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44장. 좀 힘들게 됐군요
양준은 무겁과 만나, 자신이 짐작했던 대로 사람들이 설산으로 몰려든 것은 관을 멘 사람을 찾기 위해서였음을 확인하게 되었다. 설산이 드넓다지만 몇천 명의 무인들이 찾다 보면, 얼마 안 되어 관을 멘 사람이 숨어 있는 곳을 찾을 게 뻔했다.
양준은 조바심이 났다. 그의 연단술은 아직 미흡한 부분이 있었다. 그런 게 아니라면 그는 벌써 관을 멘 사람을 찾아갔을 것이다. 그리고 그가 더욱 신경 쓰이는 것은 무겁이 말한 ‘신비한 사람’이었다. 이는 매우 큰 변수였다. 그는 무겁의 두려움이 섞인 말투에서 ‘신비한 사람’이 입성 경지 3단계 절정 고수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세상에 이 정도 실력을 가진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도대체 누구일까?’
양준은 아무리 생각해도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성주 대인?!”
무겁은 양준이 깊은 생각에 빠진 채 한참을 꼼짝도 하지 않자, 나지막하게 불렀다. 그제야 양준은 정신을 번쩍 차리고 대답하려다가, 순간 낯빛이 차가워지더니 무겁을 의미심장하게 훑어보며 음산하게 웃었다.
“무슨 일입니까?”
무겁이 미간을 좁히며 물었다. 그는 양준의 태도가 왜 갑자기 바뀌었는지 알 수 없었다. 게다가 자신을 바라보는 그의 눈빛도 이상했다.
“무겁, 전에 당신은 유명종의 생존 법칙이 돈을 받고 남을 대신해 일해 주는 거라고 했었죠?”
“네, 맞습니다. 저는 줄곧 그 규칙을 저희 문파의 근본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그동안 구천성지에 충분한 물자를 바치고 문파를 발전시킬 수 있었습니다.”
“그럼… 이번엔 도대체 보수를 얼마나 받은 겁니까? 감히 나를 팔아먹다니! 참 어지간히 대담하군요!”
양준은 포악한 얼굴로 매섭게 일갈했다.
무겁은 순간 당황하며 몇 걸음 물러서서는 의아해하며 물었다.
“왜 그러십니까?”
양준은 그를 지긋이 지켜보는 동시에, 신식을 폭발시켜 무겁의 머릿속으로 침투시켰다. 그러자 무겁의 얼굴빛이 크게 변했다. 그는 양준이 살의가 전혀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양준은 잠시 뒤 신식의 힘을 거두어들이며 덤덤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보아하니, 당신도 전혀 모르는 것 같군요…….”
“대인의 말씀은…….”
무겁은 그제야 무슨 일이 생겼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귀신불 같은 눈동자를 번뜩이며 사방을 둘러보았다. 잠시 뒤, 그는 이상한 웃음소리를 내며 짙은 두려움을 띤 채로, 조용히 양준의 곁으로 다가섰다.
“그만 숨고 이젠 나오지!”
양준이 별안간 나지막하게 일갈했다.
“대단하군! 어떻게 알아차렸어? 역시 우리 대인의 눈에 든 사람은 다르구나!”
야유와 함께, 주변에서 많은 그림자들이 기괴하게 나타나더니 양준과 무겁을 겹겹이 둘러쌌다.
그 목소리를 듣는 순간, 양준은 눈동자를 수축하며 그쪽을 바라보았다. 그의 시선이 준수한 외모의 중년 남자에게 닿는 순간,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나지막하게 소리쳤다.
“욱말?”
지금 그의 눈앞에 나타난 이는 양준이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바로, 마강 사성의 입성 경지 1단계 마족 고수 욱말이었다.
욱말의 옆에는 검은색 대창의(大氅衣)를 입은, 수련한 적이 없는 일반인처럼 기운이 평온한 사람이 서 있었다. 하지만 양준은 그 사람에게서 큰 압박감을 느낄 수 있었다.
양준은 욱말과 함께 나타난 다른 고수들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몇 년 못 봤더니 크게 성장했군!”
욱말은 여유 있게 미소를 지었다. 양준을 독 안에 든 쥐라고 생각하는 듯 매우 느긋한 모습이었다.
양준은 그를 흘끗 보고 나서 다시 시선을 신비한 흑의인에게 돌리더니 쓴웃음을 지었다.
“욱말이 나타났으니, 설리 대인도 왔겠군요.”
그 말에 신비한 흑의인은 한참을 깔깔 웃었다. 은방울 굴리는 듯한 웃음소리에 근처에 둘러서 있던 고수들은 모두 넋이 나간 표정을 지었다. 그들은 이처럼 실력이 뛰어난 사람이 여인일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는 반응이었다.
설리는 머리를 덮고 있던 모자를 젖히고 아름다운 얼굴을 드러냈다. 장오와 조관은 설리의 아름다운 얼굴을 보는 순간, 모두 얼이 빠진 듯한 표정을 지었다. 사실 설리의 외모는 예쁘장한 편이었지만, 그렇다고 절세가인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녀의 높은 경지와 직위에 따른 우아한 기질이 있었다.
“흥!”
욱말이 불쾌해하며 크게 콧방귀를 뀌었다. 장오 일행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불안한 마음으로 얼른 시선을 돌렸다.
“겨우 찾았네! 네가 사성에서 도망친 다음, 3년이란 세월이 흘렀어. 아직까지 다른 누구한테 이 정도까지 신경 쓴 적이 없거든.”
설리가 가볍게 냉소하며 말했다.
“그렇다면 참 영광입니다!”
양준이 피식 웃으며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차분하게 대답했다.
“설리 대인?”
무겁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방금 전 양준이 신비한 사람을 부르는 호칭에서 저도 모르게 많은 생각이 떠올랐던 것이다. 잠깐 뒤, 그는 몸을 흠칫 떨며 엉겁결에 소리쳤다.
“마장 설리?”
지금에 이르러서야, 무겁은 신비한 사람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곧이어 등골이 서늘해진 무겁의 초록색 기운이 어지러워졌다.
마강에서는 마존 아래로 마장 네 명이 있었는데, 그들은 하나같이 최절정 고수들이었다. 그리고 마장 설리는 그중 한 명이었다. 무겁은 마족인 설리가 인령까지 깊게 파고들어 장오 일행을 부추긴 것도 모자라 이런 식으로 사람들을 부릴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었다. 그리고 그녀의 목표물은 양준이 분명했다.
‘젊은 성주 대인의 어떤 점이 마장 설리의 이목을 끈 것일까?’
장오 일행은 ‘마장 설리’란 말에 모두 눈이 휘둥그레진 채 일제히 설리를 바라보았다. 아마도 사실인지, 아닌지 확인하고 싶은 모양이었다.
설리는 그들을 전혀 거들떠보지도 않고 뜨거운 눈빛으로 양준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빛에는 탐욕과 소유욕이 번뜩이고 있었다.
“설리 대인은 인간 고수들에게 포위 공격당할까 두렵지 않습니까? 당신은 인령 쪽에서 별로 환영받지 못할 텐데요.”
양준이 음산하게 웃으며 말했다.
사실 겉모습과 달리 그의 마음속은 답답하기만 했다. 방금 전 무겁이 신비한 사람에 대해 말할 때, 그는 마장 구경이 아닐까 생각하고 있었다. 그는 구경과 만난 적이 없었지만, 구경은 여러 차례 그를 죽이려 했었다. 때문에 구경이 여기까지 사람을 보내 그를 죽이려 한다고 해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심지어 마장 몽과일 가능성도 생각했었다.
양준은 아직 실력이 낮을 때, 쇄마련으로 몽과의 하위 신혼을 죽인 적이 있었기에, 몽과는 그의 기운을 기억하고 있을 수 있었다. 하지만 유독 설리만은 떠올리지 않았었다. 양준은 자신과 그녀 사이에 그렇게 큰 원한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때 당시, 사성에서 도망칠 때에도 그는 설리의 이익과 위엄에 해가 되는 일을 하지 않았었다. 그러니 설리가 3년 동안 줄곧 그를 쫓아다닐 이유가 뭐가 있겠는가? 그런데 지금 설리는 직접 이곳까지 자신을 잡기 위해 쫓아와 있었다.
설리는 양준의 말에 나지막하게 웃었다.
“두려우면 오지도 않았어. 인간 고수들이 많지만, 너를 위해 나설 사람이 있을까?”
“역시 실력이 강하니 대담하시군요!”
“다만… 넌 참 내 상상을 넘어서는구나. 실력이 향상된 건 당연한 일이고. 그런데 넌 어떻게 내가 사람을 거느리고 온 걸 알았지? 네 지금 경지로 감지할 수가 없을 텐데.”
그 말에 무겁도 호기심이 어린 눈초리로 양준을 바라보았다. 방금 전 일은 너무 급작스러웠기에 그는 누군가 자신의 뒤를 쫓아온 줄도 몰랐었다. 만약 양준의 태도가 갑자기 바뀌지 않았다면, 그는 여전히 아무것도 몰랐을 것이다.
“류귀가 죽었잖습니까. 그는 제가 당신들 속에 심어 놓은 바둑돌이죠. 그가 죽었으니, 자연스럽게 감지할 수 있었습니다.”
양준이 차가운 표정으로 말했다.
“그랬군!”
설리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나 방금 전에 죽인 신유 경지 청년 때문에 자신들의 존재가 발각됐던 것이었다.
“성주 대인… 좀 힘들게 됐군요.”
무겁은 양준과 함께 서서 두려움 섞인 눈빛으로 주위를 둘러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게요. 좀 어렵게 됐네요. 만약 설리가 이곳에 있다는 것을 알았다면, 당신을 부르지 않았을 겁니다. 제 불찰입니다.”
양준이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말했다. 장오 일행만 있을 줄 알았는데, 입성 경지 3단계 고수까지 있을 줄 어찌 알았겠는가.
“무겁, 참 실망이야. 진작부터 그 녀석과 결탁했었군. 그래서 2년 전에도 그렇게 몸을 사리고 있었던 건가?”
장오가 문득 고함을 질렀다.
“유명종은 이제 세상에서 사라지려는 모양이군.”
조관도 비아냥거리며 말했다.
“지금 저를 위협하는 겁니까?”
무겁은 싸늘하게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그렇다면? 지금이라도 기회를 주지. 그동안의 친분을 봐서, 지금 당장 그 녀석을 사로잡으면 자네를 난감하게 하지는 않을 걸세.”
양준은 경계 어린 눈초리로 무심코 무겁을 흘끔 보았다.
무겁이 크게 웃으며 말했다.
“두 분은 뭔가 잘못 알고 있는 거 아닙니까? 저 사람의 실제 신분을 몰랐으면 어쩔 수 없지만, 지금은 마장 설리인 것을 알게 되었는데도 계속 저 사람을 위해 일할 겁니까? 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닙니까?”
“일이 이렇게 된 이상, 우리에게 이제 퇴로는 없어. 기껏해야 이번 일이 끝나면 문파를 마강으로 옮기면 돼.”
장오는 자포자기라도 한 듯이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 그러고는 다시 아부하는 표정으로 설리를 바라보며 말했다.
“대인께서 저희들을 받아 주실지 모르겠군요.”
“물론 되지. 사성 근처 사방 몇만 리에 달하는 지역에 아무도 없거든. 당신들이 원하면 그곳을 줄게. 난 당신 인간들 내부 싸움이 가장 재미있어.”
설리가 깔깔 웃으며 대답했다.
“사방 몇만 리…….”
장오와 조관은 그 말에 마음이 움직였다. 동시에 그들의 눈동자는 탐욕으로 물들었다.
‘몇만 리나 되는 지역이라니?! 정말 그곳을 장악하게 되면 문파의 발전에 큰 도움이 될 거야.’
양준은 두 사람의 모습에 실소하고 말았다.
두 사람은 사성 근처의 상황을 모르고 있었다. 사실 설리는 사막을 그들에게 주겠다고 말하고 있었던 것이다. 장오와 조관 일행이 정말 그곳에 버려진다면, 얼마 지나지 않아 몇 명의 고수들만 남고 모두 죽을 터였다. 그런 줄로 모르고 마냥 기뻐하는 두 사람의 모습은 정말 바보 같아 보였다.