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27장. 입성 경지와의 접전
엄집의 공격은 도망칠 시간을 조금이라도 벌기 위한 것이었다. 9급에 달하는 요황을 마주하자, 엄집은 자신이 상대가 안 된다는 것을 금방 깨달았다. 금룡의 위압감에 계속해 싸우다가는 자신이 죽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금룡 앞에서 엄집은 수시로 죽음의 문턱을 넘나드는 기분이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겹겹의 빛이 금룡의 공격을 막아내었다. 금룡은 하늘에 멈춰 섰고, 한참이나 지났지만 얼음 사슬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엄집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어딘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만약 금룡이 진짜 9급 요황이라면, 이렇게 쉽게 막힐 수가 없었다.
다시 자세히 탐지해 보고 나서, 엄집은 금룡이 위엄은 있으나 전혀 이기지 못할 상대는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금룡의 몸속에서 용솟음치는 원기 파동은 자신의 것과 비슷했으며, 심지어 자신보다 조금 못한 것 같기도 했다.
엄집은 눈알을 굴리다가 더는 도망치지 않았다. 이윽고 그는 각종 수단을 모두 펼치면서 하늘에서 금룡과 접전을 벌였다.
용황의 위력을 지켜보던 진주는 절대적인 열세에 처했다가, 사기가 진작되어 순식간에 열세를 만회했다. 용봉부의 무인들도 원래 암담하던 눈동자에 생기가 넘치기 시작했다. 그들은 눈 깜짝할 사이에 방어에서 공격으로 바뀌었다. 유한동천의 무인들은 연신 물러서며 수많은 사상자를 내었다.
은하의 보호를 받고 있던 손옥은 눈을 휘둥그레 뜨고서 하늘에서의 싸움을 지켜보았다. 그는 두 손을 주먹 쥐고서 마음속으로 끊임없이 금룡을 응원했다.
‘그런데 양 선배는 왜 여태껏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거지? 용황의 전승으로 적들과 상대하는 것 같은데… 만약 선배가 직접 이곳에 나타나면 그의 재주로 저 자들을 혼쭐 내줄 수 있을 텐데.’
손옥은 안목이 높지 않아, 양준이 사실은 진급한 지 얼마 되지 않는 초범 경지 3단계일 뿐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한참 접전을 벌이던 엄집은 문득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그냥 큰 벌레에 지나지 않군! 하하하!”
금룡이 불현듯 나타났을 때, 엄집은 지레 겁을 먹었었다. 어쨌든 그의 눈앞에 나타난 것은 전설 속의 9급 요황이었다. 그러나 지금까지 싸우면서, 그는 금룡의 실제 실력이 그와 비등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냥 자신보다 맷집이 좋은 것뿐이었다. 그의 여러 수단이 금룡의 몸을 적중해도 금빛 비늘에 막히다 보니, 금룡은 전혀 다치지 않았다. 금룡은 아직 채 성장하지 못했던 것이다. 지금의 금룡은 8급 초기 수준밖에 안 되었다.
엄집은 곧바로 침착해졌다.
현빙검에서 차가운 기운이 발산되자 금룡의 뜨거운 기운과 충돌하면서 안개가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하늘은 하얀 안개로 자욱했다. 멀리서 바라보면 안개 속에서 빛이 반짝이고 기운이 폭발하는 것이 보일 뿐, 구체적으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안개 속에서 엄집과 금룡은 서로 충돌하며 접전을 벌였다. 가까운 거리에서 싸우다 보니, 엄집은 커다란 용의 눈에서 인간의 감정을 읽을 수 있었다. 그는 저도 모르게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그는 어쩐지 자신과 접전을 벌이는 것이 요수가 아닌, 사람 같았다.
금룡은 대처 능력이 너무 뛰어났다. 또한 싸움이 진행됨에 따라 엄집은 압박감이 커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전투 가운데서 금룡이 신속하게 성장하는 듯했다.
곧이어 날카로운 용의 발톱이 공격해 오는데, 공간을 찢을 듯한 위력을 지니고 있었다. 엄집은 매번 공격당할 때마다 온몸에 식은땀이 흘렀다. 그러나 이내 낯빛이 차가워지더니 마음을 진정시켰다. 그의 수중의 현빙검이 은은한 빛을 폭발하자, 그의 주변에 날카로운 얼음 기둥이 나타나더니 천지를 뒤덮는 기세로 금룡에게 쏘아졌다.
이 같이 사방팔방에서 쏟아지는 놀라운 공격에 금룡은 커다란 입을 쩌억 벌렸다. 금룡의 입에서 황금빛 원기가 화산처럼 폭발했다.
쿠웅-
격렬한 두 원기 파동이 충돌하는 순간, 각자의 기운에 내재되어 있던 상반된 무도의 깨달음이 폭발음과 함께 빛을 발했다. 뜨거운 원기가 더욱 짙고 강한 것이 틀림없었다. 뜨거운 기운에 닿은 얼음 기둥은 한순간에 녹아내렸지만, 뜨거운 기운은 기세가 줄어들지 않고 그대로 엄집에게 날아갔다.
엄집은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피하려 했다. 그 순간, 그의 머릿속에서 조롱하는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에 엄집은 저도 모르게 멈칫하고서 떨리는 눈동자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금룡을 바라보았다. 그가 다시 정신을 차리고 피하려 했을 때는 이미 늦은 뒤였다.
모든 것을 불태워 버릴 것 같은 금빛 기운이 순식간에 엄집을 뒤덮었다. 그는 처참한 비명을 지르며 몸속 차가운 기운을 폭발시켜 열기를 막으려 했다.
잠시 뒤, 엄집은 숨을 헐떡이며 한쪽으로 날아갔다. 치명적인 상처는 입지 않았지만, 그의 수염과 머리카락이 모두 불에 타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그는 독기 어린 눈빛으로 금룡을 바라보았다.
방금 전, 그를 방해한 소리는 금룡이 낸 것이 틀림없었다. 때문에 그는 미처 방어하지 못하고 한 방 먹었던 것이다. 그가 신경 쓰이는 것은 그 소리가 요수의 것이 아니라 사람의 목소리였다는 점이었다.
“용황이든 뭐든, 날 다치게 했으니 반드시 죽여 버릴 거야!”
엄집은 미친 듯이 분노하며, 수중의 현빙검을 홱 던졌다.
장검은 하늘에서 모양새가 기괴한 요수로 변했다. 체형이 금룡과 비등한 요수는 차가운 한기를 띠고서 포악하게 달려들어 금룡을 꽁꽁 묶었다. 그러자 용의 울부짖는 소리가 들려오더니 몇십 장에 달하는 금룡이 하늘로 날아올랐지만, 여전히 현빙검이 변한 요수의 속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엄집은 그 틈을 타 금룡에게 다가갔다. 그의 두 손에서는 한기가 일렁이고 있었다. 이윽고 그중 한 손이 빙정처럼 맑고 투명하게 변하면서 살을 에는 한기를 내뿜으며 날카로운 가시처럼 금룡의 복부를 찔렀다.
단단한 용의 비늘도 이 공격은 막아내지 못했다. 비늘이 뚫리면서 엄집의 손이 금룡의 배에 세 치 정도 들어갔으나, 꿈틀거리는 피와 살에 막히고 말았다. 그가 다시 손을 빼냈을 때, 붉은색 가운데 금빛이 섞인 피가 뿜어져 나오며 그의 얼굴을 뒤덮었다.
“하하하!”
엄집은 미친 듯이 웃음을 터뜨렸다. 싸움이 시작되고 난 뒤 드디어 처음으로 상대에게 상처를 입히게 된 것이다. 그는 승리의 희망을 본 것만 같았고, 금룡이 반격하기 전에 몸을 빼 물러서며 비웃었다.
“몸집이 크면 천하무적인 줄 알아? 무식하긴.”
엄집의 이 말에 금룡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거대한 몸뚱이를 한참 동안 꿈틀거리더니 순식간에 크기가 많이 줄어들었다. 그러자 자신을 묶고 있던 속박에서 쉽사리 빠져나올 수 있었다.
엄집은 깜짝 놀랐다. 그는 여태껏 요수가 자신의 크기를 변화할 수 있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는 사람의 모습을 갖춘 요수도 알고 있었지만, 눈앞의 광경은 너무나 기괴했다.
엄집이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몸집이 원래 크기의 몇 분의 일로 작아진 금룡이 이미 정면으로 달려들고 있었다. 차가운 빛이 번뜩이는 용의 양쪽 발톱에는 죽음의 기운이 드리워져 있었다.
엄집은 저도 모르게 머리카락이 쭈뼛이 서는 것만 같았다.
금룡은 몸집이 작아졌지만 위엄은 전혀 줄어들지 않았고, 오히려 움직임이 더 빨라진 듯했다. 금룡이 달려드는 가운데, 사슬 같은 금빛 기운이 금룡의 옆쪽에서 쏘아지더니 엄집이 서 있는 공간을 감쌌다. 이와 동시에 수많은 기다란 금빛 창들이 불쑥 나타나더니 위력을 지닌 채 엄집에게 날아들었다.
슈욱- 슈욱- 슈욱-
공격들은 눈 깜짝할 사이 공간을 찢고, 엄집의 코앞으로 다가왔다.
“이럴 수가!”
엄집은 비명을 질렀다. 그는 안목이 높기에 한눈에 금빛 사슬이든, 기다란 금빛 창이든 모두 등급이 높은 무공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요수가 어떻게 이리 현묘한 무공을 펼칠 수 있단 말인가?’
엄집은 기세등등하게 달려드는 기다란 창의 공격을 허둥지둥 피했지만, 금빛 사슬의 추격에서는 벗어날 수가 없었다. 그는 무의식중에 금빛 사슬에 스쳤고, 순간 온몸이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마치 커다란 산이 그의 정수리를 내리누르는 것처럼 덩달아 그의 신식도 봉인된 듯했다. 짧은 순간이지만, 고수들 사이 접전에서는 한순간의 열세가 전체적 흐름에 영향을 줄 수 있었다.
엄집이 만약 구천성지에 가봤더라면, 혹여 구천성지 전임 성주의 수단을 봤더라면 이 두 무공을 알아챌 수 있었을 것이다. 유천쇄와 주천모였다. 유천쇄는 육신을 속박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신혼을 봉인할 수 있었고, 주천모의 살상력은 강하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엄집이 구천신기의 강한 위력을 알 리 없었다. 그의 몸이 유천쇄에 스친 순간, 신식이 무거워지면서 반응도 예전 같지가 않고 마치 늪지에 빠진 것만 같았다. 곧이어 하늘을 가득 메운 사슬과 창이 사방팔방에서 엄집을 감싸며 날아들었다.
엄집은 이리저리 피했지만, 시종일관 사슬과 창의 공격권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가 안달 나서 어찌 할 바를 모르는데, 작아진 금룡이 그의 앞에 다가오더니 뜨거운 열기를 내뿜었다. 엄집은 괴성을 지르며 진원을 돌려 막으려 했지만, 온몸의 뼈가 부서지는 소리를 내는 것이 위압감을 견뎌내지 못하고 폭발할 듯했다.
금룡은 엄집이 미처 방어하지 못하는 틈을 타 날카로운 두 발톱을 그의 가슴팍에 꽂아 넣고 양쪽으로 와락 찢었다.
엄집은 눈을 부릅떴다. 죽음의 기운이 코앞에 닥친 가운데,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을 알아챈 그는 이를 악물고 울부짖었다.
“너도 성치 못할 것이다!”
엄집의 온몸의 진원이 한순간에 모두 폭발하며 천만 개의 공격으로 바뀌어 금룡을 덮쳤다. 마치 온몸의 힘을 모두 짜낸 것처럼 마지막 공격을 방출한 순간 엄집은 섬뜩하게 웃었고, 그의 몸은 바람 빠진 풍선처럼 빠르게 쭈그러들었다.
곧이어 붉은색 가운데 금빛이 섞인 피가 하늘에서 흩뿌려지더니, 귀청을 때리는 용의 포효가 들려왔다.
쫘악-
엄집의 몸은 양쪽으로 찢기며 피와 내장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너무나 무시무시한 광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