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련전봉-843화 (842/853)

제 843장. 누굴 찾는 겁니까?

양준은 우뚝 솟은 설산 봉우리에서 조용히 가부좌를 틀고 땅바닥에 앉아 있었다. 거위 털 같은 눈송이가 그의 몸에 소복이 쌓였지만, 그는 꿈쩍도 하지 않고 온몸의 기운을 거두었다. 설령 입성 경지 고수가 이곳을 지나쳐도 그의 종적을 발견할 수 없을 터였다.

그때, 아래쪽에서 초록빛이 빠른 속도로 날아왔다. 잠시 뒤, 초록빛은 산 정상에서 멈추더니 이내 사람 그림자가 나타났다. 유명종의 무겁이었다.

무겁은 손에 류귀를 들고 있었다. 이 순간 류귀는 자신의 생사를 이미 운명에 맡겼는지 기운이 하나도 없어 보였다.

“사람은?”

무겁은 주위를 둘러보고 양준의 종적을 찾을 수 없자 차갑게 물었다.

“바로 여깁니다. 그분께서 말씀하신 위치가 확실한데, 왜 사람이 보이지 않지?”

류귀는 얼른 대답하고서 두리번거리며 찾았다.

“왜 이리 늦었어?”

문득 두 사람의 바로 앞쪽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류귀는 깜짝 놀랐다가 양준의 목소리임을 알아듣고 기쁘게 인사했다.

“성주 대인!”

무겁은 정신을 집중해 앞쪽을 지켜보았다. 그리 멀지 않은 앞쪽 눈 더미 속에서 두 눈이 반짝이고 있었다. 양준은 눈 더미 속에서 몸을 일으키고는 진원을 돌렸다. 그러자 그의 온몸을 덮고 있던 눈이 순식간에 녹아 버렸다.

무겁은 흠칫 놀라더니 곧이어 웃으면서 류귀를 땅바닥에 내던지고는 공수했다.

“성주 대인, 몇 년 못 보는 동안 신수가 훤해지셨습니다.”

동시에 그는 귀신불처럼 번뜩이는 눈으로 양준을 아래위로 훑어보았다. 양준의 경지가 초범 경지 3단계에 이른 것을 확인하고 나서, 그의 눈동자 속 흐릿한 초록빛이 점점 더 빠르게 반짝였다.

“무 문주도 마찬가지군요.”

양준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허허! 남들의 눈을 피해 찾아오느라 시간이 좀 많이 걸렸습니다. 너무 나무람 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무 문주께서 오셨으면 됐습니다.”

양준은 담담한 표정으로 대답하고는 다시 류귀를 흘끗 보더니 말했다.

“수고했어.”

류귀는 얼른 손을 내저었다.

“아닙니다. 성주 대인을 위해 일할 수 있다면 그건 저한테 영광입니다. 게다가 오는 내내 무 문주께서 저를 데리고 날아왔거든요… 허허……!”

그는 뭔가 더 말하려다 머뭇거리는 듯한 모습이었다.

양준은 되는 대로 옥병 하나를 던져 주고는 말했다.

“이건 이번 일을 한 사례야. 앞으로 필요하면 다시 부를 테니, 돌아가서 수련하도록 해.”

류귀는 옥병을 받아 들고 기뻐서 어쩔 줄 몰라 했다.

“고맙습니다. 성주 대인!”

지난번 그는 독오맹의 운훤과 완심어를 양준에게 데려다준 사례로 영급 단약 한 병을 받았었다. 그리고 그 단약을 복용하면서 그의 실력이 많이 향상되었다. 그런데 오늘 또 한 병을 사례금으로 받게 되자, 그는 당연히 기쁠 수밖에 없었다.

류귀는 옥병을 단단히 거머쥐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제가 할 일이 더 없으면, 이만 물러갈까 합니다. 너무 오래 자리를 비우면 남들이 의심할 수도 있습니다.”

“가 봐.”

양준이 손을 내젓자, 류귀는 황급히 돌아갔다.

양준이 류귀와 이야기하고 있을 때, 무겁은 한쪽에 조용히 서서 귀담아듣기만 할 뿐 끼어들려고 하지 않았다. 종잡을 수 없는 눈빛을 담은 그의 눈동자는 이상한 빛을 뿜고 있었다. 깊은 생각에 잠긴 듯한 모습이었다.

류귀가 멀리 떠나고 나서야, 무겁이 갈라진 목소리로 물었다.

“전혼전의 제자와는 어떻게 연락이 닿을 수 있는 겁니까?”

양준이 웃으며 대답했다.

“당신들이 구천성지를 공격할 때, 제가 전혼전에 심어 둔 바둑돌입니다. 뜻밖에 이렇게 또 써먹게 될 줄이야. 그의 몸에 손을 쓴 것은 거두어들이시죠. 목숨을 살려 두면 나중에 쓰임새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무겁은 크게 웃더니 감탄했다.

“성주 대인의 눈은 못 속이겠군요. 제가 손을 쓴 것까지도 알아보시다니요! 신식의 경지가 저보다 훨씬 강한 것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산 정상에 이르러서도 그는 양준의 존재를 감지하지 못했던 것이다.

‘초범 경지 3단계 무인이 입성 경지 무인보다 신식의 경지가 더 강하다니?! 이게 무슨 일이지?’

무겁은 속으로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무겁이 손가락을 움직이자, 잠시 뒤 귀신 얼굴처럼 험상궂은 형상이 류귀가 떠나간 방향에서 날아와 무겁의 몸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당신들은 왜 이곳에 온 겁니까?”

양준은 엄숙한 표정으로 본론을 얘기했다.

그는 거석성에서 신식을 방출해 류귀를 감지하고서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류귀가 이곳에 있다는 것은 곧 전혼전 사람들이 이곳에 왔음을 의미했다. 또한 유명종과 파현부도 함께하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이 세 세력은 애당초 구천성지와 척을 진 세력들이었다. 이들이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십몇만 리나 떨어져 있는 설산에 찾아온 것은 많은 생각을 불러일으켰다. 양준은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었으나, 무겁을 만나 확실히 확인하고 싶었다.

“날 쫓아온 건 아니겠죠?”

양준은 무겁을 곁눈질하면서 비릿하게 웃으며 물었다.

무겁은 한참 침묵하다가 대답했다.

“그렇게 말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당신이 아닌, 다른 한 사람을 찾기 위해 온 것입니다.”

“누굴 찾는 겁니까?”

양준은 형형한 눈빛으로 무겁을 지켜보았다. 무겁은 눈 한 번 깜빡하지 않고 지켜보는 양준의 뜨거운 시선에 은연중 압박감을 느꼈다. 그는 저도 모르게 미간을 좁히며 말했다.

“그 사람은 아마도 성주 대인과 연관이 있는 듯합니다. 그리고 지금 대인께서 긴장한 모습을 보니, 이미 우리가 이곳에 온 목적을 짐작한 것 같군요. 그러니까 대인은 관을 멘 사람의 비밀을 알고 있는 거죠? 그리고 그가 숨어 있는 장소도 알고요?”

양준은 눈동자가 수축되더니 몰래 한숨을 내쉬었다.

‘역시 관을 멘 사람을 찾기 위해 온 것이었군!’

애당초 무겁과 따로 만났을 때, 무겁이 한 차례 언질을 준 적이 있었다. 전혼전의 요적이라는 무인이 열화성에서 그가 관을 멘 사람에게 잡혀 간 사실을 알고 있다고 했고, 관을 멘 사람과 연관된 것까지 알게 되자 파현부와 전혼전에서 양준을 끝까지 뒤쫓으려 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때 당시 양준은 그들을 별로 신경 쓰지 않았었다. 파현부나 전혼전을 그리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데 뜻밖에도 2년이 지난 오늘, 그들은 설산을 알아냈을 뿐만 아니라 이곳까지 찾아왔다.

“내가 알든, 모르든 당신과는 상관없는 일입니다. 당신이 알고 있는 사실들을 알려주세요. 당신들은 어떻게 여기까지 찾아오게 된 겁니까?”

양준은 미간을 찌푸린 채 물었다.

무겁은 웃으면서 더는 쓸데없는 말을 하지 않았다.

“이곳을 찾아올 수 있었던 건 간단합니다. 대인의 정체가 신비했고, 파현부의 장오와 전혼전의 조관은 대인 때문에 체면을 엄청 구겼습니다. 두 사람은 당연히 대인의 출신과 소식을 알아볼 수밖에 없었죠. 그러다가 성주 대인이 천소종의 사람이란 걸 알게 되었고… 더욱 흥미로웠던 것은 당신이 천소종 출신이 아니라는 것이었습니다. 원래는 외진 곳에서 왔고, 천소종으로 가기 전에는 근처의 뇌광신교에서 초대 연단사로도 있었더군요. 뇌광신교 제자들에게서 당신이 가장 먼저 모습을 드러낸 곳은 바로 근처의 설산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건 당신이 관을 멘 사람에게 잡혀 갔다가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낸 것이었죠. 여러 가지 상황으로 보아, 많은 생각을 떠올리게 할 수밖에 없잖습니까?”

“참 다들 주도면밀하군요.”

양준이 냉소를 머금었다.

그는 관을 멘 사람에게 잡혀 갔다가, 설산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이는 용의주도한 사람들에게 유용한 정보를 제공했고, 관을 멘 사람이 설산에 숨어 있을 것이라고 추측하게 했다. 물론 사실이기도 했다.

무겁이 엄숙한 표정으로 말했다.

“장오와 조관은 이가 갈리도록 당신을 증오합니다. 그런 데다 관을 멘 사람의 배후에 있는 힘도 욕심내고 있죠. 때문에 그런 정보를 알아보는 데 전력을 다했습니다. 또한 이런 것들은 그리 힘들이지 않고도 쉽게 알아낼 수 있었습니다. 다만… 정보를 모두 알아냈고, 관을 멘 사람이 설산에 숨어 있을 거라고 짐작했지만, 넓디넓은 설산에서 한 사람을 찾는다는 건 잔디밭에서 바늘 찾기나 마찬가지기 때문에 장오와 조관은 원래 사람들을 거느리고 이곳에 올 생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왜 온 거죠?”

무겁은 잠깐 숨을 고르고서 쓴웃음을 지었다.

“사실 2년 전 저희 세 사람은 대인을 몇 달간 뒤쫓다가, 대인이 종적을 감추는 바람에 각자 문파로 돌아갔었습니다. 장오와 조관은 구천성지가 원기를 회복한 다음 복수할 것을 온종일 두려워했고, 그래서 구천성지의 대항마가 될 수 있는 뒷배를 찾으려고 했죠. 정 안 되면 문파를 옮길 생각도 하고요. 하지만 얼마 안 되어, ‘신비한 사람’이 장오를 찾아와 대인에 대해 알려주었습니다. 그리고 이번에 설산에 오게 된 것도 모두 그 ‘신비한 사람’ 때문입니다.”

“신비한 사람이라고요? 어떻게 신비합니까?”

“신분이 도저히 짐작 불가능합니다. 검은 장포로 온몸을 감싸고 있어 남자인지, 여자인지도 알 수 없고, 경지도 짐작할 수 없었습니다. 그의 곁에 부하가 한 명 따라다니는데, 부하의 경지가 입성 경지 1단계였습니다.”

무겁이 무거운 표정으로 말했다.

양준의 표정이 저도 모르게 바뀌었다. 부하가 입성 경지 1단계나 되다니? 그럼 ‘신비한 사람’ 본인의 실력은 어느 정도라는 것인가?

“이번 일은 ‘신비한 사람’이 주도한 것으로, 저희 유명종도 어쩔 수 없이 끼어들게 되었습니다.”

“신비한 사람의 정체가 누군지 다들 모릅니까?”

무겁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 사람은 우리에게 이번 일이 성사되면 구천성지는 절대 우리의 위협이 되지 않을 거라고 약속했습니다. 때문에 장오와 조관이 이처럼 발품을 파는 거죠. 친인척과 지인들을 모두 불렀을 뿐만 아니라, 거금을 들여 근처의 고월동천과 라생문도 불렀습니다.”

양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설산이 크다 보니, 무언가를 찾으려면 쪽수가 많아야 했다. 고월동천과 라생문은 절정 고수가 없었지만, 사람을 찾는 데는 충분했다. 그리고 염정과 모달이 거석성의 두만에게 찾아가 피독환을 부탁한 것도 결국 관을 멘 사람의 육체가 썩어서 발산되는 극독을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그 ‘사람’이 누구인 지 모르지만… 그 ‘사람’의 경지에 이른 사람은 몇 되지 않을 거 같습니다. 그리고… ‘신비한 사람’이든 그 부하든 둘 다 몸에서 불편한 기운이 흘렀습니다.”

“무슨 기운입니까?”

무겁은 잠깐 생각하다가 나지막하게 소리쳤다.

“마기입니다!”

양준의 낯빛이 급변했다.

“그러니까 그들은…….”

무겁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그건 저도 모르겠습니다. 다만 그들의 기운이 마기와 비슷하게 느껴졌을 뿐입니다. 제 생각에 대인께서는 이번 일에 끼어들지 않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 제가 도울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사실 저도 이곳에 있으면서 온종일 생명의 위협을 느낍니다.”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양준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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