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38장. 번데기 앞에서 주름잡기
족히 네 시진이 지난 다음에야, 두만의 약 가마가 갑자기 울리면서 흔들리기 시작했다. 마치 약 가마에 속박되어 있던 생명이 그 속을 뚫고 나오려는 것만 같았다.
두만은 진중한 표정을 하고서 마지막으로 연단진결 몇 갈래를 새겼다. 진원이 연단진결 속으로 투입되며 연단이 막바지에 이르렀다. 잠시 뒤, 두만이 약 가마를 가볍게 두드리자 눈처럼 하얀 손톱만한 크기의 단약이 튀어나왔다. 그는 잽싸게 좋은 옥병을 꺼내 단약을 받고서 뚜껑을 닫았다. 짙은 단약 향기가 연단방을 가득 채웠다. 두만은 자신이 제련한 성급 단약을 감지해 보고서 만족스러운 듯이 미소 띤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미나와 엽웅은 그 모습을 보고서 저도 모르게 사기가 진작되었다. 성급 하품 연단사 다섯 명이 함께 단약을 제련하는 가운데 두만이 첫 번째로 성공했다. 이를 통해 연단술에서 두만이 다른 네 명보다 한 발 앞섰음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다들 아무 기척도 내지 않고, 묵묵히 다른 네 사람이 연단을 마치기를 기다렸다.
두만의 뒤를 이어 연단을 마친 사람은 공약우로, 이각 정도 늦었을 따름이었다. 성급 하품의 이운단은 마찬가지로 옥병에 담겼다. 다시 반 시진이 더 지나자 상보, 하풍, 홍방 세 사람도 연이어 연단을 마쳤다. 성급 단약 다섯 알이 제련되자, 연단방 안에는 온통 짙은 단약 향기로 가득해 기분이 상쾌해질 정도였다.
대사들도 피곤한 모습이었다. 특히 뚱뚱한 상보는 연단할 때부터 땀을 비 오듯 흘리더니, 지금은 아예 온몸을 부들부들 떨며 끊임없이 이마를 훔치는 것이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다섯 사람들은 서로 시선을 교환하고서 다들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들은 성급 단약의 우열을 가리지 않고, 일단 너도나도 회복용 단약을 복용하고서 가부좌를 틀고 땅바닥에 앉았다. 아마도 한동안 운기 조식하려는 모양이었다. 성급 단약을 제련하는 것은 그들에게 있어서 힘과 정신의 소모가 매우 큰 일이었다.
그제야 미나와 엽웅은 겨우 숨을 크게 내쉬면서 방금 전에 본 모든 것을 되새겨 보았다. 둘 다 지금 당장 이 자리에서 연단하면서 방금 전의 깨달음을 자신의 경험과 지식으로 만들고 싶은 마음이었다.
“양준, 네 생각에는 어느 분의 단약이 가장 좋은 거 같아?”
미나는 앞쪽을 빤히 바라보면서 양준에게 물었다. 하지만 아무 대답도 들려오지 않자, 그녀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돌려 양준을 바라봤다. 양준은 깊은 생각에 잠긴 표정으로 그녀의 말을 전혀 듣지 못한 듯했다.
“보아하니, 양준도 수확이 적지 않은 모양이구나. 그를 방해하지 말거라. 아마도 우리 둘보다 더 많은 것을 깨달았을 테니까.”
엽웅이 웃으며 말했다.
양준의 모습을 보아서는 깊은 깨달음을 얻은 듯했다. 그렇지 않으면 지금 같은 상황이 벌어질 수 없었다. 이에 엽웅은 부러움을 금치 못했다.
“네.”
미나는 얼른 고개를 끄덕이고는 조심스럽게 숨을 쉬며 대사들이 회복하기를 기다렸다.
잠시 뒤, 미나는 한창 방금 전 본 것들을 되새기고 있다가, 곁눈질로 양준이 움직이는 것을 보게 되었다. 그녀는 호기심이 동해 다시 양준을 지켜보았고, 저도 모르게 ‘어!’ 하고 가볍게 소리쳤다.
양준은 자신의 작은 약 가마와 성급의 천재지보를 꺼내 앞쪽에 놓더니 손을 내밀어 약 가마를 뒤덮고서 그 안에 영진을 새기기 시작했다.
바로 그때, 다섯 대사들이 기력을 회복했다.
홍방이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성급 단약을 제련했으니, 저들에게 누구의 단약이 더 나은지 한 번 품평해 보라고 합세.”
“좋네. 자네들의 연단술이 뒷걸음질하지는 않았겠지?”
“자네 걱정이나 하시지 그러나. 보아하니 몇 년간 먹는 것만 챙긴 것 같구먼.”
두만은 고개를 저으며 실소했다.
상보가 입술을 삐죽거렸다.
“하지만 연단술도 결코 손 놓고 있지는 않았단 말일세.”
몇 사람은 이야기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나, 품평해 줄 세 사람이 있는 곳으로 걸어왔다. 그들은 멀지 않은 곳에 이르러 양준의 움직임을 보고서, 저도 모르게 그 자리에 굳어져 버렸다.
“어, 자네… 지금 우리 앞에서 번데기 주름잡는 것인가?”
하풍이 크게 웃으며 말했다. 농담으로 한 말로 악의는 전혀 없었다.
두만은 미간을 찌푸리고서, 문득 예사롭지 않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유일한 여성 연단사 공약우도 진중한 표정으로 손을 흔들어 그들을 멈춰 서게 했다. 미나와 엽웅은 양준의 곁에서 조심스럽게 떠나 다섯 사람의 앞에 이르렀다.
“장로님, 양준이 갑자기 연단하기 시작했어요. 아마 수확이 많아서 그 자리에서 점검해 보려는 모양이에요.”
미나가 나지막하게 말했다.
“그래. 각성 중이니까 방해하지 말거라.”
두만은 미소를 띤 채, 눈동자에는 온통 감탄의 빛이 어려 있었다.
“각성한다고요? 연단에서도 각성할 수가 있나요?”
미나는 저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리고 물었다.
“물론 있지. 무도에만 각성이라는 게 있는 줄 알았느냐? 연단에도 마찬가지로 각성이라는 게 있단다. 일단 이런 상황이 나타나면, 주변의 모든 것에 더는 신경 쓰지 않게 되고, 그의 세계에는 오직 자신의 각성 그리고 약 가마와 약재만 남게 된단다……. 재미있군, 양준이 눈앞의 장벽을 넘어설 수 있을지가 궁금하구나.”
“사실 나도 몇십 년 전에 이런 상황에 맞닥뜨렸었네. 두 사형이 말한 것처럼 그때 당시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오직 내 눈앞의 약 가마와 약재만 보이더라고. 오직 연단에 성공해야겠다는 생각뿐이었지……. 아쉽게도 훗날 아무리 노력해도 그 같은 경지에는 이를 수가 없더군. 휴, 무도의 각성과 마찬가지로 다 운에 달린 거지.”
공약우가 추억에 잠긴 채 말했다.
“그럼 공 대사님의 단약은 어떻게 되었나요? 성공했나요?”
미나가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캐물었다.
공약우는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성공했지. 약 기운이 거의 낭비되지 않고 질이 몹시 좋았어. 그건 내 평생 가장 훌륭한 작품이라 지금껏 간직하고 있단다.”
“와, 부러워요.”
미나는 두 눈을 반짝이며 존경을 표했다.
“그런데 녀석의 재료에 문제가 있는 거 아니야… 왜 다 성급 재료지? 녀석의 수단으로 성급 단약을 제련해 낼 수 있어?”
하풍이 미간을 찌푸린 채 말했다.
그의 말에 사람들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자세히 감지해 보았다. 양준이 선택한 재료는 모두 성급 재료가 분명했다.
“지금 성급 단약을 제련하려는 건가?”
상보가 놀라서 소리쳤다.
두만은 눈앞이 밝아지는 것만 같아 나지막하게 웃으며 말했다.
“녀석이 정말 성급 단약을 만들 수도 있겠군.”
“두만, 농담은 그만하게나. 성급 단약을 만드는 게 얼마나 힘든 지는 우리 모두가 아는 일일세. 녀석의 자질이 출중하고, 성급 연단사로 성장할 수 있다는 건 인정하지. 심지어 나중에는 우리보다 더 큰 성취를 이룰 수도 있을 거야.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나중에 있을 일이잖는가. 지금 녀석의 나이로 성급 단약을 만들다니, 너무 이른 감이 있지 않나?”
하풍은 눈을 희번덕거리며 말했다.
“젊은이가 기혈이 왕성해서 그냥 내키는 대로 하는 모양이군. 좀 좌절도 당해 봐야 마음을 다잡을 수가 있겠어. 하지만 이번 각성이 아쉽군. 만약 영급 재료들을 사용했다면 수확이 더욱 많을 텐데 말이야.”
홍방이 아쉬운 표정으로 말했다.
상보와 공약우도 탄식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 모두 양준이 지금 성급 단약을 제련하는 것은 어쭙잖은 짓이라고 생각했다.
두만은 쓴웃음을 지으며,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양준이 성공하기를 바랐지만, 마찬가지로 양준이 섣불리 도전한 것이라 생각했다. 성급 단약을 제련할 수 있다는 것은 성급 연단사가 되었다는 것을 의미했다. 하지만 성급 연단사는 통현대륙 전체에도 몇 명 되지 않았고, 모두 평생을 연단에 몸 담고 있는 노인들이었다.
‘아직 너무 어리군!’
“일단 조용히 지켜봅세. 이따가 부족한 점을 가르쳐 주면, 녀석의 성장에도 도움이 되잖겠는가.”
공약우가 나지막하게 말했다.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이고 묵묵히 지켜보기 시작했다. 양준의 움직임은 대사들처럼 매끄럽지는 못했지만, 침착하고 절차마다 거의 완벽에 가까웠다. 이를 지켜보던 대사들은 모두 혀를 내둘렀다.
양준의 연단 기본기는 너무나 탄탄했다. 약물을 제련하는 과정 역시 아무리 엄격한 잣대를 들이댄다고 해도 결점을 찾을 수가 없었다. 게다가 그의 몸속에서 뿜어내는 진원은 짙고도 순수했다. 약 가마 속에는 사전에 무슨 영진이 새겨져 있었는지, 약재를 그 속에 넣고 약물로 응결하는데, 약 기운을 한 톨도 낭비하지 않았다.
응결된 약물은 순수한 진원에 감싸여 약 가마 옆에 둥둥 떠 있었다. 이 광경을 본 대사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감탄을 표했다.
반 시진이 지나자 모든 약재가 약물로 응결되었다. 그의 놀라운 속도에 대사들은 모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설령 그들이 나서서 이 약재들을 약물로 제련한다고 해도 양준보다 더 잘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시간도 더 많이 들여야 했다. 이는 양준의 진원이 그들의 것보다 더 순수하고, 사용한 영진도 더 낫다는 것을 말해 주었다.
약물을 모두 응결한 뒤, 양준은 내키는 대로 손을 저었다. 그러자 약 가마 안에서 빛이 폭발하더니 안에 새겨졌던 영진이 파괴되었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상보는 저도 몰래 나지막하게 한마디 했다.
“너무 경솔한 거 아니야? 영진을 저렇게 파괴하면, 다시 새길 시간이 되겠어?”
약물이 이미 응결된 이상, 비록 진원에 감싸여 있다지만 약 기운이 발휘되므로 빠르게 약 가마에 넣어 제련하지 않는다면, 약재의 약 기운이 낭비될 수도 있었다. 그들도 연단할 때 영진을 바꾸지만, 그건 사전에 충분한 준비를 해 두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리고 영진을 완전히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원래의 영진을 주축으로 해서 다른 영진을 더 새기는 것이기에 시간을 절약할 수 있고, 약 기운을 효과적으로 이용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 양준은 원래의 영진을 아예 부숴 버렸다. 사람들은 걱정 어린 표정을 지었다. 마치 양준이 질이 나쁜 단약을 제련해 낸 광경을 보는 것 같았고, 얻기 힘든 성급 재료들을 허투루 쓰는 것 같아 가슴이 아팠다.
상보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방금 전 빛이 번쩍이던 약 가마 안에서 또다시 미약한 빛이 반짝이기 시작했다. 대사들은 눈썰미가 좋은 터라, 한눈에 약 가마 안에 흐르는 옅은 문양을 알아볼 수 있었다.
“뭐야? 이렇게 빠르다고? 이게 가능해?”
하풍은 입을 딱 벌린 채, 도저히 자신의 두 눈을 믿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 빛은 영진이 다시금 새겨지는 징조가 분명했다.
앞서 영진을 부순 지 얼마 되지 않아, 곧이어 다음 영진을 새기다니?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상황은 대사들의 이해 범위를 훨씬 벗어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