을 통과하고 있는 듯했다.
“이런 횡포한 원기 파동은 돌파할 징조인데!”
소령이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여정의도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입성 경지 고수가 돌파하는 기운에 못지않네요!”
진주가 입성 경지를 돌파할 때도 천지의 조화가 나타났지만, 눈앞의 광경과는 비교할 수 없었다.
‘용황 전승이 이렇게 놀라운 건가? 손옥이 2년 전에 들어갈 때만 해도 겨우 진원 경지 7단계였는데, 지금은 무슨 경지지? 2년 안에 입성 경지까지 진급했을 리는 없잖아? 손옥이 이렇게 횡포한 기운을 견뎌낼 수 있을까?’
사람들은 저도 모르게 걱정되었다.
진주가 소리 높여 말했다.
“용봉부 사방 삼십 리를 모두 봉쇄한다. 감히 쳐들어오는 자는 누구든 간에 모두 죽이도록.”
이처럼 큰 소란을 피웠으니, 분명 근처 세력의 고수들이 모여들 것이 분명했다. 만에 하나 용황 전승을 노리는 적들이 있다면, 괜한 풍파를 몰고 올 수도 있었다. 특히 근처의 유한동천(幽寒洞天)은 일찍이 2년 전부터 호시탐탐 전승을 노리고 있었다. 그들은 줄곧 각종 방식으로 용곡의 소식을 염탐하고 있었는데, 그동안 손옥의 생사를 알 수 없었기에 섣불리 달려들지는 않았었다. 하지만 오늘 이런 천지간 조화가 나타난 이상, 그들 또한 반드시 움직일 터였다.
진주의 살기등등한 모습에 소령은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얼른 명을 받들어 사람들을 배치하기 시작했다.
“용황의 위엄이 오늘 드디어 재현되었군. 2년 동안 기다린 게 헛되지 않았어!”
진주의 눈가에 이슬이 반짝였다. 그는 드디어 한시름을 놓게 되었다.
*
용곡 안,
양준은 조용히 제자리에 서 있었는데, 기분이 마치 천지 기운의 바다에 있는 것만 같았다. 이는 처음으로 느껴 보는 미묘한 기분이었다. 몸속의 기운은 끊임없이 솟구쳐 빠르게 절정에 이르렀지만, 여전히 멈출 기미가 없이 계속해 미친 듯이 솟구치면서 원래의 한계를 돌파하고 있었다. 이제 곧 경지를 돌파하려는 것이었다.
지난번 경지를 돌파하고 나서부터 이미 몇 년이란 시간이 흘렀고, 금룡이 기운을 흡수하는 동안에도 양준은 수련을 멈추지 않았었다. 게다가 연단하는 과정에서도 많은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때문에, 이번 경지 돌파는 장벽 없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천지간의 기운이 그의 몸에 더해지면서 원래부터 단단했던 육체를 더 정진시켰고, 몸속의 진원도 더 순수해졌다. 몸 곳곳에서 놀라운 기운이 넘쳐흘렀다. 양준은 기뻐서 날 것만 같았다. 그는 자신의 몸과 마음을 활짝 열고서 천지간 기운을 마음껏 받아들였다.
대다수의 무인들은 경지를 돌파할 때 진원을 돌리거나 비보를 펼쳐 자신의 육체를 보호함으로써, 천지간 기운을 흡입하면서 입는 타격을 줄이곤 했다. 이런 방법은 안전하지만, 상대적으로 얻을 수 있는 이득도 줄어들었다. 하지만 양준은 육신이 단단하기에 굳이 따로 육체를 보호할 필요가 없었다. 천지간의 기운이 강할수록, 그가 얻을 수 있는 이득도 많아지면서 선순환이 이루어질 수 있었다. 무인들이 기본기를 중요시하는 것은 기본기가 탄탄하면 앞으로 얻을 수 있는 이득이 더 많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양준은 특히 기본기가 매우 탄탄했다.
양준은 호천순과 은빛 나뭇잎에 감싸여 있는 손옥을 흘끔 보았다. 그는 손옥이 보호막 안에서 천지간의 기운에 영향을 받지 않는 것을 보고 한시름을 놓을 수 있었다.
*
무시무시한 천지간의 기운이 번개처럼 내리쳐 땅도, 산도 진동하며 마치 세계의 종말이 다가온 듯한 광경이 펼쳐졌다.
용곡 입구를 지키고 있던 용봉부의 사람들은 모두 낯빛이 크게 변하며 두려움에 휩싸였다. 이처럼 파괴성 짙은 기운을 지켜보면서, 누군들 손옥이 무사하게 돌아올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있겠는가.
진주와 능견은 애간장을 태우며 안절부절못했다. 산골짜기에 내려가서 도대체 어찌 된 영문인지 알아보고 싶어도, 섣불리 움직였다가 혹시 손옥이 전승을 이어받는 걸 방해할까 봐 두려워 움직일 수도 없었다. 두 사람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시름만 깊어졌다.
그리고 바로 이때, 방어를 위해 인력을 배치하던 소령이 돌아왔다. 그는 유한동천 쪽에서 역시나 기미를 알아차리고, 입성 경지 1단계 고수 두 명이 다른 고수들을 거느리고 용곡으로 쳐들어오고 있다고 보고했다.
진주의 얼굴빛이 순간 차가워지더니 눈동자 깊은 곳에서 서슬 퍼런 빛이 스쳐 지나갔다.
용봉부가 몰락하면서 유한동천이 생겨났고, 평소에도 두 세력은 갈등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두 세력 모두 입성 경지 고수가 있었기에 지금까지 작은 갈등은 끊이지 않았지만, 대규모의 혈전은 없었다. 대규모의 전투가 발생하게 되면, 어느 쪽도 이득이 없기 때문이었다.
용봉부에는 입성 경지 고수가 진주 한 사람뿐이지만, 정말 맞붙어 싸우게 되면 유한동천도 손실을 감당하기 어려웠다. 그런 그들이 이번에 기세등등하게 쳐들어오는 의도에 대해, 진주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이곳은 능 장로께 맡기겠네. 손옥이 무사하게 돌아오면… 그를 데리고 용봉부를 멀리 떠나게. 그리고 우리 용봉부의 재기는 모두 그에게 달렸다고 말해 주게나.”
“종주님!”
능견은 낯빛이 급변하면서, 은연중 진주가 무엇을 하려는지 알아차렸다.
“소령, 정의, 나와 함께 가서 맞서 싸우자고! 그들이 우리 용봉부를 범할 재주가 있는지 한번 봐야겠어.”
진주가 높은 목소리로 말하며 몸을 날려 먼 곳으로 날아갔다. 소령과 여정의도 급히 그를 따라 나섰다. 이내 용곡 입구에는 능견 한 사람만 남게 되었다.
능견은 발을 동동 구르며 안달했다.
“나쁜 놈, 왜 이리 안 나오지? 급해 죽겠구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