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24장. 가차없이 죽이다
“너……!”
“우리가 대가를 치르게 하겠다고? 하하하! 녀석이 참 방자하구나!”
이때, 옆쪽에서 너털웃음 소리가 들려왔다. 이상야릇한 목소리와 함께, 그림자 몇 개가 귀신처럼 사방에서 나타났다. 하나같이 깔끔해 보이는 하얀 옷차림이었다.
손옥은 낯빛이 바뀌더니 저도 모르게 능견의 등 뒤로 숨어들었다. 능견은 제자를 보호하는 한편, 차가운 눈빛으로 주위를 훑어보며 나지막하게 일갈했다.
“유한동천 놈들이군!”
나타난 다섯 명은 유한동천의 무인들로 모두 초범 경지였다. 이 정도 인원수와 등급의 무인들이 초범 경지 1단계밖에 안 되는, 눈까지 침침한 능견과 대적한다면 결과는 불 보듯 뻔했다. 때문에, 유한동천의 무인들은 거리낌 없이 모습을 드러낸 채 조롱 어린 눈빛으로 여유 있게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우두머리로 보이는 중년 남자가 음산하게 웃으며 손옥을 훑어보더니 호통을 쳤다.
“네가 방금 전에 우리 유한동천이 대가를 치르게 하겠다고 말한 것이냐?”
손옥은 얼굴이 하얗게 질려 감히 대답하지 못했다.
양준이 전력으로 양성한 덕분에, 손옥은 자질도 바뀌고 경지도 크게 향상되었지만, 결국 십대 소년에 불과했다. 한 번도 풍파를 겪어 보지 못했던 손옥은 초범 경지 무인 다섯 명을 마주하게 되자, 싸움이 시작되기도 전에 용기가 사라져 버렸다. 방금 전까지의 호기로운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는 능견의 등 뒤에 숨어, 무엇을 찾는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잠시 뒤, 손옥은 기쁜 표정을 짓더니 곧 진중해졌다.
중년 남자는 한마디 한 다음, 더는 두 사람을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러고는 다른 네 명과 함께 시선을 용곡 쪽으로 돌리고 아래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방금 전 천지간의 조화가 이쪽에서 전해진 게 확실한 거지?”
“네, 이곳은 용봉부의 용곡으로, 용황의 전승이 숨겨져 있다고 전해집니다. 저희는 줄곧 믿지 않았는데, 지금 보니 사실인 듯합니다. 지난 2년 동안, 진주 일행은 줄곧 이곳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용봉부의 제자가 용황의 전승을 얻은 게 확실하겠군?”
“네, 알아본 데 의하면 들어간 사람은 진원 경지 7단계의 손옥이라고 합니다.”
“참 행운아군. 들어가서 그놈을 사로잡으면 되겠구나!”
초범 경지 무인 다섯 명은 능견과 손옥을 완전히 무시하고 저희들끼리 의논하고 있었다. 능견은 지레 겁을 먹고 있다가, 그들의 대화를 듣고는 문득 기회를 엿보게 되었다. 그들은 아직 눈앞의 소년이 자신들이 찾으려는 손옥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그들은 예전에 손옥을 본 적이 없었고, 또 손옥의 경지가 크게 올랐으므로 틀린 판단을 했던 것이다. 그들은 손옥이 아직 용곡 안에 있는 줄 아는 듯했다.
“저기… 자네들이 용곡에 들어가도 저지하지 않을 테니, 우리 두 사람은 여기를 떠나면 안 되겠는가?”
능견은 경계하는 한편 물었다.
“여길 떠나려고? 좋지. 단, 먼저 감히 우리더러 대가를 치르게 하겠다고 말한 저 녀석의 세 치 혀를 잘라 버리고.”
중년 남자는 고개를 돌려 능견을 바라보더니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능견은 낯빛이 바뀌었지만, 억지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이놈이 나이가 어려 헛소리를 한 거네. 내가 이놈을 대신해 사과할 테니, 넓은 아량으로 녀석을 한 번만 용서해 주게나.”
“하하하!”
유한동천의 다섯 명은 일제히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중년 남자는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
“녀석은 용서해 줄게. 어리니까 잘못을 저지를 수도 있지. 우리도 나이 먹고 어린 애를 괴롭힐 생각은 없어……. 그 대신 당신 제자인 만큼, 당신이 대신해 벌을 받으면 되겠군. 지금 당장 무릎을 꿇고 절한 다음, ‘우리 용봉부는 개보다 못하다’를 큰소리로 외친다면, 녀석을 용서해 주지. 어때?”
그러고는 강요하는 눈빛으로 능견을 바라보았다.
능견은 순간 낯빛이 차가워졌다. 아무리 나이가 들었다고 해도, 어쨌든 초범 경지까지 수련한 무인으로서 본연의 혈기와 패기는 그대로였다. 상대가 이 정도로 사람을 무시하는데, 능견이 어찌 화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하지만 진주가 신신당부하던 것을 떠올리고는, 능견은 마음속 분노를 가라앉히며 굴욕감에 젖은 눈빛으로 중년 남자를 힐끗 보았다. 그는 담담한 표정으로 천천히 무릎을 내렸다.
가볍게 냉소하는 중년 남자의 눈가에는 비웃음이 서려 있었다.
“사부님……!”
손옥은 손을 내밀어 능견을 붙잡았다. 그의 앳된 얼굴에서는 방금 전 두려움과 당황스러움을 찾아볼 수 없었고, 맑은 눈동자에는 증오와 살기가 가득 서려 있었다.
“이놈……!”
능견은 손옥에게 눈을 부릅떠 보였다.
손옥은 그에게 고개를 절레절레 저어 보이고는, 능견의 앞을 막아선 채 다섯 사람을 바라보며 말했다.
“손옥을 찾으러 온 게 맞아?”
“쓸데없는 소리가 많구나.”
중년 남자가 불쾌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내가 바로 손옥이다. 안쪽에 가서 찾을 필요 없어!”
중년 남자는 한순간 상황 파악을 못하고, 놀란 표정으로 손옥을 바라보았다. 다른 네 사람도 같은 표정이었다.
“의심할 필요 없어. 내가 들어갈 때 진원 경지 7단계였던 건 사실이지만, 그건 2년 전 일이야!”
손옥이 코웃음을 쳤다.
“2년 동안에 큰 경지 하나를 뛰어넘었다고?”
중년 남자는 엉겁결에 놀라서 소리쳤다.
손옥은 지금 신유 경지 7단계였다. 2년 전과는 실력 차이가 너무나 컸기에, 그들은 눈앞의 소년이 손옥일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던 것이다. 다른 한 사람이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이게 바로 용황 전승의 위력인가?”
“그렇게 생각해도… 무방해!”
손옥은 가볍게 콧방귀를 뀌었다. 초범 경지 고수 다섯 명을 마주하고서도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여유 있어 보이는 그의 모습은 조금 전과는 전혀 달랐다.
유한동천의 무인들은 그의 말에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2년 동안 진원 경지 7단계에서 신유 경지 7단계로 진급하다니, 이건 그야말로 기적이었다. 또한 용황의 전승에 내재된 위력이 얼마나 강한지를 알 수 있었다. 덩달아 손옥을 바라보는 그들의 눈빛도 점점 더 뜨거워졌다.
“이놈의 자식이!”
능견은 화가 나서 피를 토할 지경이었다.
상대방은 손옥의 신분을 알아채지 못한 상황이었기에 조금만 억울함을 참으면, 기회를 틈타 이곳을 떠날 수도 있었다. 능견은 손옥을 보호할 수만 있다면 자신이 모욕당하는 것쯤은 아무 일도 아니었다. 그런데 이 와중에 손옥이 스스로 인정할 줄 누가 알았겠는가.
‘이건 화를 자초하는 거잖아! 아니 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니야? 자질이 특별히 좋은 것도 아니고 약삭빠른 것도 아니지만, 지금처럼 바보는 아니었는데?! 어째 용곡에 다녀오더니 성격이 변했지?’
능견은 손옥이 더 말할 수 없게, 정말 뺨이라도 후려쳐 기절시키고 싶었다.
“사부님… 괜찮습니다!”
손옥은 미소 지으며 확신에 찬 표정으로 능견에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능견은 손옥의 미소를 보자 어찌 된 영문인지 마음이 진정되었다. 초범 경지 다섯 명이 주는 압박감도 많이 가벼워진 듯했다.
능견은 허허 웃으며 말했다.
“알겠다. 그럼 우리 둘이서 함께하자꾸나. 죽든지, 살든지 우리 둘의 운에 달렸겠지.”
“우린 죽지 않을 겁니다. 죽어도… 저 자들이 죽을 겁니다.”
손옥은 말투가 차가워지더니 매서운 눈초리로 다섯 사람을 쏘아보았다. 그의 눈빛에는 상대를 압박하는 매서운 기운이 서려 있었다.
다섯 사람은 차가운 낯빛으로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저도 모르게 뒤로 물러섰다. 유한동천의 초범 경지 다섯 명은 승리를 확신하는 듯한 손옥의 모습에 오리무중에 빠지고 말았다.
손옥이 2년 동안 큰 경지 하나를 뛰어넘었다고는 하나, 어디까지나 신유 경지 7단계밖에 안 되었다. 그 경지로 초범 경지 다섯 명과 대적하면 반항할 여지가 있을 수 있겠는가? 하지만 상대는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고, 도리어 놀리는 듯한 눈빛으로 자신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우두머리인 중년 남자는 잠깐 주저하다가 매섭게 일갈했다.
“무슨 수작인지 모르겠지만, 우리를 어떻게 죽이나 한번 보자꾸나.”
동시에 손을 휘저으며 명령했다.
“녀석은 사로잡고, 노친네는 죽여!”
그의 등 뒤에 있던 네 명은 순식간에 능견과 손옥의 앞으로 달려들었다. 그중 한 명은 손옥을 사로잡으려 했고, 다른 세 명은 손속에 자비를 두지 않고 능견을 공격했다.
능견이 미처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세 명의 공격이 덮쳐 왔고, 그는 등골이 오싹해져 ‘이젠 죽었구나!’를 속으로 외쳤다.
하지만 곧이어 기괴한 상황이 발생했다.
손옥을 사로잡으려던 한 명과 능견을 공격하던 세 명 모두 마치 주술에 걸린 것처럼 순간 동작을 멈추더니, 하나같이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고 땅바닥을 구르면서 끊임없이 비명을 질렀다. 그들의 식해 안 신식의 힘이 어지럽게 폭발했다. 마치 무엇인가 그들의 신식을 공격해 훼손하는 것만 같았다.
중년 남자는 깜짝 놀라 높은 목소리로 원인을 물었다.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하나도 없었다.
잠깐 사이, 네 사람은 온몸이 굳어진 채 눈도 감지 못하고 죽어 버렸다.
능견은 깜짝 놀라 넋을 잃고 이 광경을 바라보았다. 손옥도 숨을 거칠게 내쉬면서 한순간 마음을 진정할 수가 없었다. 방금 전 유한동천의 무인은 그의 팔까지 잡았었다. 그런데 순식간에 이런 변고가 생길 줄 누가 알았겠는가!
손옥은 기쁜 표정으로 주변을 훑어보았다. 이는 분명 양준이 손을 쓴 것이었다.
‘역시 대단한 분이었어!’
자신과 사부를 꼼짝달싹하지 못하게 하던 초범 경지 무인 네 명은 이렇게 영문도 모르고 죽임을 당했다. 중년 남자의 표정으로 보아, 그는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한 게 분명했다. 손옥은 그제야 마음을 놓고 잔인한 미소를 띤 채 중년 남자를 바라보았다.
중년 남자는 그의 시선과 마주치는 순간, 저도 모르게 뒤로 몇 걸음 물러섰다.
“네가 한 짓이냐?”
중년 남자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당장 죽을 사람한테 대답해 줄 필요 있겠어?”
손옥은 느긋한 표정으로 손가락 하나를 뻗어 중년 남자를 가리켰다.
중년 남자는 두려움에 싸여 괴성을 지르더니 비보로 주변을 보호하면서 줄행랑을 쳤다. 손옥이 무슨 꼼수를 썼는지, 자신과 경지가 비슷한 동료 네 명이 비명횡사했다. 이곳에 더 머물렀다가는 자신도 죽을 게 뻔했다.
‘용황의 전승이 이처럼 기괴하단 말인가? 어떻게 해서든 문파의 입성 경지 두 분께 이 소식을 알려야 해. 그래야 그분들도 방어할 수 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