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33장. 몸매가 좋구나
“그럼 조사님께서는 어떻게 이곳으로 돌아오셨습니까?”
양준은 호기심이 동해 물었다.
초능소는 빙그레 웃으며 대답했다.
“우연이었어. 너희 쪽에 유명산이라고 있지?”
양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곳은 대한의 금지 구역으로, 그는 수련하러 그곳에 간 적이 있었다. 당시 그곳에서 그는 소현계에도 들어갔었고, 천랑국의 자맥과도 만났으며, 이런저런 일들이 많았었다.
“바로 그곳에서 허공 통로를 찾아 통현대륙으로 돌아오게 되었단다.”
양준은 눈앞이 밝아지는 것만 같았다.
유명산에 통현대륙으로 통하는 허공 통로가 있다니, 이에 대해 그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가 통현대륙에 올 수 있었던 것은 몽무애의 지시대로 천랑국의 금지 구역인 폐토에 가서 허공 통로를 찾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중도의 지맥에도 허공 통로가 있었다. 이렇게 열거해 보니, 중도 쪽에서 통현대륙으로 통하는 허공 통로가 생각보다 많은 듯했다. 다만 사람들이 거의 발견하지 못했을 따름이었다. 그렇다면 역으로 통현대륙에서 중도 쪽으로 통하는 허공 통로도 적지 않을 터였다.
양준은 초능소와의 대화에서 자신이 원하는 정보를 얻지는 못했지만, 한 가지 사실을 확신할 수 있었다. 인내심을 가지고 찾으면 중도로 가는 길은 반드시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점이었다. 하지만 허공 통로를 찾는 일은 당장 급하지 않았다. 아무튼 그는 아직 식구와 친구들을 데려올 능력이 안 되었고, 그들을 보호할 힘도 없었다. 그리고 공간을 찢어 순간 이동하는 신통력은 스스로 깨우쳐야만 했다.
하지만 양준은 전혀 두렵지 않았다. 그의 육신은 충분히 강했고, 신식도 특수하기에 큰 이점이 있었다. 그는 조급해하지 않고 평온한 마음을 유지했다. 그의 신식은 천만 갈래로 나뉘어 난기류에 침투했고, 그것들의 흐름에 따라 규칙을 찾았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는 점차 일부 규칙을 알아낼 수 있었지만, 그 중의 핵심을 파악할 수가 없어 더욱더 몰두했다.
그러던 와중 어느 순간 난기류가 불안정해지기 시작했다. 이에 낯빛이 차가워진 양준은 얼른 신식을 거두어들이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놀랍게도 주변의 허공은 어지럽기 그지없었고 횡포함 속에 파괴성까지 지닌 무시무시한 기운이 사방팔방에서 휘몰아쳐 오고 있었다.
이전에 공간을 찢는 수단을 시도할 때도, 늘 이런 상황에 부딪혔었다. 이것은 마치 별 세계에서 별 세계의 힘이 어느 정도로 모이면 폭풍을 형성하는 것과 같았다. 틈 속에서도 마찬가지로 허공의 힘이 모여서 허공 폭풍을 이룬 것이었다. 양적 변화가 쌓여 질적 변화를 일으킨 필연적인 결과였다.
매번 이런 상황에 부딪힐 때마다 양준은 잠시 그 기세를 피했었다. 지금 이 순간도 똑같은 생각이 떠올랐으나, 곧이어 그는 마음을 다잡고 미간을 찌푸린 채 깊은 생각에 잠겼다.
지난번 별 세계에서 별 세계 폭풍을 만났을 때, 그는 많은 수확을 얻었고, 단번에 초범 경지를 돌파했었다. 때문에, 지금 이 자리에 남아서 허공 폭풍의 비밀을 깨친다면, 공간을 찢는 수단의 비밀을 파헤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양준은 자리를 뜨지 않고, 허공 난기류 속에 조용히 앉아 힘을 모으며 파괴성 짙은 기운을 기다렸다.
곧이어 횡포한 기운이 그를 삼켰다. 그의 몸에 걸쳤던 옷들이 순식간에 가루가 되었고, 동시에 그의 몸에도 상처가 촘촘히 생겨나 성한 곳이 하나도 없었다.
양준은 저도 모르게 낯빛이 바뀌었다.
이곳의 기운이 기괴하고, 파괴성이 별 세계의 힘 못지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여전히 그의 예상을 넘어서고 있었다. 양준은 얼른 온몸의 힘을 폭발시켜 맹렬한 기운을 버텨내었다.
피부가 갈라지고 피를 철철 흘리는 그의 상태는 멀리서 보면 마치 껍질이 한 층 벗겨진 듯한 모습이었다. 붉은색 가운데 금빛이 번쩍이는 피와 살이 끊임없이 꿈틀거렸고, 미묘한 힘이 모공을 통해 양준의 몸속으로 흘러들었다.
양준은 순간 놀라움에 육신의 고통마저 잊어버리고 흘러 들어온 힘을 감지해 보았다. 이는 허공의 힘으로 그가 공간을 찢는 수단의 비밀을 파헤치는 열쇠였다.
허공의 힘이 점점 더 맹렬해지면서 양준은 점차 버텨내기 힘들어졌고, 마치 온몸이 수많은 조각으로 잘린 듯한 느낌이 들었다. 게다가 허공의 힘 때문에 공간 전체가 일렁이면서 현실감이 사라졌다. 손발이 분명 눈앞에 있는데도 공간이 접히고 무질서해지자, 마치 사지가 이리저리 흩어져 있는 것처럼 보였다.
양준은 더는 지체하지 않고 다시 한번 힘을 폭발시켰다.
“입마!”
검고 짙은 마기가 금신에서 콸콸 용솟음쳐 나와 정교하고 기괴한 마문으로 변하더니 양준의 온몸을 뒤덮고는 피와 살 속으로 스며들며 빠르게 사라졌다. 곧이어 그의 기혈의 힘이 미친 듯이 향상되고 기세와 기운도 함께 올라갔으며, 참기 힘들던 통증도 순식간에 많이 완화되었다.
그는 가볍게 숨을 내쉬고 몸과 마음을 활짝 열고서 허공의 힘을 맞이했다. 양준은 허공의 힘들을 몸으로 기억했다. 시간의 흐름이 이처럼 느리게 느껴진 적이 없었다. 이윽고 그의 눈앞에 미묘한 변화가 나타났다.
원래는 좀처럼 파악할 수 없었던 난기류였다. 하지만 지금 다시 탐지해 보니, 규칙을 찾을 수 있었다. 양준이 아무렇게나 손을 휘젓자, 난기류는 그의 지시대로 흐르기 시작했다.
양준은 씩 미소를 짓고는, 자신의 몸속으로 흘러드는 허공의 힘을 통해 끊임없이 그 중의 현묘함을 깨쳤다.
오랜 시간이 지나, 허공의 폭풍이 드디어 지나가고 모든 것이 평온해졌다.
양준은 천천히 눈을 떴다. 그러자 놀랍게도 원래 텅 비어 있던 혼돈의 틈 속에 수많은 형광 빛이 생겨나 별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그리고 신식이 형광 빛에 닿을 때마다 형광 빛에서 미묘한 정보가 전해졌다.
양준은 미간을 찌푸리고 자세히 탐지해 보았다. 이윽고 그는 그 중의 핵심을 파악하고 흥분을 감출 수가 없었다. 곧 양준은 정신을 집중해 그중 한 형광 빛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문득 우뚝 솟은 산봉우리가 그의 머릿속에 새겨졌다. 산봉우리는 몇백 길이나 되었고, 주변에는 다른 산봉우리들이 빽빽이 늘어서 있었다. 그리고 이 산봉우리의 옆쪽에는 폭포가 흐르고 있었는데, 폭포 뒤쪽으로 동굴 입구가 숨겨져 있었다.
묘한 느낌이었다. 양준은 마치 허공에 둥둥 떠서 눈에 익은 산봉우리를 굽어보는 듯한 기분이었다. 눈앞에 있는 산봉우리는 기수봉으로, 비우의 거처이자 지금 자신이 폐관 수련하고 있는 곳이었다.
양준은 손을 내밀어 공간을 찢고 그 사이로 뛰쳐나갔다. 순간 눈앞이 어질했다. 다시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 샌가 산림 속에 와 있었는데, 주변은 나무들이 춤을 추고 새들이 지저귀며 꽃향기로 가득 차 있었다. 그리고 귓가에는 폭포가 쏟아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양준은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높은 하늘로 솟구쳐 올라서 아래쪽을 굽어보았다. 잠시 뒤, 그는 참지 못하고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하늘에서 굽어본 모습은 방금 전 그가 공간 속에서 빛을 통해 봤던 모습과 거의 똑같았다.
“이런 거였군!”
양준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흥분한 나머지 하늘을 우러러 길게 울부짖고 싶었다.
오늘에 이르러서야, 그는 드디어 공간을 찢어 이동하는 신통력의 비밀을 확실하게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 더는 예전처럼 틈에서 나올 때마다 알 수 없는 곳에 떨어지는 일 없이 이제는 대체적인 방향과 위치를 확정지을 수 있었다. 역시 몸으로 허공의 힘의 비밀을 기억하는 것은 효과적이었다.
‘이 방법이 통한다는 걸 진작 알았으면, 벌써 오래전에 이 신통력의 비밀을 각성했을 텐데!’
*
산허리 쪽에서 아름다운 그림자 하나가 번개같이 이쪽으로 접근해 왔다. 아마 양준의 웃음소리에 놀라 상황을 알아보러 오는 모양이었다.
가까이 다가와 하늘에 우뚝 서 있는 양준을 보던 비우는 저도 모르게 이상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손을 이마에 얹은 채, 고개를 들고 바라보며 목소리를 높여 물었다.
“폐관 수련하는 거 아니었어? 어떻게 이곳에 온 거야?”
양준은 비우의 목소리를 듣고 얼른 아래쪽으로 내려가는 동시에 웃으며 말했다.
“오늘 출관하면서 이곳저곳 다녀보느라고요.”
“출관했다고? 난 왜 못 봤지?”
비우는 눈썹을 잔뜩 찌푸린 채 물었다.
“사숙께서 신경 쓰지 않았나 보죠.”
양준은 아무렇게나 둘러 댔다.
비우는 더는 묻지 않고 의미심장한 눈길로 그를 몇 번 더 훑어보더니 입을 오므리고 방그레 웃었다.
“사질, 어딘가 이상한 점이 없어?”
“이상하다고요?”
양준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녀가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몸매가 무척 좋네… 옷을 입고 있을 땐 전혀 몰랐는데 말이야.”
비우는 혀를 내두르는 시늉을 하면서 하얀 목이 점차 빨갛게 물들었다. 하지만 그녀의 두 눈은 여전히 양준을 아래위로 훑어보고 있었다.
순간 양준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제야 그녀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차렸던 것이다. 이윽고 그의 신형이 움찔하더니 순식간에 폭포 아래쪽 못으로 뛰어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