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련전봉-828화 (827/853)

제 828장. 녀석, 장하구나

용의 포효에 고개를 들고 바라보던 무인들은 마침 지옥 같은 이 광경을 보게 되었다.

“문주가 죽은 건가?”

유한동천의 무인들은 하늘에서 떨어져 내리는 피와 살점들을 멍하니 바라보며 순간 얼이 빠지고 말았다. 다들 눈앞의 결과를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다. 한 시진 전만 해도, 엄집은 용황의 전승을 이어받은 사람을 사로잡아 잘 양성한 다음, 유한동천의 명성을 떨치겠다고 호언장담했었다. 그리고 문파의 제자들을 거느린 채 용봉부에 기세등등하게 쳐들어온 것이었다.

그런데 예상 외로 한 시진 뒤, 엄집은 불현듯 나타난 금룡에게 반으로 찢기고 말았다. 입성 경지의 고수가 이처럼 죽임을 당하다니,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상황이었다.

통현대륙에서 입성 경지에 오른 고수는 그리 많지 않았다. 거의 1~2백 년을 수련해야 이 같은 성취를 이룰 수 있었기에, 그들은 모두 사람들이 놀랄 만한 수단이 있었고, 그와 동시에 뛰어난 도주 수단 또한 가지고 있었다. 때문에, 입성 경지 고수가 죽는 일은 보기 드물었다.

적어도 용봉부와 유한동천의 무인들은 여태껏 이런 일을 들어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 그들의 눈앞에서 입성 경지 고수가 죽어 나갔다.

문파의 입성 경지 고수 두 명 중 한 명은 죽고, 다른 한 명은 용봉부의 종주에게 제압당해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자, 유한동천의 무인들은 순식간에 투지를 잃고 기세가 꺾였다.

용의 울부짖는 소리가 다시 한번 울려 퍼졌다. 십몇 장에 달하는 금룡은 하늘을 향해 포효하며 몸의 상처가 가져다준 고통을 떨쳐 버리는 듯했다. 동시에 시위하는 것 같기도 했다.

백경초는 얼굴이 창백해져 더는 진주와 싸우려고 하지 않았다. 그와 엄집은 같은 입성 경지 1단계였지만, 엄집의 실력이 더 강했다. 엄집도 금룡을 이길 수 없는데, 그는 엄두조차 낼 수 없었다.

“가자!”

백경초가 고함을 지르고는 먼저 도망쳤다.

“우리 용봉부가 너희들이 오고 싶으면 오고, 가고 싶으면 가는 곳인 줄 아느냐?”

진주는 연신 냉소하며, 백경초가 도망치는 틈을 타 공격했다.

백경초는 팔 반쪽을 남겨 놓고 종적을 감추었고, 남겨둔 팔이 하늘에서 폭발하며 핏빛 안개가 되었다.

진주는 제자리에 서서 숨을 헐떡이며 더는 쫓아가지 않았다. 그는 진작에 중상을 입은 상태였지만, 용황의 위력이 나타나자 가까스로 정신을 차리고 싸웠던 것이다. 지금은 힘이 다 빠진 상태였다.

유한동천의 무인들은 백경초마저 도망치자 더는 머물지 않고 허둥지둥 도망쳤다. 용봉부의 무인들이 그 뒤를 멀리까지 쫓아갔다. 그제야 진주는 용황의 신분을 상징하는 금룡을 자세히 볼 여유가 생겼다. 그의 엄숙한 얼굴은 온통 공경의 빛이 서려 있었다.

곧이어 진주는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금룡은 엄집을 찢어발긴 다음, 줄곧 제자리에 머물면서 꼼짝도 하지 않고 있었다. 용의 눈에는 무언가 생각에 잠긴 듯한 기색이 어려 있었는데, 마치 방금 전 전투를 되새기며 그중에서 깨달음을 얻는 것만 같았다.

진주는 고개를 저으며 자신이 착각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한참이나 지나서야 금룡은 다시 금빛으로 변해 손옥에게 날아가더니 그의 뒤쪽에서 종적을 감춰 버렸다. 이와 동시에 손옥과 능견의 앞을 가로막고 있던 은하도 곧바로 사라졌다.

진주는 얼굴빛을 가다듬고, 허약한 몸을 이끌고서 손옥에게 날아갔다. 그가 손옥에게 다가가 말을 건네기도 전에, 손옥이 오히려 먼저 공수했다.

“종주님을 뵙습니다!”

능견도 얼른 예를 올렸다.

진주는 실소를 금치 못했다.

“이럴 필요 없습니다. 이제 당신은 우리 용봉부의 용황이므로 제가 예를 올려야 합니다. 용황께서 이리 먼저 인사하시면 제가 무엇이 됩니까?”

손옥은 난감하기 그지없었다. 그는 머리를 긁적이며 한참을 우물거리다가 도대체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라 얼굴만 붉혔다. 사실 방금 전, 그는 이곳에서 연기만 했을 뿐, 실질적으로 엄집을 죽인 것은 양준이었다. 게다가 양준은 접전을 치르는 한편, 줄곧 비보로 그를 보호하고 있었다.

진주는 미소를 머금고서 손옥을 바라보았다. 보면 볼수록 손옥이 기특했다. 그는 용황의 성격이 겸손한 것이라 오해하고, 마음속으로 기쁨을 금치 못했다.

“제 아내의 목숨을 구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만약 용황께서 제때에 구해 주시지 않았다면 정의는 진작…….”

진주는 두려움이 가시지 않은 표정이었다. 방금 전에 만약 손옥이 은빛 나뭇잎으로 여정의를 감싸지 않았다면, 엄집은 진작 그녀를 죽였을 것이다. 진주에게 있어서 여정의는 평생의 동반자이자 생사를 함께할 사람으로, 서로 간에 상대를 자신의 목숨보다도 더 아꼈다. 그렇기 때문에 진주는 손옥이 여정의를 구해 준 데 대해 감격해 마지않았다.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손옥은 연신 손을 내저으며 부끄러워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진주는 손옥의 부끄러움을 타는 모습을 보고 빙그레 웃고는 말했다.

“용황께서 격전을 치러 많이 힘들 것이니, 능 장로, 어서 용황을 모시고 가서 쉬게나. 이쪽은 우리가 뒤처리를 할 걸세.”

“네!”

능견은 공손하게 대답하고서 손옥을 데리고 용봉부 쪽으로 날아갔다. 손옥은 날아가는 한편, 초조한 표정으로 주변을 연신 둘러보았다.

“허허! 허허허……!”

그때, 갑자기 능견이 참지 못하고 웃음보를 터뜨렸다.

“사부님, 왜 웃으시는 겁니까?”

손옥은 영문을 알 수 없어 어안이 벙벙해졌다.

“녀석, 장하구나… 입성 경지의 고수를 죽여 버리다니. 난 또 우리가 다 죽는 줄 알았다.”

능견은 진주처럼 손옥을 공손하게 대하지는 않았다. 두 사람은 사제 지간이고, 그는 손옥이 성장하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본 사람이기도 했다.

“사부님… 그 일은 그만 이야기해요.”

손옥이 얼굴을 붉혔다.

“그래, 알았다.”

능견은 고개를 끄덕이다가 문득 진지하게 말했다.

“그런데 용황의 전승이 정말 대단하긴 대단하구나. 넌 지금 신유 경지 7단계밖에 안 되는데, 입성 경지 고수를 죽일 수 있다니. 만약 입성 경지까지 진급하면, 천하무적이 되는 건 아니겠지? 때가 되면 우리 용봉부는 세상에서 가장 강한 세력이 될 테니, 나도 네 덕을 많이 보겠군.”

능견은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그의 얼굴에는 흥분의 빛이 반짝거렸다.

손옥은 고개를 숙인 채, 묵묵히 능견과 함께 종문으로 날아갔다.

*

용봉부 안은 긴장한 분위기가 흐르고 있었다. 고수들은 거의 모두 적들과 맞서 싸우러 나갔고, 남아 있는 사람들은 다 실력이 낮은 무인들이었다. 그들은 손옥과 능견이 돌아오자 우르르 몰려들어 상황을 물었다. 그들은 손옥이 용곡에서 돌아왔다는 사실조차 잊고 있었다.

능견은 나이를 내세워 그들을 모두 쫓아 버렸다. 물론 그들에게 종문이 대승을 거두고 유한동천의 입성 경지 고수 두 명 가운데 한 명은 죽고, 한 명은 팔 하나가 잘렸다는 사실은 알려 주었다.

용봉부의 제자들은 입을 삐죽거리며 누구도 능견의 말을 믿으려 하지 않았다. 그들은 비록 실력이 높지 않았지만, 유한동천이 용봉부보다 강하다는 건 알고 있었다. 상대는 입성 경지 고수가 두 명이나 있었지만, 용봉부에는 한 명밖에 없는데 어떻게 이런 결과가 나올 수 있단 말인가?

능견은 그들에게 더 길게 설명하지 않고, 손옥을 원래 살던 곳으로 데려다 주었다.

*

능견이 떠난 뒤에야, 손옥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바짝 곤두세우고 있던 정신도 이제는 긴장을 늦출 수 있었다. 그는 주위를 둘러보고 나서 가볍게 불렀다.

“선배, 양 선배……!”

“부르지 마. 난 줄곧 네 곁에 있었어.”

이때, 문득 그의 옆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손옥이 고개를 돌려 보니, 양준이 자신의 침대에 단정히 앉아 있는 게 아닌가? 손옥은 양준이 언제 이곳에 들어왔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그는 신출귀몰하는 양준의 수단이 그저 놀라울 뿐이었다. 그는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공손하게 예를 올렸다.

“목숨을 구해 준 선배의 은혜, 영원히 잊지 않을 겁니다. 언젠가 꼭 보답하겠습니다!”

양준은 손을 내저으며 힘없이 말했다.

“내 존재를 누설하지 않으면 돼.”

손옥은 깜짝 놀랐다. 그제야 그는 양준이 온몸에 상처를 입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옷가지에도 이곳저곳이 온통 붉은 핏자국이었다. 양준은 손으로 아랫배를 감싸 쥐고 있었다. 그의 아랫배 쪽에서 차가운 기운이 퍼져 나가면서 흘러나오던 피가 빠르게 얼어붙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의 몸속에서 흘러나온 피는 옅은 금빛을 띠고 있었다.

“선배, 부상당한 겁니까?”

손옥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괜찮아. 한참 동안 회복하면 나을 거야. 그리 심한 상처는 아니야.”

“선배께서는 어떻게 상처를 입은 거죠?”

손옥의 머릿속은 온통 의문투성이였다. 방금 전 전투에서 그는 양준이 공격하는 것을 보지 못했었다. 오직 금룡만이 엄집과 싸웠고, 금룡이 큰 상처를 입었었다.

‘그런데 금룡이 상처를 입은 것이 양 선배와 무슨 연관이 있지?’

게다가 양준의 아랫배 쪽 상처는 금룡이 부상당한 위치와 똑같았다. 손옥은 엄집이 빙정으로 변한 손을 금룡의 몸속으로 찔러 넣은 위치를 정확히 봤었다.

*

용봉부는 전체적으로 분위기가 달아올라 있었다.

유한동천에서 쳐들어왔지만, 불세출의 용황이 나타나 그들의 입성 경지 고수 한 명을 죽이고, 종주가 다른 입성 경지 고수의 팔 하나를 자르고 쫓아 버렸다.

진주 일행이 승리를 거두고 돌아왔을 때, 사람들은 기쁨으로 들떠 있었다. 오늘처럼 속 시원한 날은 여태껏 없었다. 용봉부는 유한동천과 오랫동안 은원을 쌓아 왔는데, 매번 유한동천에서 먼저 시비를 걸면 용봉부 사람들은 화를 참으며 그들을 피할 수밖에 없었다. 또한, 용봉부의 제자들은 밖에서 유한동천 제자들을 만나면 고개조차 들지 못하고 멀리서부터 피해 다니는 상황이었다. 때문에, 거의 모든 용봉부의 제자들이 유한동천을 원수로 여겼다.

오늘도 상대가 아무 연유 없이 종문의 고수들을 총출동시켜 대거로 쳐들어오자, 용봉부의 제자들은 종문이 이번에는 재난을 피하지 못할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결과는 모두를 깜짝 놀라게 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