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39장. 다 장님이구먼
양준의 약 가마 속 영진은 순식간에 다른 것으로 바뀌었다. 게다가 사람들은 그가 영진을 다시 새기는 모습도 본 적이 없었다. 약 가마에 영진을 새길 때는 반드시 진원을 약 가마 안에 주입해야만 했는데, 방금 전 양준은 몸속의 진원을 약 가마 안에 주입하지 않은 게 분명했다.
“신식으로 새긴 것이군!”
두만은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나지막하게 말했다.
“웃기는 소리… 신식의 힘이 강하면 영진을 새길 수는 있지만, 절대로 연단할 때는 사용할 수가 없다네. 정말 그렇게 한다면 얻기 힘든 재료들을 훼손시킬 수 있단 말일세.”
하풍은 코웃음을 치며 끊임없이 고개를 저었다.
“두고 봅세.”
두만은 생기가 넘치는 얼굴로 더 길게 설명하지 않았다.
자리에 있는 사람들 중에서 오직 그만이 양준이 신식의 불꽃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양준은 천장노인과 같은 자질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일반적인 신식으로 새긴 영진은 연단할 때 사용할 수 없었다. 하지만 신식의 불꽃으로 새긴 영진은 연단할 때 사용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제대로 사용할 줄 알면 진원보다도 효과가 더 좋았다.
사람들은 모두 숨을 죽이고서 손에 땀을 쥔 채, 양준의 움직임을 지켜보았다.
양준이 주저 없이 약물들을 약 가마에 넣자, 다들 정말이지 심장이 목구멍으로 튀어나올 지경으로 바싹 긴장했다. 그가 재료들을 낭비하는 것이 너무 안타까웠던 것이다.
하지만 예상 외로, 약물이 약 가마에 들어간 다음에도 실패할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서로 다른 약물들이 약 가마 안에서 뒤섞이고 하나로 녹아들면서 기묘한 충돌과 변화가 일어났다. 이윽고 단약 향기가 풍기기 시작했다.
대사들은 놀라움을 금할 수가 없었다. 물론 그 가운데 어떤 현묘함이 숨겨져 있는지도 알 수 없었다.
양준은 신중한 표정으로 양손을 움직였다. 진원이 끊임없이 용솟음쳤는데 때로는 많다가, 때로는 적어졌다가 불을 거의 완벽에 가깝게 제어하고 있었다. 진원의 세기 때문에 약재의 효능에 영향을 주는 일은 없었다.
사람들은 다시금 눈앞이 밝아지는 것만 같았다.
잠시 뒤, ‘화르륵’ 하는 가벼운 폭발소리가 약 가마 안에서 들려왔다. 좀 전에 사용했던 영진이 다시 훼손되었다. 잠시나마 마음을 놓았던 대사들은 다시 한번 긴장하게 되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약 가마 안에서 다시 빛이 반짝이면서 세 번째 영진이 새겨졌다.
“이건…….”
하풍은 눈을 커다랗게 뜬 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그들 역시 연단할 때 영진을 바꿔 단약의 제련을 돕지만 양준처럼 이렇게 거리낌 없이 빈번하게 바꾸지는 않았던 것이다. 이윽고 그들은 은연중에 양준이 연단할 때, 진원뿐만 아니라 신식의 힘도 사용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두 가지를 동시에 사용하다니?! 그리고 녀석의 신식의 힘이 좀 남다른 거 같은데!’
양준은 초범 경지 3단계로 경지나 수준이 대사들보다 높았다. 때문에 그들은 이상한 점을 느낄 수는 있었지만, 신식의 불꽃의 비밀을 알 수 없었고, 그저 의구심만 가질 뿐이었다.
웅- 웅- 웅-
일각 단위로 약 가마 안의 영진이 새롭게 바뀌었다. 대사들은 양준이 도대체 무슨 수로 영진을 이렇게 빨리 바꿀 수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연단하는 과정에 영진을 빈번하게 바꾸는 것은 대단한 초강수였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연단방 안에는 짙은 단약 향기가 피어올랐고, 대사들이 단약을 제련해냈을 때보다 훨씬 더 향이 짙고 상큼했다.
“이제 겨우 두 시진이 지났는데…….”
상보가 뚱뚱한 몸을 흠칫 떨면서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약 향기가 방 안을 가득 채웠다는 것은 단약이 제련되었음을 의미했다. 연단을 시작하고 나서부터 단약이 생성될 때까지 양준은 도합 두 시진밖에 걸리지 않았다. 대사들이 성급 단약을 네 시진에 걸쳐 제련해 낸 것보다 시간적으로 배는 더 앞당겼던 것이다.
“녀석이 정말 성급 단약을 제련한 게 맞아? 성급 재료로 영급 단약을 만드는 건 아니겠지?”
홍방이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말했다.
대사들은 그럴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다. 고급 재료로 저급 단약을 만들어 내는 것은 연단계에서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현상이었다. 특히 연단술이 미숙한 연단사들은 고급 재료를 써서 단약의 성공률을 확보하는 경우도 있었다.
지금 이 순간, 사람들은 양준이 아마 그런 짓을 하지 않았나 의심했다. 어쨌든 두 시진은 너무 짧은 시간이었다. 영급 단약을 만든다고 하면, 양준의 나이대에서는 가능한 일이었다.
“깜짝 놀랐구먼. 후배가 우릴 앞질렀나 해서, 하마터면 그 충격에 자신감마저 잃을 뻔했잖아.”
하풍은 크게 한숨을 내쉬며 과장해서 말했다.
상보도 웃으며 한마디 했다.
“하지만 녀석도 그만하면 정말 대단해… 두만, 이 녀석을 우리 섬광성에 보내 주게나. 절대로 홀대하지 않을 테니까 말이네.”
두만은 꿈쩍도 하지 않고 여전히 양준을 지켜보았다.
그가 알고 있는 양준은 절대 연단의 도에 위배되는 일을 할 사람이 아니었다. 게다가 몇 년 전에 양준은 이미 영급 상품 연단사가 되었었다. 만약 영급 단약을 제련하는 것이라면 굳이 성급 재료를 선택할 필요가 없었다.
‘도대체 무슨 단약이지?’
늘 침착하던 두만도 저도 모르게 긴장했다.
단약 향기가 점점 더 짙어지면서 곧 약 가마에서 튀어나올 듯했다.
바로 이때, 양준의 두 손이 빠른 속도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손가락에는 육안으로 볼 수 있는 황금빛 진원이 날름거렸고, 허공에서 유려한 곡선을 그렸다. 곡선들은 한데 이어져서 현묘하고 복잡한 영진도가 되어 허공에서 반짝였다.
사람들은 눈을 휘둥그레 뜨고서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곧이어 정교하고 현묘한 영진들이 약 가마에 주입되더니 그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동시에 자그마한 약 가마 안에서 갑자기 요란한 소리가 들려오며 제련된 단약이 마치 생명이라도 부여받은 듯이 하늘로 솟구쳐 올랐다. 덩달아 약 가마마저도 흔들렸다.
천지의 기운이 순간 어지러워지더니 연단방을 중심으로 밀물처럼 밀려들어 일제히 약 가마 안으로 흘러 들어갔다. 그 순간, 양준의 자그마한 약 가마는 천지의 영기를 끊임없이 흡수하는 것이 마치 밑 빠진 독 같았다.
이 모든 것을 감지한 연단방 안의 사람들은 모두 낯빛이 크게 바뀌었다. 다들 왜 이런 변고가 생겼는지 알 수 없었다.
잠시 뒤, 모든 것이 다시 평온해졌다.
양준이 손을 내밀어 탁 치자, 영기가 짙은 단약이 약 가마에서 튀어나왔다. 양준은 그것을 손으로 잡아 준비해 두었던 옥병 속에 넣었다.
양준은 가볍게 숨을 내쉬고는 자신이 제련해 낸 단약을 볼 겨를도 없이, 얼른 다시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해 이번 연단 과정에서의 깨달음을 체득했다. 동시에 소모된 힘을 회복했다.
적막이 흐르는 가운데, 대사들은 제자리에 선 채 서로 마주 보면서 움직이기를 주저했다. 단약은 옥병에 담겨 있어 어떤 등급인지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방금 전 기척을 봤을 때, 예사롭지 않은 단약인 것 같았다.
한참이 지나도 양준은 눈을 뜰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기다림에 지친 상보가 재촉했다.
“두만, 자네가 가서 옥병을 가져오게나.”
“그러게. 나도 그 속에 든 단약이 영급인지, 성급인지 궁금하단 말일세!”
홍방도 부추겼다.
양준은 거석성 연단사 협회 사람이므로, 이런 경우에는 두만이 나서는 것이 좋았다. 몇 사람이 입을 모아 말하자 두만도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두만이 양준에게 다가가 옥병을 가져오자, 사람들은 빙 둘러서서 뜨거운 눈빛으로 지켜보았다.
“좀 열어 보게. 열지 않고 어떻게 탐지하란 말인가?”
하풍이 초조해하며 말했다.
두만은 쓴웃음을 짓고는 옥병을 열었다. 순간, 풍겨 나오는 향기에 그는 정신이 번쩍 드는 것만 같았다. 두만은 눈으로 보지 않고도 단약 향기만으로, 양준이 제련해 낸 단약이 성급 단약이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녀석, 이 정도로 성장했구나!’
그는 기쁨을 감출 수가 없었다.
하풍은 옥병을 빼앗아서 들여다보더니 엉겁결에 소리쳤다.
“진짜 성급 단약이잖아?”
“나도 좀 봅세…….”
상보가 다급하게 말했다. 옥병을 건네받아 단약의 품질을 확인한 그는 뚱뚱한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좀처럼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옥병은 대사들의 손에서 돌고 돌다가 마지막으로 공약우의 손에 넘겨졌다. 그녀는 한참을 살펴보다가 순간 눈빛이 진중해지더니, 다시 한동안 자세하게 훑어보고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노친네들, 다 장님이구먼.”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성급 단약이 아니란 말인가?”
상보가 놀란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성급 단약이 확실하네. 공 사저는 무슨 뜻으로 하는 말인 건가?”
하풍이 미간을 찌푸리고 물었다.
공약우는 이상한 표정으로 싱긋 웃더니 옥병을 도로 건넸다.
“다시 한번 자세히 살펴보게나. 평범한 성급 단약이 아닐세.”
그녀가 엄숙하게 말하자, 사람들은 얼른 고개를 들이밀고 살펴보았다. 다시 살펴본 결과, 향기나 질이나 약 기운으로 봤을 때 모두 성급 단약의 요구에 부합했다.
다들 의아해하고 있는데, 성급 단약에서 아름다운 빛이 반짝이기 시작했다. 다시 살펴보니 그 빛은 인체의 경맥처럼 단약에 새겨져 있었고, 보일 듯 말 듯했다. 경맥과 같은 문양에서는 빛이 흐르고 있었는데, 귀를 기울이면 단약 안에서 졸졸 물 흐르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기도 했다.
“단문?”
사람들은 동시에 놀라서 소리쳤다.
“하하! 단문이 있는 성급 단약이 바로 내 눈앞에서 만들어지다니, 오늘 정말 식견을 넓혔구먼.”
공약우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씁쓸함과 놀라움이 뒤섞인 표정이었다.
“이, 이건…….”
사람들은 놀란 나머지,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양준이 성급 단약을 제련해 낸 것만으로도 충분히 놀라운 일이었다. 그런데 성급 단약에 단문까지 생겼다니, 이는 대사들이 몇십 년을 추구했어도 이루지 못한 소원이었다. 그들은 성급 단약을 적지 않게 제련했지만, 어느 누구도 아직까지 단문이 있는 성급 단약을 제련해 낸 적이 없었다.
단문이 생긴 성급 단약은 그 가치가 몇 배는 뛰어올랐다. 물론 약 기운도 일반 단약의 몇 배나 되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런 단약은 영원히 보존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성급 단약이 훼손되지 않는 이상, 시간이 얼마나 흐르든지 단약의 약 기운은 절대 유실되지 않았다. 이것이야말로 단문의 진정한 가치였다. 일반 단약은 이런 장점이 없기에, 아무리 잘 보관한다 해도 약 기운이 계속해 유실되므로 제련한 뒤 빨리 복용할수록 효능이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