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35장. 두 장로의 손님들
미나는 몇 년 만에 양준을 보게 되자 무척 기뻐했다. 하지만 양준에 대한 두만의 관심을 떠올리자, 그녀는 괜히 이가 갈렸다. 그동안 그녀는 양준의 소식을 알아보기 위해 천소종의 산봉우리가 다 닳을 정도로 드나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이렇게 직접 찾아왔잖아.”
양준이 웃으며 대답했다.
“그래, 양심은 있네. 방금 전 무아에게 연단을 부탁한 사람이… 혹시 너였어?”
미나는 가볍게 코웃음을 쳤다. 그러고는 그를 아래위로 훑어보더니 의아하게 물었다.
“맞아.”
양준이 고개를 끄덕이자, 미나는 가볍게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 너였구나. 난 또 어떤 나쁜 놈이 무아에게 다른 의도로 접근한 줄 알고 한바탕 혼내 주려고 했잖아.”
양준이 미소 지으며 말했다.
“무아가 연단술을 좀 더 익혀야 할 거 같아서 그냥 약재들을 줬어……. 연단사 협회에 언제 그렇게 어린 아이를 들였어? 전에는 못 본 거 같은데.”
미나는 그 말에 낯빛이 어두워지더니 뒤돌아 무아가 멀리 간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나하고 장로님이 주워 왔어……. 불쌍한 애야.”
“주워 왔다고?”
“그래. 그때 부운성에서 돌아오는 길에 한 마을을 지나게 되었는데, 글쎄 짐승 떼들의 습격을 받아 마을 사람들은 모두 죽고 무아 혼자만 허물어진 담벼락 사이에서 울고 있는 거야. 장로님께서는 무아를 혼자 그곳에 남겨 둘 수가 없어 결국 거석성으로 데려오게 되었지. 열 살이 채 안 되었을 땐데, 뼈가 앙상한 데다 많이 놀란 건지 말도 할 줄 몰랐어……. 몇 년 동안 이곳에 지내면서, 다행히 지금처럼 밝은 모습으로 변한 거야. 지금은 힘이 넘쳐서 온종일 어찌나 뛰어다니는지 도저히 붙잡아 둘 수가 없어.”
양준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연단 유망주를 주운 것 같던데.”
“맞아. 장로님께서도 무아가 연단 체질인 줄 몰랐다고 하셨어. 이곳에 데리고 올 때만 해도, 무아는 수련도 한 적 없었거든. 하지만 오늘날 걔 경지는 너도 봤겠지만 진원 경지 9단계야. 연단 수준도 거의 현급에 이르렀어. 사저로서 압박감이 말이 아니야. 이제 더 노력하지 않으면, 언젠가 무아가 날 앞지를 거야.”
미나는 눈빛을 반짝이며 말했다.
양준은 크게 웃으며 대답했다.
“아직 몇 년은 더 지나야 할걸.”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거야… 난 아직 영급 하품 연단사야. 무아보다 큰 경지 하나가 높다지만, 계집애 성장 속도를 보아서는 십 년도 안 돼서 날 뛰어넘을 거 같아.”
미나는 쓴웃음을 짓더니 호기심 어린 얼굴로 양준을 바라보며 물었다.
“넌? 영급 상품에서 더 올랐어?”
“조금!”
양준은 코를 매만지며 미나가 심적 타격을 받을까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
“됐어. 보아하니 이젠 성급 단약을 제련할 수 있나 보구나. 난 원래부터 일반인이야. 너희 두 ‘괴물’들 하고는 비교하지 않을 거야.”
미나는 한참 낙담하다가, 다시 웃으며 말했다.
“이곳에 서 있지 말고, 어서 들어가자. 장로님께서 네가 온 걸 알면 기뻐할 거야.”
양준은 고개를 끄덕이고 그녀와 함께 연단사 협회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리고 얼마 걷지도 않았는데, 양준의 낯빛이 바뀌더니 의아해하며 물었다.
“장로님께서 손님들을 만나고 계셔?”
두만의 방에서 여러 사람들의 기운이 느껴졌고, 어렴풋이 호탕한 웃음소리도 들려왔다. 그중에는 두만도 있었고, 나머지 사람들도 모두 초범 경지였다.
“맞아. 마침 오늘 손님들이 오셨어.”
미나가 대답했다.
“그럼 내가 좀 기다릴게.”
“상관 없어… 그분들도 널 만나고 싶어 할걸.”
미나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양준은 깜짝 놀란 표정을 짓다가 곧 알아차렸다.
“혹시 부운성에서 만났던 분들이셔?”
“오, 영리하네!”
미나는 입을 오므리고 방그레 웃었다. 이윽고 두 사람은 두만의 방 앞에 이르렀고, 미나가 목소리를 높여 불렀다.
“장로님, 손님이 오셨어요.”
방 안의 웃음소리와 대화소리가 순간 중단되었다. 곧이어 두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사람에게 나중에 오라고 일러라. 오늘 다른 손님은 만나지 않을 것이다.”
“확실하죠? 그럼 진짜 그 사람을 내쫓을 거예요.”
미나가 다시 한번 물어보면서 양준에게 눈을 찡긋해 보였다.
“계집애… 도대체 누구냐? 네 말을 들어보니 꽤나 중요한 손님인 것 같구나.”
방 안에서 두만의 어쩔 수 없다는 듯한 쓴웃음 소리가 흘러나왔다.
미나가 대답하기 전에, 양준이 공손하게 대답했다.
“장로님, 양준이 찾아뵙습니다.”
“양준?”
순간 두만의 목소리가 높아지더니, 곧이어 다급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잠시 뒤, 방문이 벌컥 열리며 두만의 기쁨에 가득 찬 얼굴이 나타났다. 양준을 보는 순간, 그의 혼탁한 두 눈이 반짝반짝 빛을 뿌렸다.
“정말 자네였군!”
양준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서, 어서 들어오게!”
두만은 열정적으로 양준을 맞이했다.
“드디어 돌아왔군.”
“밖에서 오랫동안 돌아다니다가 얼마 전에 종문에 돌아왔습니다. 장로님께서 미나를 천소종에 여러 번 보내 제 소식을 알아보셨다고 들었습니다. 장로님의 관심에 정말 감사드립니다.”
양준이 진지하게 인사를 올렸다.
“별거 아닐세. 자네도 우리 연단사 협회 구성원이 아닌가. 내가 협회 주인으로서 당연히 관심을 가져야지. 자네 마침 잘 왔군. 지금 안에 있는 사람들과 자네 이야기를 하고 있었네.”
두만이 얼굴에 웃음꽃을 피우며 말했다.
두 사람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곧이어 별실에 이르렀다. 별실 안에는 두만과 기질이 같고, 나이도 비슷한 노인들이 모두 고개를 빼들고 기대에 찬 눈빛으로 입구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양준이 나타나자, 그들의 표정은 모두 놀라움과 의심으로 가득 차 있었다.
“어, 두만. 이거 아니잖아. 지난번에 봤던 녀석이 아닌 거 같은데. 자네 혹 내가 눈이 침침하고 기억력이 나쁘다고 아무 사람이나 데려다가 날 속이려는 건 아니지?”
왼쪽에 있던 머리가 크고 큰 귀를 가진 노인이 소리쳤다. 그는 너무 뚱뚱한 나머지, 온몸을 벽에 기대고 있으면서 겨우 몇 마디를 하고는 숨이 차서 헐떡거렸다.
“그래… 몸집도 비슷하고 목소리도 같은 것 같은데, 얼굴이 아니잖아!”
오른쪽에 있던 다른 한 노인이 수염을 매만지며 양준을 아래위로 훑어보았다.
“허허, 둘 다 바보군. 두만이 그때 연단해 주고 신비한 비보를 얻었던 거 잊었어? 그 비보는 사람의 외모와 기운을 바꿀 수 있는 거로 알고 있는데.”
가운데 있던 세 번째 노인은 한눈에 비밀을 알아챈 듯했다. 그는 득의양양해서 웃으며 말했다.
“그러니까… 정말 그 녀석이란 말이지? 그때 우리가 봤던 게 실제 모습이 아니었단 말이군?”
유일한 노부인이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제가 맞습니다. 대사님들을 뵙습니다.”
양준이 미소 띤 얼굴로 공수했다.
“자, 앉아서 이야기하게나. 우리는 편한 게 좋아. 자네도 너무 조심할 필요 없네. 편한 대로 하게.”
두만이 열정적으로 접대했다.
몇 사람은 옆에 있는 의자에 앉지 않고, 그냥 편하게 땅바닥에 앉아 있었다. 아마도 뚱뚱한 사람 때문인 듯했다. 양준도 격식을 차리지 않고 두만의 옆에 그대로 앉았다.
네 쌍의 시선이 모두 자신에게 쏠리자, 양준은 억지웃음을 짓고 말았다.
“두만, 자네 너무 영리한 거 아니야. 사전에 녀석에게 외모를 바꿀 수 있는 비보를 사용하게 하다니. 그러니까 지난 몇 년간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녀석의 그림을 가지고 찾아다녀도 줄곧 찾을 수가 없지.”
노부인이 웃으며 말했다.
“그렇게 안 했으면 양준이 아마 엄청 고생했을걸. 비록 일부 단서가 천소종을 가리키긴 했지만, 그쪽에는 초능소가 있어 누구도 감히 건드리지 못했지.”
두만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자네 진작부터 녀석이 천년마화의 약물을 얻을 거란 걸 알고 있었어?”
“난 그냥 양준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신분을 드러내는 것이 위험하다고 생각했을 뿐이야. 그리 멀리까지 생각하지 않았다네. 하지만 양준이 천년마화의 약물을 얻게 된 건 정말 놀랄 만한 일이었어.”
두만은 말하다가 문득 생각난 듯이 양준에게 노인들을 소개시켜 주었다.
“맞네, 양준. 내가 친구들을 소개시켜 주지. 이 분은 쇄성성(碎星城) 연단사 협회 주인 홍방(洪方)으로, 성급 하품 연단사네!”
“홍 대사님을 뵙습니다.”
양준이 공손하게 예를 올렸다.
“아닐세! 얼마 안 되면 자네가 내 수준에 이를 텐데, ‘대사’는 과분한 것 같군.”
홍방은 수염을 쓰다듬으며 웃는 얼굴로 말했다.
두만은 웃으면서 반박하지 않고, 다시 뚱뚱한 노인을 가리키며 소개했다.
“이 분은 섬광성(閃光城) 연단사 협회의 주인 상보(常保)고, 성급 하품 연단사라네! 음, 식탐이 심해 저 모양이 되었다네. 자네도 저 사람을 보고 경계하는 게 좋을 것이야.”
상보는 입을 삐죽거리며 말했다.
“음식을 먹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데. 두만 자네가 누릴 줄 몰라서 그러는 거야.”
두만은 그를 거들떠보지 않고, 다른 한 사람을 가리켰다.
“이 분은 삼천성 연단사 협회 주인 하풍(何楓)으로, 성급 하품 연단사네.”
두만의 소개가 끝나자마자, 하풍이 옆으로 다가오더니 눈까지 찡긋하며 말했다.
“내가 몇 년 전에도 제의했었지만, 오늘 다시 좀 생각해 보면 안 되겠나? 나한테는 예쁜 손녀도 몇이나 있으니 자네가 마음대로 골라도 된단 말일세. 아니, 다 달라고 해도 괜찮네. 자네가 나와 함께 삼천성에만 간다면 말이야.”
“대사님의 큰 사랑에 고마울 따름입니다. 하지만 제가 두 장로님의 보살핌을 받아서요, 대사님의 호의를 거절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풍은 저도 모르게 눈을 희번덕거리며 콧방귀를 뀌었다.
“자네 참 대담하군. 내 호의를 한 번도 아니고, 이렇게 두 번씩이나 거절하는 사람은 여태껏 없었단 말일세.”
“누가 자네더러 싱거운 소리를 계속 하래?”
두만은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그는 소박하고 솔직한 양준의 말이 무척이나 마음에 드는 모양이었다. 이윽고 그는 노부인에게 돌아서며 입을 열었다.
“이 분은 파월성(破月城) 연단사 협회의 주인인 공약우(孔若羽)로, 성급 하품 연단사네!”
양준은 진지한 표정으로 다시금 예를 올렸다.
최정상급 연단사나 연기사들은 대부분 모두 남성이었다. 여성으로서 이 정도의 성취를 이룰 수 있는 사람은 극히 드물었다. 여성은 타고난 체질이 차고 부드러워 연단이나 연기할 때 필요한 양성 성질에는 부합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공약우는 여인임에도 성급 하품 연단사에 이르렀다. 이는 그만큼 그녀가 남들보다 자질이 더 좋다는 것과 훨씬 더 많은 노력을 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녀가 만약 남성이라면 이룰 수 있는 성취는 오늘날보다 훨씬 더 높았을 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