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련전봉-837화 (836/853)

제 837장. 뭘 원하는가?

사라진 지 오래된 영진도에는 방대한 지식이 담겨 있었다. 연단대사들은 영진도의 구체적인 효능을 지금 당장 알 수는 없었지만, 돌아가서 연구하다 보면 확실하게 알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짐승 가죽의 비밀을 파헤치게 되자, 다들 기뻐서 어쩔 줄 몰라 했다.

이때, 두만이 눈알을 굴리더니 씩 웃으며 말했다.

“이번에 영진도의 비밀을 파헤칠 수 있었던 건 모두 양준의 덕분일세. 양준이 아니었다면 자네들은 죽을 때까지도 그 영진도의 비밀을 몰랐을 수 있잖은가. 이제 소원을 풀었는데, 사례를 해야 하는 거 아닌가?”

“무슨 사례?”

그 말에 하풍은 눈알이 튀어나올 지경이었다. 상보도 자신의 건곤대를 거머쥐고서 경계 어린 눈빛으로 두만을 지켜보았다. 지난번 그들은 부운성에서 두만과 내기를 했다가 건곤대의 물건을 양준에게 내준 적이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 두만이 또 이런 말을 하자, 그들은 금세 경계를 높였다.

두만은 그들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오히려 양준을 바라보더니 웃으며 말했다.

“내 친구들은 늘 대범하다네. 자네가 힘을 들여 그들의 의문을 풀어주었는데 반드시 사례를 톡톡히 할 거라 믿네……. 음, 너무 많이 욕심내지는 말게. 감사의 뜻을 표하는 거로 만족하게나.”

그의 말에 네 사람은 쓴웃음을 지으며 속으로 두만을 ‘욕심쟁이’라고 욕했다.

공약우가 실소하며 말했다.

“두 사형의 말대로 사실 우리의 수확이 많으니 저 녀석이 좀 이득을 보게 하는 것도 괜찮지. 다들 그리 얼굴을 찡그리지 말게나. 이리 큰 이득을 얻었는데 당연히 감사 인사를 해야 하는 거 아닌가.”

공약우가 이리 말하자, 다른 세 사람은 더는 뭐라 말할 수 없었다.

하풍이 주저하며 양준에게 말했다.

“뭐가 필요한가? 말하면 줄 테니까.”

양준은 그의 건곤대를 힐끗 보았다. 하풍은 저도 모르게 흠칫 몸을 떨었다. 상보와 홍방도 긴장해서 손에 땀을 쥐었다. 양준이 지난번처럼 건곤대에서 물건을 꺼내 갈까 무척이나 두려운 모양이었다.

양준은 빙그레 웃으며 높은 목소리로 말했다.

“여러분의 호의를 거절하기가 어렵군요. 그럼 사양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이번에는 여러분의 건곤대 속의 물건을 가져가지 않겠습니다.”

공약우를 제외한 세 사람은 그 말에 긴장한 표정이 풀리더니 자애로운 눈빛으로 양준을 바라보았다. ‘상황 파악을 할 줄 아는 놈이군!’ 하는 표정이었다.

“그럼 뭘 원하는가? 내 친구들은 ‘알부자’란 말일세. 이번에 놓치면 더는 이런 좋은 기회가 없을 텐데.”

“두만, 입 좀 다물게. 녀석 스스로 원하는 것을 말하게 하게나.”

상보가 두만을 괜스레 노려보며 말했다.

“됐네, 됐어. 나도 이젠 그만 말하겠네.”

두만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금세 침묵을 지켰다.

양준은 잠깐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

“이러면 어떨까요? 대사님들 모두 성급 하품 연단사이니, 영진도의 비밀을 파헤친 보수로 대사님들께서 각자 성급 단약 한 알씩 만들어 저에게 주시면 안 될까요?”

“성급 단약을 제련하라고?”

상보가 얼굴을 실룩였다.

“네, 성급 단약이요!”

양준은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성급 단약은 제련하기 쉬운 게 아니네.”

하풍은 턱을 매만지며 말했다. 다들 성급 연단사라 하지만, 성급 단약을 제련하는 데는 큰 위험 부담이 따랐다. 그만큼 실패할 확률이 높았던 것이다. 성급 단약을 만들려면 힘도 많이 소모되고, 해야 할 일도 많았다. 때문에 성급 단약이 그만큼 가치가 높은 것이었다.

“좋네.”

이때, 두만이 흥분한 듯이 형형한 눈빛으로 다른 네 사람을 바라보며 말했다.

“우리 서로 겨뤄 본 지도 오래되지 않았나? 마침 이 기회를 빌려 한판 겨뤄 보는 건 어떤가? 양준과 엽웅에게 누구의 성급 단약이 더 좋은지 품평하도록 하고.”

“두만, 자네 곧 성급 중품 연단사로 진급한다고 우리들을 안중에 두지 않는 건 아니겠지?”

하풍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내가 어찌 감히… 다만 힘든 기회인지라, 나도 손이 좀 근질근질하군.”

“좋네. 나도 두 사형의 제안에 동의하네. 우리 꽤 오랫동안 겨뤄 보지 않았잖는가.”

공약우도 흥미가 동했는지 적극적으로 나섰다.

“난 괜찮네.”

홍방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그럼 겨루는 거로 하세. 어이쿠, 이 내 몸을…….”

상보는 뚱뚱한 몸을 움직이며 꿍얼거렸다.

“자, 다들 나를 따라오게나.”

두만은 호탕하게 웃으며 밖으로 걸어 나갔다. 사람들은 그의 뒤를 따라나섰다.

양준은 성급 단약이 필요해서 이런 요구를 한 것이 아니었다. 오늘날, 그는 스스로 성급 단약을 만들 수 있었다. 성급 단약이 제련하기 어렵고 약재도 찾기 어렵다고 하지만, 지금 양준의 검은 책 공간에는 보물이 풍부하기에 성급 단약 몇 개를 별로 안중에 두지 않았다. 그가 필요한 것은 연단 과정에서 대사들의 견식과 사용하는 기법을 견학하면서 경험을 얻는 것이었다.

대사들도 양준의 의도를 잘 알고 있기에 거절하지 않고 통쾌하게 승낙했을 뿐만 아니라, 마음속으로 연단할 때 꼭 자신만의 기묘한 기법을 선보이리라 다짐했다.

*

연단사 협회의 연단방 안,

대사들은 각자 좋은 위치를 찾은 다음, 약 가마와 약재들을 꺼내 탁자 위에 꺼내 놓았다. 약재들은 하나같이 영기가 짙고 관리가 잘 되어 있는 것이 성급의 천재지보가 틀림없었다.

연단방 안에는 양준, 엽웅, 미나가 옆에서 구경하고 있었다. 연단술을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놓칠 세라, 두만이 엽웅과 미나도 불렀던 것이다. 무아는 아직 너무 어리고 경험이 부족해, 보더라도 별 소득이 없을 것이므로 부르지 않았다.

미나는 얼굴이 상기되어 양준의 옆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서 긴장한 말투로 물었다.

“대사들께서 연단술을 겨루는 거야? 게다가 성급 단약을 만든다고?”

“나도 두 장로님께서 연단하는 모습을 본 지가 꽤 오래된 거 같구나. 게다가 이번에는 네 명이 더 있다니. 정말 보기 힘든 광경이야!”

엽웅도 흥분한 채, 뜨거운 눈빛으로 앞쪽을 바라보며 나지막하게 당부했다.

“미나, 눈도 깜빡하지 말고 잘 봐 두거라. 네 앞날에 큰 도움이 될 거야.”

“알겠어요. 사부님.”

미나는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정신을 집중해서 지켜보았다.

“다들, 준비되었는가?”

두만이 빙그레 웃으며 주변을 둘러보고는 큰 목소리로 물었다. 사람들은 만반의 준비를 끝냈다는 듯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먼저 내가 제련할 단약을 소개하지.”

두만이 빙그레 웃으며 입을 뗐다.

“내가 만들 단약은 현빙조화단(玄氷造化丹)일세. 얼음 성질 공법과 무공을 수련하는 사람을 위한 단약이네. 이걸 복용하면 몸속에 차가운 환경이 만들어지면서, 진원의 수련과 경지의 향상에 도움을 줄 수 있다네. 필요한 재료로는 현빙옥정화(玄氷玉晶花), 무색토(無色土), 벽혈초(碧血草), 7급 요수 빙옥망(氷玉蟒)의 내단…….”

두만의 설명을 듣고 있던 양준, 엽웅, 미나는 생각에 잠긴 듯한 표정을 지었다.

연단사는 연단할 때 모두 자신만의 규칙을 고수했다. 선택한 재료에서도 그런 면면을 엿볼 수 있는데, 약재를 조합하고 제련하는 과정에서도 모두 독특한 기법이 따로 있었다. 두만은 세 사람이 그 가운데서 뭔가를 배울 수 있기를 바라며 이처럼 상세하게 설명하는 것이 틀림없었다.

두만이 설명을 마치자, 공약우가 미소를 짓더니 역시 목소리를 높여 설명했다.

“내가 제련할 단약은 이운단(離隕丹)이네. 신혼을 보호하는 효능이 있어, 신혼이 상했을 때 복용하면 신혼이 흩어지지 않게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치료도 할 수 있다네. 필요한 재료로는 수라골(修羅骨), 무혼귀검화(無魂鬼脸花), 고신석순(固神石筍), 백겁응옥로(百劫凝玉露)…….”

대사들은 하나같이 자신이 제련할 성급 단약의 이름과 그에 필요한 천재지보의 이름을 하나하나씩 다 설명해 주었다. 미나와 엽웅은 들으면서 연신 혀를 내둘렀다. 약재들은 모두 찾기 힘든 것으로, 이런 천재지보를 한 곳에 모아 놓고 보는 것도 보기 드문 광경이었다.

두 사람은 흥분한 나머지, 온몸의 기혈이 들끓었다.

잠시 뒤, 다섯 대사들은 서로 시선을 교환했다. 이윽고 두만이 말했다.

“자, 그럼 시작해 봅세!”

다른 네 사람도 고개를 끄덕였다. 이윽고 다섯 사람의 몸속에서 순도가 높은 진원이 폭발했다. 연단방은 순식간에 온도가 몇 도는 올라간 듯싶었다.

양준, 미나, 엽웅 세 사람은 눈도 한 번 깜빡하지 않고 지켜보았다. 대사들은 진원을 내뿜더니 자신의 약 가마에 연단에 필요한 영진을 새겨 넣었다. 그들은 옆에서 지켜보는 세 사람이 똑똑히 볼 수 있도록, 영진을 새길 때 진원마다 흔적을 남겼다. 때문에 영진이 형성된 다음, 세 사람은 그들이 어떤 영진을 새겼는지 똑똑히 알아볼 수 있었다.

이어서 천재지보가 약 가마에 들어갔다. 대사들의 움직임은 자연스럽고 거침없었다. 그들은 약물을 제련한 다음, 진원에 감싸 한쪽에 놓아두었다.

미나는 놀라움을 금치 못한 채 자신의 입을 손으로 꼭 막을 수밖에 없었다. 괜히 소리라도 질러 대사들을 방해할까 두려웠던 것이다. 양준도 눈이 어지러울 정도였다. 오늘날 그의 연단 수준은 눈앞의 대사들과 비등했지만 여전히 배울 점이 많았고, 그중에는 연단기법과 약물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주의를 돌려야 하는 세부적인 사항 등등이 있었다. 이런 것들을 모두 깨닫게 되면 연단술의 향상에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터였다.

대사들의 손은 마치 춤추는 나비 같았고, 그들의 역동적인 손끝에서 연단술은 예술로 승화되었다. 양준은 대사들의 연단 과정에 흠뻑 빠져들었다. 그는 관찰하는 한편, 만약 자신이 제련하면 어떤 상황일지 머릿속으로 그려 보면서, 눈앞의 다섯 명과 비교했을 때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찾아 마음속에 깊이 새겨 넣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양준은 점차 주변의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오로지 연단의 세계에 빠져 헤어 나올 수 없었다. 미나와 엽웅도 마찬가지로 시간의 흐름을 완전히 잊게 되었다.

다들 땀을 비 오듯이 쏟는 가운데, 연단방 안에서는 진원이 이따금씩 용솟음쳤다. 약 가마 안의 영진도 한 번 또 한 번 새롭게 새겨졌다. 뛰어난 연단사는 연단하는 과정에서 영진을 하나만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과 불의 상태에 따라서 완벽한 효과를 얻기 위해 영진을 수시로 바꿨다.

양준은 이 부분에서 큰 영감을 얻게 되었다. 그전까지 그는 연단하면서 처음부터 끝까지 한 가지 영진만 사용했었다. 하지만 이제 보니 영진은 얼마든지 바꿔서 사용할 수 있었으며, 때에 맞춰 서로 다른 영진을 사용하면 효과가 더 좋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단약 향기가 풍기면서 대사들 앞에 있는 약 가마에서 아스라한 연기가 피어오르자 그야말로 몽환적이었다. 대사들의 표정도 한층 더 진중해졌다. 결정적인 순간에 이르자, 다들 소홀하지 않고 정신을 집중했다. 혹시라도 삐끗하면 모든 노력이 물거품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