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련전봉-836화 (835/853)

제 836장. 자네가 그분을 만나봤다고?

두만의 별실에 모여 있는 사람들은 모두 성급 하품 연단사들이었다. 통현대륙 전체에서 성급 연단사는 스무 명을 넘기지 않았고, 하나같이 세상에 널리 이름을 날린 이들이었다. 그런데 이곳에 그중 다섯 명이나 모여 있었던 것이다. 또한 성급 중품 연단사는 더욱 적었는데, 대륙 전체에 3~5명 정도뿐이었다. 그리고 성급 상품 연단사는 행방이 묘연한 ‘천장노인’으로 불리는 이서뿐이었다.

두만은 양준에게 한 사람, 한 사람 열성껏 소개해 주었고, 대사들도 대견스러운 듯이 양준을 바라보았다. 양준은 그때 당시 부운성 연단대회에서 활약을 펼쳐 그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었다. 그들은 시간이 좀 지나면 양준의 성취가 자신들보다 훨씬 높을 거라고 생각했기에 양준을 연단계의 샛별로 여겼다.

미나가 과일 쟁반과 찻물을 올리고 다시금 물러갔다. 그녀는 이런 차원의 인물들이 이야기를 나누는 곳에 남아 있을 자격이 안 되었다. 그녀뿐만 아니라 그녀의 사부인 엽웅도 이 자리에 낄 수 없었다. 하지만 두만은 양준을 이 자리에 남겼다. 그가 양준을 얼마나 중시하는지 알 수 있었다.

대사들은 모두 오래된 친구 사이라 서로 간에 격식을 차리지 않았고, 편한 대로 이야기하면서 양준이 자리에 있는 것을 꺼리지 않았다.

양준은 한쪽에 묵묵히 앉아서 그들의 이야기를 귀담아들었다. 그는 담담하고 침착한 표정으로 전혀 귀찮은 표정을 짓지 않았고, 이따금 누군가 재미있는 화두를 꺼내면 흥미진진하게 들었다.

한참을 이야기하다가, 두만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자네들, 먼 길을 마다하고 거석성에 온 게 나하고 한담이나 하려고 온 건 아닐테고, 무슨 일인가?”

나머지 대사들은 그의 말에 어두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공약우가 먼저 입을 열었다.

“일이 있어 찾아온 게 맞다네. 상보가 발견한 거니까, 자네가 말해 보게나.”

두만은 상보에게 시선을 돌렸다.

상보는 엄숙한 표정으로 자신의 건곤대에서 무언가를 한참 찾더니 손상된 짐승 가죽 하나를 꺼냈다. 짐승 가죽은 오래된 물건으로, 안팎으로 고풍스러운 기운을 풍겼다. 상보는 두만에게 짐승 가죽을 건네며 말했다.

“이거 좀 보게나.”

두만은 짐승 가죽을 받아 들고 조심스럽게 펼친 뒤 훑어보았다. 이윽고 그는 저도 모르게 ‘어’ 소리를 내며 다시 정신을 집중해 살펴보았다. 한참을 바라보던 그의 표정이 상기되었다. 무슨 대단한 것을 발견한 듯했다.

상보가 옆에서 설명해 주었다.

“이 영진도(靈陳圖)는 우리 연단사 협회 제자가 얻어서 나한테 보낸 것이라네. 내가 일 년간 살펴봤지만 도무지 그중의 비밀을 파헤칠 수 없어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하풍을 찾아갔지…….”

하풍이 쓴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나도 별다른 방법이 없었네. 그래서 우리 둘은 다시 홍 사형과 공 사저를 찾아갔지…….”

“우리들이 아무리 살펴봐도 영진도를 깨칠 수가 없었네. 마침 두 사형이 성급 중품 연단사로 진급할 거라는 소식이 들려서, 함께 거석성으로 오게 되었다네.”

공약우가 뒷말을 이었다.

“그랬군. 자네들을 실망시켜서 미안하네. 이 영진도는 복잡하고 현묘한 것이 근래에 사용했던 건 아닌 듯하네. 아주 오래된 영진인 데다가 손상까지 되어서 나도 어쩔 수가 없군.”

두만은 한참을 살펴보다가 암담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네 사람은 두만의 말에도 크게 실망한 빛을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그냥 한 번 ‘혹시나’ 싶어 와본 것이었다. 원래부터 두만이 이 영진도의 비밀을 반드시 알아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건 아니었다.

이윽고 두만은 의미심장하게 웃더니 말했다.

“나는 이 비밀을 파헤칠 수 없다지만, 세상에 이 영진도의 쓰임새를 아는 사람은 있다네.”

“그게 누군가?”

네 사람이 일제히 물었다.

“천장노인일세!”

상보는 저도 모르게 눈을 뒤집어 보였다.

“그분은 행방이 묘연하잖는가. 어디 가서 찾을 텐가? 내가 연단을 배우기 시작했을 때, 그분은 이미 세상에 이름을 떨치셨네. 오늘날 성급 하품 연단사가 되도록, 그분을 만나지 못한 게 내 평생 유감일세.”

다섯 명의 대사들 가운데서 오직 두만 만이 천장노인을 만난 적이 있었다. 하지만 두만은 무엇이나 자랑하기 좋아하는 나이를 넘긴 지 오랜 지라 그 사실을 따로 말하지 않았었다. 두만은 무의식중에 양준을 힐끔 보더니 입을 열었다.

“천장노인 외에도 누군가 이 비밀을…….”

“두만, 그만 변죽을 울리고 확실하게 말하게나!”

하풍이 짜증 섞인 목소리로 재촉했다.

“허허……!”

두만이 헛웃음을 지었다.

양준은 두만의 모습을 보고서, 그가 자신이 영진도를 한 번 보기를 바란다는 것을 눈치챘다. 두만은 줄곧 양준의 배후에 고수가 있고, 그 고수가 천장노인과 견줄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하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도 기대에 찬 눈빛으로 양준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었다.

양준은 하는 수 없이 말했다.

“혹시 저도 좀 볼 수 있을까요?”

두만은 기쁜 표정으로 짐승 가죽을 양준에게 건넸다.

상보가 금세 긴장한 표정으로 말했다.

“자네, 그걸 훼손하지 않게 조심하게나. 만약 훼손되면 자넬 섬광성으로 잡아갈 거야.”

“걱정하지 말게나.”

두만이 빙그레 웃으며 확신에 찬 표정을 지었다.

두만을 제외한, 다른 대사들은 양준이 호기심이 많아 짐승 가죽을 살펴보는 것으로 알고 별로 신경 쓰지도 않았다. 그들은 계속해 짐승 가죽에 새겨진 영진도에 대해 의논했다. 그들은 며칠 동안 살펴보았기에 다들 자신만의 견해와 생각들이 있었다. 각자 견해와 생각들을 모아 그중에서 영진도를 파훼할 방법을 찾고, 모자라는 부분을 채워 넣으려는 생각이었다.

양준은 영진도를 한참 동안 살펴보고 미간을 찌푸렸다.

짐승 가죽 위에 새겨진 영진도는 너무나 복잡했다. 여러 개의 영진을 교묘한 수단으로 한데 엮은 것인데 지나치게 번거로웠다. 영진도를 하나하나 떼어서 보면, 연단진결과 비슷하지만 조금 차이가 있었다. 동일한 연대의 것은 아닌 것 같았다. 연단술이 시시각각 발전하면서, 연단 시 사용하는 영진도 대사들의 개발과 연구를 거쳐 새롭게 거듭났다. 때문에 시대마다 사용하는 영진이 다른 것은 흔한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 양준의 안목으로, 짐승 가죽에 새겨진 영진도의 결함과 폐단을 알 수 있었다. 더욱이 지금 사용하고 있는 영진에 비하면 이 영진에 숨겨진 지식이 방대해, 그것을 캐내는 순간 자신의 연단술에 큰 발전을 가져다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양준은 그 자리에서 영진도를 각성하면서, 연단진결에서 얻은 지식과 결부해 머릿속으로 손상된 부분을 복구하는 동시에 보완했다. 한참이 지나서야, 양준은 영진도를 완벽하게 복구해 낼 수 있었다.

그때쯤 대사들은 침묵하면서 거의 흥미를 잃어 가고 있었다. 두만은 수시로 양준의 표정 변화를 주시하고 있었지만, 다른 네 명은 낙담한 표정이었다. 몇이서 힘을 합쳐도 영진도를 복구하지 못하자, 사실은 충격을 받았던 것이다.

“가능성이 있는 건가?”

두만이 갑자기 입을 열고 물었다.

양준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네 사람은 순간 황당해하며, 놀란 시선으로 양준을 바라보았다.

홍방이 말했다.

“영진도의 비밀을 알아낸 건 아니겠지?”

하풍은 아예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

“자네, 아무렇게나 큰소리치면 안 되네. 우리 늙은이 몇이서 속수무책으로 어쩔 줄 모르고 있는데, 자네가 알아냈다는 말인가?”

“큰소리인지, 아닌지는 확인해 보면 알게 아닌가?”

두만이 웃으며 말했다.

양준은 아무 말없이 검은 책 공간에서 질 좋은 옥석 몇 개를 꺼내 손바닥에 쥐고는, 신식으로 옥석에 영진도를 새겨 넣었다.

잠시 뒤, 그는 옥석들을 두만에게 건넸다,

“영진도 전체를 몇 개의 영진으로 풀어서 옥석에 새겼습니다. 하지만 영진마다 어떤 효능이 있는지는 연단하는 가운데서 알아봐야 할 것 같습니다. 대사님들께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네요.”

두만은 엄숙한 표정으로 옥석들을 받아 들고는 하나만 남겨 자신이 탐지하고, 나머지는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두만과 양준의 진지한 표정에, 다른 사람들은 더는 말하지 않고, 너도나도 신식을 옥석에 침투해 살펴보았다.

잠시 뒤, 대사들의 표정이 다채롭게 변했다.

대사들은 옥석 몇 개를 서로 바꿔 가며 그 속의 영진도를 자세하게 살펴보았다. 하풍은 저도 모르게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정말 영진도의 비밀을 파헤친 건가?”

서로 따로 새겨진 영진을 한데 합쳐 놓으면, 짐승 가죽에 새겨져 있는 영진도가 틀림없었다. 지금의 영진도는 완벽하게 복구되었을 뿐만 아니라, 부족한 부분이 보완까지 되어 있는 상태였다.

성급 연단사들을 일 년간 괴롭혔던 난제가 이처럼 쉽게 풀렸단 말인가? 그들은 어쩐지 쉽게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자네, 어떻게 이런 것들을 알고 있는 건가? 이건 사라진 지 오래된 영진도일 텐데, 자네 나이로 이런 것들을 배웠을 리가 없잖는가!”

하풍은 얼이 나간 채로 양준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양준은 잠깐 주저하다가 말했다.

“사실 저는 이 대사님의 가르침을 한동안 받았었습니다.”

“이 대사님? 천장노인?”

공약우는 엉겁결에 비명을 질렀다.

“아니지?”

“자네가 그분을 만나봤다고?”

“어디서 만났었나? 어떻게 생겼는데?”

지금 연단대사들에게서는 고수의 품격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들은 들뜬 모습으로 야단법석을 떨었다.

양준은 두만에게 눈빛으로 도움을 청했다. 두만은 얼른 가볍게 헛기침을 하고 말했다.

“사실… 나도 그분을 뵌 적이 있네.”

“두만, 허풍 떨지 말게나!”

하풍은 입을 삐죽거리며 전혀 믿으려 하지 않았다.

“사실이야. 부운성에 갔을 때, 그분도 있었다네. 다만 그분께서는 자신의 신분을 드러내기 싫어했을 뿐일세.”

두만이 하늘에 대고 맹세했다.

“대사님들은 당시 부운성 연단대회에서 저와 연단술이 비등했던 다른 한 젊은 연단사를 기억하십니까?”

양준이 물었다.

“물론 기억하고 있지. 그때 당시, 그 젊은이는 성주부의 고수들이 보호하고 있었네만… 그게 이 대사님과 무슨 상관이 있나?”

홍방이 그때 기억을 떠올리며 물었다.

“그 젊은이가 바로 이 대사님의 마지막 제자입니다!”

“뭐라고? 이 대사님의 제자라고?”

“그랬구나… 그래서 젊은 나이에 연단 조예가 그리 깊었군. 줄곧 어떤 고수가 양성한 제자인지 궁금했었는데.”

“그 녀석도 행운아군. 이 대사님의 제자가 되다니. 앞날이 창창하네!”

대사들은 끊임없이 탄식하며 적요의 행운을 부러워했다.

“연단대회가 있은 다음, 저는 한동안 이 대사님을 모시고 가르침을 받았었습니다. 영진도도 이 대사님께 배워서 이렇게 보완할 수 있었습니다.”

양준이 다시 한번 차분히 해명했다.

“그런 거구먼…….”

하풍은 턱을 매만지며 대답했다. 보아하니 양준의 말을 믿는 듯했다. 두만도 마음속 의혹이 조금은 해소되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이서와 그렇게 가까이 있었으면서도 만나지 못했다는 사실에, 두만을 제외한 대사 네 명은 마음이 괴롭기 그지없었다. 동시에 그들은 두만의 운을 부러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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